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막사에 돌아와서 깨달았다.
퇴출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함께한 현역 특수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투입 직후의 총격전과 폭발로 인해 다쳤던 것을 제외하고는 추가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이 정도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거의 내가 고생한 덕분에 일궈 낸 결과긴 하지마는, 현장 지휘관이나 골프 1이었던 애덤의 역할도 컸다.
처음 본 나를 단번에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바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반년을 함께한 제이크처럼.
애덤은 내가 뭘 잘하는지 한눈에 꿰뚫어 봤고, 그걸 현장에서 바로 써먹은 능력자였다.
1티어 현역이고, 또한 지휘관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
그런 생각과 함께 샤워를 마치고 막사로 돌아왔을 때였다.
우웅―
핸드폰이 한차례 떨었다.
대외협력국에서 준 보안 처리한 핸드폰이 아닌, 개인적으로 쓰는 핸드폰에서 나는 진동이었다.
복귀해서 방금 켰는데, 켜자마자 반응이 온 거였다.
그리고 뭐가 온 건지 금방 알아챘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중얼거리는 내 눈에 보이는 건 애덤이 보낸 짤막한 문자였다.
[리, 애덤 개리슨입니다. 휴가를 떠나게 되면 꼭 연락 바랍니다, 당신에게 한잔 사겠습니다.]
거기에 그러자는 짧은 답만 써서 보냈다.
애써 시간을 내서 그를 만날 것 같진 않았지마는, 실력 좋은 현역 특수부대원을 굳이 무시할 이유는 없었다.
언젠가 날 돕겠다는 사람이기도 했고.
그렇게 전송 버튼을 누르고 카고 바지 건빵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이번에는 핸드폰이 길게 진동했다.
답장 문자를 받은 애덤이 할 말이 있는 건가 싶었는데, 확인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오?”
핸드폰을 개통하면서 저장해 둔 번호 중의 하나였다.
G&G Corp의 버지니아주 본사 연락처.
정확히는 TF(Task Force) 부문 사무실 번호라고 되어 있었는데, 한 번인가 연락해 보고 별 연락 없던 거였다.
그래서 기록만 된 상태.
무슨 일인가 싶어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리, 정말 오랜만이군.
누군가 싶었는데, 반문하기 전에 곧장 깨달았다.
“지부장님?”
G&G Corp 서남아시아 지부장 론 마이어스.
알 자마쉬를 관리하던 간부였다.
대외협력국과 접촉점이 있는 인물로 G&G Corp에서 나와 제이크를 도왔던 조력자이기도 했고.
당연히 라레플에서도 자주 나온 사람이었다.
예상보다 일찍 알 자마쉬를 떠나게 되어서 그간 접점이 없었지만, 이제 새로운 게 생길 모양이었다.
그것도 기록만 해 뒀던 TF 사무실 번호로 연락해 온 상황.
곧 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기억하고 있군, 리.
“아니… 이 번호로는 어떻게 전화 주신 겁니까? 영전이라도 하신 겁니까?”
-하하하, 그런 셈이지. 본사에서 TF 부문을 맡게 됐고… 자네들 역시 내 아래로 배속될 예정이야.
“오, 축하… 어? 저희가 그럼 TF 팀 중의 하나가 되는 겁니까?”
-그래, 성과가 우수해서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팀은 별도로 관리하게 됐거든. 어쨌든… 자네들을 더 관리하기 쉬워졌지.
말이 관리일 뿐, 실제로는 대외협력국과의 커넥션이 신속하고 정확해질 거였다.
G&G Corp 아프리카 담당자는 대외협력국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반 직원에 불과해서 이런저런 요청하기가 좀 까다로웠기 때문이었다.
“잘됐네요. 아, 안드레이 팀은요?”
-안드레이라면… 아, 지금 콩고 델타 말인가?
“예, 같이 안 갑니까?”
-등록돼 있어, 인기가 많은 팀은 아닌데… 운이 좋았군.
“실력도 좋잖아요.”
-문제가 생긴 적이 몇 번 있던데, 거기선 제이크가 통솔하나?
“성깔이 좀 나올 때가 있긴 한데, 그래도 팀장 말은 잘 듣습니다. 전에 어깨가 부서진 적이 있다나…….”
-하하하, 그래. 제이크라면 충분하지.
그가 웃기를 잠시.
용건이 있느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타이밍이 딱 맞게 론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새 임무가 내려갈 예정이야.
“그럼 딴 데로 가는 겁니까?”
-그래, 컨트랙터들이 주로 모인 곳으로 갈 예정인데, 제이크에게 정확한 내용이 전파될 거야.
“그리고요?”
바로 물었다.
제이크에게 정확한 내용을 들으라는 게 용건일 리는 없으니까.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중요한 말이 나왔다.
-자네 후임이 한 명 배치될 걸세.
“한 명 더 온다고요?”
-그래, 신입이고, 막내가 될 요원이지.
“일시적인 게 아니고, 아예 저희 팀이 된다는 말씀이죠?”
재차 물었다.
이 역시 내가 플레이 했던 라레플에서는 전혀 없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는 내내 5인 체제였다.
나와 제이크, 레이첼, 마커스, 호세까지.
물론 스캇의 배신이 들통나기 전까지는 6인으로 움직이긴 하지만, 어쨌든 놈이 사라진 이후에는 5인 체제로 움직이곤 했었다.
심지어 게임 중후반부에는 스캇 때문에 한 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으면서 4인 체제로 진행됐었다.
즉, 메인 스토리대로 흘러가면 시간이 흐를수록 머릿수가 줄어든다는 뜻.
한데, 이제는 한 명이 늘어나는 거였다.
내가 스캇을 빨리 보내 버리고, 5인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때, 예상한 답이 돌아왔다.
-그래, 일시적인 건 아니야. 그대로 유지될 걸세.
“그럼 실력은… 괜찮죠?”
회사에서 나름대로 골라서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우려가 돼서 물었다.
핵전쟁에다가 정체도 모르는 새로운 적, 지안드로가 등장한 판이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부족하면 짐만 될지도 모를 일.
그러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자네에 비하면 턱도 없지만… 내부 기준으로는 괜찮은 인재일세.
“어떤데요?”
-나이트 스토커, 들어 봤나?
“아……!”
미 2티어 특수부대로 분류되는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
라레플에도 종종 합동작전을 할 때 등장했던 부대였고, 영화나 각종 매체에도 자주 등장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이들이었다.
양성 과정도 빡센데, 실 작전까지 험난해서 손꼽는 부대 중 하나.
“잘 압니다.”
-그래, 거기 출신이야.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할 거야.
“네, 그 정도면 뭐… 괜찮겠네요.”
안 그래도 레이첼이 드론을 다루고, 호세가 스나이퍼를 하게 되면서 현장에 3명만 남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거기에 2티어 특수부대 출신이 붙는다면 좀 더 든든해질 터.
-근데, 알기로는 자네를 아주 좋아해.
“예? 저를요?”
-그래, 만나서 얘기해 보도록 해. 곧 출발할 거니까.
“아니…….”
어떻게 나를 안다는 건지 궁금할 무렵.
-우선 새 작전이 하달됐을 테니, 제이크부터 만나 보게. 그리고 다시 연락할 때까지 몸 건강히 잘 지내게.
“아… 예, 들어가십쇼.”
짧게 인사하고 전화를 끊자, 기다렸다는 듯 제이크도 나타났다.
“이동할 준비해, 새 숙소가 정해졌어.”
* * *
“오우, 이래야지. 정말 잘됐군. 그동안 후진 매트리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다들 안 그래?”
호세가 과장된 액션을 취하면서 호텔 방 내부를 둘러봤다.
좋은 특급 호텔 같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도어맨과 벨보이가 있는, 이번에 G&G Corp의 4개 팀이 새로 배정받은 숙소였다.
위치도 콩고 민주 공화국인 수도 킨샤샤 근처 마을.
숲속에 있던 군부대와 달랐다.
전기와 물도 어느 정도 쓸 수 있고, 일 끝나고서는 맥주를 마실 펍도 있는 장소.
그러나 들어선 마커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호세, 정말 이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나?”
“무슨 소리야? 좋지, 그럼 안 좋아? 화장실 따로 있는 거 봐, 살수차에서 뿜는 물 말고, 진짜 샤워 부스가…….”
“그 소리가 아냐. 너도 오면서 듣지 않았어?”
“뭐? 아, 신입 온다는 거?”
“그리고.”
“그리고… 뭐, 마이어스 지부장이 버지니아로 갔다는 거? 그게 왜?”
“그걸 듣고도 모르겠나?”
그 말에 짐 정리를 하던 강태도 멈칫했다.
그것도 흠칫한 표정.
마커스가 그런 리를 살피면서 호세를 향해 말했다.
“리는 이제 알아차린 것 같고… 너는 아직도 모르겠어?”
“도대체 무슨… 아?!”
그리고 중얼대던 호세마저 표정이 흔들렸다.
“이런…….”
대외협력국과의 접촉점이 있던 론 마이어스가 버지니아로 오고, 그 아래 찰리 팀이 배속되며, 추가로 인원이 보충되는 일이 그냥 진행됐을 리가 없었다.
국무부가 손을 대야 가능한 일이었다.
즉, 우연이 아니라 무언가 계획하에 돌아간다는 의미.
이건 일종의 준비였다.
그것도 더 힘든 임무나 위험한 작전을 앞두고 재정비하는 상황일 가능성이 컸다.
결과적으로 수행 팀이 할 일은 작전 뿐이었으니까.
그걸 깨달은 호세의 미간이 구겨졌다.
“…잘못하면 크게 엿될 수도 있겠군.”
“그래, 근처에 펍이 있다고 술 처먹을 생각 말고, 긴장하고 있으라고.”
“술은 네가 더 처먹으면서 무슨…….”
“요새 줄이고 있어, 크흠.”
마커스가 헛기침을 하는 사이, 어느새 제이크까지 들어왔다.
그가 G&G Corp 콩고 담당자와 각 팀장을 만나고 돌아왔기에, 팀원들의 시선이 단숨에 모였다.
제이크 역시 그들의 시선을 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직 나온 얘기는 없어.”
“휴… 그건 정말 다행입니다, 오자마자 어디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호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이.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나왔다.
“팀장님.”
짐을 풀던 강태였다.
“그럼 저 뭐 하나 요청해도 됩니까? 위험하다고 하니까…….”
“뭘?”
“맥밀란 TAC 50이요. 총기점에 맡겨 둔 건데… 그때 병원 나온 다음에 구입해서 영점 조절하고 세팅까지 다 해 놓은 거라서 그냥 가져오기만 하면 됩니다.”
무슨 말을 하나 기다리던 제이크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역시나 훌륭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실력까지 대단하면 오만해지기 십상인데, 강태는 반대로 너무 겸손한 데다가 모든 순간을 임무와 연관 짓는 참 군인 같은 인물이었다.
현역 군인이든, 흑색 요원이든 어울리지 않는 곳이 없을 터.
더구나 TAC-50은 그의 후배인 브래드가 소개시켜 준 첫 저격 소총이었다.
그걸 기억하고 준비해 둔 셈.
제이크가 만족스러운 듯 주억거렸다.
“좋아, 그것 말고 더 필요한 건 없나?”
“방탄판도 제 걸 예비로 몇 개 더 가져오면 좋을 것 같고… 뭐, 나머지는 현지에서 구하면 되니까 괜찮습니다.”
“말한 것들은 반드시 가져다 주지.”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자네 같은 사람이 내 팀원인데…….”
그 소리에 호세가 주춤했다.
“…도대체 언제 이렇게 부드러워진 겁니까? 저는 전에 말실수했다가 살기까지 느꼈던 것 같은데…….”
“뭐라고?”
“아, 아닙니다. 역시 리는 대단하네요. 아무렴요.”
강태가 고개를 젓고, 마커스가 겁먹은 그를 다독이듯 데려갔다.
아직까지는 덜 위험한 날이었다.
* * *
내 무기가 온 건 그로부터 3일 뒤였다.
현지 브로커와 함께 가벼운 두 번의 정찰 작전을 마친 날.
내 최신형 TAC-50이 담긴 하드 케이스가 호텔 데스크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더불어 처음 보는 인물도 있었다.
20대 중후반 정도 된 백인 남성, 거기에 180㎝ 즈음 되는 키와 단단한 보통 체격.
보자마자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찰리 팀의 6번째 인물.
‘신입이구나.’
동시에 인사가 건너왔다.
“와… 드디어 만나 뵙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부로 TF 찰리 팀에 배정된 해리 톰슨입니다. 편하게 해리라고 불러 주십시오.”
“아, 네. 이강태입니다. 전 리라고 부르면 됩니다.”
이어서 악수까지 나누자, 해리가 짧게 자른 갈색 머리를 넘기면서 웃어 보였다.
“정말 행복하네요. 그리고 신기하네요. 이렇게 선배님을 만나게 되다니…….”
“……?”
동시에 론이 해 줬던, 나를 아주 좋아한다는 말이 스쳐 갔다.
설마 하는 순간, 그의 입이 재차 열렸다.
“아, 저는 이성애자입니다. 혹시라도 오해하실까 봐… 팬심으로 좋아하는 겁니다. 아니, 존경합니다. 그러니 막내처럼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그러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잠깐만… 팬심이라고? 나를 어떻게 알고?”
어디까지 소문이 났나 싶어서 묻자, 해리의 대답이 재깍 나왔다.
“제가 SOAR(Special Operations Aviation Regiment: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에 있다가 CIA에 차출됐었는데, 거기서 선배님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는데…….”
“CIA? 그게 출처야?”
“네, 그곳에 좀 있었습니다. 약 1년 정도… 하지만 제 출신은 SOAR이고, 무덤은 이 찰리 팀이 될 겁니다.”
“아니, 죽지는 말고… 그래서 CIA에서 듣고 왔다는 거지?”
이야기가 새는 것 같아서 바로 잡자, 상기된 아이가 떠들듯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처음에 선배님에 대한 얘기를 주워듣게 되었는데, 그때는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불가능하잖습니까? 어떻게 그런… 하여튼 알고 보니 그게 사실이었던 거죠. 다른 나라의 정보 기관에도 선배님의 이름이 올라갔을 정도라고… 그때부터 선배님에 대한 것들을 열심히 찾다 보니…….”
“잠깐만. 그래, 그래서 오게 됐다 이거지?”
너무 길어져서 말을 잘랐는데, 오히려 해리는 내 말이 기쁜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오는 대답도 마찬가지.
“그렇습니다, 선배님.”
“뭐, 나쁘진 않다만… 일단 팀장한테 가자.”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내 TAC-50이 담긴 하드 케이스를 들고, 충실한 부하라도 된 것처럼 따라왔다.
딱 봐서는 괜찮아 보였다.
성격이나 행동이 모나 보이지도 않았고.
가장 중요한 실력은 한번 봐야겠지만, 그것도 부족할 것 같진 않았다.
출신도 그렇지만, 위에서 진작에 검증해서 보냈을 테니까.
이제 5명이 아닌, 6명이 한 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