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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95화 (95/185)

95화

“오, 역시 대단하군요. 포로 얘기를 하자마자, 또 다른 포로를 잡다니?”

UN군으로 위장한 CIA 요원의 말이었다.

플라스틱 케이블로 포박된 루이스를 살핀 그가 강태를 향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것도 단 3발로. 도대체 무슨 방법을 쓴 겁니까?”

위장 요원이 어느새 눈을 빛내며 흥미까지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강태의 사격을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인데, 딱 3발 쏘고서 항복을 받아 냈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살했다면 별로 놀라진 않았을 것이었다.

강태의 사격 솜씨는 꽤 유명하니까.

그러나 항복은 달랐다.

퇴로 차단과 고립 등 적의 의지를 꺾는 상황을 만들거나 그에 준하는 거래가 있어야 했는데, 저격으로는 그게 어렵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이 항복이 어쩌다 얻어걸린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강태가 처음부터 했던 말이 무려 생포하겠다는 거였고, 10초 만에 항복을 받아 냈다는 사실.

이윽고 약실을 비우고, 총기를 점검하던 강태가 입을 열었다.

“그냥 손하고 발… 아, 마침 저기 오네요.”

그 말과 함께 강태의 시선을 좇아서 위장 요원도 고개를 돌렸다.

결박되어 힘겹게 서 있던 루이스도 마찬가지.

근접 접근했던 세 사람이 새 포로를 데리고 복귀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오, 이런…….”

끌려오는 이의 모습이 믿기지 않은 탓이었다.

양손에 흰 붕대가 감겨 있고, 손목은 지혈대로 묶여 있는 상태.

심지어 왼발은 워커 앞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다행히 워커 안의 발은 멀쩡했지만, 양말까지 같이 밀려나면서 찰과상을 입은 발등에 핏물이 맺힌 모습.

이를 보던 루이스의 목덜미에 소름이 확 돋아났다.

방금 강태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비로소 완전하게 깨달은 것이었다.

‘손하고 발… 그게 손과 발을 맞혔다는 뜻이었어…….’

그야말로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사격술이었다.

근거리도 아니고, 수백 미터의 거리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손발을 맞히다니?

“하…….”

동시에 루이스가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판단과 실행이 조금 늦긴 했지만, 자신은 피격 전에 투항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조금만 늦었다면 무사하기 힘들 게 분명했다.

더불어 후회도 됐다.

저런 초인적인 실력을 가진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더불어 사살 우선 대상으로 올려놨었으니까.

곧 위장 요원의 입도 열렸다.

“손하고 발… 그게 이 뜻이었군요. 세상에…….”

소문으로만 들었던 강태의 실력을 직접 목격한 그가 감탄과 함께 다시금 포로를 살필 때였다.

“사, 사신……?!”

어느새 가까이 온 포로가 흠칫하며 강태를 쳐다보자, 묶여 있던 루이스가 대신 답했다.

“그래, 이 사람이 그 전장의 사신이야.”

“…그럼 정말 일부러 쏜 겁니까? 내 두 손과 발을…….”

“당해 놓고도 우연이라는 멍청한 생각을 하나? 항복했으면 느꼈을 것 아냐?”

그 말대로였다.

루이스도 투항하기 직전에 상대가 사신이라고 그리고 이길 수 없다는 걸 직감했었다.

이에 두 손이 날아간 사내도 고개를 떨어트렸다.

“…….”

그도 루이스와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 오른손이 피격되어 손목 위로 다 사라졌을 때만 해도 저격수가 놓친 거라고 여겼었다.

그래서 잘 훈련된 특수부대 출신답게 왼손으로 총을 들었고, 빠르게 현장을 이탈하려고 했었다.

문제는 초탄 다음의 격발이 너무 빠르다는 사실이었다.

기껏해야 2초 뒤.

움직이는 순간에 왼손마저 박살이 나고 말았었다.

정확히는 손바닥 일부와 새끼손가락이 날아갔지만, 피격과 동시에 직감했다.

초탄이 실수가 아니라는 걸.

의도했을 가능성이 너무나도 커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럴 만한 적도 있었다.

반군의 학살자나 도살자로 불리며, 전장의 사신으로도 알려진 아시안 용병.

일순 닥쳐오는 공포에 사내는 그때, 본능적으로 움직였었다.

목적은 단 하나, 자리 이탈.

그러나 고작 두 발을 뛴 순간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탄이 발을 스쳐 간 것이었다.

워커 가죽과 양말이 찢겨 날아갔고, 바닥에서 흙과 풀이 튀어 올랐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다음은 발……!’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도주하려다가는 죽는 게 아니라, 두 손 두 발을 다 잃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상대는 그게 가능한 인물이었다.

물론 실력이야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동안에 들은 부풀려진 일화가 많아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다친 포로가 상념에 잠기는 사이.

“…이봐요, 당신… 리? 리 맞죠?”

위장 요원이 강태를 불렀다.

이름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요청하려는 게 있는 모양새였다.

정확히는 스카우트.

어느새 그가 명함까지 하나 꺼내어 내밀고 있었다.

“이런 업무 협조 같은 일 말고… 제대로 된 일을 해 보는 게 어때요? 우리 조직은 전 세계에 최대, 최고의 기구입니다. 여기 명함의 주소로 가면…….”

“정신 나간 인간이 따로 없군. 팀장을 앞에 두고 팀원을 대놓고 스카우트를 하는 경우가 있나?”

“나는 업무 협조를 하는 용병보다 우리 조직과 함께하는 게…….”

호세가 화를 내듯 끼어들고, 위장 요원이 반박하려던 순간.

강태가 정리하듯 말했다.

“같은 편끼리 싸우지들 마십쇼. 앞으로 협조하면서 서로 돕고 그래야 할 텐데…….”

그러면서 강태의 입가에 편한 미소까지 걸렸다.

핵전쟁의 위기가 어떻게 닥쳐올지 알 수 없지만, 서로 잘 지내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언제 힘을 보태고 함께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러면서 명함을 쓱 받은 강태가 답했다.

“그리고 이런 명함은 받아 둔 게 있어서, 굳이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아, 그, 그렇군요.”

위장 요원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2M에 달하는 제이크를 올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우, 우린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추가된 포로까지, 도합 2명의 인원과 노획한 배낭까지 챙긴 위장 요원들이 떠난 다음이었다.

제이크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우리도 이만 복귀하지.”

그 말에 모두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두어 걸음 떨어져 있던 마커스가 목소리를 냈다.

“팀장도 현역 때보다 확실히 부드러워졌네요. 아니, 강태가 들어오고 나서부턴가?”

“내가?”

“보통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단 한 방 먹이곤 했었잖습니까?”

“…….”

틀린 말은 아니라, 제이크가 대꾸하지 못했다.

강태가 오기 전까지는 행동이나 말이 상상 이상으로 거칠었고 직설적이기도 했었으니까.

“리의 말이 일리가 있더군.”

“아, 같은 편… 그럼 다른 편은 큰일 났군요.”

그 말에 해리가 불쑥 목소리를 냈다.

“선배님을 사칭했던 놈들 말씀하시는 거죠? 마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복귀하자마자 다 끌고 오겠습니다.”

“맞아, 그놈들… 작전도 끝났으니, 대화할 필요가 있지.”

죽이 잘 맞는 해리와 제이크의 대화에 호세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CIA에서 왔다길래 좀 걸렸는데… 넌 진짜 나이트 스토커 출신 맞구나? 눈치나 행동이나… 입맛 없는 그놈들하고 확실히 달라.”

“감사합니다!”

“하하하, 네가 네이비씰이었다면 내가 정말… 해 줄 건 없겠지만, 하여튼 정말 잘해 줄 텐데 너무 아쉽단 말이지.”

뒤에 있던 강태가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보고, 이후로도 잡담이 덧붙어 길어질 무렵.

G&G Corp TF 전원은 오래지 않아 부대에 복귀했다.

상황은 작전 직후여서 다소 어수선하고 복잡했다.

드나드는 사람이 꽤 많은 탓이었는데, 사상자까지 발생해서 그들을 치료하고 후송하며, 추가로 식사 때까지 다가와서 더 혼잡한 것이었다.

강태를 비롯한 G&G Corp 팀 역시 총기 정리하고 할 것 없이 막사에서 쉴 무렵.

덜컹.

문이 확 열리면서 해리가 들어왔다.

동시에 사뭇 당황한 듯 강태를 비롯한 팀원들을 주춤대며 보다가 목소리를 냈다.

“티, 팀장님.”

“왜? 놈들이 도망갔나?”

“아니, 그게 아니라… 사칭했다던 중국인과 대만인 모두 작전 중에 전사했답니다.”

“그런데?”

작전 중 전사가 없는 일이 아니어서 물었을 때였다.

“그 팀에서는 그들만 사망했고… 사칭하지 않은 아시안 두 명이 더 죽었습니다.”

“…아, 그 말이었군.”

제이크도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안 타깃이라.”

이미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잘 알고 있었는 사실이었다.

아시안들이 강태를 사칭하다가 정말 전부 죽을 줄은 몰랐지만, 그렇다고 크게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결국에는 짐작하고, 의도한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말과 분위기에도 저절로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었고.

이어서 모든 이의 시선이 당사자를 향했다.

저격하느라 벨트와 플레이트 캐리어 틈에 낀 풀 조각과 흙 따위를 제거하던 강태.

그가 스윽 고개를 들면서 대답했다.

“뭐 이렇게 분위기를 잡고 그래요. 위험한 거 하루 이틀 아니고… 어차피 휴가 가잖습니까? 그럼 딴 데 갈 텐데요, 뭐.”

담담하다 못해 천연스러운 말투.

그 말에 제이크가 미소 지으면서 대꾸했다.

“콩고로 재배치될 수도 있어.”

“그래도 한 달 정도 쉬면 좀 뜸해지겠죠. 아니면 뭐… 어쩔 수 없죠. 먼저 제압하는 수밖에.”

“그래, 먼저 제압해야지.”

말을 따라 하다시피 대꾸한 제이크가 돌연 시선을 돌렸다.

아직 문 앞에 서 있던 해리에게로.

“잘 봐두고 배우도록 해. 리는 심장인지… 멘탈인지… 뭐가 강철이라고 했었거든.”

“강철 멘탈이요.”

제이크가 해리를 향해 툭 턱짓하며 말했다.

“그렇다는군.”

“…음, 아, 저… 선배님, 휴가 말씀하셔서 그런데…….”

해리가 강태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저도 선배님하고 같이 있어도 됩니까?”

강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사격하러?”

“그게 아니라… 그냥 휴가 동안에 선배님 집에서 함께…….”

“아니지?”

“네?”

“나 여자 좋아한다?”

“아아, 압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 친구도 있습니다.”

“근데 나하고 지낸다고? 아니, 얼마나 있겠다는 거야?”

“당연히 휴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죠.”

“뭐……?”

“말씀하신 그 강철 멘탈도 배우고, 사격도 하고, 운동도 함께하면서 배우려면 그 정도는 같이 있어야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그 말에 호세가 박수를 쳤다.

“정말 끝내주는 후배군.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까워. 해리가 씰이었으면 내 집 침실을 빌려주고 싶을 정도야.”

“미친놈, 올리비아는?”

마커스가 바로 호세의 아내를 언급하자, 동시에 손을 내저었다.

“그, 그녀는… 호텔에서 쉬게 하면 되지. 올리비아는 이해할 거야. 난 해리 같은 후배가 한 명만 있었으면 정말 소원이 없을 것 같거든. 함께 훈련하고, 식사하고, 기쁘지 않겠어? 저렇게 똘똘한데?”

“정말 약간 미친 것 같군…….”

중얼거리는 듯한 마커스의 말에 강태도 고개를 저었다.

“얘도 살짝 미친 것 같은데? 여자 친구가 있는데 왜 나하고……?”

“선배님, 제가 정말 존경합니다.”

“하… 씨, 존경한다는 놈을 내칠 수도 없고…….”

“잘 보필하겠습니다.”

“그럼 여자 친구는? 8주 만에 휴가 나가서 안 만나고?”

“아, 그녀는 충분히 이해해 줄 겁니다.”

“확실히 좀 미쳤어…….”

중얼거리면서도 강태가 손짓하며 답해 주었다.

“…알았으니까, 문가에 서 있지 말고 자리로 가. 정신 사나워.”

웃긴 일이긴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후배를 양성했던, 오래된 특전사 시절이 떠오른 덕분이었다.

‘미친놈 하나 잘 키워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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