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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92화 (92/185)

92화

콩고민주공화국, 반둔두주(州).

현지 콩고군과 프랑스군, 미군, UN군, 사설 용병까지 모인 2개 연대 규모의 병력이 움직였다.

작전지는 중소 규모의 금광 2곳과 우라늄 광산.

그중에 우리 찰리 팀을 비롯한 G&G Corp 팀이 배치된 곳은 피칼의 핵연료가 될 우라늄 광산이었다.

당연히 라레플에 나오는 장소 중 하나였다.

이걸 피칼이 챙겨 가서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했고, 결국에는 발사까지 해서 핵전쟁을 일으키니까.

물론 메인 스토리에서는 소규모로 비밀스럽게 침투한다는 차이점이 있긴 했지만, 중요한 건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곳에 배치될 수도 있었다.

예컨대 금광.

그저 황금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우라늄 광산만이 아니라, 금광 역시 피칼과 관련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금줄 중 하나.

한데 그 금광이 아닌, 우라늄 광산에 내가 배치되어 있었다.

즉, 위에서도 뭘 좀 안다는 뜻.

‘그럼 슬슬 핵미사일을 언급해 봐도 되려나……?’

불쑥 거짓말을 해 가면서 월트 그레이슨과 피칼의 이름을 꺼냈었지만, 정작 본론인 ‘핵전쟁의 위협’은 언급조차 못 했었다.

사람들 이름은 들어 봤다고 해도, 핵전쟁까지 입 밖에 꺼내기는 어려운 탓이었다.

내가 음모자로 몰리진 않겠지만, 적어도 뒷말 정돈 나올 터.

아니어도 적잖이 이상할 건 분명했다.

지금 같은 평시에 핵전쟁을 입에 올리는 건, 대개 사탄 강림 등을 외치는 정신 나간 종자와 비슷한 부류였으니까.

‘…상황 봐서 슬쩍 떠보고 찔러 봐야지.’

그렇게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상념을 묻어 둘 무렵.

어느새 저격 지점에 도달했다.

우라늄 광산이 내려다보이는, 작전지에서 약 850M가량 떨어진 위치.

그리고 좌우로는 호세와 마커스, 제이크와 레이첼로 된 각 조가 자리를 잡을 예정이어서 서로 보완할 수도 있었다.

물론 최우선은 우라늄 광산의 시야 확보인 만큼 그것도 부족하진 않았다.

약속한 지면을 각도상 완벽하게 포위했으니까.

“선배님?”

어느새 주변 경계를 마친 해리가 말을 이어 왔다.

“11시 방향 15미터 거리에 비트를 파는 건 어떻습니까?”

“어디… 아, 괜찮네.”

해리가 골라낸 좋은 자리를 골라 야전삽으로 파기 시작했고, 10분도 안 돼서 각자의 아늑한 굴을 만들었다.

나뭇가지와 덩굴, 이파리 따위를 얽어서 만든 뚜껑은 한 세트였고.

어느새 비트 속에 몸을 감춘 해리가 관측경을 꺼내어 들면서 목소리를 냈다.

“길리 슈트까지 있으면 완벽할 것 같은데, 좀 아쉽네요.”

“길리 슈트? 그래, 있으면 좀 낫겠네.”

물론 먼저 쏴 죽이면 그만이지만, 내 사각지대에서 쏘면 꼼짝없이 죽을 게 뻔했다.

난 능력은 좋아도, 결국 멀쩡한 사람이니까.

더구나 근래 저격 임무가 늘고 있었다.

선두에서 돌격 역할을 할 때만 해도 생각지 못했었는데, 이제 스나이퍼 역할을 자주 맡게 되니 몸을 좀 가릴 만한 게 필요해 보였다.

그것도 머리부터 허리까지 덮는 상의.

대개 이런 야전에서 노출되거나 발각되는 부위가 사람의 머리와 어깨였기 때문이었다.

신체 구조상 자연과 비교하면 유독 달라 보여서 그랬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상체만 가리는 게 무게나 부피도 만만해서 다루기가 좀 더 나았고.

‘복귀하면 장바구니에 바로 추가해야 되겠고…….’

그렇게 생각을 미뤄 둘 무렵.

제이크의 걸걸한 음성이 헤드셋을 타고 전달됐다.

-호텔 시에라 402, 호텔 시에라 403, 아군 진입 5분 뒤에 이뤄질 예정이며, 현 시간부로 적 발견 시 우선순위에 따라 사살하도록.

호세와 나를 부르는 음어 끝에 명령이 내려왔다.

우선순위에 따른 사살.

지휘관, 대전차 화기 사수, 저격수, 테크니컬 운전수 등등을 먼저 죽이라는 건데, 그건 공식적인 명령이었다.

대외협력국에서 내려온 최우선 명령은 불법 용병 사살 및 생포였다.

물론 스나이퍼 임무를 받았으니, 생포는 불가능한 상황.

보이는 대로 죽여야 했는데, 거기 해당하는 경우의 수는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었다.

아직 광산 지역에 남은 경우, 혹은 탈출 중이거나 진즉에 탈출한 경우.

셋 다 가능성은 있었다.

고고도 무인정찰기가 계속해서 떠 있다고는 하지만, 무성한 열대우림 때문에 놓치는 것도 꽤 많은 탓이었다.

물론 듣기로는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들었으니, 놈들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접촉하는 것까지 고려해 작전에 임해야만 했다.

비트를 파고, 길리 슈트 어쩌고 한 게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우리 찰리 팀이 있는 경로가 마침 탈출로에 적합한 곳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훈련된 특수부대 출신 용병들이 일부러 찾아서 이동할 만한 장소였다.

제법 높은 지점, 거친 비탈면, 무성한 나무까지.

탈출이 어려운 만큼 수색도 용이하지 못한 판이니, 우회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콩고군도 근방에는 없었고, 비교적 평탄하거나 탈출하기 쉬운 곳은 연대급 물량이 포위한 채로 대기한 상태였다.

물론 사방 어느 곳이든 도망치는 건 가능했다.

어디로 갈지도 정확히는 모르고.

‘우선은… 걸리는 대로 쏘자.’

그렇게 잡념을 날려 버릴 무렵, 스코프 안에 사람 한 명이 보였다.

단층 건물 지붕 위.

원통형 로켓포 따위를 잡고 탄을 넣는 사수의 모습이었다.

아마 진입하는 아군을 발견한 모양.

지체할 여지 없이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터엉―!

소음기를 거친 묵직한 총성이 한차례 울릴 무렵, 가슴팍이 터져 나간 적이 지붕 위에서 맥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철커덕.

깔끔한 원샷원킬이었다.

그간 익숙해진 저격 실력의 영향이 크겠지만, 커스텀 한 최신식 TAC-50과 한 발당 12달러가 넘는 고급 황동 탄의 영향도 있었다.

격발한 감각도 그랬다.

모든 게 편안하다 못해서 완벽한 경지.

저렴한 중국산 복제 총이었으면 똑같이 흉내 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크… 역시 개같이 번 보람이 있어.’

이어서 반사적으로 탄피를 빼내고, 새 탄을 채워 넣으며 잡념을 날린 뒤.

다시금 격발했다.

터어엉―!

떨어진 로켓포를 주워 가려던 젊은 반군을 쏜 것이었다.

그도 바닥으로 고꾸라진 뒤.

각도를 살짝 틀어서 수십 미터 옆의 골목 틈을 겨누었다.

스코프 끄트머리에 뭔가 움직여서 확인한 것이었는데, 거기에도 역시나 적이 있었다.

이리저리 팔을 움직이면서 삿대질을 하는 나이 든 대머리 한 명.

대충 지휘관 같은 모습이었다.

마찬가지로 더 볼 필요 없이 바로 쐈다.

터엉―!

격발음이 터져 나가고, 가스압이 총 좌우로 확 퍼지며 잡초를 흔든 뒤.

스코프 속의 대머리는 확 밀리듯 넘어지더니 그대로 엎어져서는 일어나지 못했다.

이어서 흘러나올 핏물까지 확인할 무렵.

-선배님……?

해리가 날 불렀다.

평소처럼 대단하다는 칭찬이나 하는 것과는 다른 조심스러운 목소리.

“말해.”

스코프에 접안한 채 네 번째 타깃을 찾으며 대꾸하자, 해리의 목소리가 더욱 속삭이듯 전해졌다.

-…관측경 하단에서 움직임 확인했습니다.

“하단?”

-네, 2시 방향, 약 190미터 지점입니다.

“190미터라고?”

되물으면서도 거의 반사적으로 총구를 움직였고, 왼손으로는 스코프 위의 터렛을 돌려서 배율을 낮췄다.

총이 흔들리면서 스코프 안에도 진하고 흐린 음영이 생길 즈음.

어느새 2시 방향 190M 지점이 보였다.

“…….”

풀만 무성하고, 보이는 게 없는 상황.

“…조용한데?”

-저도 마을 쪽 보느라고 정확하게 못 봤는데, 잠깐 눈을 뗐을 때… 그때 뭐가 움직였었습니다.

“동물 아니야?”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좀 이상해서…….

그가 말을 잇던 찰나.

-어?

“어?”

헤드셋에서 해리의 목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나도 멈칫했다.

아주 살짝 이질적인 게 보인 탓이었다.

-저하고 같은 걸 보십니까? 어깨 같은 거?

“아… 그래, 어깨 같다.”

해리가 좀 더 예리하게 짚어 내기에, 수긍하면서 정조준을 할 때였다.

‘가만 이거…….’

멈칫하고 말았다.

습관적으로 일단 사격 준비를 하는데, 준비를 마치고 보니 느낌이 싸한 탓이었다.

다른 게 아닌 총 때문에 그랬다.

한 발씩 일일이 노리쇠를 후퇴시키고 장전시켜야 하는 볼트액션식 TAC-50 저격 소총.

이건 장거리에서 적을 하나씩 골로 보내기 위한 도구지, 190M에 숨어 있는 적을 상대로 적합한 병기는 아니었다.

적이 혼자가 아닌 다수라면 사실상 불리한 무기였다.

쏠 때마다 장전해야 할 테니까.

-아, 맞다. 선배님, 제 M4를 사용하시는 게…….

눈치 빠른 해리가 말을 이어 왔으나, 받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비트를 파느라, 그와의 거리도 2~3M 떨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M4를 받으면 정작 해리는 사용할 무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글록이 있긴 하지만, 이 거리에서 쓰는 건 불가능했다.

그건 기껏해야 유효사거리 50M였으니까.

물론 190M의 적도 죽일 수는 있겠지만, 비율상 유효사거리의 4배에 육박하는 거리는 적중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탄약도 위력이 약했고.

이에 주춤했으나, 금세 깨닫고 대답했다.

“그거 너 써.”

-네?

“난 이걸로 될 것 같다.”

-선배님?

허세나 자만심 같은 건 아니었다.

매 탄마다 장전해야 하는 불리함이 있긴 하지만, 유리함도 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계산.

850M에 있는 적을 쏠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풍속이나 풍향, 거리에 따른 편차를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조준하는 대로, 명사수 특성이 돕는 대로 쏘면 됐다.

그리고 하늘이 도와서 빗맞는다고 해도 12.7×99mm탄의 위력에 뭐가 됐든 터져 나가서 응사 같은 것도 못 할 게 분명했다.

동료가 있다면 그들에게도 심리적인 영향을 줄 거고.

정 안 되면 글록19를 써도 됐다.

한 발로는 제압이 안 되니 연발처럼 난사하듯 갈겨야 하고, 짧은 사거리도 고려해서 조준해야 하겠지만, 어쨌든 사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잠깐의 틈이 지나기 전에 결론이 나왔다.

‘재장전만 빠르게 하고, 옆에 지원 요청하면 되겠는데……?’

판단을 내리자마자, 미리 보고부터 했다.

“호텔 시에라 401, 여기는 호텔 시에라 402. 당소 위치 2시 방향 190미터 지점에서 적 추정 물체 발견, 현재 경계 중이며…….”

말을 잇던 찰나.

“……!”

어깨 같았던 게 움직이면서 형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정말 어깨가 맞았다.

당연히 경계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방아쇠를 당겼다.

부위가 어깨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정확하게만 들어가면 상체가 4분의 1 정도가 터져 나가기 때문이었다.

응사는커녕 즉사하지 않으면 다행일 터.

터엉―! 퍼벅!

총성과 함께 어깨가 박살 나는 걸 목격하면서 깨달았다.

얼핏 시야에 잡힌 적의 외모 때문이었다.

구릿빛 피부의 라티노.

‘용병?’

여태 콩고에서 마주쳤던 불법 용병.

피칼과 관련된, 지안드로가 보냈을 놈이었다.

그것도 저격 총으로 상대하기에는 다소 많은, 6명이나 되는 인원들.

지금 한 명이 죽어 가고 있으니, 5명이 남은 상황이었으나, 중요한 건 놈들의 손에 들려 나온 총이 근중거리에서 쓰기 좋은 돌격 소총이라는 사실이었다.

판단과 동시에 총알이 빗발쳤다.

투두두두두두두!

피융― 파바박! 피융!

탄환이 근처를 스쳐 가고, 주변의 흙과 나무를 때려 댔다.

놈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해리가 급히 응사 중이지만, 역부족인 상황.

내가 움직여야 했다.

철커덕.

탄을 재장전하면서 잽싸게, 그간 근력 운동했던 보람이 있도록 있는 힘껏 TAC-50을 들었다.

조준은 순식간이었다.

이미 쏘기로 봐 둔 놈이었고, 쏘기로 작정했으며, 또한 계산할 것도 없는 거리였다.

텅! 철컥.

쏘면서 빠르게 몸을 감추며 재장전을 했다.

피융! 파바바박!

더 가까이서 탄이 스쳐 가고, 흙이 튀었다.

놈들 역시 단순히 견제 사격이나 제압 사격을 하는 게 아니었다.

날 죽이려는 목적.

혼자였으면 계속 웅크려야 되겠지만, 옆에는 한 명 더 있었다.

해리.

그가 최선을 다해 반격했다.

빗맞은 탄에 방탄모가 돌아가면서 찢어질 정도로.

캉!

동시에 해리가 충격을 받고 움찔 물러난 순간.

내가 나섰다.

터엉―! 철컥!

그와 동시에 빗발치던 총성이 훅 끊겼다.

왜 그런지도 잘 알았다.

“이 새끼들이… 힘들게 2 대 2 맞춰 놓으니까 발을 빼?”

중얼거렸으나, 나도 섣불리 머리를 들 순 없기에 기다릴 무렵.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레이첼이 운용하는 드론의 프로펠러 소음.

그것도 높은 곳에서 연하게 들리는 게 아닌, 울창한 나무 밑을 헤집으며 저공비행 하는 소리였다.

위이이이이잉―

작전 시에는 거슬릴 것 같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곧 바라던 레이첼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호텔 시에라 403, 귀소 전방 140미터에 1명 포복, 4시 방향 175미터 나무 뒤에 엄폐한 1명 확인됨.

아까까지 190M였는데, 그새 다가오다니?

어쨌든 바라던 말이었다.

아직 정신 못 차린 해리를 두고, 도착한다는 제이크를 놔둔 채 총구를 들었다.

터엉!

이제 마지막 한 명이 남았는데, 총구를 돌리다 움찔했다.

웬 목소리가 들려온 탓이었다.

“하,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그건 불법 용병에게서 처음으로 듣는 투항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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