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점심 무렵,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대외협력국.
국장실로 간략한 보고 하나가 도착했다.
“해리 톰슨이 킨샤사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고, 해당 사실도 러셀 팀장으로부터 교차 확인받았습니다.”
“그래, 가 보게.”
직원이 국장실을 나가자, 로버트가 콩고민주공화국의 현지 시각을 확인하면서 수화기를 들었다.
수신자는 제이크.
그에게 막내이자 신입이 된 해리 톰슨에 대한 얘기나 작전에 대한 언질을 주려는 것이었다.
이어서 신호가 한 번을 넘기 전, 제이크가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제이크 러셀입니다.
“새 친구하고 면담은 잘했나?”
-방금 끝났습니다. 활달한 포메라니안 같더군요.
“하하하, 강아지라… 다른 평가는 없나? 쓸 만한 친군데 말이야.”
말하는 로버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선발 일정을 앞당겼고, 또한 팀 합류도 일찍 이뤄지긴 했지만, 졸속으로 뽑은 인원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강태는 논외로 빠졌던, 각종 테스트를 엄격하게 진행했었다.
결과는 모두 합격.
애초에 CIA도 괜히 해리를 선발한 게 아니었다.
해리는 나이트 스토커 양성 결과 교관 평가 1위를 받은 인재였고, 이후 작전 중에도 우수한 결과를 내 왔으며, CIA 테스트를 통과할 만큼 깨끗했다.
심지어 군 입대 전에는 존스홉킨스 의대에 다녔던 이력도 있을 정도.
본인의 꿈이 아니라서 그만두고 군에 몸을 담게 됐을 뿐, 영특한 머리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제이크도 이를 잘 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들었습니다, 의대 중퇴하고 나이트 스토커 교육에서 최우수 표창받고, CIA에서도 스카우트했다더군요.
짧게 해리의 이력을 나열한 제이크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다만, 현장에서의 활약을 봐야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게 자네답지. 그래도 곧잘 할 거야. 리를 특히 좋아하긴 하지만, 자네도 잘 따르지 않나?”
-…그것도 듣긴 했습니다. 나이트 스토커 시절에 제 얘기를 들었고, CIA에 가서는 리의 얘기를 들었다고 말이죠.
“그래, 소문이 자자하지.”
-그럼 소문도 통제하고 계시는 겁니까?
가볍게 답했던 로버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제이크의 걱정을 알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가 G&G Corp에서 혼자 수행 요원으로 활동했던 것과 비교하면 맞이할 위험도 적잖게 많았다.
물론 장점도 있긴 했으나, 중요한 건 보안이었다.
한번 뚫리면 본체인 국무부가 피해를 입고, 그렇게 되면 도움을 받기도 막연해질 테니까.
로버트 역시 잘 아는바, 가볍게 대답했다.
“소문은 통제하지 못하지, 그저 놔두고 있을 뿐이네. 자네의 일화가 이 바닥에서 전설이 됐던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얼마나 퍼지나 지켜보고 있기도 하고.”
-그럼 보안은 괜찮겠군요.
“그래, 보안만큼은 확실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로버트가 단단하게 대답하자, 금세 수긍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렇군요, 강아지 짖듯 떠들길래, 지난 작전들까지 다 아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들떠서 그럴 거야. 젊으니까 말이야.”
해리는 며칠 전에야 막 27세가 된, 젊다 못해 어린 요원이었다.
군 경력도 햇수로 5년이 전부.
그럼에도 유능해서 CIA에서 데려갔고, 결국에는 대외협력국에 발을 들인 인물이었다.
로버트가 이를 짚어 주듯 말을 이었다.
“확인해 봤는데, 운전 솜씨도 준수하더군. 헬기를 몰 줄도 알아서 공간 지각 능력이 최상위 수준이야.”
-특기가 의무 아닙니까? 그리고 하사가 헬기 조종까지 했단 말입니까?
연차가 많이 쌓인 베테랑 부사관이나 준위, 장교 등이 앉는 자리가 나이트 스토커의 헬리콥터 조종석이기 때문에 묻는 것이었다.
승무원 역할인 하사가 감히 조종수를 흉내 낼 순 없을 터.
이를 아는 로버트도 웃었다.
“하하하, 나이트 스토커가 되려고 사설 비행장에서 직접 배운 거야. 기간은 몇 달 정도인데, 경량 헬기는 충분히 몰더군.”
-아… 그건 못 들었습니다.
“차차 알아가면 되지, 작전 하달되기 전까지 호흡을 잘 맞춰 보게.”
-작전 하달이라면…….
일순, 제이크가 중요한 부분을 짚어 냈고, 로버트도 준비했던 얘기를 이어 갔다.
“그래, 좀 큰 건이 될 걸세. 계획 수립도 막 받아 왔어. 천천히 준비해 둘 테니, 그때까지 잘 준비하고 호흡도 맞춰 두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제이크의 짧은 대답을 끝으로 전화가 끝났다.
수화기를 내려 둔 로버트의 입술이 흔들리듯 열렸고, 나직한 목소리가 나왔다.
“…이제 잘 해내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
* * *
해리가 오고 이틀 만에 새 작전에 투입됐다.
우리 찰리 팀의 단독 작전.
여태 했던 게 정찰이었다면, 이번에는 실 작전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바로 중소 규모 무장 단체 지휘관의 생포 혹은 사살.
아무래도 생포하겠다고 하면 필요한 지원도 좀 해 주고, 보수도 더 준다고 했었는데, 제이크는 바로 할 일을 결정했다.
오직 사살.
그것도 근거리가 아닌, 원거리에서의 저격으로 확정지어 버렸다.
시신은 드론으로 촬영할 예정이었고.
왜 그러는지도 잘 알았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리의 안전 때문이었다.
해리가 새로 온 만큼 단계적으로 작전의 난이도를 조정하고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했는데, 플러스 알파가 더 있었다.
부상이나 심리적 트라우마를 줄이려는 목적.
안 그래도 M23 수백 명과 대대급 이상의 민병대와의 전투를 마친 게 고작 며칠 전이었다.
그래서인지 제이크는 지도나 사진, 이름뿐인 부실한 정보만 갖고서도, 그 자리에서 저격 작전 계획을 전부 세워 버렸다.
3인 2조, 주요 위치에서 비트 매복 후 저격.
나와 마커스, 해리가 한 팀이었다.
이에 가까운 거리에 비트를 파고 셋 다 땅속에 들어가서 한창 감시 중일 때였다.
-선배님, 870미터 부근, 남서쪽 방향에서 움직임 잡힙니다. 그쪽에서 확인되십니까?
관측경을 들여다보는 해리의 무전이 왔고, 잠깐 확인하다가 대답했다.
“…화전민 아냐?”
-음, 시야 확보가 어려운데… 아, 맞습니다. 소지한 병기 없습니다.
“그래, 계속 봐.”
가볍게 답했는데, 해리는 역시나 상당히 괜찮았다.
활달했던 첫인상과 다르게 작전 중에는 필요한 말만 하는 데다가, 심지어 아주 꼼꼼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내가 보지 못한 걸 먼저 볼 정도.
오전 6시에 동튼 이후로 땅속으로 들어가서 11시간이나 작전을 진행 중이기도 했으나, 나이트 스토커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닐 거였다.
나도 속리산에서 무박으로 며칠씩 경계를 섰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해리의 전술 배낭 속에 담긴 커다란 구급 키트였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가 갖고 다니는 한 뼘짜리 주머니와는 양이나 질적으로 달랐다.
웬만한 응급조치가 가능한, 그야말로 구급대 배낭 수준.
심지어 해리는 그걸 모두 쓸 줄 알았다.
단순히 사용법을 안다는 게 아니라, 각종 부상 시 대처 방안과 현지 토착 동식물에 의한 피해까지 모두 제어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마침 우리 팀에 없는 의무 특기자가 들어온 상황.
당연하게도 우연일 리는 없었다.
마침 신입이 들어왔는데 팀에 없는 주특기를 가진, 그것도 존스홉킨스 의대 중퇴 출신이라고?
‘…국장이 다 안배한 거겠지.’
라레플에 없던 캐릭터지만, 이렇게 되면 나쁠 건 전혀 없었다.
제이크가 지휘 전술, 내가 화기, 마커스가 폭파, 호세가 저격, 레이첼이 통신을 맡고, 남은 의무를 해리가 맡으면서 최소한의 완전체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 스페셜포스도 그렇고, 대한민국 특전사 기준보다 인원은 적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한 사람이 2, 3명의 몫을 할 테니까.
그렇게 상념을 흩어 낼 무렵, 기울어진 햇볕이 뒤통수로 넘어올 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군. 기껏 온 막내가 SOAR이라니? 분명 씰 아니면 씰6팀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호세의 중얼거리는 음성이 헤드셋을 타고 넘어왔다.
그러자 마커스가 바로 대꾸했다.
-해리가 해군이었어도 널 따르진 않았을 텐데? 지상전 요원이 아닌데도 리와 제이크를 가장 존경하는 걸 보면 모르나? 그러니까 닥치고 스코프나 봐.
-이봐, 마커스. 날 뭐로 보고… 나는 랩을 하면서도 스코프를 볼 수 있다고. 리 때문에 가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씰에서 가장 유명한 스나이퍼였어. 내 소문 알잖아?
-여기 유명하지 않았던 사람 있나? 막내조차 나이트 스토커 교육 과정에서 1등 했다던데.
-나도 스나이퍼 수료에서 나름 우수한…….
그렇게 두 사람의 나직한 목소리가 헤드셋을 오가면서 넘나들 무렵.
-잠깐… 드론에 차량 확인돼요. 여기서 1.3킬로미터 지점. 확인되는 인원 있어요?
-안 보이는데, 팀장은 보입니까?
-내 자리에서도 아직.
-저도 안 보입니다, 선배님.
호세, 제이크, 해리까지 연달아 말하는 사이.
내 스코프에 작은 움직임이 잡혔다.
정확히는 열대 우림의 나무 사이로 뭔가 쓱 스쳐 간 느낌.
“남색 같은 게 보였는데… 맞아요?”
-맞아요, 남색. 차량은 총 3대, 전부 픽업트럭이고 이동 순서대로 남색과 흰색, 자주색입니다.
“음… 거리가 좀 더 가까워야 되겠는데. 너무 안 보입니다. 기준 삼았던 800미터 정도는 돼야 보이겠는데요.”
짧게 답하자, 동시에 호세의 목소리도 건너왔다.
-나도 마찬가지야. 0.5마일(약 800M) 안쪽이면 운전수까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
이게 사전에 약속한 거리였다.
약 800M.
저격하기 적당한 거리가 아니라, 산중에 난 비포장도로가 완전하게 드러나는 유일한 구간이었다.
그래서 거기서 쏘기로 얘기가 다 된 거였다.
나하고 수백 미터 떨어져서 조준 중일 호세도 마찬가지였고.
레이첼이 상당히 빠르게 적을 발견했을 뿐,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곧 해리의 착실한 정보 전달이 이어졌다.
-선배님, 차량과의 거리 약 1킬로미터… 950미터, 910미터…….
그리고 드디어 앞자리가 8이 나오는 순간.
예상했던 대로 차량의 모습이 완전하게 스코프에 들어왔다.
‘운전수는 아니고…….’
-조수석에서 타깃 발견! 붉은 베레모를 쓴…….
내 생각과 동시에 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삼각대에 거치한 총을 살짝 움직였다.
사실상 그것도 나만 인지할 뿐.
흔들림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작은 각도 변경이었다.
이어서 명사수의 특성이 내 총구를 잡았다. 스코프의 흔들림이 멎는 것까지 체감됐다.
그렇다고 호흡을 아예 안 고르고 격발하거나 되는 대로 대충 쏴서는 안 됐다.
근거리가 아닌, 800M가 넘는 장거리 저격이기 때문이었다.
멀어질수록 나도 더 집중해야 했다.
휴가 때 들른 장거리 사격장에서의 실수도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물론 저격이 숙련되지 않은 이유가 크긴 했지만, 분명 조준이나 견착이 다소 급한 영향도 없진 않았을 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집중했다.
호세가 있긴 하지만, 한 발 소모하면 재장전하고 다시 쏘는 데 최소 2~3초는 걸리기 때문이었다.
“후…….”
그렇게 1초 정도 더 집중했는데, 그것도 그리 길진 않았다.
원래 2초 안쪽에 방아쇠를 당겼는데, 이제 해 봐야 3초 정도를 지나고 있을 테니까.
예민한 방아쇠에 가볍게 압력을 가했다.
터어어엉―!
격발 충격이 어깨를 때렸고, 좌우로 가스압이 터져 나가면서 수풀이 흔들렸으며, 화약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그리고 스코프 너머, 조수석의 유리창이 박살 나면서 피가 터졌다.
아마 머리가 사라졌을 것이다.
50구경 탄환과 같은 사이즈인 대물용 탄환을 사용했으니까.
동시에 해리의 놀란 말이 헤드셋을 넘어왔다.
-며, 명중! 명중했습니다! 탱고 다운!
이어서 호세의 총성이 울리고, 나도 연달아 쏴서 운전수와 접근하는 병력까지 사살한 뒤.
곧 만족스러운 결과가 돌아왔다.
-남은 적이 모두 후퇴하고 있어요. 주변에 열 영상 반응도 없구, 올 클리어네요.
레이첼의 말에 그제야 관측경에서 눈을 뗀 해리가 날 쳐다봤다.
“서, 선배님…….”
놀라다 못해 감격한 듯한 반응이 훅 나오길래, 그의 앞에 놓인 거치대와 관측경으로 고갯짓했다.
“그것부터 정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