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제이크를 보는 순간,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이걸 기다렸나?’
눈에 담기는 표정이 그랬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걸리고, 두 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모습.
상당히 학수고대한 것처럼 보였다.
국무부 장관을 만나고서 제이크가 초대했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거였다.
내가 덥석 제안을 받아들여서 그랬을 터.
‘팀장이 나하고 붙고 싶어 할 줄은 몰랐는데…….’
미처 예상하지 못한 거라서 설핏 웃음이 났는데,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됐다.
내가 제이크라도 강자와 붙고 싶을 테니까.
보통 군인도 아닌, 델타포스 출신인 그가 얼마나 호승심을 참았을지 조금 공감이 되기도 했다.
그사이, 야구 모자를 쓴 델타 대원이 내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봐, 리! 넌 어떻게 생각해? 네 상관이 너하고 적으로 만나고 싶다는데, 찬성하나?”
“나도 팀장하고는 붙어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긴 한데… 그렇게 해도 되나? 팀은 무작위로 뽑는 거 아니었어?”
“맞아, 원래는 무작위지만…….”
야구 모자가 어느새 주변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하듯 말을 이었다.
“두 괴물이 같은 팀을 하는 것보다는 나눠지는 게 모두에게 이로울 것 같군. 안 그런가?”
마지막 말은 다른 이들을 향한 소리였는데, 바로 긍정의 답들이 돌아왔다.
“그게 공평하지.”
“역시 제이크가 현명하군.”
“두 괴물이 한 팀인 것도 보고 싶지만, 그건 아군일 때 할 얘기겠지.”
그저 몇 명만 그런 게 아니었다.
처음 내게 관심을 보였던 이들이나 고의적으로 무관심했던 이들까지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첫 사격부터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보여 주고, 처음 했다던 실용 사격 종목에서도 미국 우승보다 13초가 더 빨랐으니까.
그만하면 인간의 한계를 넘은 수준이었다.
올림픽으로 따지면 앞으로 깨지 못한 신기록을 세운 셈.
그걸 보고도 날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이 안에 있을 수는 없었다.
이들은 주 방위군 출신이 아니라, 전현직 델타포스 대원들이었으니까.
그래선지 팀 선정도 이견 없이 빠르게 이뤄졌다.
어느새 내 곁에 온 야구 모자가 시시덕거리듯이 말을 붙여 왔다.
“제이크를 적으로 두면 긴장돼야 하는데, 오늘은 기대가 되는군. 그래도 되겠지, 리?”
“이런 FOF(Force On Force: 사람 대 사람)는 처음이라 잘 모르겠지만, 아마 패배할 일은 없을걸.”
“흐하하하하, 사격 실력에 어울리는 자신감이군.”
호쾌한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으나, 그건 단순한 마음가짐 같은 게 아니었다.
이번 모의 전투가 뻔했기 때문이었다.
블루건이라고 불리는 특수 제작된 총열로 교체한 HK416과 글록19를 사용해서 치르는 일종의 CQB.
그 안에는 보병의 천적인 박격포나 RPG-7 같은 로켓포는 물론이고, 예상하기 힘든 지뢰나 폭발물, 저격수까지 없었다.
여기서 통용되는 건 기동 간의 전술 전략 그리고 개개인의 전투 능력이었다.
결론적으로 나한테 모든 게 유리하다는 뜻.
‘이 정도면 판 깔아 주는 거지.’
다른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
새로 시작한 라레플 인생도 어느덧 8개월 차에 접어들어서, 내 능력이 어떤지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제한된 상황이면, 전략 병기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물론 방심해서는 안 될 일.
그사이, 싹싹한 막내답게 나서서 보안경과 소형 무전기를 나눠 주던 해리가 날 보며 울상을 지었다.
“선배님… 저는 늘 선배님과 팀을 하고 싶은데… 너무 아쉽습니다.”
“좀 떨어지자, 징그럽게.”
“오해 좀 사면 어떻습니까, 전설적인 선배님과 함께 있는데…….”
“그 입을 좀… 팀장한테 입조심하게 해 주라고 할까? 내가 여기서 주접 싸지 말랬지?”
“주접이라니요? 이제 다들 이해할 겁니다. 충격받지 않은 사람이 없거든요.”
그러면서 해리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인상 쓰던 저쪽 사람들도 놀란 게 티가 났습니다. 저한테 선배님에 대해서 다시 물어보기도 하고요.”
“붙지는 말고.”
“아아, 네. 그럼 선배님… 저 쏘실 거면 방탄판이나 헬멧 위쪽으로 좀 부탁드립니다. 이거 잘못 맞으면 많이 아프거든요.”
“시작하기 전부터 피격될 걱정을 하냐? 명색이 나이트 스토커 출신이?”
델타포스 대원이나 제이크와 다른 태도에 한마디 할 때였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해리가 어느새 진지하게 대답했다.
“선배님이라서 그런 겁니다, 저도 선배님만 아니라면 상대가 누구든 이길 생각부터 할 겁니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선배님을 상대로는…….”
잠시 고개까지 저은 그가 비장하게 눈을 빛내면서 대답했다.
“도저히 못 합니다. 차라리 팀장님하고 붙으라면 붙고, 북한에 투입해서 킴을 죽이라면 당장 침투할 수도 있겠는데, 선배님하고 맞대결은 도저히 붙어 볼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비교하자면… 신에게 대적하는 느낌이랄까요?”
“신? 이 미친놈이 어디까지… 알았으니까, 얼른 가.”
얘기가 늘어지는 해리를 보낸 뒤, 상념을 날려 보내고 모의 전투를 준비했다.
처음 보는 블루건(Blue Gun)과 시뮤니션(Simunition) 탄환을 확인하는데, 어느새 모의 팀의 최연장자가 다가왔다.
“여기서는 당신이 가장 중요한 전략 자원 같은데… 원하는 게 따로 있나?”
역시나 그도 처음과는 달라진, 상당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방금 해리가 말했던 그 사격의 영향력을 체감하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아무 자리나 줘. 난 팀장의 의견을 신뢰하는 편이거든. 제이크가 아니더라도, 다들 델타잖아?”
“흐흐, 그것참 좋은 자세군. 그럼 맵 숙달도 그렇고, 빠른 반응을 고려해서 두 번째가 적당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해?”
“좋아, 두 번째로 하지.”
“시원시원하군, 마음에 들어. 그리고 나머지는…….”
내 자리를 정한 모의 팀장이 그렇게 남은 이들의 모의 전장 진입 순서를 정했고, 간결한 대화 몇 번으로 수신호와 분리 및 산개 전술까지 빠르게 확정했다.
보면서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야, 역시 델타…….’
그 모든 절차가 상당히 빨랐다.
미적거리거나 주춤하는 것 없이, 반박이나 이견 역시 말 몇 마디로 정리가 됐다.
서로 쌓은 짬이 있고, 실력이 있다 보니 가능할 것일 터.
그것도 간만에 만난 이들이 보여 줄 만한 호흡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소속된 G&G Corp의 TF처럼 꾸준하게 작전이라도 해 온 듯한 광경.
절로 눈이 가는 상황이 금세 정리되더니, 어느새 가벽 앞에서 진입할 준비를 했다.
“램프가 신호를 줄 거야, 준비들 해.”
모의 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교장을 다시금 바라봤다.
벽이 꽤 높고, 문도 커다랬다.
전장의 면적 역시 약 700여 평에 달할 만큼 넓었다.
당연히 야외에 만들어진 구조물인데, 그렇다고 마냥 크다고 하긴 어려운 교장이었다.
모래 포대와 담벼락, 타이어 따위가 중간중간에 배치된 데다가 한가운데에는 복도형 건물을 복제한 모형 벽과 방까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부대에서 해 봤던 다양한 CQB 훈련 교장이 섞여 있는 교장.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었다.
물론 미리 맵을 보긴 했지만, 단번에 외울 수도 없어서 쉽지도 않았고.
그렇게 갖가지 상념을 정리할 무렵, 문에 있던 램프가 깜빡이면서 동시에 진입 버저가 울렸다.
삐이─ 삐이─
바로 문을 열고 진입했다.
시작은 무난했다.
주 진입로를 미리 정해 두고, 각자 위치와 경계 방향까지 미리 정해 두었고, 상대 역시 쉽게 다가오기 어려운 경로였기 때문이었다.
막무가내로 뛰어올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적었다.
업계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경력자들이었으니까.
대신 신속한 이동과 정지, 경계의 순서를 계속해서 반복하기를 잠시, 어느새 속도가 줄었다.
예상 교전 지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좌우로 방이 있는 복도식 구조의 실내 CQB 지점.
툭툭, 허벅지를 건드리는 신호를 받았고, 앞에 전달하면서 바로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이미 진입해 있던 적을 마주했다.
“……!”
반사적으로 HK416이 들렸다.
나뿐만이 아니라, 선두에 있던 대원이나 어느새 옆으로 나와 있던 이도 마찬가지.
그러나 방아쇠는 내가 가장 먼저 당겼다.
탕탕탕!
기존의 총성과는 다른 가벼운 격발음이 울려 퍼졌지만, 탄피가 튀어 나가면서 피격되는 광경이 눈에 보였다.
마찬가지로 총을 들던 상대의 안면 마스크와 보안경, 헬멧까지 전부 맞힌 것이었다.
탄두의 페인트가 터지며 표시가 남는 순간.
어느새 복도 건너편이 잠잠해졌고, 우리 쪽도 방 좌우로 나뉘어 들어가서 엄폐했다.
반대편 방의 인원과 눈을 마주친 뒤.
흐릿한 인기척이 들렸다.
상대편 쪽에서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고, 신호를 받고 나가면서 깨달았다.
적이 먼저 다가온다는 걸.
타다다다다다다당! 타다다당!
여러 개의 총성이 동시에 쏘아져 왔다.
방금 사망 처리된 한 명을 제외하고, 적 전부가 총구를 들고 다가오는 것이었다.
내 앞으로도 탄이 스쳐 갔다.
견제 사격 비슷한 거라 맞지 않았는데, 그사이에도 내 검지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탕! 탕탕!
정확히 세 발.
탄피가 튀면서 순식간에 선두에 있던 이들이 방탄 헬멧에 정확히 표시를 남겼다.
주춤한 세 사람이 자리에 주저앉은 사이, 나도 아예 바닥에 옆으로 눕듯 쓰러지면서 마저 쐈다.
그 뒤에서 조준 사격이 명백한 액션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탕! 탕! 탕! 탕!
이번에는 네 발.
급히 넘어지는 바람에 조준점이 살짝 흔들린 거였는데, 그래도 못 맞히진 않았다.
머리와 상체 한가운데 대신에 어깨를 맞혔을 뿐.
타다다탕!
뒤에 있는 이들까지 노리고 쐈는데, 다행히 보이는 모두를 다 맞혔다.
순식간이었다.
“이런 제기랄…….”
보안경에 탄을 맞은 이가 페인트를 닦아 내며 욕설을 중얼거렸고, 다른 이들도 탄식을 흘렸다.
그럴 만했다.
단 한 명을 빼고, 6명이 몇 초 만에 이 복도에 전부 쓰러졌으니까.
이제 남은 건 단 한 명이었다.
덩치가 가장 크지만, 가장 날쌔기도 한 제이크.
‘저 덩치에 저렇게 빨랐나?’
새삼 그의 속도에 감탄하면서, 나도 얼른 기어들어 가서 탄창을 교체했다.
동시에 맞은편에서 사격하려다가 머리만 감췄던 이가 어느새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었다.
정해진 수신호가 없으니, 아마 저건 평소에 쓰는 최고라는 뜻일 터.
나도 고개를 끄덕여 주자, 그제야 미리 정해 두었던 신호가 나왔다.
동시 진입.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였는데, 아군이 먼저 머리를 내민 순간.
파악!
헬멧에 탄이 휘면서 페인트 흔적을 남겼다.
눈 깜짝할 새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대신, 격발한 상대를 찾아 복도로 총구를 겨눴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상황.
오래지 않아서 상황이 어떤지 깨달았다.
‘여기서 사각지대구나.’
제이크가 머리를 써서 사격 각도를 확보한 거였다.
억지로 진입했다가는 내가 죽는 상황.
어떻게 처리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뒤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리, 내가 미끼를 하지, 당신이 처리해.”
결단을 내린 듯한 무거운 음성.
아까 그 팀장이었다.
그 말고도 다른 이들도, 내 오랜 전우처럼 눈을 마주하며 결의를 다지듯 보였다.
아마 실전이었어도 목숨을 내던졌을 모습.
속으로 다시금 감탄하는 사이, 마지막 작전이 시작됐다.
타다다다닥!
빠른 발소리와 함께 총구를 든 이가 달려들었고, 동시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페인트가 튀며 앞의 두 사람이 통증에 주춤했는데, 그 사이에서 방아쇠를 당기면서 깨달았다.
‘저 각도에서 쐈던 거야?’
제이크는 한 뼘이 아니라, 고작 몇 센티미터에 불과한 틈에서 우릴 쏘고 있었다.
이러니 내 각도에서는 보이지도 않았을 터.
그러나 지금은 보였다.
물론 이동하면서 쏘기에는 굉장히 힘든 간격이었지만, 나한테는 차고 넘치는 넓이였다.
탕! 탕! 탕!
한 발이 문틀에 맞고, 두 발이 HK416 조준경과 헬멧에 맞았다.
“으… 어떻게 됐어? 맞혔나?”
앞에서 쓰러진 이들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뿐 아니라, 복도에 널브러진 사망 처리된 상대편도 마찬가지.
이내 방 안에서 걸걸한 대답이 나왔다.
“팀을 좀 바꿔야겠어.”
“……?”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어서 바라보며 설명을 기다리자, 제이크의 목소리가 금세 이어졌다.
“예를 들어서 5 대 9, 아니면 4 대 10… 끝에는 1 대 13까지 갈 수도 있겠지.”
“1 대 13…….”
7 대 7의 결과는 예상했던 거라 싱거웠는데, 저 말은 듣자마자 맥박이 좀 더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나름 특수부대 출신의 남자인지라, 어려운 도전을 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것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고.
늦기 전에 얼른 대답했다.
“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