106화
“기분은 엿같지만… 제이크의 말대로 해야겠군.”
“기분이라니,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해. 리 혼자서 우리 7명을 모두 잡았다고.”
“엿같을 게 있나? 난 그냥… 이해가 안 되던데……. 탄창 하나로 우리 여섯을 다 제거하고, 3발로 제이크까지……? 이게 실화라고?”
팀 배정을 앞둔 전현직 델타포스 대원들이 말을 주고받으면서 저마다의 감정을 내비쳤다.
강태의 실력이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은 탓이었다.
사전에 사격 솜씨에 크게 놀라긴 했지만, 그것과 모의 전투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었다.
고정된 표적을 제한 시간 내에 맞추는 것과 지형지물을 활용한 대인전은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차원이 다른 종목이었으니까.
한데 강태가 그걸 무시하고 같은 결과를 선보인 것이었다.
마치 내기 사격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가운데 있던 제이크도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 그들과 심경은 비슷했다.
‘사격 결과는 예상대로지만, 모의 전투까지 비슷하게 흘러갈 줄이야…….’
단순히 놀라거나 당황한 게 아니었다.
낙심, 오기 따위의 온갖 감정이 얽혀서 속이 여러모로 복잡한 것이었다.
그리고 개중 가장 큰 건 따로 있었다.
패배로 인한 당혹감.
물론 졌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이중에서 강태의 실력을 가장 잘 아는 만큼 제이크 역시 이기기 힘들다고 여겼고, 큰 차이로 질 가능성도 염두에 뒀었으니까.
그래서 맞대결을 펼치고 싶어 했었다.
그만큼 강한, 그래서 이기기 힘든 존재였으니까.
한데 제이크를 비롯한 팀원들이 사격용 더미처럼 줄줄이, 30초 안에 전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느 정도 버틸 거라고 생각했었다.
모임 인원들은 주방위군이나 미 육군 보병이 아니라, 날고 긴다는 델타포스 출신이었으니까.
심지어 개중 절반은 여전히 현역이었다.
그것도 경력 1, 2년이 아닌, 10~20년의 어마어마한 베테랑들.
제이크보다 선임도 있었다.
그래서 정석으로 접근해서 교전을 벌인 것이었다.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었고.
그러나 모든 게 오판이었다. 강태의 실력은 델타라고 해서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상대했던 대부분의 적이 반군이거나 테러리스트였을 뿐.
‘생각해 보면 세르게이의 팀도 혼자 처리했지. 특전대를 데리고 가긴 했지만… 그걸 간과했군…….’
자연스레 제이크의 얼굴이 굳었다.
‘그렇게 따지면… 머릿수가 같아서는 이기기 어렵겠지. 내가 두 명을 제거하긴 했지만, 그건 미끼 역할을 자처한 거라 온전하게 사살했다고 볼 수도 없고…….’
어느새 그의 계산이 점점 깊어졌다.
강태 앞의 두 사람도 작정하고 사격하면서 달려들었다면, 제이크 역시 반사적으로 몸을 감춰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고개를 내밀었다가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굳이 강태가 아닌 누구에게라도.
‘저 친구들도 강태의 실력을 그만큼 신뢰한 거지…….’
어느덧 강태를 바라보던 제이크의 입꼬리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패배감과 별개로 흡족했기 때문이었다.
유일한 아시안으로서, 이름도 모르는 특수부대 출신임에도 델타포스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에 이르러 아주 편파적인 팀 배정에 이르렀다.
7 대 7이 아닌, 5 대 9.
두 명이 핸드폰 어플로 추첨해서 팀을 옮겨 가고 있었다.
당연히 공정하지 못한 일이었다.
수십 명도 아닌, 총원 14명 중에서 무려 4명이나 차이가 났으니까.
이 정도면 사실상 한쪽이 이기고 시작하는 게임이었다.
창피할 만한 일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보다 자부심이 센 전현직 델타포스 대원들이 편파적인 팀 배정에 동의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CQB 실력을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까.
그렇게 나누어진 팀원 중 한 명이 제이크를 향해 물었다.
“이봐, 제이크. 용병 일을 한다더니… 요인 암살이나 납치 같은 걸 하고 다니나? 저런 괴물을 부하로 둬? 가서 북한을 해방시켜 줘도 될 것 같은데, 안 그런가?”
그 말에 제이크가 엷게 웃길 잠시.
“그래서 제안할 게 있어.”
“제안?”
8명의 팀원들이 모두 시선을 모으자, 제이크가 나직하게 말을 덧붙였다.
“테러리스트들이나 할 법한 짓이지만… 이 정돈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뭔데?”
“코너에 처박힌 채로 대기한다든가,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짓거리 말이야.”
“제이크… 진심인가?!”
묻는 이의 억양이 크게 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쳐다보는 나머지 인원들도 보안경 안의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전술과는 동떨어진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기다리는 일이든, 달려드는 거든, 죄다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만한 가치는 있었다.
일종의 변수인 돌발 상황.
공격 팀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순간인 만큼, 심리적이든, 물리적이든 어느 정도 타격을 줄 확률이 높았다.
제이크가 여전히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전부 할 필요는 없어, 한 명. 한 명만 하면 돼.”
“오, 세상에… 진심이군. 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어. 저 아시안, 리? 리라고 했나? 하여튼 그의 솜씨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니까…….”
“아냐, 내가 오판했어. 델타를 과신했다고… 그런 생각이 들더군.”
“과신이라니?!”
“리는 예상 밖의 미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이길 수 없어. 4명 차이도 큰 게 아니야. 이걸로도 이기긴 힘들 것 같거든, 이러다가는 결국에 13 대 1의 게임을 진행해야 할 가능성이 커.”
“…….”
섣불리 대꾸하는 이가 없었다.
제이크의 선임조차 눈알만 커질 뿐,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제이크의 말이 너무 지나치기도 하거니와,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 판단이 틀렸다면, 모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음 경기부터는 입을 닫고 있도록 하지.”
그 소리에 짧게 침음이 돌 무렵.
“씨발… 정말 좆같지만,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일단 찬성하겠어.”
제이크의 선임이었던 사내가 먼저 입을 열었고, 이후로 줄줄이 대답하기 시작했다.
제이크를 신뢰하는 정도에 따라 말투가 누그러졌고, 성깔이 있는 이들은 씩씩댔는데, 다행히도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동의.
제이크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었다. 델타포스의 전설이고, 또한 모임의 주축이면서, 시뮤니션 총기 역시 그의 지갑에서 나온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곧장 한 명이 불려 나왔다.
“네가 대열을 이탈해서 선 진입하고, 이쪽 방에서 대기하도록 해.”
“으음, 그러죠. 테러리스트 흉내라니…….”
“자주 해 보지 않았나? 내부 훈련할 때 말이야.”
“그렇긴 하지만, 지금하고는 좀 다르죠. 외부인까지 데려온 모의 전투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그래야 리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거든.”
“네?”
“네 말대로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모를 테니… 리 역시 그만큼 행동에 제약이 생길 거야. 그의 발목을 잡는 거지. 운이 좋다면 상대를 한두 명은 사살할 수도 있을 거고, 잭팟이 터지면 리를 제거하게 되겠지.”
그게 제이크의 노림수였다.
생각지 못한 테러리스트의 행위를 흉내 내어 강태의 발목을 붙잡고, 아군의 공격 기회를 그만큼 만들어 내는 것.
물론 평소 강태의 전투 양상으로 보면 심적으로 큰 타격을 주긴 어려울 게 분명했다.
그는 농담처럼 말한 강철 멘탈을 소유한 전투원이었으니까.
그러나 신경을 쓰이게 할 순 있었다.
아주 조금이겠지마는, 그 조금이 전장에서는 적잖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진입 1분 전.”
제이크의 짧은 말과 함께 문앞에 대기하길 잠시, 버저가 울렸다.
삐이─ 삐이─
램프가 깜빡거리고, 9명이나 되는 인원이 오랜 시간 호흡이라도 맞춘 것처럼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한 명이 약속한 대로 대열을 이탈했다.
파바바박!
실 작전지에서는 하기 힘든 짓이었다.
정말 극단의 상황에 처해 있는 게 아니라면, 가급적 배우고 훈련한 대로 해야 했다.
그래야 뭐가 됐든 익숙하게 대처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일단 시킨 대로, 지시 받은 이는 열심히 뛰어서 실내 CQB 공간에 도달했다.
“후우… 흐으…….”
가쁘게 호흡이 차오르는 가운데, 이윽고 조용히 발을 옮겨서 방구석으로 향했다.
그것도 대충 서 있는 게 아니었다.
엉덩이를 벽에 기대듯 밀착해서 주저앉았고, 양 무릎에 팔꿈치를 얹어서 사격 자세를 취했다.
총구 방향은 문틀.
그야말로 완벽한 준비였다.
아직 조정간이 안전으로 되어 있고 검지도 방아쇠울에 올라가 있긴 하지만, 그건 전투의 기본이어서 이렇다 따질 게 없었다.
물론 격발이 늦진 않을 것이다.
총구가 보이는 순간에 알아서 엄지가 조정간을 돌리고, 동시에 검지도 방아쇠 위에 올라갈 테니까.
‘그리고 쏘면… 일단 한 놈은 죽겠지. 문제는 그다음에 내가 사살 처리 된다는 건데,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면 해야겠지. 부디 제이크의 판단이 맞길…….’
대기 중인 사내가 호흡을 고르면서 상념을 떠올릴 무렵.
터벅, 터벅.
인기척이 느껴졌다.
복도로 적과 아군 모두가 진입한 것이었다.
보지 않았지만,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곧 격발음과 함께 훈련탄이 여기저기에 맞는 소리까지 울려 퍼졌다.
타다다당! 타당! 타다당!
예상했던 평범한 교전이었다
곧 그가 대기 중인 방으로 누군가 들어올 터.
제이크가 짐작한 대로라면 적 중 한 명, 운이 좋다면 강태가 들어오게 될 거였다.
그리고 조금 재수가 없다면 곧장 구석부터 확인할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이길 자신은 있었다.
진입한 상대와 달리 그는 준비 중이었으니까.
“후…….”
이에 안면 마스크 속에서 긴장을 낮추려 호흡을 고를 때였다.
“……!”
드디어 총구가 보였다.
10년 넘게 반복 숙달된 엄지와 검지가 무조건반사를 일으키듯 움직인 순간.
사내는 깨달았다.
재수 없는 그 케이스가 됐다는 걸.
상대가 코너부터 찔러 오듯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격발까지 늦지 않으리라 여겼으나, 그것마저 틀렸다는 것을 체감했다.
타당!
쏘기 전에 총성이 울렸다.
그것도 조준하고 검지에 압력을 가하는 순간.
가슴팍과 머리에 통증까지 퍼지고 있었다.
피격된 것이었다.
“……!?”
물론 훈련탄이라 때리고 튕겨 나간 것이었는데, 사내는 그 이상의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심장이 탄의 충격으로 터지고, 헬멧을 뚫은 탄두가 두개골을 박살 낸 듯한 착각.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일순 죽음을 봤었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있었다.
복도에서 마주했을 때는 몰라도, 지금은 완벽하게 준비를 갖춘 탓이었다.
패배는 말이 안 됐다.
이어서 어느새 방에 들어온 적이 태연하게 엄폐하다가 다시 나갔는데, 그제야 사내의 입이 열렸다.
“그놈이군… 리…….”
그러자 헛웃음이 나고 말았다.
방금 제이크에게 들었던 얘기가 어느새 코앞에 다가온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11 대 3, 더 나아가 13 대 1까지.
델타포스 대원들이 CQB에서 한 명을 상대로 대결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그려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입이 중얼거렸다.
“놈을 제압하려면 저격수나 IED를 써야 할 것 같은데… 이딴 걸로 무슨 발목을 잡는다고…….”
그러던 그의 시선이 스윽 내려갔다.
10년 넘게 조정간과 방아쇠를 다뤘던 오른손을 향해.
그리고 조정간을 미리 돌려놓고, 방아쇠 위에 검지를 올려놓은 채로 기다리는 상상을 했으나, 그것도 승리를 확신하기 어려웠다.
강태는 들어오면서, 그것도 너무나도 빠르고 정확하게 격발한 탓이었다.
따지자면, 조준하는 데 시간이 들지 않았다.
그냥 쏜 느낌이었다.
그게 맞았을 뿐.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분명한데, 강태는 그걸 직접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게 온갖 잡념에 휩싸일 무렵.
치직, 무전음과 함께 그가 예상했던 소식이 들려왔다.
-레드 팀 승리, 전원 바깥으로 나오도록 해.
구석에 있던 사내가 블루 팀이었으니, 다른 말로 패배했다는 뜻이었고, 제이크의 짐작대로 되었다는 소리였다.
이어진 11 대 3의 경기 역시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와중에 강태의 팀원들이 다 사망 처리 되긴 했지만, 어쨌든 11명이 모두 제거된 탓이었다.
결과적으로 레드 팀 승리.
“씨발… 정말 일이 이렇게 됐군…….”
누군가 터무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황된 소리 같았던, 13 대 1의 투입까지 고작 1분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혼자 문 앞에 선 강태는 다른 의미로 감탄하고 있었다.
“크으… 진짜 이걸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