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감히 도망칠 생각을 해?’
반군의 지역 대장이자, 젊은 간부인 사내가 부하를 채근했다.
“더 빨리! 빨리 가라고!”
감시 중이던 고위직 일가의 탈출을 보고 받은 탓이었다.
그것도 유월절(유대교의 축제 중 하나)이 끝나는 자정 즈음에 맞춰서 갑자기 나타난 차량 여러 대를 타고 도망갔다고 했다.
방심을 노린, 아주 계획적인 도주였다.
‘빌어먹을… 인질로 놔두는 게 아니라, 그냥 죽였어야 했어. 아니면 아예 감금했든가…….’
그로서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정부와 UN 파병군을 상대로 협상하겠다고, 상부로부터 손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가택 연금과 감시 수준.
물론 도주하는 걸 신고하거나 잡아 오면 현상금을 준다는 소문을 퍼뜨려 놓긴 했지만, 그것도 지금 같은 순간에는 소용없었다.
작정하고 도망가면 결국에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예방이 불가능하다는 뜻.
그러나 그게 다였다. 상대가 살아서 여길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다른 곳이면 몰라도, 지금 이 땅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기 때문이었다.
국토의 70%를 반군이 점령한 나라이면서, 내각 고위 공무원까지 반군 출신으로 채워진 나라.
즉, 모든 게 반군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지금 걸려 오는 전화도 그 증거였다.
-대장! 라이트를 끄고 달리는 이상한 차를 봤습니다.
일종의 제보.
그러나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사내의 잠을 깨우고, 가족의 도주를 알린 것도 이런 종류의 전화였다.
이 땅이 반군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가볍게 전화를 끊은 사내가 글로브 박스를 뒤적거려서 작은 원통을 하나 꺼냈다.
한 뼘이 조금 넘는 크기에 원색으로 된 투박한 디자인.
중국제 야간 투시경이었다.
암시장에서 적잖은 값을 주고 구매한 물건으로 추격 인원 중에는 오직 사내만 갖고 있는 장비 중 하나였다.
스윽.
사내가 야간 투시경의 접안부를 눈에 갖다 대고서 차창 너머를 바라봤다.
차량 전조등에서 나오는 불빛이 방해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먼 곳이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시야에 들어왔다.
물론 렌즈 주변의 시야가 왜곡되어 거리감이나 실제 형상 자체가 망가질 정도지만, 새까만 색이 아닌 나무와 길의 형태가 얼추 드러났다.
그리고 움직이는 뭔가가 시야에 잡혔다.
‘설마……?!’
나무 틈을 스쳐 가는 바람에 확실하게 보이진 않았는데, 분명 차 같은 게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대.
잠에서 깨어나서 그리고 고생하느라 찌푸려졌던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흐흐흐, 마침 행운이 찾아왔구나.”
결국에 목표물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도주 경로를 짐작하고, 공항으로 갈 것 같다고 생각한 게 다였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가려고 했었다.
정확하게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늦기 전에 따라잡으려고 했던 거였고.
한데, 알고 보니 눈앞에 있었다.
거리가 꽤 먼 것 같긴 했지마는, 그렇다고 따라잡지 못할 것 같진 않았다.
사내가 운전수를 재촉했다.
“놈들이 앞에 있어, 얼른 밟아! 더 빨리!”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사내가 뒤 차창을 두드려서 사격 준비를 명령했고, 무전기를 켜서 다른 차에도 목표물 발견 소식을 알렸다.
운전수가 사내의 지시에 따라 속도를 더 올릴 무렵.
철커덕.
사내는 AK-47을 장전하면서 새까만 전방을 바라봤다.
적이 누군지는 몰라도, 두렵진 않았다.
상대보다 차량도 한 대 더 많은 데다가, 다른 곳도 아닌 반군의 땅에서 전투를 치르기 때문이었다.
아마 기관총을 좀 갈겨 대면 지원군이 금세 몰려올 것이었다.
물론 그 전에 차를 벌집으로 만들고, 도망치려던 가족들을 끌어내서 목을 먼저 칠 터.
그 생각을 하면서 다시 야간 투시경을 들어 전방을 바라봤을 때였다.
“어……?”
사내의 입이 열렸다.
구부러진 길을 따라 나무 따위가 야간 투시경의 렌즈에 담기고 있었는데, 그 틈에서 의아한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차창 밖의 사람.
정확히는 달리는 차의 조수석에서 상체가 빠져나오는 모습이었다.
안 그래도 시야를 가리는 나무와 수풀 따위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납득하기가 더 어려운 광경이었다.
이에 눈을 잔뜩 찌푸릴 무렵, 사내의 눈이 더 잘게 구겨졌다.
“……!?”
렌즈 속에 잡힌 사람이 차창으로 상체만 빼는 줄로만 알았더니, 아예 창틀에 걸터앉았기 때문이다.
사내의 눈 밑에 주름이 잡혔다.
‘도대체 뭘 하는…….’
설마 저기 앉아서 총이라도 쏘려는 건가 싶은 순간.
흐릿한, 작은 섬광이 일었다.
그리고 덜컹거리는 차 속에도 들려올 만한, 제법 묵직하고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터엉!
총성이었다.
그러나 반격하거나 지시할 시간은 없었다.
첫 발을 시작으로 소나기처럼 총탄이 쏟아져 왔기 때문이었다.
팅! 쨍그랑! 태앵―! 카가각! 퍽!
앞 유리는 물론이고 보닛과 차 대시 보드, 천장까지 탄이 날아들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였다.
사내가 무릎 사이로 머리를 처박고 당황할 때였다.
휘익, 차까지 기울었다.
“차, 차 세워!”
아직 무릎 사이로 머리를 넣고 있던 사내가 황급히 소리쳤다.
“당장 차 세우라고……!”
그가 말을 잇던 찰나.
덜컹하더니 차가 길을 벗어났고, 그대로 나무를 들이받았다.
쿠웅-!
그리고 총성이 사라지고 희미한 엔진음만 들려올 무렵.
인기척과 함께 목소리가 달려들었다.
“대장! 괜찮습니까?!”
바깥에서 들려오는 부하들의 목소리였다.
사내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상체를 세웠는데, 운전수를 쳐다보다가 주춤했다.
그리고 입에서 욕설이 절로 흘러나왔다.
“제기랄…….”
돌아본 운전수가 진즉에 사망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총탄에 머리 살점이 날아가고, 목도 절반 정도가 끊어져서 흥건할 정도로 피를 흘린 모습.
지금도 핸들을 타고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
인상을 쓴 사내가 시선을 떼고 차 문부터 열었다. 그리고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차에서 내리자, 부하들이 서둘러 달려왔다.
“대장?! 몸은…….”
“입 닥치고 잘 들어.”
거친 말로 부하들을 막아 세운 사내가 새 지시를 내렸다.
“전화해서… 다 불러. 차든, 오토바이든… 다 불러서, 저 새끼들 싹 다 죽여 버리라고 해, 당장.”
이가 꽉 깨물려서, 마치 치아가 갈려 나가는 듯한 말.
그 뒤로 사내가 총을 걸치며 말했다.
“…출발 준비해, 당장.”
재추격해서 따라잡을 생각이었다.
방금 총탄 세례를 맞긴 했으나, 무섭지는 않았다.
자신은 쫓는 입장이고, 상대는 도망가는 처지며, 여기는 반군의 지역이었으니까.
더구나 아까는 방심해서 그리고 예상하지 못해서 당했을 뿐이었다.
상대의 수작을 알아냈으니, 두 번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중기관총도 있었다.
비록 중국산이긴 하지만, 그래도 손가락만 한 탄환을 쏘는 건 같았다.
차를 종이처럼 찢을 수도 있을 터.
사내의 눈이 이글거리듯 새까만 전방을 바라봤다.
‘…서커스 하던 놈은 기필코 내 손으로 목을 자르고, 그 머리를 떼어 내 화단의 장식으로 쓰겠어.’
* * *
4안 야간 투시경을 내려쓰고 있던 해리가 당황해서 백미러와 강태를 번갈아 쳐다봤다.
강태가 뒤쪽을 향해 이상한 자세로 총을 쏴 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거의 속사하듯.
순식간에 10여 발의 사격을 마친 강태가 불편한 자세로 조수석에 털썩 앉았다.
“여기는 리, 적 차량 운전수 제압. 차량 낙오시켰습니다.”
그리고 혼잣말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좀 빡셌네.”
강태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목표물을 적중시키기 쉽지 않았고, 많은 탄을 낭비한 상황.
물론 격발한 모든 탄이 차량에 박히긴 했지만, 강태가 의도한 표적은 차가 아닌 운전수였다.
그에게 박힌 건 고작 두세 발의 탄이 전부였고.
이에 아쉬움을 흘렸는데, 이를 지켜본 해리는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빡셌다고?’
그로서는 절대 공감할 수 없는 말이었다.
조금 어렵다니?
따지자면 도저히 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불빛 한 점 없는 야간 상황에 험한 비포장도로와 구불구불한 길 그리고 운전 중인 차량, 나무 따위로 가려진 길과 이상한 자세까지.
차에 몇 발 때려맞힐 순 있어도, 운전수를 조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데 강태는 그걸 태연하게 보고하고, 짧게 투정하고 말았다.
동시에 해리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저… 선배님, 몇 발이나 맞힌 겁니까?”
어느새 약실을 확인하고, 장탄된 탄을 확인하던 강태가 가볍게 대꾸했다.
“운전수한테 두세 발.”
“와… 역시…….”
자신이 쐈다면 단순 위협이나 견제 사격이 됐을 거였다.
그저 차량을 표적 삼아서.
운전수를 노리고 쏠 순 없었다.
숙련된 저격수도 환경이 적당히 있어야 가능하지, 이런 데서는 감히 맞힐 수가 없었다.
해리가 재차 속으로 감탄할 때였다.
-차량 한 대 낙오… 조수석에서 한 명 내렸고, 재추격할 것으로 보입니다.
레이첼의 음성이 나왔다.
동시에 탄창 결합을 마친 강태가 고개를 기울였다.
“…탄창 반 개로는 모자라다 이거지?”
제압이 됐을 거라고 생각했던 강태의 입꼬리가 비틀릴 무렵.
오래지 않아 레이첼의 음성이 추가됐다.
-여기는 레이첼, 대열 진행 방향 기준으로 8시 방면에 오토바이… 7, 아니… 8대 접근 중.
“8시 방면?”
강태의 시선이 운전석 쪽 창문으로 향했다.
그의 반대편이었다.
마찬가지로 창밖을 보던 마커스가 움찔했다.
자신이 강태처럼 성과를 내긴 힘드니, 자리를 바꿔 줘야 하는지 잠깐 고민한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강태도 자리 교환을 고민하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결론은 금방 나왔다.
“잠깐 있어 봐, 아까처럼 앉아 볼게.”
“선배님?”
해리가 당황하며 강태를 불렀다.
아까는 일을 잘 끝내긴 했지만, 자칫 잘못하면 뒤로 떨어질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었다.
그냥 비포장도로가 아닌, 산 중의 흙길이었기 때문이다.
차량 바퀴나 사람이 좀 밟고 다녀서 단단해지긴 했으나, 빈 구덩이도 있고, 뭉친 흙더미나 돌 따위가 박혀 있는 아주 험한 땅.
“선배님, 조심…….”
“알았으니까, 아까처럼만 해. 운전 잘 하더만?”
해리의 걱정을 강태가 가볍게 받으면서 다시금 창틀에 걸터앉았다.
아까에 이어서 두 번째였다.
제법 선선한 새벽바람이 얼굴과 목덜미를 빠르게 스쳐 가는 사이.
강태는 차 지붕에 거치하듯 HK416과 팔꿈치를 올렸다.
밑에서 두 발은 다시 열어 둔 글로브 박스와 좌석에 끼워 넣고 있는 힘껏 고정한 뒤.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는 리, 3호차에서 사격하겠습니다. 레이첼, 적 방향과 거리 브리핑 바랍니다.”
-오토바이 8대, 거리는 약 500… 450미터. 기존 8시 방향에서 9시 방향으로 이동 중…….
“수신 양호, 앞으로 50미터 간격으로 브리핑 바람.”
강태가 짧게 말하면서 총기를 견착했다.
오토바이의 라이트가 잠깐 반짝이듯 나무 틈새로 비쳤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오토바이의 모습도 시야에 들어왔다.
50㏄에서 125㏄ 사이의 오토바이, 혹은 스쿠터.
방금 맞혔던 차량보다 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어서 다행이었는데, 크기가 작아 신경 쓸 필요도 있었다.
그런 계산 끝에 조준경을 들여다볼 무렵.
-적과의 거리 250미터.
기다리던 레이첼의 음성이 건너왔다.
강태 역시 적이 드러날 곳을 바라보기를 잠시, 금세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탄창 하나 수준의 사격.
텅텅텅텅텅텅텅! 텅텅텅텅텅!
티디디딩― 팅티잉!
연사 같은 묵직한 총성이 울리고, 탄피가 차 지붕을 두들기며 떨어져 나갈 무렵.
철컥.
어느새 빈 탄창을 교체하던 강태가 입을 열었다.
“올 클리어.”
그 소리에 운전석 창가를 흘깃거린 해리가 야간 투시경을 고쳐 잡으면서 중얼대듯 말을 흘렸다.
“여기서 달리는 오토바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