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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84화 (84/185)

84화

“선배님, 저격이 주특기입니까? 아니면 부특기입니까?”

작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해리가 물어왔다.

초롱초롱해 보이는 눈을 하고서.

이에 가볍게 고개를 젓자,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스나이퍼 교육도 받으셨던 겁니까?”

“아니.”

“근데… 어떻게 그런 실력을…….”

말하다가도 그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듯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아, 물론 선배님의 저격 소식도 듣긴 했었습니다. 카마르니아에서 적을 역 저격해서 모조리 사살했다고… 그럼 M4로 0.6에서 0.7마일(약 1~1.1㎞) 거리의 적을 사살한 게 사실이겠군요.”

심드렁하게 대꾸하려다가 해리의 입에서 나온 단위에 주춤했다.

내가 M4로 저격했던 거리는 600~700M의 적인데, 그게 1.5배씩 늘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또 뭔… 어디서 그런 개소리를 주워듣고 다니냐?”

“예? 아닙니까?”

“암만 그래도 그렇지, M4로 1킬로미터를 어떻게…….”

대답하려다가 주춤하고 말았다.

충분히 맞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간 탓이었다.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 생각하지 않았을 뿐, 막상 하면 잘할 것 같았다.

물론 거리가 1.5배나 늘어난 만큼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못 할 것도 없었다.

세르게이가 죽던 그날 그랬듯,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싸우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론적으로 못 할 건 없었다.

최대한의 사거리를 벗어날 만큼 긴, 말도 안 되는 거리는 아니었으니까.

물론 명사수 특성이 있기에 가능할 뿐, 현역 시절에는 감히 떠올리지도 못할 만큼 불가능한 일인 건 분명했다.

‘㎞’ 단위부터는 충분한 훈련을 거친 저격수에게나 허용되는 거리기 때문이었다.

이에 진지하게 돌격 소총 저격도 연습해 볼까 생각할 무렵.

해리의 목소리가 다시금 튀어나왔다.

“아, 그럼 조금 부풀려진 겁니까?”

“마일이 아니라, 미터야.”

“미터라면… 600미터 말입니까? 오, 그것도 대단하긴 대단하군요.”

“그래서 초탄은 다 날렸어.”

“그 말은 두 번째에는 전부 맞혔다는 말 아닙니까?”

“맞혔어야지. 아니면 내가 죽었을걸.”

가볍게 답했으나, 이게 사실이었다.

조금 늦었으면 세르게이 휘하 저격수들에게 내가 당했을 터.

이에 12㎏에 육박하는 TAC-50을 잠깐 내려다보는 사이, 이번에는 헤드셋에서 호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 너 미국 가서 주사라도 맞고 온 거야?

“주사?”

-그래, 슈퍼 솔져 주사. 스나이퍼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받고 온 거 아니야?

“아, 재미있네.”

-그럼 웃으면서 말해야지. 아니… 하여튼 도대체 뭘 하고 온 거야? 재활을 포트베닝(조지아주에 위치한 미 종합 군사기지)에서 하고 온 건가? 아니면 해병 저격 학교에서 했나?

“저격수 양성 과정 말하는 거야? 그건 한번 받아 보고 싶긴 한데… 교육 기간이 내 휴가보다 길더라고.”

-미치겠군.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일 줄이야. 그걸 갈 생각을 했다고? 전직 네이비씰 저격수보다 빨리 타깃을 맞춘 실력자가 배우긴 뭘 배워? 교관을 하면 했지.

그 말 뒤로 마커스의 음성이 붙었다.

-참, 하마터면 잊고 넘어갈 뻔했군. 100달러는 줘야지? 전직 스나이퍼 씨.

-…젠장.

둘 사이에 또 내기를 한 모양이었다.

호세의 중얼거리는 욕설 뒤로 어느새 해리의 음성이 들려왔다.

“혹시… 주사, 그런 게 진짜 있습니까?”

기대와 긴장이 어린 모습.

“글쎄, 반군 중에서 마약 맞고 달려드는 놈들은 있더라.”

“아… 없다는 말씀이군요. 저도 혹시나 해서… 수행 팀 존재 자체가 워낙 비밀스러워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

“휴가는 어디로 가십니까? 끝나고 저도 같이 가면 안 될지…….”

“나하고?”

“네, 사격장도 가실 것 아닙니까? 안 가더라도 선배님하고 있고 싶습니다.”

“…맘대로 해라.”

대충 대답했는데, 이후로 계속해서 함께하게 됐다.

조용히 있던 제이크가 다 듣고 그대로 해 준 건지, 처음부터 의도한 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해리가 내 손발처럼 움직이면서 보조하기 시작했다.

방해되거나 걸리는 건 없었다.

애초부터 유능한 인재여서 알아서 척척 움직여 준 덕분이었다.

실력도 그렇고 눈치도 좋았다.

저격 이후로 이어진 정찰과 짧은 중장거리 교전에서도 해리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오자마자 한 관측수부터 운전수, 화기 담당까지.

그렇게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팀 전체와 해리의 호흡이 제법 잘 맞아갈 즈음.

드디어 작전 지시가 내려왔다.

전에 언질 받았던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조금 급하게 정해졌다더군.”

“와, 여기서 그 이름을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이요?”

호세가 되물었듯, 이스라엘의 의뢰였다.

심지어 작전 책임자는 예전에 만났던 그리고 라레플에서 종종 일감을 주던 사이렛 매트칼(이스라엘 특수부대)의 지휘관 아샤프 바리난 중령이었다.

책임자를 언급한 제이크가 내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이번에도 리의 참가가 조건으로 붙었다더군, 저번에도 그랬듯이.”

“또 말입니까? 근데 저번에 있던 곳은 알 자마쉬고, 여기는 콩고인데… 도대체 여기서 뭘 해 달랍니까?”

호세가 기가 막힌다는 듯 물었고, 제이크가 바로 입을 열었다.

“유대인을 탈출시켜야 한다더군.”

“아…….”

그 말에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전에 함께 작전했을 때에 관련된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유대인 보호에 대한 의무.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이스라엘은 유대인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했었다.

당사자가 원한다면 이스라엘의 땅으로 데려오기도 했고.

하여튼 상상 이상으로 각별하게 챙기는 게 분명한데, 이번에도 그게 적용된 모양이었다.

이어서 금세 설명이 덧붙었다.

“…우선 공유된 사실은 작전지역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부라는 점과 그곳으로 바로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이야. 그 외에 자세한 내용은 보안 때문에 전달되지 않았고, 아마 당일에 전파될 것 같더군.”

“바로 가야 한다고요? 오, 이런 엿같은… 이번에도 고생깨나 하겠군요.”

“대신에 듣기로 수당이 상당하다고 했으니까, 너무 상심하진 말게.”

“우리도 비상금 넉넉하게 받잖습니까?”

“그것보다 배는 많을 거야. 교전 발생 시에는 임무 성공을 조건으로 거기서 2배를 주기로 약속했고.”

“어… 그래요? 그럼 아쉽진 않겠네요.”

호세도 수긍하듯 말했다.

아들딸이 있는 그로서는 수입이 많아야 할 터.

딸만 셋인 유부남이자, 묵묵한 마커스마저 그 소식에 상당히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긴… 작전 한 번에 수십만 달러면…….’

내 기준으로 잡은 금액을 계산할 무렵.

어느새 내 쪽으로 다가온 제이크가 날 툭 치며 나직하게 말을 전해 왔다.

무슨 뜻인가 했는데, 덧붙은 말에 뒤늦게 이해했다.

“…그게 자네 몫이라더군.”

“……!”

무려 200만 달러.

거기에 제이크가 말한 교전 후 임무 성공이라는 조건까지 붙으면 400만 달러가 될 터.

한화로는 약 50억 원에 달하는 액수였다.

‘오…….’

G&G Corp에서 주는 월급의 100배에 해당하고, 매달 나오는 국무부의 비상금보다 40배는 많은 액수였다.

한데, 그 숫자를 듣고 보니 웃기게도 왠지 힘이 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충분한 동기가 됐다.

이전에 받았던 자금은 집 구매와 공사, 차량 구입, 병기며 장비 따위를 마련하는데 전부 털어 넣은 탓이었다.

사용한 돈만 거의 백수십만 달러.

아직 여윳돈이 있긴 하지만, 그건 많다고 볼 수 없었다.

대전차에 대헬기 병기인 현궁 같은 건 한화로 1~2억에 달하는 무기라서 하나만 사도 남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살 수 있는지, 보관이나 사용은 되는지, 또한 사용할 만한 작전이 있는지를 우선 알아봐야겠지만, 중요한 건 돈이 없으면 싹 다 무의미하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돈이 있어야 뭘 사든, 말든 할 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제이크가 휘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전원 짐 싸서 집합, 10분 뒤에 출발한다.”

* * *

늦은 저녁,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방기(Bangui)시 음포코 국제공항 외곽 지역.

군용기를 통해 따로 가져온 병기를 미리 준비한 차량 안에서 분배하고,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터벅, 지그럭, 터벅, 지그럭.

흙과 자갈 따위를 밟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운전석에 앉아 바깥을 경계 중이던 해리가 야간 투시경 너머로 다가오던 인기척을 확인했다.

현지인 차림의 두 사람.

이에 차 안에서 총구를 들고, 동시에 무전으로 거수자의 등장을 전파할 때였다.

반짝, 반짝.

어둠 속에서 적외선 레이저가 깜빡이며 신호를 보내왔다.

사전에 약속된 것이었다.

지금 찰리 팀이 들어와 있는, 공항 바깥에 주차된 차량 위치도 모두 얘기가 된 상황.

이에 제이크도 랜턴을 깜빡여서 신호를 보내어 가볍게 접선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제이크에게 짧은 인사가 넘어왔다.

“길 안내를 맡은 요나단입니다.”

이에 악수를 나누던 제이크가 고개를 기울였다.

“…사이렛 매트칼이 아니군요. 모사드에서 나온 겁니까?”

답인사 대신에 나온 물음이었다.

상대의 모습과 언행이 군 기관보다는 정보기관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제이크가 예상한 답이 돌아왔다.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말씀하신 사이렛 매트칼은 요구조자 구출 후 공항 인계 및 이송과 엄호만 담당하게 될 겁니다.”

“…그럼 저희 단독 작전이란 말입니까?”

모사드가 길 안내를 하고, 사이렛 매트칼이 뒤처리만 맡기 때문이었다.

즉, 찰리 팀만 투입된다는 뜻.

이윽고 모사드 대원인 요나단이 입을 열었다.

“설명해 드리기에 앞서, 이 작전은 이스라엘이 전혀 간섭하지 않는 완전한 비공식 작전입니다. 요구조자가 사설 용병에 접촉해서 요청한 작전으로, 저희도 모사드가 아닌… 현지 안내자 역할일 뿐입니다.”

마지막 말에 해리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에 다가오는 걸 봤을 때, 행색이나 태도가 영락없는 현지인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악수를 나누고 말을 뱉은 순간, 사람이 바뀐 것이었고.

제이크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답을 듣긴 어려울 테니… 계획을 자세히 들어 봐야 되겠군요.”

“네, 그럼 설명하겠습니다.”

요나단이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지도 여러 장과 사진 따위를 꺼내어 차량 의자에 올려놓고 랜턴을 비추며 설명했다.

요구조자의 상태와 대략적인 신상부터 작전지역, 구출 계획, 이동 경로, 각종 주의 사항까지.

그 안에 위험할 만한 말이 적잖게 있었다.

무장 단체로부터 내려진 수배 사실과 걸려 있는 현상금 액수, 이동 시 차량 조명을 모두 끄고 암전 상태로 통과해야 하는 지역 등등.

‘그래… 돈을 그냥 주진 않겠지.’

강태가 쉽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할 무렵.

설명을 마친 요나단이 입을 열었다.

“작전 개시까지 앞으로 40분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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