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미리 알려 줬던 것처럼 3시간 만에 차 한 대가 도착했다.
그것도 삼각별이 달린 검은색 대형 세단.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정장 차림의 두 백인이 내렸고, 현관문부터 우리를 에스코트했다.
친절함보다는 무뚝뚝함에 가까운 태도였으나, 그것까지 따질 생각은 없었다.
마냥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라레플에도 없던 방식인 데다가, 어디로 왜 가는 건지도 몰랐으니까.
로버트의 언질 덕분에 대충 짐작하는 게 다였다.
포상 좀 하겠거니 하고.
덜컹.
그렇게 차 문이 열리고, 안에 타려던 때였다.
먼저 들어간 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역시.”
“역시?”
“한번 보시면 압니다.”
이에 슬쩍 고개를 숙여 차 안을 보면서 깨달았다.
내부가 일반 세단 차량과 달랐다.
운전석과 완전하게 차단되어 있고, 창문도 까맣게 코팅된 모습.
한마디로 바깥을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차 문짝도 제법 두꺼운 걸로 봐서는 차량도 방탄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고.
탑승하고 문을 닫으면서 끄덕였다.
“이야… 그러네, 이렇게까지 한다고? 대통령이라도 만나나?”
“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핸드폰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선배님.”
어느새 해리가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가득 차 있던 안테나가 사라지고, 금지 표시가 뜬 모습.
“하긴, 선배님 정도면 충분히 직접 만나서 훈장을 받아도 모자라죠. 그럼 저 앞에 두 사람은 아마 시크릿 서비스(Secret Service: 비밀경호국) 요원들일 가능성이 크겠습니다.”
해리가 알아서 설명을 줄줄이 늘어놓는 사이.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깥을 확인할 수 없어서 해리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는 사이.
두어 시간 만에 차량이 정차했다.
시동도 꺼졌고, 출발 전에 만났던 그 백인들이 다시 문을 열어 줬다.
처음처럼 무뚝뚝한 모습으로.
“이쪽입니다.”
이어진 뒷말에 하차한 후 주변을 휘 둘러봤는데, 어디인지 감도 안 잡혔다.
나무가 꽤 빽빽한 산지였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풍광도 잘 안 보이고, 차가 올라올 수 있는 길만 하나 있는 곳.
그 끝에 있는 건 2층짜리 통나무 별장이었다.
수염이 수북한 중년 아저씨가 혼자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났는데, 들어서는 순간에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해리도 마찬가지라는 듯 감탄을 흘렸다.
“오… 겉보기하고 다르네요.”
먼지가 풀풀 날릴 것만 같은 외관과 달리, 내부는 깨끗하고 단정했으며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촛대 같은 장식물부터 두껍고 빳빳한 양탄자까지.
그 외에 나머지는 현대식에 가까웠다.
금속 탐지기와 엑스레이까지 구비되어 있었으니까.
이에 자진해서 방탄복을 벗고 총기와 대검을 반납한 뒤에 검사대를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큼직한 문을 밀고 들어가던 순간.
“리!”
안쪽에서 호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도 함께 왔군!”
이어서 제이크와 레이첼, 마커스의 음성도 한마디씩 들려왔다.
다들 큼직한 원형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상황.
빈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제이크가 흐뭇한 얼굴로 말을 붙여 왔다.
“해리하고 여태 같이 지냈나?”
“네. 집에 갈 줄 알았는데, 출신 때문인지… 끈기가 있더라고요.”
“아아, 그래. 나이트 스토커는 포기하지 않는 법이지. 이게 아마 연대 구호지, 해리?”
어느새 호세가 끼어들었고,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나이트 스토커는 포기하지 않는다. 부대뿐만이 아니라, 제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번져 나가는 사이.
문이 열리면서 정장 차림의 사내 여럿이 들어왔다.
높아 보이는 사람도 보였다.
예상했던 대통령은 아니었는데, 왠지 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순간.
제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장관님……!”
동시에 드르륵 의자를 미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레이첼도 반응하고 있었다.
“…장관님.”
나도 그제야 깨달았다.
‘아, 국무부 장관…….’
제이크와 레이첼이 반응할 만한 이가 국무부 장관이라서, 추론해서 알아차린 게 아니었다.
정확히는 한 박자 늦긴 했지만, 알아본 거였다.
국무부 장관도 라레플의 시네마틱 영상에 등장했던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또한 단번에 알아보기 힘든 인물이기도 했다.
스토리상 어쩔 수 없이 등장했던, 게임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기껏해야 2~3번 정도 출연한 탓이었다.
쉽게 말해 엑스트라.
당연하게도 이름 같은 건 기억나지 않았다.
나도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해서 그나마 아는 거지, 한두 번만 했으면 전혀 몰랐을 것이다.
아마 장관이라고 설명을 해 줘도 그러려니 했을 터.
다만, 현실에서의 그는 대통령 다음가는 권력자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인물이었다.
어느새 국무부 장관이 우리 쪽으로 손짓했다.
“아아, 앉으세요. 내가 좀 늦었습니다, 처리할 일이 많아서.”
그러면서 가벼운 미소를 띤 그가 한 바퀴를 빙 돌면서 악수를 건네 왔고, 한 명씩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제이크, 마커스, 호세, 레이첼 그리고 나와 해리까지.
“이강태? 이 발음이 맞나요?”
“정확합니다.”
“하하, 연습한 보람이 있군요.”
그러면서 친근하게, 정치인답게 내 어깨까지 두드린 그가 그제야 제자리를 찾아갔다.
‘확실히 게임하고 다르게 고위직 포스가 있네…….’
게임 속에서는 엑스트라로 임팩트가 없었던 것과 달리, 마주한 국무부 장관은 품격과 위엄이 있었다.
‘아마 대통령은 더하겠지…….’
게임에서 그냥 별거 아닌 인물로 봤던, 그래서 가볍게 여겼던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질 즈음.
어느새 국무부 장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선 함께 오기로 했던 엔더슨 국장은 중요한 일이 생겨서 오지 못했습니다. 아마 여러분의 작전과 관련된 일일 겁니다만… 그건 나중에 알게 될 테니,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은 이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어서 짐작했던 말이 이어져 나왔다.
“분위기가 좋은 걸 보니, 다들 예상한 것 같군요. 그래요. 여러분의 지난 작전에 대한 성과를 치하하고, 축하하기 위한 자리가 바로 오늘, 이곳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먼저 박수를 쳤고, 제이크를 시작으로 다들 따라 친 뒤.
다시금 말이 덧붙었다.
“오는 길이 불편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장소가 장소다 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신 여러분이 만족할 만한 포상을 할 테니, 불편함은 좀 감수해 주길 바랍니다. 우선…….”
말하던 국무부 장관이 뒤를 돌아봤고, 기다렸다는 듯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식사하면서 얘기들 나눕시다. 괜찮겠지요?”
“네, 장관님.”
제이크의 걸걸한 대답 뒤로 국무부 장관이 다시금 테이블을 빙 둘러보면서 말했다.
“참, 가장 중요한 말을 잊을 뻔했군요. 상황이나 복장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포상금을 말하나 싶은 순간.
국무부 장관이 각각 눈을 마주치면서, 그리고 또박또박 분명하게 발음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의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도 모르게 주춤했다.
군인이 나오는 미드나 영화에서 종종 나오는 말이었다.
그게 아니어도 국제 뉴스나 너튜브 같은 곳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단어였고.
그러나 특전사로 살았던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던 말이었다.
물론 비슷한 말을 듣긴 했었다.
수고한다거나 고생한다, 혹은 애썼다는 말 정도.
다만 이렇게 정중하게, 심지어 오글거릴 정도로 표현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국무부 장관이 한 말이었다.
그것도 현역 군인이 아닌, 계약직인 기밀 요원에게 한 말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이래서 미국 뽕에 취하나? 역시 미국은…….’
옅은 상념에 젖어 들 무렵, 어느새 코스 요리가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수프와 견과류, 밥, 생선, 소고기 스테이크까지.
들어오는 족족 접시를 비워 냈고, 마지막으로 디저트를 받아먹을 무렵이었다.
“…식사도 거의 끝났으니, 이제 본론을 꺼내야 하겠군요.”
국무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여태 신변잡기 같은 간단한 얘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풀던 그가 주의를 환기한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모일 즈음.
어느새 미소를 머금은 국무부 장관이 기다렸던 얘기를 꺼냈다.
“아까 말했듯이 대통령께서도 각별히 관심을 가지라고 한 만큼… 작전 성과에 대한 포상도 지급하려고 합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사이, 구체적인 말이 덧붙었다.
“혹시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니면 포상금이 오늘 안으로 모두 일괄 지급될 겁니다.”
“의견 있습니다.”
해리였다.
눈이 초롱초롱하다 못해서 힘까지 빡 들어간 그가 손을 들며 말을 이었다.
“2마일 이상 사격 가능한 땅과 헬리콥터를 원합니다.”
“……?!”
나도 모르게 주춤하는데, 국무부 장관이 이야기를 권하듯 손짓했다.
“그래요, 해리 톰슨. 꽤 구체적이군요. 훈련 때문에 원하는 겁니까?”
“훈련은 맞지만, 양도할 생각입니다.”
“양도?”
설마 하는데, 해리의 눈이 내 쪽으로 향했다.
“네, 선배님한테 주고 싶습니다.”
“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정말 고맙다거나 감격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좀 미친놈이잖아.’
포상 준다는 걸 걷어차고 나한테 준다니?
생각해 보면 말이 되긴 했다. 나를 존경해서 납득한 게 아니었다.
환경이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멀쩡하거나 평범한 사람은 이 일을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상대하는 게 악의 근원이든, 수족인 테러범이든 간에 결국에는 사람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여성도 있고, 아이도 있었다.
테러범은 성별과 나이에 따라 구분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그런 전투가 한 번도 힘든데, 여러 번, 심지어 끝도 없이 반복됐다.
제정신이긴 힘들 터.
전에 로버트가 말했던, 호세의 육체적인 부상과 심리적인 병환 역시 그런 이유로 나타났을 것이었다.
마커스도 말하진 않았으나, 알코올 의존증이 제법 있는 듯 보였고.
투철한 사명감과 뛰어난 능력으로 버티는 제이크나 레이첼도 어떤 문제점을 겪고 있는지 알 순 없었다.
나도 강철 멘탈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아마 전장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컸고.
고개를 젓는 사이, 국무부 장관의 말이 건너왔다.
“그럼 톰슨, 당신은 못 받아도 됩니까?”
“네, 저는 필요 없습니다.”
부티까지 나는 것 같은, 여유로운 대답이었다.
저게 미칠 수 있는 이윤가 싶을 무렵.
국무부 장관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 군말 없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방금 말한 땅을 미스터 리에게 준다면… 사격 훈련은 미스터 리가 하는 겁니까? 그만한 거리의 저격에 대해서는 아직 들은 바가 없는데, 훈련 중인 겁니까?”
“아, 네. 훈련 중입니다.”
“으음, 기대되는군요. 요청한 땅과 헬기를 지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훈련 성과도 상부에 보고하기 바랍니다. 나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습니다.”
“…그냥 주신다고요?”
“방법을 알아봐야 하고, 절차 때문에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마는… 불가능하진 않을 겁니다.”
“……!”
이걸 달라고 한 해리도 믿기지 않는데, 그걸 곧장 준다고 하다니?
멈칫한 사이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내가 아닌 모두를 상대로 한, 권하는 듯한 억양.
“다른 분들도 모두 말해 보세요. 미스터 리의 기준까진 괜찮습니다. 아, 톰슨, 당신도 원하는 걸 말해도 좋습니다.”
그 소리에 찐 감탄이 나왔다.
“와, 역시 천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