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이런 머저리 같은 새끼! 두 명? 두 명도 처리하지 못해서 무전을 해?! 내가 한가한 줄 알어?!”
M23의 간부가 고함을 내질렀다.
사방에서 신출귀몰하는, 십수 명이 넘는 용병들을 상대하는 그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숫자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산 어디선가 저격도 이뤄지는 상황.
-그, 그게 아니라… 진짜 너무 잘 쏩니다. 벌써 7명이나 당했습니다. 지금 병력으로는…….
“저격수라도 있나? 그럼 저격을 피해서 자리를 잡으면 되잖아? 장난하나?!”
다시금 사내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도 저격수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건물에 가려지는 위치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돌아오는 답은 예상 밖이었다.
-저격이 아니라… 놈이…….
“뭐?!”
-그놈이 너무 잘 쏩니다. 저희 거는 한 발도 못 맞혔는데, 놈이 쏘는 건 전부 맞습니다.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 너무 멀면 대기하고 있으면 되잖나?!”
-그게, 거리는 100미터에서 120미터 정도긴 한데…….
100M에서 120M.
숫자만 들으면 짧은 것 같으나, 총구를 들고 가늠쇠를 보면 적잖이 먼 거리였다.
사람도 가늠쇠로 보면 손톱만 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못 쏠 거리는 아니었다.
제대로 훈련받은 군인이라면 누구나 명중시킬 수 있고, 또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반군도 100M의 적은 맞히도록 훈련했다.
물론 총의 상태가 안 좋고, 영점이 안 맞아서 빗나가는 탄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그렇다고 적중시키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숫자가 많으니까 밀어붙이면 됐다.
우회해도 될 일이고.
물론 제대로 된 군사교육을 받았던 건 지휘관인 그밖에 없었다.
이곳에 용병들이 오긴 했으나, 그들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감시하러 왔던 불편한 존재들이었고.
“하… 우회해서 공격해. 아니면 일시에 집중사로 쏴 버리던지. 이 시점에 이런 기본을 교육해야 되나?”
-해 봤습니다, 했는데… 7명이나 전사했습니다. 지금 아! 이런… 전사자가 한 명 더…….
“후…….”
이어지는 참담한 보고에 사내가 결국 가까이 있던 부하를 불렀다.
“뒤쪽으로 쥐새끼가 두 놈 정도 들어왔다고 하니까, 네가 한 10명… 아니, 20명 정도 끌고 가서 죽여 버리고 와.”
그리고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20명 정도 그쪽으로 갈 거니까, 겁먹지 말고 제대로 자리 지켜. 알았나?”
-저, 좀 더 보내 주시면…….
“이런 머저리 같은……! 여기서는 놀고 있는 줄 알아?!”
고함을 내지른 그가 무전기를 허리 벨트에 걸었다.
그거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특수부대라고 해도 고작 2명에 불과했으니까.
20명을 상대로 어쩌진 못할 거였다.
‘침투에 성공했다고 아주 오만한 모양인데…….’
사내가 비릿하게 웃었다.
지금은 처음과 달리 어느 정도 준비가 된 탓이었다.
초병에 병력 대기, 증원까지.
2명 정도야 충분히 제거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 큰 착각 따위로 일이 틀어지면 바로 퇴각 명령을 내릴 예정이었다. 그러면 우르르 다 빠져나갈 터.
화물을 다 못 싣고 차량도 두어 대 낙오되겠지만,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었다.
감수해야만 했다.
오히려 당장 예비 병력이 20명이나 일선에서 빠진다는 게 아쉬울 뿐.
그러나 8명이나 되는 부하들이 죽었다고 했으니, 안 보낼 수도 없었다. 2명한테 당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그가 근처의 부하를 불렀다.
“광물하고 장비는 다 실었나? 얼마나 진행됐어?!”
“마지막 화물 적재 중입니다!”
“그럼 다 시동 걸고 떠날 준비 하라고 해! 우리도 가서 차에 탈 수 있게 해 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다른 부하마저 명령을 받고서 서둘러 움직인 뒤.
사내가 힘껏 고함쳤다.
“겁먹지 말고 쏴! 놈들을 죽이라고! 저 새끼들이 얼마나 좆같은 새끼들인지 모르나?! 우리 땅을 빼앗고, 우리 동지를 죽이고, 이제는 우리까지 죽이려고 온 놈들이야! 여기서 항복하면 놈들이 우리의 까만 피부를 벗겨서 기념품으로 갖고 가게 될 거야, 그걸 바라나?! 아니라면 반격해! 겁먹지 마라!”
그가 부하들의 공포와 분노를 일깨웠다.
안 그러면 허접한 반군들이 전선에서 이탈할지도 몰랐다.
공격할 때처럼 약탈이나 전리품으로 동기를 부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무엇보다 이 순간만 넘기면 됐다.
여기서 대략 20㎞만 벗어나면 1개 연대에 버금가는 M23 본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로 들어가면 안전할 터.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다시금 중국제 무전기가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치지지직―
이어서 사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20명이 흩어졌습니다! 이걸로는 안 됩니다! 더 보내 주십시오, 더!
“무슨 소리야?!”
-반 정도는 접근하다가 죽었는데, 나머지가 도망갔습니다! 우리 쪽도 무너질 것 같습니다.
“제기랄!”
-아마 드론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놈은 지원군이 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드론……?”
동시에 사내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예상 못 한 건 아니었다. 선진국에서는 다들 드론 하나씩은 사용하니까.
그래서 진작에 하늘을 확인했었다.
아무것도 없었고.
지금도 서쪽에 불그스름한 노을이 내리기 시작한 평범한 오후처럼 보였다.
그러나 보고를 들은 덕분에 이질적인 게 시야에 들어왔다.
사내가 주춤했다.
“혹시 저거…….”
하얀 점 같은 게 보이는 것이었다.
너무 작아서 새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정상적인 생물은 아니었다.
‘드론이군……!’
판단을 내린 그가 서둘러 명령을 하달했다.
“그래, 젠장할 드론이 있으니까, 다들 건물로 들어가서 반격해.”
-저희는 이미 건물 안에 있었고, 방금 도착한 지원 병력이 당했다는 소립니다!
“이런 젠장……!”
-더, 더 많이 보내 주십시오!
“기다려 봐.”
대답한 그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이봐! 거기 너! 뒤쪽으로 들어온 놈들이 있다고 하니까, 30명 정도 데리고 가서 죽여 버려!”
“네? 방금 가지 않았습니까? 20명이나…….”
“그냥 가! 빨리!”
사내가 그냥 밀어 버리듯 보냈다.
약 200여 명의 인원에서 총 50명이나 빠지게 됐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도 상당히 놀랐기 때문이었다.
경계병도 배치해 두고, 예비병도 둔 후방이 한두 명에게 뚫리는 건 말이 안 될 일.
그때였다.
“……?”
그의 귀로 여태 듣지 못했던, 연한 총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텅텅텅… 텅… 텅텅…….
소음기를 거친 듯한 총성.
그것도 게릴라전을 펼치는 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들려오는 거였다.
치지지직―
이어서 무전기 잡음도 또 들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람 목소리는커녕, 어떤 소리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냥 송신 버튼만 누른 듯 지직거린 게 전부.
상황 판단이 어려워서 그가 다시 부하를 부를 때였다.
텅텅! 텅텅텅―!
이제는 선명하다 못해 커다래진 총성이 그의 귓가로 들려왔다.
“……!”
사내가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그리고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누르고 소리쳤는데,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답해, 대답하라고!”
연신 외쳤으나, 조용한 건 마찬가지.
“제기랄……!”
욕설을 뱉은 그가 일단 엎드리고서 반대편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드론이 있다면 위에서 볼 수 있으니까, 악착같이 기어가서 참호로 연결된 건물로 들어가려는 거였다.
이에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서, 근처의 부하를 부르려던 무렵이었다.
퍽, 철퍼덕.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휙 떨어졌다.
엉덩방아를 찧듯 콱 떨어진 사람이었다.
그것도 조금 전에 자신이 30명을 데려가라고 일렀던 부하였다.
“……?!”
놀랐다가도 그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할 무렵.
입이 벌어졌다.
미간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었고, 어느새 참호 바닥으로 피와 뇌수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흐억!”
놀란 사내의 입에서 기겁한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참호 너머를 올려다본 순간.
단번에 이질적인 것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수십 미터 거리에 있는 조그만 흙벽돌의 창가.
거기에 사람의 형체가 있었다.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아시안……?’
뒤늦게 뭔가가 떠올랐다.
피부색과 생김새를 알아본 것이고, 그의 손에 총이 들려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였다.
퍼벅!
그의 머리가 젖혀졌다.
이마에 총알이 적중한 것이었다.
충격에 흔들린 몸이 뒤로 넘어가듯 주저앉고, 뒤통수로 울컥거리며 피가 쏟아져 나왔다.
스윽.
그를 맞힌 강태는 창틀에 급히 얹은 팔을 빼며 자세를 다시 잡았다.
이어서 근처에 서 있는 이를 조준하며 말했다.
“탱고 다운, 교전 수칙에 의거해서 추가로 적 사살하겠음.”
그리고 또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터엉─!
조금은 편안한 모습.
거리가 멀어져서 위험할 일이 크게 줄어든 덕분이었다.
반군도 사격할 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특수부대에 비하면 턱도 없이 부족하고, 강태에 비하면 위험할 게 하나도 없었다.
물론 숫자가 너무 많거나 화기가 달라지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한 번에 덮치는 게 무섭지, 나눠서 오는 거야 뭐…….’
2, 30명씩 나뉘어서 온 적들을 차례로 죽이고, 또 죽여서 이곳까지 도달한 상황.
강태가 석양을 받아 점점 붉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방아쇠를 당겼다.
흡사 핏빛에 젖어 가는 듯한 광경.
뒤에서 총성을 듣던 안드레이의 눈가가 가늘게 구겨졌다.
흡사 속사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저 한 발에 한 명씩 죽어 나가고 있을 거였다.
지금은 달리기도 안 하고 가만히 창문에 거치하고 있으니, 2~3발은 필요 없을 터.
그러나 듣고 있는 그는 기분이 묘했다.
놈들을 다 죽이면 마냥 좋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남이 죽이는 걸 듣고 있자니 여러 감정이 섞였기 때문이었다.
직접 하고 싶다는 욕구 그리고 부러움, 질투, 감탄, 두려움까지.
여러 의미에서 강태가 사람이 맞나 싶었다.
물론 대화하다 보면 사람이라는 게 잘 느껴졌지만, 전투할 때만 보면 다른 존재처럼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이 새끼랑 할 때는 입 닥치고 보조나 해야 되겠군…….”
* * *
이른 저녁의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대외협력국.
각종 서류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무렵, 국장실로 새로운 업무 보고서 하나가 올라왔다.
바로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찰리 팀의 임무.
국장인 로버트가 하던 일을 중단하고, 곧장 보고서를 받아서 내용을 확인했다.
이미 3월 한 달 내내 현지에서 여러 작전을 수행하여 관련 보고가 올라왔으나, 이번에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대외협력국에서 방향을 잡은 임무.
정확히는 강태에게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이름, 지안드로 바시카날과 관련된 일.
이에 내용을 살피기를 잠시, 곧 눈이 동그래졌다.
수거한 정보 분석과 CIA의 업무 협조 내용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강렬한 문장이 보인 탓이었다.
‘반군 수장을 포함해서 단독으로 71명을 사살해?’
증파되는 인원을 단계적으로 사살했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 있긴 했었으나, 그건 가볍게 지나갔다.
그 뒤에 나온 결과도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었다.
‘결과가 115명 사살에 93명 생포, 나머지는 도주하면서 광산 거점이 와해돼…….’
적을 붙잡으라고 출동시켰더니, 아예 박살을 냈다.
로버트의 눈에 힘이 들어갔으나, 소리치거나 감탄을 뱉진 않았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게 전부.
‘역시…….’
강태가 세운 수많은 업적 덕분에 면역이 돼서 크게 감탄하진 않는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상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인물답게 강태가 주어진 일을 해냈을 뿐.
물론 국무부에서 상응하는 포상은 부족하지 않게 지급될 거였다.
그리고 뒤에 나온 CIA의 분석 내용을 살필 무렵.
띠리리리─
인터폰 벨이 울리면서 LCD 창에 번호 하나가 떴고, 확인하던 로버트가 멈칫했다.
직속 상관인 차관의 개인 번호였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이 넘었는데… 왜……?’
의아해하면서도 로버트가 전화를 받았을 때였다.
-엔더슨, 콩고에도 수행 팀이 하나 나가 있죠?
“네? 아, 네.”
갑작스러운 말에도 로버트가 주춤하며 답했는데, 이어진 말은 좀 더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정확히 위치가… 아니, 그 팀 출동 대기 시키세요,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