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모사드 요원인 요나단이 말했듯, 금세 그린존(안전지대)에 도달했다.
차단선에서 차로 달린 지 몇 분만이었다.
이후로는 별다른 위협도 없었다.
방기(Bangui)시 초입부터 UN군 초소가 설치되어 있고, 도로 중간중간마다 이 새벽에도 새하얀 UN 무장 트럭이 순찰 중인 덕분이었다.
흙먼지가 쌓이긴 했으나, 아스팔트 도로도 바깥보다는 유지 보수가 잘된 편이라 승차감도 훨씬 나았고.
그 끝에 차량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방기(Bangui)시 음포코 국제공항 근처.
-전원 하차하겠습니다.
요나단의 말이 임무 종료라는 말을 대신하듯 전파되었고, 곧 익숙한 얼굴도 나타났다.
임무를 의뢰했다던 사이렛 매트칼의 지휘관, 아샤프 바리난 중령.
전투복을 입은 그가 풍성한 회색 수염과 푸근한 인상을 한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리.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작전을 끝내 주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하하, 예.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꽤 반가운 캐릭터였다.
게임 속 NPC로 도움을 줬던 캐릭터이면서, 알 자마쉬에서 새 미션도 줬던 인물.
악수까지 나누자, 아샤프가 깜빡했다는 듯 제이크도 바라봤다.
“아, 러셀 팀장도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분들… 아, 처음 보는 분도 있군요? 새 팀원인가요?”
아샤프가 무슨 가게의 단골 손님처럼 물었고, 해리도 손님 맞이하듯 웃는 낯으로 답했다.
“네, 해리 톰슨입니다.”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톰슨.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말을 잇던 그가 불쑥 날 쳐다봤다.
“정말 고맙습니다, 리. 당신이 6명이나 되는 유대인 가족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아닙니다, 뭐…….”
“휴가 나오게 되면 연락 바랍니다. 당신에게 보답할 기회를 주십시오.”
“안 그러셔도……?”
“자, 번호가 어떻게 됩니까?”
어느새 아샤프가 내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일전에 함께 작전했던 그리고 끝나면서 내 번호를 가져갔던 제24특수전술대대의 애덤 개리슨이 생각났다.
번호를 찍어 주면서도 헛웃음이 절로 날 무렵, 아샤프가 말을 이었다.
“나도 마침 미국에 꽤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으니, 휴가 나와서 편하게 연락하세요.”
“중령님도 휴가 나오시나 봐요?”
“진급하기 전에 수료할 교육이 있어서 한두 달 이상 체류할 겁니다.”
“…진급이요?”
생각지도 못한 거였다.
그의 진급은 게임 속에서 전혀 언급된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실 속 상황이 라레플의 스토리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어쨌든 예상하지 못한 거라 나도 모르게 되묻게 됐다.
이내 아샤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이번 작전 덕분에 아마 진급 후보자가 될 겁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진급하게 되면, 당신에게 식사를 대접해야 하는 거죠.”
“오…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그럼 미국에서 다시 만나길 바라면서, 우리는 이만 철수하겠습니다.”
그렇게 아샤프와 인사를 마치고 난 뒤, 몇몇 사이렛 매트칼 대원들이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예전에 알 자마쉬에서 함께 작전한 이들.
물론 얼굴이나 이름이 다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들 환영하고 칭찬하는 상황이라 웃어넘길 때였다.
어느새 요나단까지 와서 내게 악수를 청해 왔다.
마치 국정원 요원들이 그랬듯 딱딱한, 정보 요원 특유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그도 내게 말을 붙여 왔다.
물론 말투가 여전히 각지긴 했지만, 내용은 사뭇 달랐다.
“당신에 대한 소문들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한 당신이 언제까지나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군요.”
마지막 말은 아마 적으로 만나기 싫다는 뜻일 터.
나 같아도 그럴 만했다.
사격 자세에 흔들림만 없다 싶으면 웬만한 적도 원 샷 원 킬로 보낼 수 있으니까.
그렇게 힘주어 악수를 마친 요나단마저 떠났는데, 돌연 뒤쪽에서 호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 이러다가 위험한 작전마다 계속해서 부르는 거 아냐? 너 괜찮겠어?”
“나야 괜찮은데… 뭐 좋은 일 있어?”
“내가?”
“음, 아닌가? 웃는 것 같은데?”
왠지 호세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기 같은 게 스며 있는 듯해서 묻는 거였다.
“아… 그랬나? 아니, 난 그냥… 이번에는 수당도 2배로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그걸 받아서 휴가 때 가족 여행으로 디즈니월드나 며칠 다녀올까 하고…….”
“아… 그래, 이거 수당도 있었지?”
작전하느라 잊고 있었는데, 호세의 말에 휙 하고 떠올랐다.
무려 400만 달러.
대충 단위를 들어 보니 내가 동료들보다 10배 즈음 더 받는 모양이라 함부로 말하진 못했는데, 다들 만족한 듯 보였다.
특히 가정이 있는 호세는 진작부터 표정이 밝았고, 마커스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덕분이야, 리.”
그도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줬다.
딸 셋 아빠라고 하니, 잘은 몰라도 돈 들어갈 곳이 많을 것 같았다.
가정사도 쉽지 않은 듯했고.
얼마나 심각한지는 몰라도, 그것도 이번에 받은 수당으로 조금이나마 해결이 됐으면 싶었다.
동료가 개인적인 문제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이윽고 제이크가 상황을 정리했다.
“작전이 끝났으니, 잡담은 호텔로 가는 길에 마저 하고… 다들 이동할 준비부터 해.”
* * *
이른 오후,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대외협력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부터 그리고 이스라엘 모사드로부터 작전 보고서가 올라왔다.
양이나 질, 내용 구성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지향하는 바는 같았다.
작전이 성공했으며, 강태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이에 보고서를 보던 국장 로버트도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곧 나란히 쌓인 종이 뭉치에 고개를 젓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잘됐는데, 곧 번거로운 일감을 추가로 맡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제이크에게 예고한 작전과는 별개였다.
일종의 추가 근무.
당연하게도 로버트가 의도했거나 바랐던 게 아니었다.
이건 이스라엘의 의뢰와 마찬가지로 군세 차관을 통해 위에서 내려온 일이었다.
“…….”
씁쓸하긴 했으나, 명령을 거부하거나 항명할 생각은 안 했다.
조직에 속한 공무원이라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차관보급 중에서도 손에 꼽는 자율성과 힘, 자본을 가진 조직의 수장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런데도 군말 없이 지시를 수긍한 건 단 하나의 이유였다.
미국의 국익.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참는 거였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로버트는 새로 내려온, 업무 의뢰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부자의 유출로 인해 유럽 정보기관 쪽에 강태의 이름이 퍼져 있었는데, 이번에 찰리 팀이 아프리카에서 활약하게 되면서 아예 의뢰까지 들어온 거였다.
그것도 바로 프랑스로부터.
‘이자들이면… 모를 수가 없겠지.’
당연한 일이었다.
아프리카 중부에 식민지 제국을 건설했던 나라가 프랑스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찰리 팀이 작전을 수행했던,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콩고민주공화국의 정보도 한발 빠르게 접했을 터.
그러니 이스라엘이 물러간 지 하루도 안 되어 일이 이렇게 됐을 것이었다.
물론 그게 아니어도, 결국에는 알게 됐을 것이었다.
소문이 퍼진 탓이었다.
반군을 쓸어버렸다는 용병들의 이야기가 마을에서 마을로 그리고 도시로 금세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콩고 주변국에서는 진즉부터 의뢰를 요청해 왔었다.
버지니아주의 G&G Corp를 상대로.
그리고 모든 의뢰는 회사 차원에서 쳐 냈었다.
대외협력국의 정보원이자, 서남아시아 지부장이었던 론 마이어스가 간부로서 중간에 손을 써 준 덕분이었다.
이스라엘도 미국과 협상을 했기에 중간에 의뢰 하나를 끼워 넣을 수 있었을 뿐.
아니었다면 손가락만 빨아야 했을 것이었다.
이에 구체적인 요청 내역을 살피던 로버트가 다시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스라엘에서 요구했던 작전과 마찬가지로 일이 쉽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도 거절할 순 없었다.
국익이 걸려 있는 문제일 테니까.
그리고 아프리카의 지배자였던 프랑스라면, 향후 콩고에서 벌어질 대규모 작전에서도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거였다.
그가 바로 펜을 뽑아서 휙휙 글자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받아 낼 수 있는 거라도 최대한 얻어 내야겠어.’
프랑스에게서 받아 낼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써 내려가던 그가 이내 숫자까지 적었다.
바로 의뢰금.
이스라엘에게 고액을 받아 낸 것처럼 프랑스에게도 요구하려는 것이었다.
찰리 팀에게 보상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다행히도, 이스라엘이 나쁘지 않은 선례를 만들어 줬다.
바로 추가 수당 지급.
강태가 400만 달러, 나머지는 각각 40만 달러였다.
교전으로 인하여 2배로 상승한 거지만,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총 600만 달러를 지급했다.
실제 용병 의뢰금과는 차이가 컸으나, 요구할 만했다.
애초에 용병을 고용하는 평범한 의뢰와는 거리가 있고, 국가가 관여하는 일인 데다가, 또한 그들이 강태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도 강태의 가치에 비하면 많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을 터.
특히나 강태는 돈을 한 푼이라도 더 챙겨 줘야 했다.
단돈 1센트조차 술, 여자, 마약 따위에 낭비하지 않은 사람이 강태여서 그랬다.
일시금 100만 달러와 월 활동비 10만 달러를 모두 주택 구입 및 개조, B6(7.62㎜ 탄 방어) 등급 방탄 차량, 각종 소총과 권총, 탄약, 장비, 거기다 비축 가능한 생활용품을 사들이느라 거의 다 사용한 게 그였다.
모든 게 유사시를 대비한 소비 활동이었다.
그 생각에 로버트가 픽 웃고 말았다.
자신조차 그렇게 안 했고, 할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총기 여러 정을 구비했지만, 그게 다였다.
‘리는 그야말로 진짜 인간 병기지…….’
작전뿐만 아니라, 평시까지 대비하는 모습에 감탄하기를 잠시.
로버트가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띠이-
그리고 비서가 수신하자마자, 바로 용건을 내뱉었다.
“프랑스 쪽 연락관 호출해.”
* * *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다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복귀한 다음이었다.
원래 머물던 호텔에서 쉴 무렵.
식사하면서 들어올 수당 얘기를 나누던 차에 예상치 못한 얘기를 들었다.
바로 레이첼에 대한 개인사.
정확히는 그녀의 모친이 요양 병원에 있고, 부친은 어릴 때 눈을 감았고, 대학생인 남동생만 하나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별하지 않은, 주변에서 볼 만한 고달픈 이야기.
“아니… 아… 몰랐네…….”
비슷한 상황을 겪긴 했지만, 역시나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는 레이첼과 많이 다른 탓이었다.
생각보다 사람 냄새가 났다.
아이비리그에 국토안보부, CIA를 거친 엘리트 출신의 계산적인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와 점심 맥주를 홀짝이는 그녀는 평범한 미국 드라마 속의 여성 같았다.
“알면 안 되죠, 얘기한 적이 없는데. 푸흐흐…….”
레이첼이 실없게 웃기를 잠시, 주의를 환기하듯 말머리를 돌렸다.
“해리 톰슨은 어때요? 근래에 당신과 붙어 다녔잖아요.”
“아, 해리… 싹싹하고 똘똘해요. 가끔 말이 많기도 한데, 상황에 따라서 입도 다물 줄 알고… 하여튼 괜찮은 놈이에요.”
“다행이네요, 당신과 호흡이 잘 맞아서.”
“아, 해리도 CIA잖아요, 아는 사이 아니었어요? 얘기를 들었다거나…….”
내 말에 레이첼이 다시금 웃음을 머금었다.
“CIA 직원은 최소 2만 명은 넘고, 근무지도 전 세계에 수백 곳이 넘어요. 평생 근속했어도 몰랐을 거예요.”
“아… 그래요?”
라레플을 생각해 보면 인연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현지 맥주를 들이켠 레이첼이 턱을 괴더니, 날 천천히 쳐다보다가 입을 뗐다.
“…방에 올라가서 좀 더 마실래요? 레스토랑은 좀 더운데.”
“방에서……?”
꿀꺽, 목울대가 흔들릴 때였다.
우우웅─
돌연 핸드폰이 진동했다.
마커스에게 걸려온 거였는데, 나뿐만 아니라 레이첼 것도 떨고 있었다.
그녀가 발신자에 뜬 ‘제이크’를 보여 주며 웃었다.
“아무래도 술은 다음에 마셔야겠네요.”
나도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애초에 그녀와의 술자리는 계획하지도,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젊은 몸뚱이가 멋대로 반응할 뿐.
이에 반병도 채 못 마신 맥주를 내려놓고 전화를 받자, 예상한 내용이 들려왔다.
집합 그리고 새 임무 하달.
“아까 그 방은 아니지만… 같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