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77화 (77/185)

77화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차관님?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나도 구두로 먼저 전달받았어요, 자세한 보고서가 곧 국장에게 전달될 겁니다.

말인즉슨 새 작전이라는 소리였다.

그것도 서류보다 앞서서 통화로 알릴 만큼 급박한 상황.

이에 무슨 일이냐고 대꾸하려던 로버트가 해야 하는 말을 제대로 꺼냈다.

“차관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콩고의 수행 팀은 작전을 완료한 지 6시간밖에 안 된 상태입니다. 치료와 휴식을 제대로 취해야 하고, 필요한 물자를 보충해야 할…….”

그렇게 얘기를 이어 가려 했으나, 차관의 말에 끊기고 말았다.

-콩고에서 미국인 기자가 납치됐어요.

“……!”

-연락이 끊긴 지 9시간이 좀 넘었고, 현지에서 처리 불가능해서 국무부까지 넘어온 상태예요.

그 말에 로버트가 멈칫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미국 국적의 UN 조사관 납치 살해 사건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콩고 정부에서 수십 명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면서 마무리된 일인데, 국무부 내부에서 최초 납치부터 사망까지 분석하고 정리해서 내부 교육 사례로 쓰이는 자료였다.

당연히 로버트도 잘 아는 거였고.

무엇보다 이번에 납치된 사람은 기자였다.

엠바고 조치를 해 놨겠지만, 언론사인 만큼 입을 완전하게 봉인하긴 어려울 거였다.

늦어지면 늦어지는 대로, 압박하면 압박하는 대로 말이 새어 나갈 터.

로버트가 얼른 대답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좋아요, 곧 전자 보고서가 들어갈 테니까, 확인해 보고 빠르게 조치하기 바랍니다.

“네, 차관님.”

달칵, 수화기를 내려놓은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차관에게서 들은 미국인 기자가 납치되었다는 소식도 안타깝지만, 콩고에 나간 찰리 팀도 걱정된 탓이었다.

전화로 말했듯 작전이 끝난 지 6시간도 안 됐다.

다행히 찰리 팀 인원 중에 부상자는 없다고 나와 있지만, 이것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특수부대 출신인 만큼 자잘한 상처는 취급하지도 않거니와, 웬만한 통증은 참는 요령도 잘 아는 탓이었다.

그러나 누적된 상처가 작전에 좋을 리가 없었다.

별거 아닌 거라고 해도, 중요한 순간에 집중을 방해할지도 모를 일.

심지어 찰리 팀은 지난 몇 주간 콩고에서 여러 작전을 수행했고, 오늘 작전은 온종일 연속해서 임무를 치렀었다.

육신의 상처가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데미지가 적잖을 거였다.

물론 강태를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병원에 머무는 동안 실시했던 여러 검사 중에서 심리 테스트 결과가 튼튼하다 못해 강철에 가까웠으니까.

그렇다고 감정이 없거나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전투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인 피로가 거의 없는 데다가, 후유증이 없을 뿐.

강태는 일상생활만큼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만큼, 강태를 혹사하듯 굴릴 수는 없었다.

나머지 인원들도 걱정이 됐고.

‘최선은 찰리 팀의 투입 없이 상황을 끝내는 건데…….’

로버트가 그러면서 도착할 메일을 기다렸으나, 불안감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다름 아닌 콩고였기 때문이었다.

주둔하고 있는 UN군은 아주 부족하고, 미군도 극소수에 불과한 아프리카의 한가운데.

로버트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만약에 이 일에 찰리 팀이 투입된다면… 흑색 작전 중이거나 위장 투입된 1티어 특수부대와 움직이는 게 나을 거고, 그게 안 된다면 정식 용역을 발주하는 방식으로 가능한 많이 지원하는 게 좋겠군. 피로도가 상당할 테니까, 투입 직전까지 정보 교차 검증도 돕고…….’

이미 한 달간 고생한 팀을 위해 가능한 많은 수단을 떠올릴 무렵.

띠링―

컴퓨터 스피커에서 알림음이 울리고, 전자 보고서가 도착했다는 조그만 창이 떴다.

이에 몇 번인가 클릭하고 암호까지 입력하자, 차관에게 들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활자를 읽어 가던 로버트의 눈가가 구겨졌다.

‘이런…….’

거리라도 멀어서 투입되지 않았으면 했는데, 하필 또 가까웠다.

작전 예상 지역까지 약 480㎞.

따지자면 근거리는 아니었지만, 좌우 길이가 1,300㎞가 가뿐히 넘는 콩고의 면적에 비하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미국 기준으로 하면 짧다고 할 정도.

물론 두 나라의 도로 상황이 크게 다르지만, 그것도 군용 정찰 장갑차나 수송 헬리콥터로 차이를 줄일 수 있을 터.

이내 로버트가 제이크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아마 콩고 시각으로 한밤중이겠지마는, 즉시 준비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따르르릉―

그리고 한 번의 신호가 울린 순간.

-…제이크 러셀입니다.

그가 잠을 안 잔 것처럼 전화를 받았고, 로버트가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제이크, 출동 대기 명령이 떨어졌어.”

* * *

“아… 지금이요?”

자다가 불려 나와서 제이크에게 미국인 기자가 납치됐고, 출동 대기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되물었다.

“그래, 지금.”

“어떻게… 고물 승합차 타고 가는 겁니까? 아니면 짐 싸고 나서 자도 되는 겁니까?”

“이동 방법까지는 전파되진 않았지만, 일단 출동 대기만 완벽하게 하고 쉬어. 내가 대기하다가 연락 오면 깨우도록 하지.”

“팀장은 안 잔다고요? 차라리 불침번 순번을 정하는 걸로…….”

“준비나 하고 자 둬, 난 괜찮으니까.”

역시 괜히 리더가 아닌 모양이었다.

달빛을 받은 그가 새삼 대단하게 보이기를 잠시.

눈을 뜬 채로 조는 듯 조용히 서 있던 호세가 가장 먼저 응답했다.

“…분부대로 하죠. 졸려 죽겠습니다.”

그 뒤로 다들 어쩔 수 없다는 듯 준비하고 잠자리에 다시 들었다.

나도 편한 복장을 벗고 질긴 카고바지와 기능성 티셔츠를 입었고, 나머지 장구류도 바로 착용할 수 있게 세팅한 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선잠이 오려던 무렵.

두두두… 두두…….

밤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반군들이 멀리서 쏴 갈기는 총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추측할 필요도 없기, 소리가 뭔지 금세 알았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뭐야? 헬기야?!”

같은 막사에서 자고 있던 델타 팀의 안드레이도 깨서는 기가 막힌다는 듯 말해 왔다.

그의 휘하 팀원들도 마찬가지.

설마 하는 사이에 막사 밖에 나가 있던 제이크가 들어왔다.

“찰리, 나와.”

“…너희들 어디 가냐?”

“추가 계약이 생겼다더군.”

안드레이가 눈을 비비며 물었고, 제이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같이 가려고?”

“가긴 뭘 가? 피곤해 뒤지겠는데……. 시끄러우니까 빨리 꺼지기나 해!”

안드레이가 크게 손짓하면서 배웅을 대신했고, 나를 비롯한 나머지 찰리 팀이 막사를 나갔다.

방향은 연병장.

거친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고, 흙먼지가 날려서 눈이 따가운 와중에 사람 한 명이 마중하듯 다가왔다.

언뜻 보이는 모습이 미국인 같은 인물.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유창한 영어가 들려왔다.

“지앤지 용병 팀? 맞습니까?!”

제이크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각자의 얼굴에 랜턴 빛이 한차례 비치길 잠시.

“좋습니다! 얼른 타세요!”

그가 큰 목소리로 말하고서 헬기로 뛰어갔고, 그 뒤로 우리 팀도 따라 움직였다.

동시에 졸리다던 호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보는 휴이(UH-1의 애칭)군!”

10명 넘게 타도 되는 큼지막한 수송 헬리콥터 UH-1 시리즈 중 하나였다.

한밤중이라서 잘 보이진 않았으나, 2엽 로터의 소리나 깜빡거리는 불빛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은 됐다.

많이 타 보진 않았지마는, 특전사 시절에 레펠 시범 때문에 타 봐서 잘 알았다.

시범을 구경하는 국회의원 같은 고위 공무원들 때문에 지면 가까이에 안 붙이고 높은 곳에서 강하했던 기억이 날 무렵.

탑승한 헬리콥터의 문이 닫히고, 금세 떠오르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

강렬한 프로펠러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새까만 어둠 속으로 헬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못 암담해 보이지만, 내 심정이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미 바뀌기 시작한 메인 스토리하고는 별개로, 인질 구조 같은 미션을 많이 플레이 해 봤기 때문이었다.

방식이나 지역이 다양했는데, 아프리카도 그중 하나였다.

다만, 현실이 된 만큼 상황이 어떤 식으로 바뀔지 예상할 수는 없었다.

경험과 특성을 이용해서 최선을 다할 뿐.

* * *

찰리 팀을 태운 헬리콥터가 2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속도를 줄였다.

제이크가 창 너머를 바라보다가 인상을 썼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4시 즈음 된 시각이었는데, 동쪽 지평선의 가장자리가 남색으로 물들어 있던 탓이었다.

앞으로 한 시간 안에 해가 뜬다는 뜻.

‘…나쁜 신호군.’

좋게 볼 수가 없었다.

신속한 인질 구출 작전이 예고된 만큼, 해가 뜨면 노출이 쉬워서 침투나 구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이런 작전은 밤이 좋았다.

적의 활동이 거의 없는 시간인 데다가, 장비나 경험 면에서도 구출 팀이 유리하니까.

그렇게 제이크가 인질 구출에 대한 각종 상황을 떠올릴 때였다.

쿠궁―

마찰음과 함께 헬리콥터가 내려앉았고,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패치를 뗀 전투복 차림의 사내가 문짝을 잡고 서 있었는데, 내리라고 손짓하려다가 주춤했다.

정확히는 제이크를 보고 반응한 것이었다.

“뭐야, 제이크 러셀?! 당신이야?!”

“…애덤 개리슨?”

과거 군 시절 진행한 작전 중 몇 번 마주친 적 있던 인물이었다.

겉모습은 보통 키에 평범한 백인이었으나, 제이크와 함께 작전했던 사람인만큼 그 이력은 남달랐다.

1티어 특수부대 중 하나인 제24특수전술대대 소속.

제이크가 소속됐던 델타포스와 다양한 작전을 함께한 전적이 있었다.

이내 애덤의 입이 시원하게 열렸다.

“오, 이런! 여기서 당신을 볼 줄이야.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일단 움직이지 그래. 인질 구출 작전을 한다면서?”

“맞아. 어? 워싱턴! 자네도… 아아, 그렇지. 일단 내려. 다들…….”

그렇게 마커스까지 알아보고서 웃으며 말하던 애덤이 뒤따라 나오는 얼굴을 보면서 멈칫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당황한 모습.

“아니… 뭐 이런? 이들이 정말 당신 팀인가? 러셀?!”

그가 레이첼과 강태를 연달아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여성인 레이첼은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고, 아시안인 강태는 신체 능력이나 전투 능력이 백인들과 비교해서 많이 부족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군 생활을 하면서 직접 체득한 것들이었다.

이어서 당황한 애덤의 시선이 제이크에게 향했을 무렵, 딱딱한 답이 돌아왔다.

“작전 설명을 이 땅바닥에서 할 셈인가?”

“아, 아니… 일단 따라와. 이쪽이야.”

제이크와 눈을 마주한 애덤이 고개를 돌렸고, 바삐 손짓하며 움직였다.

물론 떠올렸던 생각은 여전했다.

‘용병들을 불렀다더니… 여자와 아시안이 왔다고?’

기가 막힌 노릇이었으나, 제이크의 위력을 잘 아는 그가 입을 꾹 닫고 작전 막사로 들어갔다.

현지에서 만든 조그마한 흙벽돌 주택.

그러나 안은 달랐다.

“오, 좋은데……?”

마지막으로 들어온 강태가 감탄하면서 내부를 둘러봤다.

바깥의 흙벽돌로 만든 디자인과 달리, 내부는 발전기를 가동한 모니터와 여러 전자 장비가 마련되어 있는 첨단 지휘 통제실이었다.

콩고군의 지휘 건물과는 차원이 다른 곳.

감상을 마친 강태가 흡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이게 제대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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