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04화 (104/185)

104화

‘입조심?’

제이크의 말에 강태가 고개를 기울였다.

사격 이전에는 좀 웅성댔고, 사격 후로는 고요해서 알아들을 만한 소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한데 갑자기 나온 입조심에 의아해하던 무렵, 강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턱.

제이크가 사내의 입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한 손으로 코밑의 입과 턱 같은 하관을 전부 감싸듯 움켜쥔 것이었다.

동시에 사내의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으으읍?”

이어서 사내의 두 손이 황급하게 제이크의 손목을 잡은 순간.

꽈악─

제이크의 손등 위를 시작으로 손목, 팔뚝, 반팔 티 소매 아래의 삼두근까지 근육이 불거졌다.

핏줄이 서고, 햇볕의 굴곡으로 음영이 생길 정도.

그리고 입이 닫힌, 마치 테이프로 감싼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브브브으으으읍!”

동시에 사내 역시 있는 힘을 다 주며 제이크의 팔을 떼어 내려 했으나, 그렇게 되진 않았다.

나름 건장한 사내가 힘을 줬으나, 살갗만 벗겨지며 상처가 날 뿐.

금세 사내의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쿵.

양 무릎을 꿇린 것인데, 그때서야 다른 동료들이 제이크를 말리려 다가갔다.

그러나 섣불리 건들진 못했다.

제이크가 내뿜은 기세가 워낙에 흉흉한 탓이었고, 더불어 잡힌 사내의 눈알이 금세 뒤집혔기 때문이었다.

기절한 거였다.

제이크의 손아귀를 떼어 내려 안간힘을 쓰던 사내의 두 팔 역시 축 처지고 말았다.

그제야 제이크도 손을 놨다.

철퍼덕.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사내가 쓰러졌고, 주변 사내들도 얼른 다가가서 쓰러진 이를 살폈다.

제이크를 말리려다가 손도 대지 못했던 이들도 슬쩍 말을 붙였다.

“제이크, 왜… 왜 그랬어?“

주변의 물음에, 제이크가 손바닥에 가득한 핏물을 탁 털어 내며 답했다.

“리에게 역겨운 말을 하더군.”

“아…….”

듣고 있던 이들이 전부 주춤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강태는 이 무리 중 유일한 아시안이니까.

“으음… 그래서 입조심하라고 했군.”

누군가 깨닫듯 말하고, 내내 눈을 못 떼고 있던 강태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해 봤자 중국인이나 칭챙총 어쩌고 했겠지…….’

당사자인 강태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체격이 좋아서 자주 당하지 않았을 뿐, 돌아선 그에게 비슷한 단어가 간혹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시민권이 있어도 마찬가지.

미국인이라는 ‘바운더리’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대외협력국 일을 하면서 관련된 제이크를 비롯한 동료들이나 로버트, 그 외의 관련자들이나 인정해 줄 뿐.

그래서 제이크가 나선 건 이해했는데, 그다음 상황은 납득이 안 됐다.

‘하관만 잡아서 기절을 시켜……?’

강태의 고개가 좌우로 절로 저어졌다.

작전 중에 제이크가 활약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해 왔고 라레플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같은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고작 몇 초였다.

그 과정에서 제이크의 손등에 상처가 나긴 했지만, 상대는 더했다.

위아래 입술이 다 터졌는지 피범벅이 된 모습.

그야말로 짓눌러 기절시킨 듯했다.

흡사 벌레 따위를 가볍게 눌러 죽인 것처럼…….

그걸 서 있던 사람에게 했다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긴 했지만, 강태로서는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보였으니까.

‘입조심이 물리적으로 되네… 그럼 콩고에서 날 사칭한 용병들도 살아 있었으면은…….’

강태가 한 달여 전의 일까지 떠올리며 다시금 고개를 젓는 사이.

쓰러진 이의 동료이면서 방금 사격 대결을 했던 테런스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놈도 아니고 제이크가 데려온 놈을 욕하기는…….’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적어도 가려서 해야만 했다.

테런스도 그러고 있었다.

예컨대 사격 전.

강태가 사격 거리를 마음대로 정하라고 할 때는 머저리라던가, 좆밥 같은 욕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와서 참느라 고생 좀 했었다.

제이크만 아니었다면 주먹을 박아 넣었을지도 몰랐다.

아마 그랬다가는 저기 옆에 나란히 쓰러졌거나 더 심한 창피를 당해서 고개를 들기 어려울 거였다.

강태의 기록은 믿기지 않을 수준이었으니까.

몇 초 차이로 이겼으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워낙에 압도적인 차이라서 할 말도 없었다.

심지어 사용한 총도 저격 총이 아니었다.

돌격 소총인 HK416.

그래서 사격 자세도 과장 조금 보태서 유탄을 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만 연습했다고 해도 방금 같은 솜씨는…….’

테런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훈련만으로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차이가 나더라도 몇 초, 길게 봐줘도 10초 정도는 이해하겠는데, 절반 가까운 차이가 났으니까.

이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있던 테런스가 강태에게 말을 붙였다.

“이봐… 네 나라가 어디라고?”

“미국이지.”

“아니, 출신지가 어디냐고”

“한국.”

“한국이라… 그럼 혹시 우리하고 함께 작전한 적도 있나?”

“스페셜포스하고는 훈련 좀 했었지.”

“그린베레 애들? 걔들 말고 다른 건? 혹시 북한에 침투해서 실전이라도 쌓았나?”

강태가 그제야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 테런스가 묻는 게 이미 한 번씩 들었던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첫인사 후 사람들이 몰려들던 때.

다 대답하느라 바빴는데, 그때의 테런스는 그때 멀찍이서 팔짱만 끼고 있었다.

‘한 방 먹고 나니까 관심이 생겼나 본데…….’

물론 그게 호감에서 나온 긍정적인 질문이 아니라는 건 강태 역시 잘 알았다.

기세가 아까하고는 천차만별로 달라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말투나 표정까지 변하진 않은 탓이었다.

‘그래 봐야 오늘 날 이기긴 어려울 건데…….’

할 게 여러 개였지만, 결론적으로 사격 아니면 스파링이었다.

간단한 운동기구가 좀 있긴 한데, 기껏해야 근력 단련에 필요한 바 몇 개가 전부였다.

즉, 오늘 모임에서 질 만한 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무렵.

“저, 저기…….”

어느새 깨어난, 입술이 눌리고 터진 사내가 강태에게 다가왔다.

수건으로 대충 지혈하면서 시선을 깐 모습.

“내가 실언을 했어, 진심으로 사과할게…….”

“아, 그래. 괜찮아.”

강태도 움찔하며 대답해 준 뒤.

누군가가 분위기를 환기하듯 얼른 남은 사격을 이어 가자고 했고, 대진표의 상대를 언급하면서 움직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사격이 이뤄졌는데, 결과는 뻔했다.

다들 비슷한 가운데 강태만 독보적이었고, 결승전 역시 아주 가볍게 치러졌다.

“200야드(약 180M)를 20야드 CQB 하듯 쏴대는군…….”

누군가의 감탄 뒤로 상금까지 빠르게 전달됐다.

100달러짜리 14장이 담긴 야구 모자.

“모자는 내 거야. 갖고 싶으면 내 몫을 빼 줘. 그럼 모자까지 넘길게.”

“지갑이 있어서 괜찮아.”

재미없는 농담을 가볍게 받은 강태가 상금 1,400달러를 챙긴 뒤.

다음 일정도 빠르게 진행됐다.

“자,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이것도 리의 활약이 기대되는데…….”

모자에 돈을 담아 줬던 사내의 입에서 곧이어 종목이 언급됐다.

실용 사격.

USPSA(United States Practical Shooting Association)에서 진행하는 사격 종류 중의 하나였다.

그리 익숙한 단체는 아니었으나, 관련 영상을 본 적이 있어서 모르진 않았다.

총기와 관련된 큰 단체 중 하나였으니까.

더불어 이 델타 모임 중 세 사람은 거기에 소속된 회원이기도 했고, 사격장에 USPSA 코스와 동일한 권총 장애물 사격장도 있었다.

한마디로 기존 룰부터 장비, 훈련 방식까지 체계적으로 갖춰진 게임.

경험이 없으면 쉽지 않은 종목이었다.

이를 잘 아는, 야구 모자를 쓴 사내가 강태를 향해 물었다.

“리, 당신도 할 생각인가?”

“나야 뭐든 좋지.”

“참고로 이건 토너먼트 같은 건 아냐, 할 사람만 하는 거라고.”

“알아, 그래도 해 보려고.”

“여기에 USPSA 회원이 세 사람이나 있는 건 알고 있나?”

“알아야 하나?”

“오… 기대되는군.”

그 말끝에 권총 코스를 즐겨 하는 몇몇 델타 대원들이 눈을 빛냈다.

강태가 이번에도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선보일지 궁금해하면서도, 전현직 델타포스로서의 승부욕도 타오른 것이었다.

방금 보여 준 실력에 좌절하거나 포기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제이크에게 입술이 터지고 기절했던 사내조차 다시금 의지를 태우고 있었다.

다들 기본적으로 성깔 있는 인간들인 데다가 USPSA의 사격 방식은 아까 했던 것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었다.

테이블에 총을 거치하고,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준비했다가 쏘는 게 아니었다.

서서, 심지어 이동하면서 쏴야 했다.

모양새나 방법이 좀 다르긴 해도, CQB하고 유사하기도 했고.

그런 면에서 델타포스, 그중에서도 USPSA 소속 회원들은 자신이 있었다.

방금 강태의 실력이 말도 안 되긴 해도, 지금은 총기와 방식이 모두 정해진 다른 방식의 사격이었으니까.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고, 규칙 설명을 들은 강태의 차례가 됐을 때였다.

금세 감탄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오, 신이시여!”

“미치겠군, 방금 내가 뭘 본 거야?!”

“어떻게 한 거야? 씨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군.”

단 두 사람, 제이크와 해리를 뺀 모두가 크게 놀라고 있었다.

USPSA 회원 중 한 사람은 타이머의 숫자를 보고서는 욕설이 섞인 말을 중얼거렸다.

“이런 씨발… 저번 대회 1등보다 13초가 더 빠르잖아……? 이,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거야……?”

다들 놀라고 있을 정도로 다소 싱거운 게임.

그러나 강태가 이 반응을 즐기거나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었다.

크게 티가 나진 않았으나,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지금만이 아니었다.

아까 했었던 단순한 내기 사격을 할 때부터 그랬다.

보고 배울 만한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오길 잘했네…….’

강태가 고개까지 주억거리면서 방금 봤던 것들을 떠올렸다.

손잡이가 작다고 가죽 벨트를 감고, 조준경을 철사로 감아서 분실을 방지하며, 총열 레이저 표적 지시기를 잡기 쉽게 사포로 갈아 낸 것 등등.

규정을 벗어난, 일종의 변칙적인 방법인데 강태에게는 색다른 것이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용병들도 종종 비슷한 걸 하긴 했는데, 델타 현역부터 퇴역까지 다 그럴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특전사에서는 절대 못 할 짓이라서 더더욱 느끼는 바가 많았다.

이유마저 간결해서 더 그랬다.

‘결국에 작전만 잘하면 된다고 했지…….’

물론 안전 규정을 지켜야 하긴 하지만, 특별한 피해가 없으며 넘어간다고 했었다.

그리고 이건 델타포스 12명의 의견만이 아니었다.

각기 거쳐 온 레인저와 스페셜포스, 공수사단, 미 해병과 공군 등등의 다양한 부대 경험도 녹아 있는 노하우였다.

심지어 최소 군 생활이 10년 이상 된 아주 녹진한 경험들.

‘여기 막내도 나보다 짬밥이 6개월은 더 길던데…….’

그렇게 강태도 생각에 잠기는 사이.

와중에 가장 태연한 제이크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이제 기초를 다 봤으면, 본격적으로 해 봐야지 않겠나?”

그 말에 몇몇 대원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뭘 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해 왔던 게 있기에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이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고.

동시에 누군가 알아서 중얼대듯 말했다.

“아, FOF(Force On Force: 사람 대 사람) 말입니까?”

“그래, 한번 붙어 봐야지.”

“으… 간만에 여기저기 멍 좀 들겠군요.”

그 말을 듣던 강태도 주춤하다가 해리를 쳐다봤다.

“이거 시뮤니션(Simunition)인가, 그거 맞냐?”

“네, 선배님. 시뮤니션 맞습니다. 혹시 처음 해 보시는 겁니까?”

“어어, 처음이야.”

강태도 기대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 본 적은 있었다.

특별 제작된 총열과 훈련탄을 사용한 모의 훈련으로, 실전과 가장 비슷하다고.

비비탄이나 페인트 총하고는 차이가 컸다.

실제 총기에서 총열만 교체하고, 총알도 실탄과 비슷하게 생겨서 탄피가 튀어 나가는 데다가, 탄속도 상당히 빨라서 맞게 되면 고통이 상당하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에 강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델타하고 교전을……? 오, 이거 대박인데?’

어디 가서도 해 보기 어려운 경험에 반가워하는 사이.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무작위로 팀을 짜기 전에…….”

걸걸한 목소리가 좌중을 휘어잡고, 강태 역시 시선을 옮겨 바라본 순간.

그와 눈을 마주친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나는 무작위 선별에서 빼 줬으면 고맙겠어. 리를 상대로 붙어 보고 싶거든.”

말하는 제이크의 눈이 타오르듯 빛났다.

앞선 사격들과 다르게, 그도 이 순간만큼을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적으로서 강태와 만나고 싶어 했었다.

강태가 델타포스와 붙는 것을 바라는 것처럼, 어디 가서 해 보기 힘든 경험이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제이크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드디어 이날이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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