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이봐, 빌어먹을 친구. 일단 배낭 위치부터 알려줘 봐.”
호세가 말하고서는 바로 플레이트 캐리어에 달아 둔 내비게이션 보드를 떼어서 내밀었다.
동시에 루이스가 주춤하며 입을 뗐다.
“그럼 손을 좀…….”
뒤로 꺾이듯 묶인 양손을 흘깃 바라보며 한 말이었는데, 호세가 바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 그냥 말로 해.”
“빨리 알려 줘야 할 것 같아서 그런 겁니다. 늦으면 고용주가 회수해 갈 것 같아서…….”
“이럴 시간에 말로 하면 되겠군. 그렇지?”
풀어 줄 리가 없었다.
대답 좀 잘했다고 해서 루이스의 말을 온전히 믿는 건 아니었으니까.
충분한 검증이 필요했다.
그건 UN군으로 위장한 CIA 요원들이 전문가답게 밤새 취조해서 알아내 줄 터.
여기서는 적당히 걸러 들으면 됐다. 풀어 주지도 않을 것이고.
그걸 깨달은 듯 루이스도 수긍의 답을 내놨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럼 화면을 조금 더 우측으로 이동… 아니, 반대편으로. 네, 그렇게… 거기서 9시 방향으로 좀 더 이동하고…….”
루이스가 설명하고 호세가 화면을 터치하면서 조작해 나갔다.
그리고 UN군으로 위장한 요원부터, 어느새 집결할 G&G Corp TF 인원 모두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작전이 모두 끝난 탓이었다.
정확히는 루이스가 교전 직후에 기절한 3시간 사이에 돌격대를 맡은 콩고군과 프랑스 외인부대, 용병들이 우라늄 광산을 완전하게 수복했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저격 팀은 그사이에 우선 타깃부터 찾아내어 골로 보냈고.
그것도 작전이 시작되고 한 시간 정도만 그랬다.
남은 시간에는 반군이 전의를 상실하고 완전히 와해되어서 사살할 대상을 찾는 것도 영 애매했다.
눈에 띄는 반군들은 항복하든지, 도망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한 탓이었다.
작전 규모치고는 다소 싱거운 마무리였는데,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깜짝 교전을 제외하고는 위험한 일도 없었고, 모두 무사하게 임무를 마무리했으며, 여태 없었던 포로까지 얻었으니까.
상념 뒤로 위장 요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얻은 포로가 선물을 안겨 줄 수도 있겠네요. 이번에도 당신이 해결한 겁니까?”
“예, 뭐…….”
“역시! 그럼 저 포로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겁니까?”
“무슨 자비까지… 알아서 항복하던데요.”
“아, 그는 당연히 항복할 수밖에 없겠죠. 당신을 알고도 덤빈다면 약을 했거나 종교에 미친놈이겠죠.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나 바라볼 무렵.
말이 이어졌다.
“당신은 원래 포로를 안 남기잖습니까? 애초에 항복할 기회조차 주지 않아서 학살과 도살, 사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한 명을 살렸길래 한 말이었습니다.”
“예? 그게 뭔…….”
말이 너무 멀리 가는 것 같아서 반사적으로 대꾸하려던 순간.
“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각해 보니까 그랬다.
포로를 안 남기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는데, 돌아보니 굳이 포로를 잡으려고 한 적도 없었다.
내가 집중한 건 작전 그 자체였다.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가능하면 머리, 어려우면 상체 한복판을 맞혔었다.
지금 잡혀 있는 루이스도 마찬가지.
그가 조금만 늦게 항복했더라면, 진즉에 머리를 날렸을 거였다.
“음, 그랬구나…….”
비로소 아귀가 들어맞았다.
죽음 직전에 백기를 들었던 루이스만 봐도 어느 정도 답이 나왔다.
국가에 충성하던 현역 시절이면 몰라도, 은퇴하고 불법 용병을 전전하는 이들이라면 죽음 앞에서 항복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런데 내가 여유를 안 주고 다 처리한 거였고.
아마 루이스보다 더 협조적이고 적극적인 용병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상념은 거기까지.
‘앞으로는 상황 봐서… 적당히 살리지, 뭐.’
짧게 정리했다.
더 길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사신이고 뭐고 그냥 인정해야겠네…….”
그사이, 배낭 은닉 위치를 짚어 낸 것인지, 제이크가 해당 지점에 고고도 무인정찰기 운용을 요청했다.
루이스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으니, 당연한 과정이었다.
적이 있거나 지뢰가 있을 수도 있고.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바라던 게 아니었다.
-여기는 줄루 100, 나무로 인해 상세한 확인 불가능하며 현장 확인 필요함.
아예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이렇게 될 걸 짐작은 했었다.
탄광과 근처의 건물을 제외하고 주변 지역이 거의 열대우림이어서 상공에서 파악이 어려운 탓이었다.
저격 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 200M까지 접근한 적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이유도 같은 이유였다.
상공에서 볼 수 있는 건 작전 지역 일부가 전부였으니까.
동시에 레이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확인해 볼게요.”
이어서 그녀가 메고 있던 커다란 백팩을 내려 놨고, 안에서 소형 사이즈의 드론을 꺼내어 바로 날려 보냈다.
이어서 게임기 같은 조종기로 드론을 운용하길 잠시.
“호세, 위치가 정확히 어디에요?”
“자, 여기.”
호세가 답하면서 내비게이션 보드를 내밀고, 나도 그녀 옆으로 다가가 슬쩍 화면을 볼 무렵.
휴대용 모니터 속 영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나무 위를 고속으로 움직이다가 틈을 찾아 아래로 내려가서 저공비행을 시도한 상황.
그것도 속도감이 넘치다 못해 스릴 있을 정도로 빠르고 어려운 비행이었다.
드론을 모르는 내가 봐도 감탄할 정도.
“오…….”
호세도 같은 반응을 보이던 때였다.
탁!
레이첼이 급하게 스틱을 당겼다.
동시에 나아가던 화면이 멈추고 정지해 버렸다.
“……?”
무슨 일인가 해서 그녀를 바라볼 무렵.
레이첼의 입이 열렸다.
“드론 기준 1시 방향에 미식별자가 있어요.”
“미식별자?”
되물으면서 잠깐을 더 바라본 뒤에야 사람 형체 같은 게 보였다.
그것도 땅을 파헤치는 상황.
“배낭을 가져가려는 것 같아요. 조치가 필요합니다.”
레이첼이 바로 상황을 정리했고, 거의 동시에 위장 요원이 루이스의 머리통을 잡아당겼다.
“이봐, 저기 보이는 게 누구야?”
머리를 움켜쥐듯 당기며 화면을 보여 주자, 루이스가 힘겹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모, 모릅니다. 우린 그 포인트에 묻으라는 명령만 받았습니다.”
“고용주가 현지 흑인은 아니겠지?”
“정말 모릅니다, 우린 코인과 명령을 받을 뿐입니다.”
“자랑이군, 머저리 같은 새끼.”
짧은 대화가 이어진 직후, 어느새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첼, 미식별자 인근 수색해서 공범들이 있는지 찾아봐. 그리고 리와 호세는 여기 남아서 저격 및 지원하고, 나머지는 충분히 접근해서 필요시에는 적을 제압하여 목표물을 노획하도록 한다. 다른 의견 있나?”
일사불란하기 그지없는 깔끔하고 완벽한 지시.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제이크는 그냥 힘캐가 아니라, 상황 판단이나 계획 수립 능력까지 갖춘 대단한 리더였다.
만능이었다.
델타에서도 괜히 괴물이라 불린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을 무렵.
“잘됐군요, 가는 길에 배낭까지 가져가죠.”
위장 요원이 입을 열었고,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우리를 돌아봤다.
“당장 움직여.”
나는 다시금 TAC-50을 결합하고, 양각대를 펼쳐서 엎드렸다.
총구의 방향은 레이첼이 일러 준 방향.
이어서 제이크가 마커스와 해리를 데리고 이동 중인 위치를 공유했고, 레이첼 역시 배낭이 있는 위치를 파내려 가는 적의 상황을 계속해서 알려 주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적의 현황, 적과의 거리 등등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보한 덕분이었다.
당연하게도 이걸 머리 한 방으로 날릴 생각은 없었다.
내 방식대로 써먹을 요량이었다.
“호텔 시에라 403, 적 포착됨. 생포하겠음.”
아까 들은 말도 있고 해서, 가능한 잡아 보려는 것이었다.
작전 진행이 우선이지만, 아무래도 포로가 늘어야 메인 스토리도 수월하게 풀릴 테니까.
이윽고 제이크의 답이 주춤하듯 넘어왔다.
-…생포?
“생포 시도할 예정이나, 불가능할 경우 사살하겠음.”
혹시 몰라 여지를 남겼는데, 다행히 허락이 떨어졌다.
-귀소 의지대로 진행하기 바람.
“수신 양호.”
바로 방아쇠 위에 검지를 얹었다.
대물용 탄환을 쓰는 저격 상황이지만, 최대한 죽이지 않고 생포해 보려는 것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다칠 수밖에 없었다.
어디 하나는 맞혀야 하는데, 납탄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탄이었으니까.
더구나 이 거리에서 투항하라고 소리칠 수도 없었다.
그가 알아서 항복하게 만들어야 했다.
정확히는 포기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거였다.
루이스가 그랬듯.
‘저쪽은 혼자니까… 개인화기를 못 들면 반 정도는 항복이라고 봐도 되겠지.’
물론 쉽게 보진 않았다.
혼자서 짐을 찾으러 왔으니, 짐작으로는 근처에 공범이 있거나 지시한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훈련받은 이라면 보통은 단독보다 둘 이상으로 투입하기 때문이었다.
유사시에 보조하든, 대체하든, 뭐든 할 수 있게.
즉, 아마추어거나 파트너가 다른 데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제이크 역시 그런 이유로 레이첼에게 공범을 찾아보라고 한 것이고, 곧 예상했던 말이 들려왔다.
-호텔 시에라 401, 진행 방향 기준 4시 방향 160미터 지점에 적 2인 발견.
-수신 양호.
제이크의 대답까지 들린 뒤 총성이 울려 퍼졌다.
투두두두두두!
타다다당!
동시에 내 스코프 안에 있던, 배낭을 짊어지고 이동하던 이가 주춤하는 게 보였다.
시선이 소리 난 곳으로 향했고, 오른손이 총을 잡았다.
AK 시리즈의 둔탁한 나무 손잡이.
그리고 이제 더 지켜볼 수는 없었다. 사살하든, 총을 놓게 해야 했다.
아니면 아군에게 반격할 터.
“자, 항복하자.”
포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중얼거리면서 검지에 힘을 줬다.
터어어엉─!
작은 압력과 함께 총성이 울리고, 반동이 어깨를 때린 뒤.
1초가 채 지나기 전에 적중했다.
표적은 총을 든 손.
명중이었다.
잘 훈련받았는지 비명을 지르진 않았는데, 총은 어쩔 수 없이 떨어트렸다.
손이 망가졌으니 어쩔 수 없을 터.
이어서 반동으로 인해 흔들렸던 스코프 너머로 다시 적을 살필 즈음, 멀찍이서 들려오던 돌격 소총의 격발음이 멎었다.
대신 헤드셋 너머로 제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타깃 다운.
역시나 깔끔한 결과.
이어서 레이첼까지 주변에 특이 사항이 없다고 보고할 때였다.
엎어진 적이 급하게 손목에 지혈대를 감더니, 어느새 반대 손으로 놓쳤던 총을 집어들고 있었다.
손잡이가 망가졌을 텐데도 억지로 잡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훈련 좀 받았구나.’
아마 나도 그럴 것 같았다.
오른손이 다쳤다면 왼손으로 총을 들 터.
더구나 주로 몸통을 겨냥해서 쏘는 만큼, 손에 맞았다면 잘못 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충분히 총을 주워 들 만했다.
아직 사기를 꺾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부상이 좀 더 커지겠지마는…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짧은 판단과 함께 왼손까지 날렸다.
터어엉─!
총성과 함께 조준했던 적이 웅크리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배낭도 떨어트렸고.
동시에 비틀대면서 자리를 이탈하려 하길래, 어쩔 수 없이 한 발을 더 쐈다.
터엉─!
표적은 워커 앞꿈치 부분.
움직이는 와중이라 탄의 절반 정도가 스쳐 간 것처럼 보였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워커의 발등 가죽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양말까지 찢어지면서 그의 맨발이 스코프를 통해서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원하던 반응도 있었다.
손이 들리는 것이었다.
양손 전부를 벌벌 떠는 모양새로 들고 있었다.
저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항복.
늦기 전에 얼른 무전을 쳤다.
“호텔 시에라 401, 타깃 항복 선언했으니, 확인 후 조치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