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안드레이는 방금 느꼈던 감정을 새삼 또다시 느끼고 있었다.
강태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
‘이 새끼, 도대체 뭐야?’
퇴출하는 과정에서 가까이 목격한 강태의 모습이 역시나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 주간 간접적으로 보고 들었던 것보다 대단했다.
타다다다닷!
터더덩―!
달리면서 격발하는데,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모두 박혔다.
그것도 CQB(Close Quarters Battle) 같은 근거리가 아닌, 50M가 넘어가는 제법 먼 거리.
또한 적이 달리는 정방향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각 혹은 측면 쪽.
제대로 격발하기 위해서는 필히 정지해야 했다.
그게 기본이었다.
프랑스 외인부대 공수연대 출신으로 아프리카와 동유럽 쪽에서 근무했던 안드레이가 배운 것이고, 또한 실전에서 직접 익혔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정면으로 오는 적이라면 좀 뛰면서 쏴도 맞겠지만, 측면은 달랐다.
위아래, 좌우로 총구가 다 흔들리는 탓이었다.
한데 강태는 여전히 달리면서, 측면을 향해 격발하고 있었다.
터더덩! 터덩― 텅!
그러자 40~50M 거리에서 같이 달리듯 쫓아오던 반군 2명이 쓰러졌다.
고작 탄환 6발로 사살한 것이다.
더불어 그의 짐작이 맞다면, 빗나간 탄도 없을 거였다.
5.56㎜ 소총탄은 1~2발을 맞고도 움직이는 경우가 있으니까, 습관적으로 3발씩 박아 넣었을 터.
안드레이도 전투 광경을 다 보진 못했다.
한쪽 면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목격한 건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였고.
탁, 잠깐 멈춰선 타이밍에 안드레이가 물었다.
“…너 얼마나 다운시켰어?”
“11명.”
“11명이라고?”
안드레이가 되물으면서 움찔했다.
그가 퇴출하는 과정에서 본 반군이 몇몇 있었는데, 제대로 맞혀서 쓰러트린 건 한두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정확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순 없었다.
맞혔다는 감각만 남을 뿐, 실전의 긴장으로 시야가 다소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강태는 더 괴물 같았다.
단순히 사격술만 뛰어난 게 아니라, 전장에서 작은 동요조차 안 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전장에서는 베테랑들조차 과다한 긴장으로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PTSD를 얻는 경우도 부지기수기 때문이었다.
한데 강태는 별 영향이 없어 보였다.
물론 그 속내까지 정확하게 알 도리는 없지만, 안드레이가 보기에는 아주 멀쩡했다.
주변에서 무너져 간 사람들을 비롯해 자신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였고.
“파이프, 여기는 돌고래. 이동해도 되는지?”
-여기는 파이프. 돌고래, 이동해도 좋음. 후방 안전 확보되었음.
그사이, 강태는 호세와 무전을 마치고서 안드레이의 어깨를 짚었다.
이동하자는 신호.
안드레이도 잠깐의 상념을 날려 버리고, 강태와 함께 달렸다.
이제 퇴출의 마지막 단계였다.
광산 단지를 벗어나서 우거진 수풀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
모든 게 순조롭게 끝났다.
정확히는 안드레이 혼자 감탄하고 놀라고 긴장했을 뿐, 강태는 훈련 일과를 처리하듯 움직인 것이었다.
달칵, 방탄복 가슴 가운데의 내비게이션 보드를 펼친 강태가 시선을 돌렸다.
“안드레이, 마체테로 길 좀 열어 줘.”
“아아, 그래.”
안드레이가 허리춤의 마체테를 뽑았고, 강태의 엄호를 받아 가면서 우거진 덤불과 나뭇가지를 끊어 내면서 통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곧 기다렸던 팀원과 마주했다.
화면을 들여다보며 드론을 조작 중인 레이첼과 삼각대를 펼쳐 놓고 저격총을 껴안 듯 주저앉아 있는 호세.
무어라 말이 나오기도 전에 강태가 가방을 내려 두며 용건부터 꺼냈다.
“이건 SSE 끝낸 가방이고요. 지금 우리 팀장 쪽은 어때요?”
“…아직은 성공적으로 임무 수행 중이에요.”
“아직은?”
강태가 되물었고, 레이첼이 휴대용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이어서 대답했다.
“유탄을 이용해서 테크니컬 여러 대를 파괴했고, 빠른 게릴라전을 벌이는 상황인데… 반군이 생각보다 많이 결집했어요.”
“결집? 무질서한 거 아니었어요?”
“방금까지 그랬는데, 어느 정도 수습돼서 퇴출할 준비를 진행 중이에요. 아마… 10분 안팎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요.”
그 말에 마찬가지로 가방을 내려 둔 안드레이도 고개를 기울였다.
“저 머저리 새끼들이 수습하고 퇴출까지 한다고?”
“아마도 지휘관이 우수한 것 같아요.”
“반군 지휘관? 여태 무질서한 거 아니었나?”
“무질서했던 건 전투가 아니었어요. 내부 정리가 안 됐던 거였죠, 교전이 벌어지고 나서부터는 병력 응집과 반응이 제법 빨랐어요.”
“미친, 하필 여기에 전투형 지휘관이 있다고?”
“네, 그가 지금도 T자 참호선에서 교전하고 지휘 중에 있어요.”
그 말에 강태도 미처 몰랐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고, 안드레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참호?!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그 말에 레이첼도 고개를 끄덕였다.
“평시에는 참호 위 뚜껑을 덮어서 항공 사진에서도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유사시… 그러니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개방해서 사용하는 것 같구요.”
“그 참호 좀 볼 수 있겠어요?”
어느새 강태가 레이첼의 가까이에 다가가며 물었고, 휴대용 모니터에 곧 전장의 상황이 드러났다.
“자… 여기…….”
“오, 진짜 참호를 만들었네?”
방금 말했던 ‘T’자 모양으로 만든 참호가 있었다.
딱 봐도 제대로 만든 듯 보였다.
위치며, 모양, 깊이까지 모두 쓸 만하다 못해 아주 준수했다.
또한 그걸 잘 써먹고 있었고.
“지휘관 능력이 좋거나… 아니면 그 특수부대 출신이 수를 좀 쓴 것 같은데…….”
“저도 같은 판단인데, 아마 전자가 맞을 거예요.”
“지휘가 많이 잘 됐대요?”
“네, 병력 대부분을 수습해서 전투 중인데, 울타리 뒤쪽에서는 퇴출 준비까지 하고 있어요. 멀쩡한 테크니컬에 수송 트럭 대열도 다 갖췄구요. 아마 곧 퇴출할 것 같아요.”
“그냥 날려 버리고 싶네, 이거…….”
“네?”
“아닙니다.”
강태가 짧게 대답했다.
저기다가 그냥 공대지 미사일이나 두어 방 갈기면 끝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럴 순 없었다.
소형 구리 광산이지만, 전략 자원 중의 한 곳으로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파우스트나 재블린, AT4 같은 대전차 화기 같은 것도 없었다.
총기 아래에 부착하는 휴대용 유탄 발사기와 저격 소총 정도만 허용될 뿐, 광산에 부가적인 피해를 줄 만한 공격은 지양됐다.
여기서 강태가 내릴 만한 결론은 하나였다.
“그럼 지휘관을 따는 수밖에 없겠는데…….”
“지휘관은 이쪽 산면에서는 건물과 장애물로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서 저격하기가 어렵고, 참호 안에 있어서 팀장도 쉽게 공격하지 못하고 있어요.”
“뒤로 가면요?”
“뒤는… 처음 침입하고 다르게 경계병이 있고, 상황 발생하면 여유 병력을 돌릴 거예요. 이쪽 건물까지는 접근이 쉽지만, 그 안쪽은 더 위험해요.”
쉽게 말해서 멀찍이 다가갈 순 있어도, 근방에 가긴 어렵다는 뜻.
“소규모로… 한두 명 잠입은 되지 않겠어요?”
“그건…….”
레이첼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 탓이었다. 모두 방심하고 잠든 부대에 침입하거나 현지인처럼 변장했다면 몰라도, 교전 중인 오후에 잠입하는 경우는 없었다.
당연히 교전 사례에도 없는 일이었다.
극단주의 무슬림이 폭탄 조끼를 입고 달려오는 거라면 몰라도, 아군이 반대로 들어가는 일이 없듯.
한데 강태는 계산을 마친 듯 툭 말을 이었다.
“그 용병들 없잖습니까? 어디 있는 것 같아요?”
“전부 사살했을 겁니다.”
“그럼 됐네요. 갈게요.”
“하지만…….”
“저러다가 퇴출하면 막을 순 있고요?”
“그건 어려울 거예요. 마구잡이로 밀고 나가면… 차량 몇 대 정도를 낙오시키는 게 전부일 거예요. 이미 유탄도 다 떨어졌구요.”
“그러니까요. 어차피 팀장을 도와야 할텐데… 좀 더 빠른 길로 갈 테니까, 한번 도와주시죠.”
강태가 결정을 내린 듯 말했으나, 레이첼도 좋다고 말할 순 없었다.
이번 일은 직전의 침투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특수부대 출신이 없다고는 하지만, 인원 차이가 워낙에 컸다. 까딱 잘못하면 사상자가 날 수도 있었고.
그래서 걱정이 됐다.
혹여 강태가 크게 다쳤다면 그녀 역시 감정이 흔들릴 게 분명했다.
물론 관계가 발전한 것도, 감정이 짙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 나름대로 감정을 갖고 있었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거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안 된다고 잘라 말할 수도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기도 하지만, 강태의 실력도 그만큼 대단하기 때문이었다.
분명 보내면 뭐라도 해낼 터.
이에 쉬이 대답하지 못할 때였다.
“에이 씨발… 리! 그냥 가자, 아까처럼 네가 뚫어, 내가 옆에서 보조할게. 그거면 됐지?”
목덜미의 붕대를 풀어 낸 안드레이가 목덜미에 말라붙은 피딱지를 문지르며 말했다.
동시에 몇 걸음 떨어져서 스코프를 들여다보던 호세가 육성으로 말을 붙였다.
“나도 되는 데까지 최대한 커버할 테니까, 네 뜻대로 해 봐.”
그도 강태를 믿었다.
CQB 상황과 달리, 거리가 먼 시가전일수록 사격술에서의 실력 차가 크게 나기 때문이었다.
방금 퇴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건물 안이 아닌, 밖에서 수십 미터 밖의 적을 이동하면서도 모두 적중시켰었다.
가히 사격의 신에 가까운 수준.
이윽고 레이첼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치지 말아요. 무리할 것 같으면 빠지구요. 당신은… 우리 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럼 본대 합류하는 대신, 그냥 후방 치는 걸로 무전하겠습니다.”
침투로 가장 했던 양동작전이, 비로소 진짜가 되는 순간이었다.
* * *
북키부주 남쪽의 구리 광산 중 하나를 지배한 M23의 간부이자 군 지휘관인 중년 사내가 참호 안을 뛰어다니면서 손짓했다.
“너희 여섯! 저쪽! 번개 맞은 나무 쪽으로 가! 양키들이 그쪽으로 간다!”
콩고 정부군의 위관급 장교 출신인 그는 젊었을 적에는 군사 교리를 배우고, M23으로 이적한 이후로는 테러를 통해 실전을 익힌 인물이었다.
햇수로만 약 십여 년째.
그동안 신체 일부를 잃어버리거나 투옥되지 않고, 멀쩡히 살아남아서 광산의 책임자에 올랐었다.
즉, 능력 하나는 좋다는 뜻이고, 그걸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있었다.
만약 제대로 된 나라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더라면, 잘나가는 장교가 됐을지도 몰랐다.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했었고.
이내 찰나와 같은 잡념을 날려 버린 그가 총소리를 듣고 위치를 가늠할 때였다.
치지지지직―
중국제 무전기가 소리를 냈고, 그 뒤로 후방 경계를 맡은 하급 간부의 목소리가 전달됐다.
-뒤쪽에 스파이 새끼가 있습니다!
“스파이?! 무슨 소리야?”
-정확하진 않지만, 아까 그 침입자 같습니다. 근데 더럽게 잘 쏘는……!
그 말에 중년 사내의 미간이 구겨졌다.
보고 받은 침입자는 단 두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막지 못했고, 잡지 못했으나, 그때하고 지금은 큰 차이가 있었다.
교전이 시작된 이래로 망원경을 가진 초병을 세우고, 병력을 증파했으며, 고장 난 테크니컬에서 기관총까지 떼어 와서 배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혹시 몰라서 물었다.
2명이 아니라, 2개 분대가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게 다였다. 그 이상의 인원은 한 번에 내려오기가 쉽지 않은 산비탈이기 때문이었다.
설사 내려온다고 해도 초병에게 들켰을 거였다.
만약 아니라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무조건 퇴각.
화물 적재를 즉시 중단하고, 바로 빠져나가야 했다.
타지 못하는 놈은 내버려 두고.
이에 사내의 입이 주춤하면서 열렸다.
“…몇이나 되는데?”
바짝 긴장하면서, 재차 상대의 총성에 귀를 기울일 때였다.
-아, 예. 2명입니다. 아까 들어왔던 그놈들이 아닐지…….
순간 사내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어서 황당함과 분노가 담긴, 이가 까득 물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개 분대가 아니라… 2명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