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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81화 (81/185)

81화

-시에라 4! 8시 방향 측면 지원 바람!

후미를 돕는 와중에 나온 무전이었다.

재깍 응답하면서 측면을 보조했는데, 이번에는 반대편을 맡아 달라는 말이 이어졌다.

거기에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시에라 4, 이동하겠음.”

그리고 곧장 움직였고, 움직이면서 격발했고, 총구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적을 사살했다.

팔에 맞거나 어깨를 스치는 탄이 늘면서, 탄창 하나가 금세 비었다.

“재장전!”

고함과 함께 탄창을 갈았고, 노리쇠가 전진하는 순간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야말로 쉼 없이 쐈다.

갈아 끼웠던 탄창 하나가 빠르게 비어 갔다.

어쩔 수 없었다.

적당히 걷거나 빠른 걸음으로 움직여서는 좌우 측면과 전후방을 모두 아우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열이 그만큼 크거나 길진 않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적이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데다가, 쏴도 쏴도 줄어들지 않을 만큼 많았다.

대대급 1, 2개 정도.

적의 규모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계획을 전파할 때부터 다 알고 있었고,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단순히 인지한 것과 직접 겪는 건 다른 법이었다.

현재가 상당히 버거웠다.

미리 언급했던 것 중에서는 최악으로 볼 만한 사태.

침투나 퇴출 중에 살짝 노출되거나 발각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사실상 전면전이나 다름없는 셈.

애덤이 아닌 그 누가 되었더라도, 나를 계속해서 호출할 수밖에 없었고, 나도 거기에 맞춰서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특수전 속의 특수전이지만, 불만 같은 것도 없었다.

그 누구도 다치거나 죽길 바라지 않았으며, 이것도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라레플 속에서도 특성은 이렇게 개같을 때 사용하는 거였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미션을 깨도록.

그래 봐야 결국 다 터지고 죽는 핵전쟁 엔딩이 전부였으나, 어쨌든 그 과정만큼은 대단히 다이내믹하고 재미있었다.

물론 게임이 그랬고, 현실은 다소 힘들었다.

신경 쓸 게 너무 많을뿐더러 명령도 급하게 하달돼서 빠릿빠릿하게 반응해야 하는 탓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퇴출 계획은 틀어지지 않았고, 계속 진행 중이라는 거였다.

-호텔 리마 20 도착! 시에라 3, 5! 연막탄 투척!

미리 약속해 둔 지점에 도착했고, 예정된 작전을 진행하라는 뜻이었다.

퇴출 지점까지 약 1.8㎞ 남은 곳으로 마을 외곽 지역.

이 지역을 벗어나기 직전이란 뜻이었다.

잠깐 돌아봤던 시야에도 우거진 수풀과 나무 따위만 있었다.

더 이상 흙벽돌로 만든 집이나 발로 다져서 만든 길이 없고, 당연히 반군 역시 뒤에만 있다는 뜻.

동시에 연막탄 소리가 들려왔다.

펑! 펑!

순식간에 연기가 퍼져 오르며 측면과 후방을 가렸고, 이어서 적들의 접근 역시 차단됐다.

그저 연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 때문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시원한 중기관총의 사격음을 닮은 헬기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심지어 기체가 육안으로도 보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세 대.

또한 날개를 펴듯 나란히 비행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든든했다.

물론 당장 보이는 건 손톱만 한 사이즈에 불과했지만, 금방 도착할 것을 알기에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건 저 중에 1대가 우릴 수송해 갈 UH-1 시리즈의 개량 버전이고, 다른 2대는 엄호해 줄 공격 헬기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기관총을 설치한 MD500 같은 소형 경량 헬기가 아니었다.

대충 봐도 수송 헬기와 맞먹는 사이즈.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마는, 미니 건이나 개틀링 건, 거기에 공대지 미사일까지 장착했을 가능성이 컸다.

쉽게 말해 지상에 강림하는 사신.

당연하게도 1대만 있어도 충분한 전력이었다.

그게 2대나 있으니 마음이 놓일 수밖에 없었는데, 굳이 더 보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좆 될 뻔했으니까.’

마무리라도 안전하고 완벽하게 진행하려는 게 분명했다.

이미 이곳 상황이 전부 보고됐으니, 상황을 관리하던 상부에서 바짝 신경 썼을 거였다.

현역 특수부대를 투입해 놓고도 일을 조질 뻔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도 헬기가 점점 가까워지는 덕분인지, 민병대도 추적을 멈추기 시작했다.

멋모르고 접근하던 말단 병사 몇 명이 달궈진 HK416에 죽어 나갈 뿐.

이내 방아쇠를 아예 당기지 않아도 됐다.

물론 경계를 이어 가고, 무인정찰기로부터 확인받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어쨌든 미국인 기자를 납치한 미친놈들이었으니까.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일 즈음, 대열 이동 속도가 줄어들었고, 프로펠러의 풍압에 흔들리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었다.

‘이야, 빡셌다…….’

사실 얌전히 눈알만 내밀었던 인질범이나 견착하고 서 있던 적을 죽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도 가만히 서서 조준만 하면은 빗나갈 일이 없으니까.

다음이 문제였다.

부상자가 많아서 그들을 이송하는 제이크조차 교전하지 못하는 바람에 내가 많이 뛰어다녔고, 더불어서 탄약 소비도 너무 많이 했다.

현재 남은 건 탄창 하나.

그마저도 여러 발을 격발했으니, 탄약도 반 정도 있을 거였다.

‘좀 늦었으면 글록으로 시가전을 했을지도…….’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위력이나 사거리가 부족해서 수십 미터 거리에서 쏠 만한 총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마 상당히 고전했을 터.

물론 특성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겠지마는, 그렇다고 그게 좋다는 건 아니었다.

이에 한숨 덜면서 수송 헬기로 가려던 찰나.

스윽.

내 앞에 손이 나왔다.

1M 즈음 떠 있는 수송 헬기에서 잡으라고 내민 거였는데, 그 주인공이 현장 지휘관인 애덤 개리슨이었다.

몇 시간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불편한 티를 냈던 인물.

그가 나서서 제 팔을 내어 주고 있었다.

턱.

손을 잡자, 애덤이 당겨 주면서 쉽게 올라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을 때였다.

내 맞은편에 앉은 애덤이 입을 열었다.

-시에라 4, 정말 고생 많았고, 당신 덕택에 모두 멀쩡하게 돌아왔습니다.

그 말에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내 힘이 필요하다면은 언제든 연락하세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신을 돕겠습니다.

“저는 용병이라서 현역 군인을 쓰기가 애매한데요?”

-내가 아니더라도, 전역한 동료들이 당신을 돕게 하죠. 그리고 우리 24STS(24th Special Tactics Squadron: 제24특수전술대대)가 당신을 도울 일이 생긴다면, 내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뭐… 그럽시다. 나중에 도움 한번 받죠.”

의기마저 넘치는 듯한 말에 대꾸했을 때였다.

그가 상의 주머니에서 구김지고 먼지 묻은 수첩과 볼펜을 내밀었다.

“……?”

-연락처 좀…….

“아, 예… 여기요.”

어지간히 감명을 받은 모양이라고 생각할 무렵, 그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길었던 내 군 생활 중에서… 오늘만큼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 * *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대외협력국.

콩고의 미군 작전 결과를 확인한 로버트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행 팀이 아닌 제24특수전술대대 소속 대원이 적었는데도 불구하고, 강태의 활약이 제법 비중 있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질범 사살부터 퇴출 과정에서의 활약까지.

‘역시… 늘 기대 이상이군.’

로버트가 얕게 숨을 내쉬었다.

현장에서 강태의 전투를 직접 보고 싶을 정도.

물론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기에, 그저 전송될 바디캠 녹화 파일에 만족해야 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여태 대외협력국 수행 팀이었던 레이첼과 제이크, 두 사람의 영상만 있었는데, 이제 팀 전원이 대외협력국의 수행 요원이 되면서 전부 바디캠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중 강태의 바디캠은 정말 귀중한 자료가 될 게 분명했고, 그 외 팀원의 것들로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가 용이해질 터.

그러나 기다리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 있었다.

작전 현장에 도착했던, 정체 모를 세 용병에 대한 추가 자료.

수행 팀 중에서도 유독 강태가 잘 보내 오는 거였다.

소지품은 물론이고, 얼굴 사진부터 신체 사이즈, 지문, 체모까지 전부.

시체를 그대로 가져왔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다 못해서 완벽할 정도였는데, 그만한 소득도 있었다.

그것도 일전에 강태에게 말했던 이름에 대한 거였다.

[지안드로 바시카날, 34세, 이탈리아 출생, GIS(Gruppo di Intervento Speciale: 특수개입그룹) 출신…….]

사실상 세르게이의 대체자로 보이는 인물.

관련된 상황도 비슷했다.

지안드로와 관련된 모든 과거 행적들이 지워지거나 훼손된 것이었다.

그것도 세르게이에게 벌어졌던 과정 그대로.

누가 했다고 적어 놓지만 않았을 뿐, 사실상 그때의 일이 아주 유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일인데, 다행인 건 대외협력국이 늦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신상 명세 외에 알아 둔 것도 많았다.

이탈리아군에서도 대외비로 취급되어 노출된 적 없던, 지안드로의 전역 사유까지 있었다.

‘벌써 불쾌하군…….’

다시 떠올려 봐도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내용이었다.

이게 왜 대외비인지 알 만했다.

군인이 드러내서도 그리고 가져서도 안 되는 걸 들켰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와 전체주의, 심지어 네오나치 사상까지.

상충하는 이론까지 필요에 따라 제외하거나 더해서 최악의 이념을 품은 것이었다.

“미친 새끼…….”

그의 입에서 경멸하듯 욕설이 흘러나왔다.

당장이라도 수배해서 체포하거나 사살하고 싶은 인물인데,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더더욱 감정이 진하게 묻어 나온 말이었다.

명분이나 외교적 관계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지안드로가 좀 달랐기 때문이었다.

분명 세르게이의 대체자 같고,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 역시 유사하지만, 하는 행동이 영 달랐다.

현장 지휘관으로서 세계를 누렸던 세르게이와 달리, 지안드로는 직접 나서서 총을 쏘거나 병력을 지휘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뒤에 있었다.

브로커라도 된 듯 음지의 용병에게 일을 주는 것이다.

물론 세르게이가 그랬듯, 지안드로 역시 무장 단체에게 무기나 돈으로 후원하는 건 같았다.

이번에 사살된 용병들이나 민병대 역시 그와 관련됐을 거였다.

각종 자료를 확인해 보면 알게 될 터.

문제는 ‘왜’인가 하는 건데, 그것도 파악하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자원.’

구리 광산, 황금 광산, 다이아몬드 광산, 우라늄 광산 등등.

자원의 보고인 그곳에 지안드로가 돈과 사람을 보내어 제 방식대로 약탈을 벌이고 있었다.

직접 증거는 없으나, 작전을 벌인 장소만 봐도 답이 나왔다.

광산이나 광산 근처의 마을.

전부 그랬다.

이번에 투입됐던 민병대의 마을 역시 근방에 규모가 작은 황금 광산이 있었다.

저품질 상품이긴 했으나, 어쨌든 돈이 나올 구멍인 셈.

그리고 로버트는 그걸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쉽게 말해 대규모 소탕.

구체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작전 수립을 위해 상부에 결재까지 받을 예정이었다.

이 모든 건 콩고에서 수행 팀이 고생한 덕분에 이뤄 낼 수 있었던 성과였다.

특히 강태.

그 이름을 떠올린 로버트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또 시련을 주게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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