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장비를 챙겨서 집합할 무렵.
예의 주시하고 있던 사람이 걸어 나왔다.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모두 의식하고 있던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녹색 열대우림과 어울리지 않는 사막색 전투복을 입고 베레모를 쓴 흑인.
그가 제이크에게 눈인사를 하더니, 우리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지앤지의 TF(Task Force) 여러분. 저는 유수프 은데르망입니다.”
이슬람식 이름에 아프리카 형태의 성씨.
외모에 부합한 성명이었는데, 그 뒤로 반갑지 못한 단어가 들려왔다.
“저는 레지옹 에트랑제(프랑스 외인부대)에서 파병된 바르칸(Barkhan) 오퍼레이터로서 여러분을…….”
“잠깐만, 바르칸 말입니까?”
호세가 가장 먼저 되물었는데, 뜻을 몰라서 한 말은 아닐 거였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에 오기 전에 약간의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종종 접촉하는 군부 인사나 용병들로부터 여러 번 들었던 단어였기 때문이다.
바로 사하라 지역 인근에서 벌어지는 프랑스의 극단주의 이슬람 소탕 작전.
그것도 이제 10년 차에 접어든 상태였다.
거꾸로 말해서 10년 동안 프랑스가 수천 명의 군인을 밀어 넣고, 인근 아프리카 국가와 협약을 맺고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라는 뜻.
한마디로 힘든 일이라는 소리고, 우리 찰리 팀이 고생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미션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에도 없던 소재였고.
‘아, 이거 왠지 빡셀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잡념 한 줄이 휙 떠오를 무렵, 유수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러분이 아는 그 바르칸 작전이 맞습니다.”
“오, 제기랄. 알 자마쉬에서도, 카마르니아에서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도 또 미친 무슬림을 상대해야 한다니…….”
호세가 탄식처럼 말을 뱉었다.
내 생각도 그와 비슷해서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또 무슬림이라니?
한숨이 나오는 와중에 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르칸이면 사헬(Sahel: 사하라 사막 이남과 사바나의 중첩 지역) 지대의 그 작전 말하는 거죠? 그럼 작전 지역은 어딘가요?”
“아,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부르키나파소입니다.”
그 말에 조용히 있던 레이첼도 반응을 보였다.
“위험한 곳이네요.”
“뭐… 얼마나 위험한데요?”
내가 반사적으로 묻자, 레이첼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바르칸 작전이 진행 중인 사헬 지대에서 전선이 가장 취약한 곳이에요.”
“아…….”
미처 몰랐던 사실을 깨달을 무렵.
제이크가 상황을 정리하듯 목소리를 냈다.
“은데르망, 추가 설명 바랍니다.”
“아아… 네, 알겠습니다. 지도부터 보실까요?”
그러면서 유수프가 사헬 지대 인근 지도를 펼쳤고, 부르키나파소 위치와 수도인 와가두구(Ouagadougou), 프랑스 공관 등에 대한 설명부터 파병 나온 프랑스 외인부대와 프랑스 해병 특수부대의 규모 같은 배경을 설명해 나갔다.
그리고 금세 지도를 접으며 물어왔다.
“일단 여기까집니다만, 출발 전에 질문 있으십니까?”
“작전 내용은 현지에서 들을 수 있는 겁니까?”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대답도 역시나 였다.
“그렇습니다. 보안 때문에 저도 모든 내용을 전달받진 못했습니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확인해 보고 바로 전파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뭐… 얼른 가야 되겠네요.”
“네, 이동하겠습니다.”
유수프의 그 말을 끝으로 호텔을 나섰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작전한 지 3일 만에 또 떠나는 것이었다.
다만, 가는 길이 더 멀고 험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졌고, 비행시간도 몇 배는 길어졌으며, 도착 후 마주한 광경도 콩고하고는 아주 딴판으로 달랐다.
푸른 녹음보다는 황토색이 더 많이 보였다.
사헬 지대의 영향으로 사막화가 일부 진행 중이라더니, 그게 눈으로도 보이는 듯했다.
심지어 평지가 다수고, 건물도 고층이 없어서 사막화가 더 심해 보였다.
그 외에 생활은 콩고와 비슷했고.
“더운 건 똑같네…….”
혼잣말이 절로 나오는 날씨에 묵직한 가방을 짊어진 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총기와 탄약까지 인계받고 나서, 유수프의 안내에 따라서 차량에 올라 이동했다.
목적지는 바르칸 오퍼레이터 부대.
이동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나라 자체가 우리가 머물렀던 국가들에 비해 그렇게 큰 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반도보다 조금 큰 정도.
그것도 큰 사이즈이긴 했지만, 근래 들어서 큰 나라에 있다 보니 거리감이 달라져서 썩 작아 보이는 것이었다.
100~200㎞가 가깝다고 느껴졌고, 300~400㎞도 멀지 않은 것 같았다.
차로 종일 이동하는 것도 낯설지가 않았고.
동시에 헛웃음이 나왔다.
100㎞가 넘는 거리를 멀다고 생각했던 알 자마쉬에서의 생활을 떠올려 보면 어마어마한 변화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완전히 적응했나…….’
그렇게 잡념을 날려 보낼 즈음.
어느새 차량 속도가 줄어들더니, 부대 앞 바리케이드와 철문을 지나쳤다.
차창을 내다보는데, 유수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특별한 건 아니었다.
현재 와가두구의 간략한 상황 설명.
그러나 가만히 듣고 있기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있던 테러와 각종 사건 사고를 몇 개 짚어서 알려 줬는데, 그 피해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뒤에 나온 말도 마찬가지.
“…그래도 소탕 작전의 증가와 군부의 지역 통제로 최근 3개월 동안 큰 테러는 없었습니다.”
언뜻 보면 그렇구나 하고 흘려들을 만한 말이지만, 뒤에 붙은 말은 그럴 수가 없었다.
바로 큰 테러.
그건 주로 뉴스에 보도될 만한 대규모 인명 살상이나 쿠데타 따위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강도 살인이나 강간, 방화, IED 제거, 테러 미수범 사살 같은 건 상대적으로 흔한 일이라서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미 콩고에서도 유사한 상황을 겪어 봐서 잘 알았다.
그리고 아프리카가 다 그랬다.
콩고나 이곳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위험했다.
이슬람교도들이 많은 나라는 과격주의자가 테러를 일으켰고, 아닌 나라는 반군이나 민병대가 활개를 치고 다녔다.
치안도 프랑스군 같은 외국군 혹은 다국적 연합군인 UN군, 그도 아니면 용병들이 맡아야 안전했고.
그야말로 아사리판이었다.
여기도 그런 나라 중의 하나인 만큼 마찬가지지만, 똑같은 선에서 볼 순 없었다.
레이첼이 말했듯 바르칸 전선 중에서 가장 취약한 나라였으니까.
수당도 전보다 많이 주는 걸 보면 쉽진 않을 것이었다.
분명 심각하게 위험하거나 어려울 터.
상념을 밀어 두는 사이, 차가 멈추며 앞 좌석에서 유수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왔습니다.”
* * *
지휘 통제실이 에어컨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들려오는 유수프의 말에 멈칫했다.
“…먼저 작전은 오늘 밤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침투에 용이한 시간이라서 정한 건데, 지앤지에서 원한다면 더 일찍 가도 좋습니다.”
영 안 좋은 소리였다.
부르키나파소에 도착한 지 한 시간밖에 안 됐으니까.
심지어 지금은 오전이 아니라, 오후였다.
해가 진 이후라면 앞으로 몇 시간 남았다는 소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들었던 40분 남았다는 것에 비하면 여유가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다고 할 순 없었다.
거기하고는 이동 거리부터 다르기 때문이었다.
대략 2~3배는 더 긴 장거리.
쌓이는 피로의 정도가 다르고, 열대우림이었던 그곳과의 환경도 크게 달랐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황색의 땅.
일이 참 쉽지 않겠다고 생각할 무렵, 호세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저딴 걸 먼저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면, 언급도 안 한 작전 내용은 얼마나 엿같을지 상상도 안 가는데……?”
맞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같이 들은 제이크는 담담하게 답했다.
“잠시 휴식 취하다가 예정된 밤에 가겠습니다. 작전은 어떻게 됩니까?”
역시나 참 리더다운 평상심.
듬직함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유수프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선 현 상황부터 말씀드리자면… 지하디스트(Jihadist: 이슬람 극단주의자) 고위 간부가 있을 만한 거점 여러 곳… 그러니까, 정밀 타격 지점을 추려 냈는데, 정확하지 못해서 아직 확정하지는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드론을 운용하고 감청, 휴민트(human intelligence: 인적 정보) 정보까지 수집하고 있긴 한데, 불확실해서…….”
말하는 게 왠지 우리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였다.
큰 테러가 없다고, 태연히 말하던 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모습.
왜 그러는지도 알 만했다.
뒤에 이어지는 말이 상당히 좋지 못할 터.
그리고 충분히 짐작도 됐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인 듯 표정이 흐려지는 사이.
잠시 닫혔던 유수프의 입이 열렸다.
“…직접 침투해서 육안으로 확인하고 폭격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것도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이 이동할 변수가 있기 때문에…….”
괜히 말을 끈 게 아니었다.
그럴 만했다.
적진까지 들어가서 폭격을 유도하고 나와야 하는, 힘들고도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동시에 왜 이런 일을 주는지 이해도 됐다.
애초에 할 만한 일이었으면, 진즉에 현지에 파병 나온 프랑스 외인부대가 해결했을 테니까.
아니면 비싼 돈 들여서 용병을 고용하지 않았을 터.
‘그것도 굳이 콩고에 사람까지 보내서 데려올 정도면, 전적을 알고 부른 거겠지. 위에 국무부나 대외협력국도 쇼부 보고 오케이 했으니까, 오더도 내려왔을 거고…….’
어느 정도 퍼즐이 맞았다.
액수가 말도 안 되게 클 때부터 짐작했던 거라서 놀랄 것도 없었다.
이에 홀로 고개를 주억거릴 무렵.
“후보지를 전부 폭격하는 게 최고의 선택일 텐데, 비용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그렇게 안 하는 이유가 뭡니까?”
해리가 목소리를 냈다.
그저 이유가 있겠거니 했는데, 유수프가 예상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간 공습 피해를 겪고 학습한 것으로 보이는데… 지하디스트가 함정을 놨습니다.”
“함정이라면…….”
그게 뭔가 싶어서 생각할 무렵, 레이첼이 먼저 목소리를 냈다.
“폭격 예상 지점에 민간인이나 인질이 있는 모양이죠?”
“아… 네, 그렇습니다. 그것도 여성과 아이들만 모아 놓은 위장 거점들인데… 마을에서 주로 학교 같은 공동 시설로 이용하는 장소입니다.”
절로 움찔할 소리였다.
까딱 실수했다가는 학교를 공격해서 애들을 죽인 게 보도될 터.
이건 단순 실수나 배상 가능한 잘못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손꼽는 학살 사건이나 전쟁범죄로 기록될 게 분명했다.
“오, 제기랄…….”
폭격을 상상했는지 호세가 욕설을 흘리는 사이.
제이크가 주의를 환기하듯 걸걸한 목소리로 핵심을 물었다.
“결론적으로 침투 작전을 여러 번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인데, 후보지가 총 몇 곳입니까?”
“총 9개 지점에서 4개 지점으로 추렸습니다.”
“민간인과 섞였을 가능성은?”
“현재까진 없습니다.”
이어서 유수프가 항공지도를 짚으면서 말을 이었다.
“각 지점은 여기… 붉은색 십자가가 표시된 곳입니다.”
이에 그가 말한 곳들을 빠르게 훑었는데, 역시나 영 좋지 못했다.
각 지점 간의 거리가 최대 수십 킬로미터에서 최소 수 킬로미터에 달해서, 밤새 움직이려면 다소 바쁘게 이동해야 하는 탓이었다.
아마 비포장길이라서 차량이 속력도 못 낼 것이고, 거리를 두고 내려서 이동해야 할 터.
보면서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이거 좀 많이 빡빡하네.”
“빡빡하다기보다는 정말 좆같은 작전이지.”
호세가 말을 덧달자, 듣던 유수프도 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콩고에서도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고, 주변국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소문으로는 반군 학살자, 도살자 같은 별명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학살에, 도살자요?”
예상치 못한 말에 되묻자, 그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 용병 전부보다는 아시안을 지칭했는데… 아마도 당신을 말하는 거겠죠, 리.”
“아…….”
답도 못하는 사이.
금세 뒷말이 이어져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전도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