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그날 밤, 부르키나파소 북서부에 위치한 부클뒤무운 지방.
전조등을 끈 SUV 한 대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타이어가 몇 포기 자라지 않은 잔디와 흙을 고루 눌러 밟듯 천천히 굴러가는 사이, 안에 타고 있던 G&G Corp TF에게 유수프의 음성이 전파됐다.
-…마지막으로 교전 수칙 전파하겠습니다. 작전 지역 내에 무기를 들고 있거나 공격할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에 선제공격하거나 사살해도 좋습니다. 또한 부르키나파소 정규군 전투복이나 바르칸 전투복을 입은 병력도 적이므로 제압해도 무방합니다.
“폭스트롯 로미오 1, 수신 양호.”
제이크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클뒤무운 지방은 그런 땅이었다.
부르키나파소 군부가 건드릴 수도 없는, 그래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지배하고 국경을 접한 말리에서 편하게 넘어 다니는 통로.
웬만한 사람은 제압하거나 사살하라는 교전 수칙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뒤에 덧붙인 정규군이나 바르칸 전투복을 입은 이들을 제압하라는 것도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런 부클뒤무운에 멀쩡히 있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단 2개뿐이기 때문이었다.
변장했거나 배신자거나.
마땅히 사살해야만 하는 적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제이크가 조용히 응답하고, 강태를 비롯한 나머지 팀원들도 각자의 차창 너머를 경계할 무렵.
다시금 적막이 깨졌다.
“골프 35에 도착했습니다.”
운전대를 쥐고 야간 투시경을 쓴 해리의 말이었다.
거의 동시에 제이크가 목소리를 냈다.
“전원 하차.”
그러자 조수석의 강태와 차량 문손잡이를 쥐고 있던 각 팀원이 순식간에 내렸고, 경계와 이동까지 빠르게 진행했다.
그야말로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
투입 전에 마냥 쉰 게 아니라, 빠듯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전 준비와 상황별 시뮬레이션, 모의 전술까지.
더구나 각각 이름 있는 부대 출신이고, 함께 팀 생활을 한 터라 오히려 못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중간 집결지에서 바르칸 대원들로 구성된 QRF(Quick Reaction Forces: 신속대응군)가 대기 중이고, 수도인 와가두구(Ouagadougou)에는 즉각 폭격 가능한 건십만이 아니라, 의료 수송을 위한 헬기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즉,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아주 깔끔한 상황.
스윽.
어느새 제이크가 수신호를 내렸고, 동시에 팀원들이 두 분류로 나뉘어 이동했다.
호세가 장거리 저격 및 엄호, 레이첼이 드론 조종 및 정찰, 남은 4명은 선두의 강태를 위시한 타격대.
개인별 위치도 이미 지도상으로 모두 정해져 있었다.
침입 루트도 마찬가지였고.
다만, 준비했다고 해서 모든 게 완벽하거나 좋다는 건 아니었다.
‘시작부터 애매하네…….’
선두로 진입하던 강태가 속도를 늦추면서 가까운 나무 기둥 뒤로 몸을 감췄다.
나무가 우거진 콩고와 다르게, 부르키나파소는 평원에 가까운 사바나 환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사막화 중이라서 수풀의 높이도 낮고, 나무도 별로 없는 상황.
즉, 은‧엄폐 하기에는 좋지 못하다는 말이었다.
‘이러니 프랑스 애들이 안 들어왔구나……?’
까딱 잘못하면 발각되어 죽기 쉬운 구조.
안전하게 진입하기 위해서는 인원이 많아야 하는데, 인원이 많으면 그만큼 발각되기도 쉬워서 더 위험해질 것이었다.
그렇다고 적은 인원으로 투입하면 그만큼 안전하지 못했고.
어떻게 보면 딜레마인 셈이었다.
더구나 사상자가 발생했던 전례도 있으니, 직접 들어가기 두려웠을 터.
강태가 짐작과 함께 주변을 경계할 무렵.
툭.
뒤에 있던 해리가 강태의 허벅지를 건드려서 신호를 줬고, 다시금 빠르게 나아갔다.
동시에 초소형 드론을 운용 중인 레이첼이 주변 건물과 인원을 파악하여 설명했고, 망원 스코프로 주변을 관찰 중인 호세도 사각지대의 정보를 전달했다.
그 결과, 한 시간 만에 별 무리 없이 결과 하나를 얻어 냈다.
“퀘벡 0, 여기는 폭스트롯 로미오 1. 골프 35에서 탱고 미확인.”
후보지 중 한 곳에 타깃이 없다는 뜻.
주요 건물 몇 채와 그늘막으로 가린 주차장, 배치한 경비병까지 두루 파악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다소 무난한 과정이었다.
중간에 초병 두 사람을 대검으로 처리하긴 했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그 정도는 늘 있는 일이라 어려울 것도 없었고, 더불어 소음 역시 전혀 발생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렇게 타격대를 비롯해 호세와 레이첼까지 모두 복귀한 뒤.
덜컹.
차량 문짝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호세가 첫 소감을 꺼냈다.
“후아, 긴장한 것치고는 그렇게 어렵지 않더군. 특히 리, 너는 내가 후방을 봐주기도 했으니까, 아주 안전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진입로가 별로야.”
“진입로? 그나마 가장 좋은 루트였잖아?”
“그래서 하는 말이야.”
“그래서라니… 아!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았어.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군.”
호세의 말에 운전대를 쥔 해리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도 막상 침투하니까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갈대 같은 거라도 좀 있거나 지형이라도 울퉁불퉁해야 하는데, 들어가니까 정말 평원 같은 느낌만 나더라고요.”
“그리고 이게 첫 번째고, 앞으로 세 곳을 더 가야 하는 게 문제지.”
마커스마저 말을 보충했는데, 호세가 툭 끼어들었다.
“아냐, 문제 될 건 없지.”
“거기서 벌어지는 일은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냥 싹 다 정리하면 되잖아?”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을 어떻게 정리한다고?”
“그래, 해 봤으면서 왜 이래?”
“…그러다 도비탄에 옆구리라도 맞으면 어떡하려고?”
“아, 젠장… 그래, 부상을 빼먹었군.”
호세가 미처 놓쳤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마커스도 다른 말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해 봤기 때문이었다.
수백 명과 교전한 적이 한 번도 아니라 여러 번 있었고, 힘들긴 했어도 임무에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또 비슷한 일이 있어도 패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강태의 실력이 말도 안 되게 뛰어나기도 하거니와, 주변에서 그를 보조하는 마커스도 고난도 작전에 적응하면서 실력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체력 수준은 몰라도, 판단이나 전술, 멘탈 만큼은 현역 시절보다 나을 정도.
그런 면에서 다대일의 전투도 겁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눈먼 총알이나 파편 따위에 큰 부상을 입는 게 우려될 뿐인데, 정확히는 강태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가 무너지면, 팀의 전력도 급격하게 줄어들 테니까.
한데, 강태가 돌연 입을 열었다.
“그래… 정 안 되면… 싹 정리해도 되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이었으나, 모두가 들을 수밖에 없는 소리기도 했다.
거의 동시에 해리가 옆을 돌아봤고, 뒷좌석의 차창 너머를 경계 중인 제이크도 목소리를 냈다.
“리, 방금 그 말… 정말 가능하겠나?”
“야간이라서…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주간이면 저도 위험할 것 같긴 한데…….”
제이크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적외선이나 열 영상 장비가 없는 반군이나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을 상대로는 야간 작전이 특효약이었다.
방심하는 적을 습격하는 거라 작전의 성공률이 높고 더불어 제대로 쏘지도 못하니, 총에 맞을 확률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아군은 IR 패치와 램프, 적외선 레이저로 위치 확인과 신호 교류까지 가능했고.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약간의 효과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화력 차이였다.
병기의 수준 혹은 인원수에서 오는 격차도 마찬가지였고.
그런 면에서 수백 명을 고작 몇 명이 상대하는 건 마땅히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이 안의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강태가 있다면 버틸 여지가 있다고 믿었다.
그간의 경험이 그러했으니까.
“그래, 그것까지 고려하지.”
제이크가 대답하고, 이후로도 몇 마디의 대화가 더 오간 뒤.
언급했던 상황은 더 빠르게 찾아왔다.
* * *
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에 위치한 부르칸 사령부 지휘 통제실 막사.
커다란 LED 모니터에서 영상 두 개가 송출 중이었다.
프랑스의 고고도 무인정찰기로 촬영 중인 항공 영상과 대원이 직접 나무 위에 올라가서 망원 렌즈로 촬영 중인 적외선 영상.
각도며 상황은 다르지만, 찍고 있는 건 같았다.
폭스트롯 팀으로 임시 명명된 G&G Corp TF의 작전 상황.
소수의 지휘관과 간부 몇 명이 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가이드를 맡았던 담당자 유수프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역시… 의뢰를 줄 만하군. 움직이는 솜씨도 그렇지만… 특히 선두에 선 리가 대단하단 말이지.’
벌써 두 번째 후보지를 헤집고 나오는 상황.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이 총기를 격발하게 됐는데, 강태의 반응 속도가 어마어마했었다.
분명 적이 사각에서 먼저 나왔는데도, 돌아서 쏘는 강태가 더 빨랐다.
야간 투시경의 유무와 관계없었다.
적이 격발했어도, 강태가 먼저 사살했을 정도.
‘이제 3번 작전 지역으로 가는군…….’
거리상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아서 총성이 들렸을지도 모를 위치였다.
중간에 정찰병이라도 있으면 보고했을 수도 있고.
이에 긴장하며 모니터를 보던 순간.
“아니, 이런……!”
누군가 탄식을 뱉었고, 그와 동시에 모니터 한쪽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터더더더더더터덩! 텅텅텅!
투두두두두두―!
총성이었다.
그것도 한두 발 쏜 게 아니라, 거의 전면전을 각오한 격발.
그럴 수밖에 없었다.
3번 초입 부분부터 개들이 짖는 바람에 적에게 발각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짖음은 짧았는데, 그 여파마저 끝난 건 아니었다.
졸던 초병이 깨어난 건 물론이고, 건물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기어 나왔다.
그것도 무장한 병력들.
강태와 고작 수십 미터 거리였고, 성능 좋은 랜턴이 켜지면서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장성 한 명이 유수프를 쳐다봤다.
“이봐, 유수프! 당장 QRF 출동할 준비 하고, 조종사 불러서 의료 헬기도 이륙 준비시키게!”
“알겠습니다.”
G&G Corp의 담당자인 유수프가 급히 연락했고, 바깥에서도 바빠진 듯 약간의 소란이 나기 시작했다.
이어서 다시 영상을 보는 사이, 유수프가 움찔했다.
“아니……?!”
피아 식별이 가능한 IR 램프 불빛이 안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단 두 개.
“이봐, 통신병! 저거 뭐야? 왜 들어가고 있나?!”
유수프가 얼른 물었고, 곧 답이 돌아왔다.
“자, 작전 진행 중이랍니다.”
“뭐?!”
“상황이 그렇게 심각하진 않다고, 가능하다는데…….”
“……?!”
유수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무리 야간이라고 해도 전면전에 버금가는 총격전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몰살될지도 모르는 상황.
“소령님? 폭스트롯에서 QRF 출동과 헬기 대기 요청했고… 방금, 아!”
통신병이 움찔하며 유수프를 바라봤다.
“포, 폭격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위치는 현 작전지, 골프 위스키 202!”
“잠깐만! 폭격 전에 타깃 확인은?”
“사, 사진 촬영 했다고 합니다.”
“뭐? 사진을 찍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할 때였다.
“그… 적 간부 숙소에 진입해서… 요인 전원 사살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장성들은 물론이고, 간부 몇몇도 흠칫했다.
생각도 못 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현재 탈출로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정밀 타격으로 활로를 열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또한 QRF로 인근 봉쇄하고…….”
“그래, 그대로 건십(Gunship)과 QRF에 전달해. 그런데… 지금 적진에 누가 들어가 있나?”
건물 안에 들어가서 IR 램프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머지는 저격 지점까지 물러났고.
곧 답이 돌아왔다.
“은데르망 소령님, 각각 폭스트롯 로미오 1, 폭스트롯 리마 0입니다.”
“…….”
각각 제이크와 강태였다.
하나는 델타의 괴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반군의 도살자가 된 새로운 괴물.
유수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러면 줘야 할 게 많아지는군.’
개인적으로 대단해서, 혹은 고마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기관 간의 계약이었다.
‘강태 개인에게 220만 달러였나? 교전 및 작전 성공 시에는 2배… 나머지는 10분의 1 수준이니까, 다해서 660만 달러가 되겠고…….’
생각하던 유수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외인부대 파견.
유수프가 지휘하는 건 아니지만, 정보참모인 그는 협상의 현장 책임자로서 프랑스 외인부대 1개 대대를 콩고로 데려가야 했다.
목적은 미국의 내부 작전 보조.
좀 불공정해 보이지만, 어쨌든 프랑스가 승인한 합의였다.
그리고 지금 보니 왜 그랬는지 알 만했다.
저 영상 속의 상황에서는 아무리 외인부대라도 사상자가 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결과였다.
단 한 명의 프랑스군도 죽지 않았고, 작전도 성공할 거라는 사실.
영상을 보는 유수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냥 대단한 용병이 아닌 건 분명하군, 어쩌면 레지옹 에트랑제 1개 대대에 비견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