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78화 (78/185)

78화

강태의 머릿속에 지난 한 달이 스쳐 갔다.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 계획 수립과 임기응변으로 헤쳐 나갔던 현장의 일들.

국무부를 통해 각자의 병기와 장비를 미국에서 바로 가져왔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어려웠다면 임무는 더 고달팠을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상황과 더 비교되는 기억들이 지나갈 무렵.

헬리콥터를 마중 나왔던 제24특수전술대대 애덤 개리슨이 목소리를 냈다.

“나와 이 친구는 24STS(24th Special Tactics Squadron: 제24특수전술대대), 여기 셋은 활동대(Intelligence Support Activity의 호칭)로 이렇게 다섯이 팀이고…….”

주변에 서 있던 전투복 차림의 군인들을 이름 없이, 소속 부대만 간결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맞은편에 서게 된 제이크와 옆의 마커스를 보면서 말했다.

“그쪽 둘은 델타고… 나머지는?”

차례로 호세와 강태, 레이첼을 봤고, 그중에 호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이비씰 출신의 호세 페레즈입니다.”

“아, 씰과도 작전은 여러 번 했었지,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악수를 나눌 무렵, 강태가 입을 열었다.

“이강태, 한국 특전사 출신입니다.”

“…그게 끝입니까?”

“예.”

“아… 그럼 이쪽은?”

애덤이 주춤하면서 레이첼로 시선을 옮겼는데, 더 좋은 말은 듣지 못했다.

“작전 얘기나 하지 그래요?”

출신을 말하지 않겠다는 뜻.

애덤은 레이첼에게 혹시 주 방위군이나 여경 출신이냐고 비꼬듯 물으려다가 말았다.

제이크의 시선이 사뭇 매서운 탓이었다.

괜히 쓴소리해 봐야 좋은 반응이 나오진 않을 터.

‘이 팀에서 믿을 건 셋뿐인가……?’

그러면서 답을 피한 레이첼의 존재를 기억에서 지웠다.

대답했던 강태도 다르진 않았다.

들어 본 적도 없는 웬 극동아시아 소속의 군인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애덤이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용병 일을 한다더니, 천하의 제이크가 이 꼴이 됐을 줄이야.’

보잘것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 탓이었다.

애덤도 들은 게 꽤 많았다.

갈등 국가인 파키스탄과 인도 출신 용병들이 파벌 싸움이나 하다가 자멸한 소식부터 동유럽이나 동남아시아 출신의 오합지졸들이 망친 작전까지.

꽤 흔한 일이었다.

용병업이 성장한 만큼 밑바닥에는 망해 가는 업체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제이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물론 쓸 만한 부하가 둘 정도는 있지만, 여성이나 아시안 같은 지뢰 하나가 일을 망치는 법이니까.

여러 상념을 떨쳐 낸 애덤이 입을 열었다.

“…그럼 말대로 작전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노트북의 마우스를 쥐고 클릭을 몇 번 하자, 주택 가운데에 있는 스크린에 확대된 항공 지도가 떠올랐다.

그리 크지 않은, 산속에 있는 흔한 콩고 마을 중 하나.

강태와 레이첼을 꽤 불쾌하게 봤던 애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설명을 이어 갔다.

특수부대 소속답게, 프로답게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기자가 납치된 이후로 진행한 추적과 수색에 대한 내용 그리고 촬영하고 감청한 자료 등등.

이어서 중요한 내용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우선 감청한 내용에 따르면 인질이 부상을 입었고, 오늘 오전 중으로 처형되거나 타 지역으로 이송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송 예상 지역은?”

제이크가 물었고, 애덤이 고개를 저었다.

“현장에 소형 드론을 착륙시켜서 직접 음성만 감청해서… 정확히 알진 못해. 확실한 건 오늘 동트기 전에 침투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고, 차선책은 마련하지 못했다는 거야.”

“임무 중단할 경우는?”

“집결지를 세 곳으로 추렸어. 일단 이 지도를 보면…….”

새 화면을 띄운 애덤이 금세 퇴출 시, 실패 시, 유사시 상황을 고려한 집결지를 일러 주었다.

각각에 부여한 작전상 호칭도 마찬가지.

그 뒤로 인질 발견이나 확보 등에 대한 상황마다 지정된 용어는 물론이고, 팀별 음어도 모두 공유됐다.

현역 특수부대는 골프 1~5, G&G Corp는 시에라 1~5.

강태는 시에라 4였다.

듣고 있던 그의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

‘태도가 좀 아니지마는… 그래도 일 처리 하나는 완벽하네. 괜히 1티어 현역이 아니다 이거지……?’

콩고에서의 생활과 비교된 탓인지, 작전 준비가 상당히 훌륭했다.

심지어 상황이 벌어진 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며칠간 준비한 것처럼 수준이 높았다.

그리고 곧 가장 중요한 침투 상황이 언급됐다.

“휴이(UH-1의 애칭)로 작전지역 6마일(9.6㎞) 전까지 간 뒤, 속보로 이동하고 시에라는 근방에서 대기할 겁니다.”

찰리 팀을 시에라로 명명했으니, 제이크는 물론이고 휘하 팀원 모두 한발 빠지라는 소리.

거기에 한마디가 더 붙었다.

“그리고 그쪽… 드론 케이스를 가져왔던데, 허가 없이 운용하지 말기 바랍니다. 엔진 소음으로 발각될 가능성만 늘어나고, 우리 측 소형 드론을 적 중심부에 배치해서 감청 중입니다.”

“그러죠.”

레이첼의 짧은 대답 뒤로 애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시에라에게는 유사시 지원이나 교란 같은 임무를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부여할 예정이고, 침투와 인질 구출은 우리 골프에서 맡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불러놓고 안 쓰겠다는 소리.

그러나 시에라가 된 찰리 팀 중에 그 누구도 대꾸하진 않았다.

어쨌든 작전을 주관하는 건 현역 특수부대원들이고, 찰리 팀은 신분을 밝히지 않은 위장 요원들이었으니까.

그리고 투입 없이 끝나면,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장시간의 작전을 진행했고,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곧 애덤이 상황을 마무리 짓듯 물었다.

“질문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즉각 출발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5명씩 이뤄진 2개 팀이 헬리콥터에 올랐고, 금세 프로펠러가 가동하면서 허공에 떠올랐다.

남색이던 하늘 끄트머리가 이미 푸르스름하게 변한 상황.

새까맣던 하늘에 푸른 색감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고, 어둠에 잠겨 있던 지형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를 보던 각 인원이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볼 무렵.

전체 채널로 새 무전이 도착했다.

-여기는 옵저버. 작전지역 15마일(24㎞) 외곽 지역에서 접근 중인 차량 발견.

고고도 무인정찰기를 운용 중인 지상 조종사의 말이었다.

애덤의 입이 거의 반사적으로 열렸다.

“해당 차량이 작전지역으로 오는 게 확실한지?”

-30분 뒤에 도착한다는 육성 감청 확인했으며, 진행 방향도 작전지로 예상됨.

“…그 외 특이 사항은?”

-잠시 대기, 감청 음성 송출하겠음.

헤드셋 너머로 프로펠러 소음이 연하고도 규칙적으로 들려올 무렵.

옵저버가 예고한 감청 음성이 전파됐다.

-…네? 30분 후에 도착하신다고요? 알겠습니다. 놈은 잘 있습니다. 네, 그러죠.

몇 마디 없는 아주 짧은 내용.

그러나 이 내용을 들은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대화의 내용이나 어조를 봐서는 상대가 상급자로 예상되며, 그 상급자로 보이는 차량이 24㎞ 밖에서 접근 중이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서 변수.

제이크가 맞은편을 향해 물었다.

“골프 1, 어떻게 할 생각이지?”

현역 특수부대원들로 이뤄진 골프 팀의 팀장, 애덤 개리슨을 향한 말이었다.

애덤이 잠깐 인상을 구기다가 입을 열었다.

“…시에라의 대기 위치를 작전지역 가까이 옮기지. 약 200야드(182M) 정도.”

원래 대기할 위치는 그보다 훨씬 먼 400~500M 정도 됐다.

거기서 저격 소총을 가져온 호세와 망원 스코프를 가져온 강태만 적절한 위치에서 저격 준비를 할 예정이었고, 나머지는 비트를 파고 들어가서 대기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182M는 말이 달랐다.

망원 스코프 없이 홀로그래픽 조준경으로도 사격이 가능한 거리.

즉, 전보다는 개입할 가능성이 늘었다는 얘기였다.

“그럼 시에라 4를 기억해 둬.”

“시에라 4? 저 아시안을 말하는 건가? 왜? 실수할까 걱정되나?”

“너희가 실수할 때를 말하는 거야. 변수가 생겼으니까.”

그 말에 애덤은 답하는 대신에 무전 송신 버튼을 눌러서 옵저버를 호출했다.

“옵저버, 방금 전달한 것 외에 특이 사항 있는지?”

-줄리엣 313으로 적 출입 중, 투입 전에 최종 전달하겠음.

“수신 양호.”

인질 위치로 사람이 드나든다는 소리.

애덤이 이를 인지하면서도, 한쪽에 앉은 강태를 가볍게 넘겨다봤다.

방금 제이크가 한 말을 떠올리면서.

‘…잘해서 뽑혀 왔다는 말인가? 장비도 좋긴 하지만, 그래 봐야 극동아시아의 특수부대에 피지컬도 대단치 못한 수준인데…….’

애덤이 곧 창 너머로 밝아지는 하늘을 보면서 인상을 썼다.

중요한 건 강태가 아니었다.

작전 현장일 뿐.

“후우…….”

그가 심호흡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가쁘게 뛰기 시작한 맥박을 다스릴 즈음.

두두두두두두두―

헬기가 하강하기 시작했고, 곧 멈췄다.

지상에서 대략 1M 위.

그나마 나무가 없는, 수풀 정도가 깔린 위치에서 제자리 비행을 하는 것이었다.

“전원 하강!”

애덤이 외치면서 뛰었고, 한 바퀴 구르며 자리를 잡았다.

그 뒤로 남은 팀원들도 뛰기 시작할 무렵.

뒤에 있던 강태가 닿을 듯 말듯 바람에 날리는 지상을 보며 미소 지었다.

‘역시… 이게 진짜배기 조종이지.’

군 복무 시절에 시범 때문에 보였던 헬기 레펠 하강이 떠올랐다.

아주 깨끗한 아스팔트 바닥을 두고, 무려 10M 높이에서 레펠을 타고 내려왔던 때.

그런 건 솜씨 없는 헬리콥터 조종사나 할 일이었다. 아니면 지면 가까이에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거나.

심지어 여기는 아직 어둠이 다 걷히지 않은 새벽 시간이었다.

그것도 풀숲 한복판.

“끝내주는 솜씨입니다, 조종사님.”

강태가 조종사에게 엄지를 세워 주며 말하고,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리고 자세를 잡은 뒤.

현장 총책임자인 애덤의 지시에 따라 산악 행군이 시작됐다.

또한, 조건도 붙었다.

-추가 지시 떨어지기 전까지는 휴식 없이 속보로 이동하도록.

그렇게 10명 전원이 산악에서 거의 뜀걸음을 하듯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칠게 땅을 밟는 마찰음과 숨소리, 벌레 울음, 거기에 바람에 풀잎이 흔들리는 소음이 울려 퍼지기를 잠시.

“흐어… 확실히 현역이 다르긴 다르네…….”

어느새 뒤로 쳐진 호세가 강태와 나란히 뛰면서도 말을 이었다.

“근데… 너는 더 대단하다, 현역도 아닌데… 후욱, 어떻게…….”

“넌 운동 좀 해야겠다, 벌써 지치면 어떡해?”

“나 애가 둘이야. 후우… 은퇴한 지 몇 년이나 됐고…….”

그렇게 호세가 헉헉 대면서도 강태를 따라 수십 분간 쉬지 않고 뛸 즈음.

대기 위치에 도달했다.

작전지역인 마을 일부가 설핏 보이는 자리.

수풀이 제법 우거져서 숨거나 대기하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시에라 2가 좌면, 시에라 5는 우면 경계하고, 나머지는 작전지역 조준하고 주시하도록.

이어서 제이크의 말이 전파된 뒤.

다들 자리를 잡고 은엄폐를 진행했고, 조심히 상황을 기다렸다.

어느새 해가 뜨는 상황.

그럼에도 헤드셋은 고요했고, 바깥에서는 벌레가 울고 새 지저귀는 소리만 났다.

강태가 질긴 하품을 했다.

‘일이 쉽게 풀리나? 하기는 변수가 있다고 해도 현역인데, 어지간히 알아서들 하겠지…….’

그러면서도 스코프로 총을 멘 민병대 한 명을 찾아 조준할 때였다.

투다다다다다당! 투두두두!

콰가강―!

총성과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여태 조용했던 헤드셋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시에라! 시에라 1, 당장 지원 바람! 당장……!

“아니, 뭐가 어떻게 됐길래…….”

강태가 중얼거리면서 시선을 들자, 마침 근처에 있던 제이크와 눈이 마주쳤다.

“리, 선두에 설 수 있겠나?”

마치 기다린 듯한 말.

비트에서 나오던 강태가 단단하게 대답했다.

“보조만 잘해 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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