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갑작스러운 말에 분위기가 주춤하고 흔들릴 무렵.
제이크와 가까운 후배이자, 강태와도 사격을 해 봤던 브래드가 눈치껏 목소리를 냈다.
“…마침 내가 토너먼트 어플에 이름을 입력해 뒀으니까, 이것부터 확인해 보는 게 어때요?”
그러면서 작동 준비를 마친 핸드폰 화면을 근처의 동료들에게 보여 준 뒤.
브래드가 버튼을 눌러 14강 대진표를 만들었다.
핸드폰 근처에 있던 이들이 반사적으로 눈매를 좁히며 화면을 들여다보길 잠시, 금세 반응이 튀어나왔다.
“오, 운 좋은 경기는 밥과 테런스의 몫이군.”
14강으로 이뤄진 토너먼트인 만큼, 한 팀은 부전승처럼 바로 준결승에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인상을 일그러뜨리고 있던 테런스가 첫 마디를 뱉었다.
“대진표 보내줘 봐.”
“아, 그래. 바로 전송했어.”
어느새 핸드폰을 꺼낸 테런스가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멈칫했다.
그의 눈에 강태의 성인 ‘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바로 다음 경기.
물론 강태가 상대를 이기고 올라와야 맞붙게 되겠지만, 아마 떨어질 가능성은 적었다.
사격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방금 제이크가 단언하기도 했고, 식사 중에 브래드가 했던 과거의 일화도 어깨너머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격 총을 처음 잡았는데도 자신과 엇비슷했다고 그랬지…….’
이윽고 테런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저격 총을 처음 잡았다는 말이 거짓이라고 해도, 어쨌든 현역 저격수인 브래드와 비슷할 가능성은 크기 때문이었다.
즉, 까딱 잘못하면 질 수도 있다는 뜻.
당연하게도 테런스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는 아시아의 이름 모를 특수부대 출신이고, 끽해야 용병 일이나 하는 놈이었으니까.
그게 아니어도 지고 싶지 않았다.
상대와 달리 자신은 작년까지 델타포스에서 복무하다가 전역하고, 지금도 USSOCOM(United States Operations Command: 미합중국 특수전사령부)에서 민간 계약자 겸해서 주립 경찰 사격 교관으로 근무 중인 실력자이기 때문이었다.
현역인 브래드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고, 이길 수준도 됐다.
테런스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게 뭐가 좋은 일이라고 떠드는 건지… 창피하지도 않나? 델타나 되갖고, 저딴 사고관을 가졌다니…….’
테런스의 시선이 강태를 칭찬했던 브래드를 지나서, 이길 수 없다고 단언했던 제이크에게 닿았다.
찌푸려진 눈이 여전히 구겨져 있을 무렵.
대진표를 돌려본 몇몇 사내들이 두런두런 떠들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직 눈은 강태를 의식하는 상황.
호기심과 경계, 불쾌함 등의 온갖 감정이 섞인 시선이 HK416을 꺼내 드는 강태에게 닿았다.
마침 같은 총을 꺼낸 대진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음, 다행히 같은 총이군. 원하는 거리가 있나?”
그가 물었고, 강태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이 원하는 걸로.”
“내가 원하는 거? 오, 자신감은 좋군. 제이크가 아낄 만해. 하지만 아시안답게 좀 겸손한 게 나을 텐데.”
칭찬과 엄포를 동시에 놓은 그가 빈 사로를 찾아 움직일 무렵, 테런스도 다가온 대진 상대인 밥과 함께 자리를 떴다.
그가 간 곳은 사격장에서 가장 긴 1,000야드(914M) 레일.
사로 앞, 의자에 앉은 테런는 익숙한 동작으로 커스텀 한 M110 반자동 저격 소총을 꺼내어 테이블에 올렸다.
익숙하다 못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는데,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M110은 그가 현역 시절부터 쭉 써 온 그리고 사격 교관을 겸하면서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고 다뤄 온 무기라는 점이었다.
물론 상대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델타포스 출신이지만, 질 가능성은 없었다. 그는 자신과 달리 전역한 지 꽤 됐고, 몸도 관리가 안 되어 엉망이었으니까.
“밥, 순서는 어떻게 할까? 내가 먼저 해도 되겠나? 얼른 하고 싶어서 말이야.”
“빨리 쏘고 저 아시안의 결과를 보러 가려고?”
밥이 다 안다는 듯 말하자, 테런스가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안 갈 수가 없지. 밥, 당신도 제이크가 한 소리를 들었을 것 아냐? 그게 말이나 되는 것 같아?”
“글쎄, 제이크가 헛소리하는 인간은 아니라…….”
“그럼 말이 된다고? 저 아시안이 우리한테 감히 상대가 될 것 같나?”
“중국계였나?”
“몰라, 중국인지, 한국인지. 그래서 내가 먼저 쏴도 된다는 거지?”
“아아, 그래. 먼저 해.”
테런스가 잘됐다는 듯 헤드셋을 쓰고 핸드폰을 꺼내어 타이머까지 준비시킬 무렵.
한쪽에서는 벌써 총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텅! 텅! 텅! 텅! 터엉─!
소음기를 지나가는 묵직한 총성이었다.
헤드셋 틈으로 아주 흐리게 들려왔는데, 그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이었다.
또한 사격을 시작한 것도 소리 난 쪽이 유일했고.
“저게 뭐 하는 거지? 연발로 난사하나?”
들을수록 인상이 찌푸려졌다.
속사라고 해도 너무 빠른데, 여기서 그렇게 쏠 만한 거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100야드도 저런 식으로 쏘면 다 빗나갈 터.
‘보나마나 그 중국인이나 햇병아리가 했겠지.’
적어도 제대로 된 델타포스 중에서는 저렇게 연이어 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제이크가 데려온 외부인들일 터.
인상 쓰던 테런스는 곧 자신의 사로에 집중했다.
“…그럼 시작하지.”
말끝에 바로 스마트폰의 타이머 버튼을 누른 그가 스코프에 접안해서 표적을 확인했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격발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위치 파악도 미리 해 뒀고, 총기를 다루는 솜씨 역시 수준급이기 때문이었다.
타앙─!
반자동 저격 소총인 M110의 총성이 큼직하게 울려 퍼진 뒤, 테런스는 재빠르게 다음 표적을 찾아 또 격발했다.
이어서 그렇게 몇 번의 사격이 이어진 뒤.
고도의 집중과 능숙한 사격 솜씨로 모든 표적을 맞힌 테런스가 방아쇠울에서 검지를 뺐다.
그리고 아직 1분이 지나지 않은 타이머 버튼을 누르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꽤 빠르지 않았나?”
그러고서는 헤드셋까지 벗은 테런스가 뒤에 있을 밥을 돌아볼 때였다.
“……?!”
그의 시선이 흔들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 강태가 자신의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총기가 담겨 있을 하드 케이스를 들고서,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듯 서 있는 모습.
심지어 엄지를 들어 칭찬까지 하고 있었다.
“뭐, 뭐야……?
테런스의 입이 절로 열렸다.
썩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개판 치고 오거나 그만둔 것치고는 태도가 너무 여유로운데, 그렇다고 사격을 다 마치고서 오는 것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사격에 소모되는 시간이 있고, 그걸 고려하면 지금 오는 게 불가능할 테니까.
밥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 이 친구? 마이크를 이겼다더군.”
“무슨 소리야, 이제 1분 됐는데.”
“저기 마이크 있잖아.”
밥이 턱짓한 곳에 담배를 태우는 사내가 있었고, 테런스가 바라보길 잠시.
“둘 다 사격을 끝냈다고?”
“중간에 마이크가 포기했다고 하던데… 아직 물어보진 못했어.”
“포기? 왜?”
“이 친구가 굉장히 잘 쐈다더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간에 포기하는 게 무슨……. 총기 고장인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젓는 사이, 강태가 끼어들었다.
“일단 마저 진행하지 그래요? 나하고도 해야 할 텐데.”
“…그러지.”
테런스가 눈썹 하나를 휘다가 몸을 일으켰고, 같은 자리에 밥이라는 백인 남성이 앉아 반자동 저격총을 들었다.
그리고 금세 사격을 진행했고, 결과는 빠르게 나왔다.
중간 즈음부터 속도가 쳐져서 테런스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후, 오늘따라 잘 안 되는군.”
그가 겸연쩍은 얼굴로 중얼거렸는데, 테런스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대신 맞붙게 될 강태에게 말을 붙였다.
“아까 보니 HK416이던데… 내 총은 M110이거든. 이 총 아나?”
“알지, 나도 하나 있어.”
“허세는… 그래서 어느 거리에서 쏘고 싶나? 이럴 때는 서로 조정해야 하거든.”
“난 상관없어, 당신이 원하는 걸로.”
“다른 총이 있나?”
1,000야드는 저격 총이 거의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만한 거리여서 그랬다.
테런스가 바로 물었는데, 강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쓰던 거 하나만 갖고 오라던데.”
“그럼 거리를 조정해야지, 난 M110뿐이거든.”
“됐어, 그냥 원하는 거리로 골라.”
“…미쳤군, 진심인가?”
테런스의 눈매가 구겨졌다.
방금 저 말을 들었는데, 그때도 참 오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 말을 또 반복하다니?
이게 실 작전지라면, 자살하겠다는 소리였다.
HK416 같은 돌격 소총을 들었을 때는 아무리 잘 쏜다고 해도, 장거리에 있는 저격수나 지정사수 앞에서는 엄폐만이 살길이기 때문이었다.
한데, 강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진심이지. 해 봤자 1,000야드잖나?”
“지금 ‘해 봤자’라고 했나? 내가 정말 1,000야드에서 하자고 하면 어떡하려고?”
되묻는 테런스가 미간을 구겼다.
‘자존심 때문에 내가 1,000야드를 안 받을 줄 아는 건가? 적당히 중간 지점으로 좁혀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어디서 잔꾀를…….’
다 합의를 통해 정하곤 했었다. 심심풀이라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으나, 그건 아는 사이에나 해당될 뿐.
강태와 테런스 사이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이에 인상을 쓰는데, 마주한 강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답했다.
“그럼 1,000야드로 하지. 아, 차례는… 내가 나중에 쏘는 게 나을 것 같아. 전에는 내가 먼저 쐈는데, 다음 상대한테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좀 그렇더라고.”
강태가 이전의 사격 대결을 떠올렸다.
먼저 쏘라고 해서 먼저 쐈는데, 당황한 상대방이 몇 발 쏘지도 못하고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어느새 테런스가 매서운 눈으로 강태를 쳐다봤다.
“제이크나 브래드가 말한 게 있어서 참겠지만… 허풍은 거기까지 떨어, 짜증이 날 지경이거든.”
“사실만 말했는데… 그래서 차례는?”
“정말 1,000야드에서 하겠다 이거지? 그래, 내가 네 말처럼 내가 먼저 쏘지. 어디 해 보자고.”
어느새 오기와 분노까지 어린 테런스가 털썩 테이블에 앉았고, 하드 케이스에서 거칠게 총을 꺼내 세팅했다.
그리고 주변에서 험악한 분위기를 읽은 델타포스 동료들이 천천히 몰려들었다.
패배했던 밥, 담배를 태우던 마이크도 마찬가지.
“이건 테런스도 화날 만하겠는데, 누굴 좆밥으로 보나…….”
“충분히 잘하긴 잘할 거야, 제이크가 데려왔잖아? 아까 브래드도 저 아시안이 존나 잘 쏜다고 했고.”
“중국인이 잘해 봐야 얼마나 잘한다고 그래? 그래 봐야 칭챙총 부대 따위에서 사무라이 훈련이나 했을 텐데…….”
테런스와 가까운 이가 중얼거리고, 그걸 들은 해리가 움찔했다.
그리고 주먹을 틀어쥐고 나서려던 순간.
스윽.
제이크가 해리의 어깨를 잡았다.
“기다려.”
“…네? 하지만, 저 자식이 방금 선배님을…….”
“지금은 아니야.”
“그럼 언제…….”
“그리고 네가 아니라, 내가 나설 거야.”
제이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말하고, 해리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무렵.
타앙─!
값비싸게 커스텀 된 M110이 격발했고, 이어서 몇 초 간격으로 계속해서 탄이 나갔다.
타앙! 타앙! 타앙!
지켜보는 이들이 눈을 빛냈다.
테런스의 격발 솜씨가 깔끔하고 굉장히 빨랐기 때문이었다.
현역 저격수인 브래드도 감탄할 정도.
‘전보다 더 빨라진 것 같은데……?’
그리고 곧 마지막 총성이 멎으면서, 옆에 있던 흑인 하나가 테런스의 어플 버튼을 대신 눌렀다.
“와우, 고작 49초야. 1,000야드 표적 10개 전부 적중시켰어.”
기대 이상이라는 듯 델타포스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테런스, 여전하군.”
“오… 49초라고? 괜히 교관은 아닌 모양이야.”
그렇게 감탄과 휘파람 소리 같은 게 섞여 나오는 사이, 강태가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자, 어디…….”
중얼거리던 강태가 티디디딕, 터렛을 돌리며 탄 낙차에 따른 조준점을 고친 뒤.
휙 뒤를 돌아봤다.
“옵저버는 누가 아… 다 보는구나, 크흠.”
혹여 명중 장면을 놓치는 이가 있을까 했는데, 거의 다 망원경을 들고 있었다.
이윽고 강태가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걸고서 핸드폰 어플 버튼을 눌렀다.
어플이 작동하는 것을 여유롭게 확인한 뒤, 강태가 스코프에 접안했다.
그리고 견착과 함께 자세를 잡은 뒤.
터엉─! 텅! 텅! 텅! 텅! 텅텅텅터텅!
10발 사격이 순식간에 끝났다.
심지어 마지막에 몰아 쏜 다섯 발은 흡사 연발 사격이나 다름없을 정도.
“아, 맞다. 타이머.”
사격하느라 잊었다는 듯 강태가 타이머 어플의 버튼을 눌렀다.
바뀌던 숫자가 딱, 소수점 이하까지 멈춘 뒤.
적막이 깔린 가운데, 누군가가 홀린 듯이 숫자를 읽었다.
“27초…….”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그러나 직접 봤기에, 다들 당황해서 쳐다만 보고 있었다.
와우 같은 감탄사나 휘파람 소리도 없었고.
고요한 가운데, 제이크가 움직였다.
“티, 팀장?”
어느새 뒤를 돌아본 강태가 제이크의 살기 어린 모습에 움찔했다.
그가 커다란 손아귀로 누군가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턱.
아직 넋을 놓은 듯한 사내가 흠칫하면서 제이크를 올려다봤다.
“……?”
왜 잡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러자 마치 일러 주듯 제이크가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다 봤으면 알겠지?”
“네? 무슨…….”
당황한 사내가 반문한 순간.
제이크가 천천히 손을 들면서 대답했다.
“이제 입조심할 차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