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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98화 (98/185)

98화

사격을 한참 이어갈 무렵, 손목시계의 알림이 울렸다.

띠띠띠─ 띠띠띠─

연습을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이용 시간 같은 게 있진 않았으나, 복귀 경로가 꽤 멀어서 미리 정해 둔 것이었다.

아니면 한밤중에야 도착할 터.

무엇보다 사격 연습 시간도 그렇게 짧지 않았다.

대략 서너 시간.

중간에 화장실 다녀오고, 해리가 탄창 한두 개 정도 소모한 것 빼고는 거의 쉼 없이 사격했다.

해리가 빠릿빠릿하게 빈 탄창을 채워 준 덕분인데, 그 외에도 내가 실어 온 탄을 다 소모하고 오두막과 집에 있는 여분의 7.62㎜탄까지 내어 줘서 끊임없이 쏠 수 있었다.

중간에 달궈진 총구에 열기가 올라 아지랑이가 일 정도로.

그렇게 쏜 탄이 수천 발이었다.

돈으로 따지면 수백만 원에 달하는 금액.

사용한 총기가 볼트 액션식에 비해서 사격이 쉬운 MK.20이라는 반자동 저격총이라 가능한 일이었는데, 많이 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놓치는 게 너무 많아서 그랬다.

‘엔간히도 안 맞네…….’

적당히 수십, 수백 발 쏘는 걸로는 턱도 없었다.

명사수 특성도 힘을 못 썼다.

따지자면 1마일(1.6㎞)까지는 대략 감을 잡아서 웬만하면 다 맞혔는데, 1.4마일(2.25㎞)부터는 빗나가는 게 너무 많았다.

명중률이 60%도 채 안 됐다.

로버트가 준 탄도 계산기를 사용해도 마찬가지.

아니, 그게 없었으면 절반의 명중률도 안 나왔을 가능성이 컸다.

그나마 복잡한 계산을 탄도 계산기가 알아서 모두 파악해 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초탄 사격도 느려질 것이고, 이후의 후속 사격도 더딜 것만 같았다.

그리고 확실하게 느꼈다.

역시 적당한 게 편하다는 사실을.

다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한다거나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해리.”

“네, 선배님.”

해리가 대답하는 사이, MK.20의 약실을 확인하고, 탄창을 제거하면서 말을 덧붙였다.

“여기 아무 때나 와도 된다고 했지?”

“물론이죠.”

“그럼 매일 오자.”

“매일이요?”

“어, 매일. 오늘하고 같은 시각에.”

이게 내 결론이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특전사의 구호처럽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노력해야만 했다.

내가 아는 것도, 해 온 것도 그것뿐이었으니까.

다른 수는 없었다.

방금 3~4시간 만에 탄약값으로 수백만 원을 쓰긴 했으나, 그게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작전 한 번으로 수십억 원을 벌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돈이 없었어도 어떻게 해서라도 구해서 갖다 썼을 거였다. 술 먹고 노는 데 쓰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훈련에 들어가는 돈이었으니까.

곧 해리가 멈칫하며 되물어 왔다.

“아니, 정말 매일 오신다고요?”

“안 되겠으면 일정 말해 줘. 아니면 비용을 내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해리가 손을 내저어 보였다.

“정말 돈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무리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확인했던 겁니다. 오전 일찍 MMA 체육관을 다녀오고, 저녁에는 집에서 근력 운동을 하시잖습니까? 거기다 운전을 왕복으로 7시간씩 하는데…….”

다소 늘어지는 해리의 말에 나도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서 결론은? 매일 와도 된다, 이거지?”

“그거야 당연히 되는데…….”

“그럼 됐어, 앞으로 매일 같은 시각에 왔다가 가는 걸로 하자.”

해리가 놀랄 만했으나, 그렇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그냥 일과 같은 거였다.

문제는 4주간 가득 찬 풀 스케줄이라는 거였는데, 시간이 빨리 가서 지루할 틈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오전에 진행하는 MMA 체육관 수업은 그동안 마커스와 안드레이에게 복싱 수업을 받은 덕택에 진도가 꽤 빨라질 것 같았다.

좀 칠 줄 안다고 했었으니까.

문제는 킥과 주짓수 같은 그라운드 기술인데, 그것도 할 만할 것 같았다.

전직 특수부대에 현역 용병이라고 소개한 덕분인지, 코치들이 첫날부터 제법 거칠게 다뤄 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사격도 그렇고, 저녁의 헬스도 매일 해 오던 거라서 어려울 게 없었다.

뭔 생각을 하는 건지, 해리가 엄지를 세워 보였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선배님. 근데 정말 갈 때는 제가 운전 안 해도 되겠습니까?”

걱정하는 듯한 말에 가볍게 웃고 말았다.

“원래 와이프하고 차는 빌려주는 거 아니야.”

“그런 말도 있습니까?”

“미국에는 없나? 하여튼 뭐, 내 차는 내가 몰 거니까 놔둬. 별로 피곤하지도 않고.”

“아… 넵, 알겠습니다.”

“삼촌은? 잘 썼다고 가기 전에 인사는 해야 될 거 아냐?”

“일이 있다고 먼저 갔습니다. 그리고 여기 관리인 따로 있으니까, 이대로 두고 가도 됩니다.”

“관리인까지… 잘 사시는구나.”

“네?”

“아냐, 가자.”

하드 케이스에 총을 챙겨 넣고 움직이면서, 다시금 굴곡진 평원을 바라봤다.

아까도 그랬듯, 감탄이 나오는 풍광이었다.

돈 많이 버는 만큼, 이런 걸 하나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도 불쑥 들었고.

‘그럼 이렇게 큰 땅 사면 헬기 같은 것도 하나 있어야 움직이기 편할 텐데…….’

그러다 해리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 땅과 헬기가 다 있을 만한 사람이 그였다.

“너… 헬기도 있냐?”

“혹시 헬기 필요하십니까? 전 없지만, 텍사스에 있는 이모가 자가용 헬기를…….”

“아, 아냐. 됐어.”

역시나 잘사는 집안다운 말이었다. 해리가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기에, 딴소리가 나오기 전에 짧게 말을 덧붙였다.

“나중에 돈 좀 더 벌면 이런 땅하고 헬기 좀 살까 해서. 그래서 물어봤어.”

“……?”

내 말에 해리가 눈을 껌뻑이더니, 고개까지 기울이면서 물었다.

“정부에서 안 줍니까? 국무부에 말해 보십시오. 선배님이면 원하는 걸 당연히 받으셔야죠.”

이번에는 내가 쳐다보자, 해리의 말이 덧붙었다.

“선배님이 없으면 팀이 당장 해체될 지경이고, 작전 수행도 불가능하잖습니까? 반면에 저 아니면 다른 팀원은 한 명 없다고 해서 어떻게 안 되지만… 선배님은 제 목숨을 바쳐서 지켜도 모자란 분이잖습니까?”

“그렇긴 하다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나도 내 가치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뭐 달라고 강요할 생각을 못 했었다.

이게 당연한 임무라고 여겼으니까.

무엇보다 이런 걸로 트러블 일으켜서 좋을 것도 없었고.

그리고 알아서 좀 더 쳐 주고 있었다.

저번에도 좀 급한 작전을 수행한 대가로 합쳐서 거의 한화 1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받기도 했었다.

그게 아니어도 G&G Corp의 형식적인 기본 연봉이 58만 달러고, 수당이 월급의 최대 500%씩 나왔으며, 대외협력국의 기밀 활동비가 1년에 120만 달러가 나오도록 되어 있었다.

다하면 1년에 그냥 입금되는 것만으로도 최소 수십억 원의 한화를 버는 셈이었다.

당연하게도 별 불만이 없었다.

이미 돈은 평생 벌 걸 다 벌고 있었으니까.

다만, 이런 광활한 땅과 민간 헬기 같은 걸 사려면 이번에 받은 백억 원이나 연간 받게 될 수십억 원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최소 천억 원 이상은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꼭 하고 싶다는 욕심 같은 게 아니라, 막연한 상상에 불과했다.

“아니,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 뭐…….”

그래서 대충 대답하고 말았다.

계획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우선 걸음부터 재촉했다.

“일단 가자, 오늘 하체 해야 돼.”

* * *

그날 저녁,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가 새 보고서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활동 중인 수행 요원들이 유의미한 정보를 확보했는데,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주 예전부터 원했던, 강태와 관련된 계획을 허가 받아서 실행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강태 신변 보호 및 주변 경계.

그것도 저비용의 인력을 한두 명 배치한 게 아니라, 정보 위성을 활용한 고고도 무인정찰기까지 운용하도록 예산을 할당받은 작전이었다.

물론 강태가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나, 그것과 지금 같은 예방은 별개였다.

‘활용할 수 있다면… 모든 수단을 써야지.’

강태에게 방탄복을 입으라고 권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누군가 노릴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총격전에 휘말려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총만 있다면 강태가 쉽게 죽을 사람은 아니라고 믿지만, 중요한 건 예방이었다.

9.11테러 이후에 생긴 거대 기관인 국토안보부가 그렇듯.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적이 강태를 잘 모른다는 것.

정말도 잘 안다면, 제대로 겪어 봤다면 이렇게 둘 수가 없었다.

동네 갱단을 사주하는 술수도 써서는 안 됐다.

처음부터 살인 기술을 익힌 요원들을 불러서, 발각될 위험까지 감수하고 저격과 폭파 등의 방법으로 확실하게 죽여야 했다.

강태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게 있다면, 강태를 겪은 이들이 웬만하면 다 사살됐다는 사실이었다.

아프리카에서도 무서운 별명과 소문만 나돌아다닐 뿐, 증거 같은 건 없었고.

이윽고 상념에서 벗어난 로버트가 강태와 관련된 보고를 확인하고선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작전과 별개로 강태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오전에는 MMA 체육관, 오후에는 사격, 저녁에는 집이라. 전장에서도 휴가지에서도 이렇게나 모범적이라니…….’

집 내부까지 파악할 수 없으나, 아마 운동 중일 것이다.

휴가 나오기 전에 진행했던 게 각종 운동 기구 배송과 설치였으니까.

그것도 흡사 피트니스 센터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들어간 기구값도 수십만 달러라고 했었고, 마사지대와 스트레칭용 장비까지 배치되어 운동 후에 몸을 풀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강태는 타고난 요원 같은 인물이었다.

인생의 목적이 테러범 제거 같기도 했고.

기존의 작전과는 다른, 다음 작전지에서의 활약도 기대해 볼 법했다.

바로 지중해를 접한 도시와 마을, 섬 등등.

총이 빗발치고 목숨이 오가는 곳과는 조금 다른, 그래서 더 위험할 수도 있는 장소였다.

물론 별도의 교육을 진행하겠지만, 중요한 건 요원 본연의 자질이었다.

현장에서 침착하게 판단하는지, 기민한 대처를 행하며 위협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지 등등.

전부 강태가 만점 받을 요소들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진 않았으나, 어떤 것이라도 강태가 훌륭하게 해내리란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로버트가 마지막 보고서를 확인하고 퇴근하려던 때였다.

띠리리리─

사내 인터폰이 울었다.

깜빡이는 램프 옆, LCD 화면의 발신 번호를 보던 로버트가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를 건 곳이 다름 아닌 군세 차관의 비서실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직속상관의 연락.

“네, 국장 로버트입니다.”

바로 전화를 받았는데,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로버트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네? 치하하고 싶어 하신다는 겁니까? 장관께서?”

이유를 물어보려는데, 알아서 답이 돌아왔다.

-일이 잘 풀렸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인 건 직접 통화해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장관님과 말입니까?”

-네, 사무실에 연락처 전달할 거고, 아마 장관실 비서가 연락할 겁니다.

다소 당황스럽지만, 로버트가 할 만한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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