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자, 주목.”
각자 장비 점검을 하던 팀원들을 불러 모은 제이크가 여러 주의 사항을 상기시켰다.
비공식 작전, 노출 최소화, 신속 정확 등등.
부팀장인 마커스부터 막내인 해리까지 간결하게 대답을 마칠 무렵, 이어서 제이크가 차량별로 인원까지 배정했다.
“컨보이 역할을 할 모사드의 1호차를 제외하고… 2호차에 나와 레이첼, 호세, 후미인 3호차에는 마커스와 리, 해리가 탑승하고 각 차량 운전은 호세와 해리가 맡도록.”
인원들을 전부 언급했으나, 핵심은 강태였다.
즉각적인 사격부터 초인적인 명중률을 가진 그야말로 만능 전투원.
그가 있을 만한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
가장 중요하거나 위험한 장소.
그리고 강태가 방금 배치된 3호차는 대열의 후미로서, 적의 추격을 받거나 피격받을 가능성이 큰 가장 위험한 자리였다.
맡길 사람도 당연히 강태뿐이었다.
유사시에 단순 대처를 넘어서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게 그밖에 없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상황을 판단한 강태도 입을 열었다.
“후미에 붙는 놈들 싹 쳐야겠네요.”
강태가 든 HK416보다는 50구경 중기관총이나 로켓포 같은 대전차 화기로 무장한 사수에게나 어울리는 말.
그러나 제이크는 더없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전 상황만 유의해서 처리하게.”
“알겠습니다.”
강태의 단단한 대답 뒤로 곧 구체적인 내용이 재언급됐다.
구출 지점부터 공항까지의 거리가 116㎞이며, 암전 구간은 25㎞에 달하고, 적습 예상 지점은 최소 3곳 이상이라는 사실까지.
썩 안 좋아 보이지만, 현 상황과 비교해 보면 그렇게까지 나쁜 건 아니었다.
모사드가 가장 안전한 경로를 골라내어 계획한 것이기도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서 예비 집결지와 접선 암구호를 언급하는데도 그 누구도 긴장하거나 떨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의 눈에서는 결의마저 비쳤다.
막내로서 대외협력국의 제대로 된 작전에 처음 동원된 해리도 마찬가지.
강태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래, 이거지.’
얼굴에 만족감이 스몄다.
여러 작전을 할 때마다 그리고 이번에도 새삼 느끼는 거였다.
팀 하나는 정말 잘 만났다고.
‘괜히 게임 주조연들이 아니지.’
어딜 가도 한가락 할 이들을 둘러볼 무렵.
해리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마침 강태를 보던 그가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아쉬워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선배님 여유가… 충분하다는 거겠지. 나도 운전보다는 함께 교전하면서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호흡 맞추는 걸로 만족해야겠지.’
강태와 제대로 한 건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임무를 여러 개 맡긴 했지만, 그걸로는 조금 부족했다.
물론 최근에 강태의 놀라운 저격 솜씨를 보긴 했지만, 그건 사전 정찰과 준비, 고루한 11시간의 기다림 끝에 나온 거였다.
지금처럼 위험하고, 또한 즉각 대응하게 될지도 모르는 작전하고 달랐다.
당연하게도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욱 심장이 뛰는, 겪어 보고 싶은 로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전투다운 전투를 레전드와 함께하게 될 테니까.
물론 운전도 나쁘진 않았다.
동료로서 함께하고, 또한 보조하는 거라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심지어 25㎞는 전조등을 끄고, 야간 투시경의 녹색 화면을 통해 운전해야만 했다.
그 순간만큼은 시야각과 거리감, 입체감 모두 줄어들 것이니, 강태를 보조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야 했다.
또한 그때 피격당할 가능성도 가장 컸다.
‘그래… 우선 주어진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다 보면… 언젠가 선배님의 옆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지.’
그때를 상상할 무렵.
-출발 5분 전, 무전 확인하겠습니다. 내용 들리는지 전 인원 차례로 대답 바랍니다.
모사드인 요나단의 목소리가 각자의 헤드셋으로 전파되자, 금세 대답이 이어졌다.
제이크부터 마커스, 강태, 호세, 레이첼 그리고 해리까지.
“잘 들립니다.”
마지막 대답이 나오자, 제이크가 모두를 휘 돌아봤다.
“전원 차량 탑승하고, 무사히 임무 완수하도록.”
* * *
공항에서 탑승한 현지 승합차는 산 중턱의 농장 건물 안에 주차했고, 거기서 제대로 된 작전 차량으로 갈아탔다.
B6 등급(7.62㎜탄 방어)의 SUV 2대.
조수석에 몸을 싣자마자, 운전대를 쥔 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차량은 유리만 총알에 뚫리는 게 아니라, 철판마저 알루미늄 호일처럼 찢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차도 AK 시리즈의 7.62㎜ 탄을 완전하게 막지는 못했다. 단시간 동안 어느 정도 막아 줄 뿐, 탄환 세례가 쏟아지면 결국에는 아작날 거였다.
대통령이 타는 차 정도는 돼야 7.62㎜가 아니라, 대구경 탄환과 수류탄까지 막아 줄 터.
미국에 사 둔 차도 개조를 좀 해 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을 할 무렵.
“요구조자 자택까지 약 10킬로미터 남았습니다.”
열심히 운전하던 해리의 목소리가 조용하던 차 안을 채우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던 대로 잘 따라붙고, 특이 사항 생기면 바로 말해.”
“알겠습니다, 선배님.”
제법 기운찬 대답을 들으면서, 다시금 새까만 차창 너머를 내다봤다.
1M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새까맸다.
당연한 일이었다.
제대로 된 포장도로조차 드문 나라고, 가로등이라는 게 있을 수 없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의지할 거라고는 차량 라이트가 전부.
그러나 라이트도 만능은 아니었다. 그저 불빛이 닿는 전방 일부만 비춰 주는 정도.
그 외에 빛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하늘에 달빛이 좀 있긴 한데, 그마저도 구름이나 울창한 삼림에 가려져서 지면까지 제대로 도달하는 게 거의 없었다.
그 외에는 밤하늘에 박힌 별만 은은하게 빛날 뿐.
이에 헬멧 위로 올려 두었던 4안 야투경을 내리자, 녹색으로 변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마저도 전부 선명하진 않았다.
달빛마저 아예 안 닿는 부분은 이미지가 덜 구현됐기 때문이었다.
‘도망치기에 나쁘진 않겠다만… 나도 맞히기는 좀 어렵겠는데……?’
적이 라이트를 켜면 야투경을 쓰기 어렵고, 끄면 끈 대로 안 보일 터.
나름대로 교전 상황을 가늠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사이, 차량 속도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정차한 곳은 도시 바깥에 위치한 한 주택 앞.
그러나 똑같이 생긴 마을의 여러 주택과는 전혀 다른, 크기부터 대단한 저택이었다.
‘요구조자가 고위직인 모양이지?’
수배까지 내렸다는 설명을 떠올리며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이 다가왔다.
젊은 성인 여성과 어린아이 한 명.
“Vous parlez français?(프랑스어 할 줄 압니까?)”
“…Oui, oui. (…네, 네.)”
여성이 주춤했다가 답하길래, 차에 태우면서 주의 사항을 알려 줬다.
안전벨트 착용, 정숙 그리고 허가 외 행동 금지까지.
“Vous pouvez sortir de cette voiture quand on le permet ou quand on est mort.(당신은 우리가 허락하거나 다 죽었을 때 이 차에서 내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 말에 여성이 흠칫하긴 했지만, 확실하게 못 박아 두려면 어쩔 수 없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같은 말보다는 확실한 규칙이 나았다.
허락하거나 죽거나.
물론 후자는 작전이 실패했다는 의미겠지만, 굳이 그것까지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
너무 바쁜 탓이었다.
앞으로 116㎞를 달리고, 그중에 25㎞는 전조등을 끄고 달려야 하는 상황.
그것도 전조등을 끄고 켜는 때가 따로 있었다.
중간중간마다 매복이 있을 만한, 적습이 유력한 지역에서 전조등을 꺼야 하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우회한 거라서 적게 끄는 것이다.
가깝게 이동했다면 내내 라이트를 끄고 달려야 했을지도 몰랐다.
이내 요나단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각별히 주의 바랍니다.
처음에 출발 시각을 알렸을 때처럼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였다.
국정원에서도 종종 들었던 말투.
‘저 바닥도 다 비슷한가…….’
쓸데없는 상념이 잠깐 스쳐 갈 무렵, 어느새 위험 지역에 도달했다.
총을 고쳐 잡자, 마침 지시가 떨어졌다.
-전 차량 소등, 전조등은 2.5㎞ 뒤에 재점등하겠습니다.
역시나 아까처럼 담담한 요나단의 목소리가 들려온 뒤.
탁.
라이트를 끄는 투박한 소리가 귀를 때리듯 들려왔다.
그리고 새까만 어둠이 닥쳐 왔다.
“…….”
호흡이라도 맞춘 듯, 잠깐 올리고 있던 야투경을 해리와 함께 동시에 내려썼다.
그리고 달빛으로 드러난 윤곽을 녹색 이미지로 볼 무렵.
-여기는 레이첼, 개별 IR 램프도 작동 바랍니다.
차에서 내리게 될지도 모르는, 유사시 상황을 대비한 지시가 들려왔다.
헬멧 뒤쪽에 달린 램프 스위치를 켤 때였다.
-여기는 레이첼…….
또다시 레이첼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램프 작동을 지시했던 것보다 한참은 무거워진 목소리.
왜 그런지 곧 알게 됐다.
-…3호차 후방 700미터 위치에서 미식별 차량 4대 접근 중. 픽업트럭으로 확인되며, 2대는 기관총을 거치한 테크니컬로 확인됩니다.
그 말에 곧장 조수석 헤드레스트를 잡으면서 뒤쪽 차창을 넘겨다봤다.
아주 작지만, 인위적인 반짝임이 보였다.
아마 울창한 나무와 수풀 틈으로 스쳐 가듯 보이는 전조등일 터.
어느새 운전석에서 해리의 목소리도 건너왔다.
“뒤에 뭐 보이십니까?”
“불빛 조금.”
“생각보다 빨리 붙었네요. 놈들이 저택을 감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겠지, 반군 땅이 대부분이라던데.”
대답하면서도 계속해서 뒤를 주시했다.
저걸 쏠 수 있을지, 쏴야 하면 그게 언제인지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TAC-50도 두고 왔고, 거기다 열대우림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상황이라서 당장 쏠 마음이 안 들었다.
더 가까워야 했다.
이에 기다리길 잠시, 번쩍하는 전조등 불빛 같은 게 한 번 진하게 보였다가 다시 가려졌다.
거리가 얼마나 되나, 물어보려던 찰나.
내 생각을 듣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레이첼의 말이 들려왔다.
-…적 차량 속도 증가로 거리가 좁혀지고 있어요. 3호차와 거리 약 580미터.
그와 동시에 뒷좌석에서 묵직한 소음이 들려왔다.
철컥.
마커스가 총 하부에 부착한 M203A2 유탄 발사기에 유탄을 장전한 것이었다.
당연히 비추천되는 무기였다.
발사 후에 찾아올 폭음은 사방의 이목을 끌 테니까.
그러나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필요할 수도 있겠어.”
어쩔 수 없었다.
밤중의 산간 비포장도로가 배경이고, 테크니컬로 무장한 상대가 추격해 오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차량이 아니고서야 방탄이 불가능했다.
까딱 잘못하면 몰살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전에 유탄을 쏘는 게 나은 선택지인 건 분명했다.
이내 곧 마커스의 입이 열렸다.
“…리, 네가 어렵다면 그때 발사하지.”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답하는 사이, 레이첼의 음성이 또 이어졌다.
-적 차량과 3호차 간격 약 400미터.
나무와 수풀 사이로 비치는 라이트가 더 커지는 걸 보면 확실히 가까워진 티가 났다.
‘일단… 준비부터 해야겠지.’
생각과 함께 차창을 내렸고, 자세를 돌려서 천천히 차창으로 몸을 뺐다.
“어? 선배, 선배님?”
이어서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다 잘못하면 밖으로…….”
“조용하고 운전에 집중해.”
“떨… 아앗, 넵!”
해리의 입을 닫게 만들고, 달리는 차량의 창 너머로 상체를 빼 냈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바라봤다.
자세가 영 안 나왔지만, 양발을 차량 시트와 열어 둔 글로브 박스에 넣어서 체중을 견디며 총까지 겨누었다.
심각한 떨림이 손을 타고 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포장 산길의 덜컹거림과 굴곡진 길로 인한 지진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흔들림이었다.
“씨팔 거, 존나게 흔들리네…….”
욕이 절로 나왔다.
전력 질주로 뛰어다니면서 쏘기도 했지만, 그건 흔들림을 예상이라도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나았다.
조수석 창틀에 거꾸로 앉는 건 말이 달랐다.
짧게 말해 죽을 맛.
-리……? 당신이죠? 뭐 하는 거예요?
동시에 하늘에서 드론으로 보고 있는지, 레이첼의 목소리도 들어왔다.
“해리, 넌 벤츠 몰듯이 부드럽게 운전하고, 레이첼, 당신은 차간 거리나 좀 알려 줘요.”
두 사람에게 동시에 전파하고, HK416을 견착했다.
그와 동시에 차량 속도가 조금 줄었고, 레이첼의 목소리도 헤드셋으로 전달됐다.
-3호차, 적과의 거리 약 250미터!
그 말에 눈을 찌푸렸다.
적과의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중간에 스쳐 간 불빛이 야투경을 통해 세게 데미지를 준 탓이었다.
“니미…….”
재차 욕설이 나왔으나, 명중이 아예 불가능하진 않았다.
‘…일고여덟 발 중에서 한 발 정도.’
용병 일을 한 이래로 최악의 명중률이 예상되는 상황.
그러나 더 지켜볼 순 없었다.
지금보다 더 가까워지면, 적의 기관총이 불을 뿜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거리가 애매한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셈.
“후…….”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길 잠시.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