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79화 (79/185)

79화

내가 선두에 서서 빠르게 이동하는 사이, 구체적인 무전이 왔다.

안 좋은 단어들로 된 내용이었다.

폭발, 붕괴, 고립, 부상 등등.

심지어 골프 팀원 한 명은 폭발과 붕괴로 떨어졌고, 무전도 끊겼다고 했다.

그야말로 최악인 상황.

‘좆 됐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마을 초입 부분에 도착해서 우리가 목격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한쪽이 주저앉은 건물과 먼지가 퍼져 오르는 광경 그리고 주변을 둘러싸고서 하늘로 총을 쏴 대는 수백 명의 민병대까지.

상황을 봤던 호세가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 이런… 영화 블랙 호크 다운 봤지? 소말리아 민병대가 미친 좀비 떼처럼 왔던 장면 말이야. 헬기만 없을 뿐이지, 그 장면하고 똑같지 않아?”

“재수 없는 소리 할 거면 닥치지 그래?”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래서 저길 어떻게 뚫을 거야? 공격 헬기라도 와야겠는데…….”

마커스가 타박하고, 호세가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말마따나 공격 헬기가 필요할 정도로 상황이 나빴기 때문이었다.

대충 봐도 1개 대대가 훌쩍 넘는 인원이 주변에 모여 있었고, 건물도 일부 붕괴되어 위험한 탓이었다.

나도 팀이 있으니 침투할 생각이지, 혼자 왔다면 접근도 못 할 것 같았다.

물론 손에 들린 무기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어느새 상황을 눈여겨보던 제이크가 무전으로 질문하고 애덤으로부터 대답을 받았다.

-…현재 방위 기준으로 줄리엣 313 동남 쪽 방에 위치, 출입 시 창문 이용해야 할 것으로 보임.

“시에라 1, 수신 양호.”

-시에라 1, 접근 중인지? 아니, 접근 가능한지? 현 상황이 위급해서…….

“신호에 맞춰 적 공격 바람. 곧 접근하겠음.”

제이크의 단단한 말에 뒤쪽에서 중얼대던 호세가 숨을 들이켰다.

접근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연달아 더한 얘기가 나왔다.

“이쪽 방면의 적을 수류탄으로 와해시킨 뒤에 나와 리가 침투하고, 나머지는 퇴로 확보하고 대기하도록.”

“…….”

적잖이 위험한 말에 다들 주춤했으나, 그렇다고 대꾸하는 이도 없었다.

더 나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었다.

작전 경험이 풍부한 제이크가 내놓은 게, 그나마 가장 쓸 만한 접근 방법이었다.

“수류탄은 누구 걸로 합니까?”

“내 걸로.”

“좋습니다, 그럼 투척도 팀장이 하고요?”

“그래, 여기서 30미터 정도 더 접근하고 나서 시간 차로 투척하고… 동시에 안에서도 사격을 가하면 접근할 만한 틈이 생길거야.”

“좋네요, 갑시다.”

그 말을 끝으로 이동 지점을 설정했고, 남은 세 사람과 짧게 눈인사를 하고 바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민병대가 하늘로 총을 난사하면서 고함치는 건물 근처.

가는 길에 적이 몇몇 있었으나, 상시 운용 중인 고고도 무인항공기 덕택에 위험할 일은 없었다.

-여기는 옵저버, 시에라 4 서쪽 15미터 앞, 골목에 적 2명 이동 중.

그 말을 따라 미리 제압하니, 이동은 손쉬웠다.

상공에서 확인할 수 없는 건물 내부의 적도 별로 무섭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제이크가 함께 이동하고 있었으니까.

텅! 텅텅!

사격하면서 총성이 나도 괜찮았다.

이미 건물 주변에서 허공에 자동소총을 난사해 소음기를 거친 총소리는 묻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적을 사살하면서 이동하고, 근처에 도착할 무렵.

제이크가 수류탄을 꺼내며 내게 신호를 줬다.

나도 습관적으로 HK416을 확인하고 고쳐 잡은 뒤.

휘익―

핀을 뽑은 수류탄이 허공을 날았다.

“오…….”

절로 감탄이 나왔다.

투척하는 걸 대놓고 구경하는 게 처음이었는데, 역시나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 외야수가 야구공을 던지듯 날아가고 있었다.

이어서 하나 더.

추가로 핀을 뽑은 수류탄이 제이크의 손에서 떠나갈 때였다.

콰아앙―!

투척한 게 폭발했고, 2초 뒤에 하나가 더 터졌다.

그리고 내가 달려 나갔다.

밀집했던 수많은 인파가 죽거나 흩어진 상황.

그 옆으로 바쁘게 뛰면서 가볍게 견착했고, 적으로 간주되는 것들을 모조리 사살했다.

머리 아니면 가슴 한가운데를 목표로.

텅! 텅! 텅! 텅! 텅!

탄환을 맞은 민병대의 머리가 젖혀지거나 몸뚱이가 밀려났다.

그것도 끝까지 보진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항복의 의사를 묻거나 들을 수도 없었고, 경고의 말도 꺼낼 틈도 없었다.

프랑스어를 할 수는 있지만, 입 다물고 움직이기만 했다.

입씨름하기에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적이 압도적으로 절대다수인 경우에는 항복 권유가 어려운 탓이었다.

그렇게 쏘고, 달리기를 반복할 무렵.

어느새 반 정도 반파된, 큼직한 건물에 도착했다.

인질이 갇혀 있던 곳이자, 이제는 골프 팀이 고립된 장소였다.

작전상 줄리엣 313으로 호칭하는 건물.

이에 문을 열려고 하려던 때였다.

벌컥―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정확히는 주방 쪽의 뒷문으로, 골프 팀원들이 고립되어 있는 위치였다.

정문 쪽은 붕괴하듯 내려앉은 상황.

“어서 들어와!”

바짝 긴장한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를 따라 발을 옮겼다.

* * *

이번 작전의 현장 책임자이자, 골프 팀의 팀장인 애덤 개리슨이 방금 들어온 강태를 얼떨떨한 얼굴로 쳐다봤다.

이어서 들어온 거구의 제이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시에라 4……?”

그가 중얼거리듯 목소리를 냈다.

방금 창틈으로 잠깐 동안 봤던 강태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뛰어오면서 사격하는 광경.

어느 정도 천천히 움직이는 게 아니라, 정말 뜀걸음 하듯이 달렸고, 또한 격발해서 적을 명중시켰다.

그것도 여러 발을 난사해서 한두발을 맞힌 게 아니라, 쏘는 족족 적중했다.

머리통이나 가슴 한가운데에 정확하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저런 속도로 달리면 총구만 흔들리는 게 아니라, 총을 견착한 어깨와 눈이 달린 머리도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저런 사격술을 달리면서 선보이는 건 불가능했다.

아마 자신이 했다면, 그 몇 배의 탄을 소모해야 할 게 분명했다. 애초부터 위협용으로 쏠 거였고.

그사이, 제이크가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냈다.

“개리슨, 팀원 한 명은 어떻게 됐나? 전사했나?”

“아, 아니. 건물 반대편 쪽에…….”

“붕괴한 부분?”

제이크가 아직도 흙먼지가 퍼져 있는 공간을 보며 물었고, 애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전도 끊겼어.”

“특이 사항은?”

“저쪽 붕괴한 방면으로 새벽에 연락됐던 거수자가 접근했다더군.”

“거수자가……? 언제?”

“건물 붕괴된 직후에, 아… 잠깐 기다려 봐.”

그러고서는 애덤이 돌연 무전을 켰다.

“옵저버, 여기는 골프 1. 현시간부로 무전 전체 공유 바람.”

-옵저버, 수신 양호.

별도로 옵저버와 소통했다는 소리.

제이크나 강태가 뭐라고 하기 전에, 애덤이 변명하듯 알아서 입을 열었다.

“작전 보안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많이 노출해서 좋을 게 없으니까.”

“그렇다 치고, 그럼 놈들은 붕괴된 쪽으로 들어오려는 건가?”

“아마도. 거긴 우리가 응사할 수 없으니까.”

“그럼 그쪽에 있는 인원부터 찾아와야겠고, 나머지는 퇴출 준비부터 하지. 다들 움직일 수 있습니까?”

제이크가 벽에 기댄 채 총을 든 부상자를 비롯한 팀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걸레짝처럼 변한 오른손에 지혈대를 묶고, 기울어진 몸으로 힘겹게 총을 든 ISA(Intelligence Support Activity) 소속의 팀원이었다.

대충 봐도 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부상을 입은 모습.

“…아직 다리는 다 붙어 있으니까, 골프 4만 찾아서 퇴출합시다.”

다친 팀원이 이를 꽉 깨물며 대답하고, 제이크가 마지막으로 인질을 확인했다.

흡사 넝마가 된 모습.

의식도 진즉에 없는 듯 고개가 앞으로 푹 꺾인 채 의자에 묶여 있었다.

이를 보던 강태의 눈매가 그려졌다.

그제야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침투 후 인질과 접촉한 시점에 기습…….’

그리고 바로 물었다.

“함정 같은 겁니까?”

“…함정보다는 구출 팀의 접근을 예상한 것에 가깝습니다.”

“예상치고는 밖에 머릿수가 너무 많던데요?”

“감청한 음성을 들었어요. 밖에서 접근 중일 거수자의 지휘로 판단됩니다.”

“그러니까 지휘가 우수했다… 그 말입니까?”

“현재로서는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강태가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어제 작전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사한 상황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우연이 두 번이나 겹치자 조금 의아한 상황.

제이크도 미간을 찌푸릴 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소음이 들렸다.

정확히는 건물 반대편의 붕괴한 부분, 그것도 바깥이 아닌 내부.

“……!”

강태와 제이크뿐만 아니라, 내부의 골프 팀 모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바깥에서 총을 쏴 대고, 틈틈이 응사하는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이질적인 소음을 정확하게 들은 것이었다.

강태가 반사적으로 앞장서려던 순간.

“이쪽으로 잠깐 나와 보지 그래? 얘기 좀 하게.”

건물 내부에 웬 말이 울려 퍼졌다.

당연하게도 같은 방에 있는 그 누구도 아닌, 다른 곳에서 들려온 거였다.

즉, 적의 목소리.

그것도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였고.

총을 고쳐 잡은 강태가 주방 코너 부근에서 각도를 확보해 가면서 경계할 때였다.

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기 너희 동료가 있어. 많이 다쳤는데… 살리려면 얘기를 빨리해야 할 거야. 눈치 보면서 총 내밀지 말고.”

다 보고 있다는 신호.

그런데도 강태는 제 할 일을 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각도를 확인하면서 각 방문이 있는 복도를 겨누는 것이었다.

어느새 반대편에 선 애덤도 마찬가지.

그리고 깨달았다.

“…….”

이미 사람 여럿이 들어와 있었다.

다해서 넷.

정확하게는 의식을 잃은 팀원 골프 4와 그를 인질로 내세운 3명의 적이었다.

그리고 유창한 영어를 썼듯 민병대는 아니었다.

단단한 체격에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춘 흑인 두 명과 라틴계 한 명.

‘이 새끼들은 또 뭐야……?’

현지 민병대 지휘관이나 간부를 생각했던 애덤의 미간이 구겨졌고, 설마 했던 강태의 인상도 찌푸려졌다.

전에 봤던 이들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현지인이 아닌, 탄탄하고 큰 체구의 용병들.

‘…이 새끼들이 여기에도 있어?’

대외협력국이 추진했던 두 번의 작전에서 만났던 용병들인 만큼, 분명 뭔가가 있을 터.

그러나 이번 일이 더 쉽지 않았다.

먼지가 날리고 불빛이 없어서 시야가 선명하지 않았는데, 더한 걸림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인질을 방패로 삼은 상황.

흑인 한 명이 골프 4의 등 뒤에 완전히 은폐해 있었다.

정확히는 목과 어깨 사이로 한쪽 눈만 조심스레 내밀고, 겨드랑이 사이로는 손을 넣어서 골프 4의 턱밑에 권총을 겨눈 상태.

그야말로 거의 완벽한 자세였다.

강태가 볼 수 있는 부위는 오른쪽 귀와 눈이 전부일 정도.

‘진짜 프로네…….’

인질 협박의 교범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다 좌우에서 견착한 이들까지 있으니, 발포했다가는 그야말로 난전이 될 터.

완벽한 제압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럴 때는 보통 협상을 하거나 적의 빈틈을 유도해서 제압의 가능성을 봐야 했다.

그게 정석이었다.

애덤도 거기서 기반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협상 같은 건 아니었다.

테러범에게 줄 것은 죽음뿐이었으니,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 고심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의 헤드셋을 타고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속삭이듯.

-좌측, 대머리.

“……?”

강태의 말이었다.

앞뒤 설명이나 단어 없이, 툭 튀어나온 말이었는데, 그걸 들은 애덤은 섬찟하고 말았다.

저 말이 그의 사선에 위치한 적을 가리키는 것이고, 또한 발포하라는 신호를 준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게 분명했다. 굳이 그걸 떠들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적은 셋인 데 반해, 여기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사람은 두 명이고, 심지어 인질까지 잡힌 불리한 상황이었으니까.

뒤에서 제이크를 비롯한 팀원들이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인질 뒤의 흑인은 그야말로 완벽한 인질범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틈이 없었다.

아군을 죽일 각오라면 몰라도, 감히 쏠 순 없었다.

한데 좌측의 대머리라니?

위험해질 것만 같은 직감에 그의 숨이 가빠올 때였다.

“이봐, 여기 있는 당신 동료가 죽어 가고 있어, 제대로 치료하고 싶다면…….”

마침 적이 말을 뱉은 순간.

동시에 애덤의 헤드셋으로 다시금 조그만 목소리가 건너왔다.

-지금.

“……!”

애덤은 일순간, 아드레날린이 뿜어지는 걸 느꼈다.

수많은 전장의 위기를 돌파하면서 깨달은 고양감을 넘어선 감각.

젊을 때 멋모르고 먹었던, 이름도 모를 마약의 효과가 다시금 뇌를 파고드는 듯했다.

눈이 뜨이고, 머리가 환해졌다.

그때였다.

텅! 텅!

총성 두 발이 터졌다.

애덤의 손가락도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터엉-!

퍼석, 철퍼덕.

머리가 터진 시체들이 바닥에 나자빠지듯 쓰러졌다.

순식간이었다.

단 세 발로 모든 상황이 끝난 것이었다.

애덤이 생각했던 난전이나 아군의 죽음 같은 건 없었다.

그가 서 있던 벽 모서리에 탄환 자국이 있긴 했으나, 그것도 적이 급하게 쏘느라 남긴 흔적에 불과했다.

즉, 모든 게 완벽했다.

쓰러진 시신 주위로 먼지만 날리고, 사위가 고요해진 사이.

명료해진 애덤의 머릿속으로 강태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전달됐다.

-골프 1, 지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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