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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74화 (74/185)

74화

안드레이는 강태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설령 천운이 따라서 죽지 않았다고 해도, 죽어 가거나 반병신이 돼서 피 흘리고 있을 거라 여겼었다.

강태가 있던 방으로 섬광탄이 굴러 들어갔고 번쩍하면서 터졌으니까.

당연하게도 그건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냥 눈 좀 부신 수준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갖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구적인 피해를 주기도 했다.

눈을 감더라도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고, 귀를 막아도 청력에 어느 정도 손상이 갈 만큼.

더불어 폭발로 인해 물리적인 데미지도 주는 게 바로 섬광탄이었다.

거리가 너무 가깝거나 폭발 순간에 접촉이라도 하면 심각한 화상을 넘어 신체 부위 일부가 고기 조각처럼 터져 나갈 수도 있다.

그것도 이런 좁은 방이라면 효과가 더할 터.

한데 강태는 별 반응 없이 여전히 누운 채로 글록19의 약실을 확인하고 벨트 홀스터에 넣고 있었다.

거기다가 태연하게 상황을 묻기까지 했다.

“적은? 부엌은 클리어 했어?”

“올 클리어인데… 이런 미친 새끼, 너 지금 정상 맞냐? 초점이 약간 맛이 갔는데?”

“어어… 아직 잔상이 좀 남아서 그래.”

강태가 답하면서 눈을 몇 번인가 깜빡거렸다.

중간중간 포트 홀 생기듯 사라졌던 시야가 돌아오고 있긴 했으나, 아직도 허공에 뭔가 떠 있는 듯했다.

그사이, 안드레이가 이번에는 귀를 보면서 물었다.

“다행히 소리는 잘 들리는 것 같네?”

“좀 먹먹한데… 이게 비싼 거라 그런지, 웬만한 건 다 들려.”

강태가 말끝에 헤드셋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현지에서 조달한 게 아니라, 미국에서 신경 써서 구매한 최고급 장비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몸이 젊어서 그런가, 회복이 꽤 빨라. 귀도 그렇고, 눈도 그렇고… 얼추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같아.”

강태가 그러면서 총기 멜빵으로 메고 있던 HK416을 들여다봤다.

말마따나 몸이 젊은 덕에 회복이 빨랐다.

물론 굴러들어 온 섬광탄에 재빠르게 반응한 효과도 있었고.

이에 안드레이가 가볍게 턱짓했다.

“네 뒷덜미는?”

“목? 아…….”

답하던 강태가 손으로 목을 쓸다가 움찔했다.

섬광탄이 터지면서 그 여파로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목뿐만이 아니라, 팔뚝까지.

크게 손상된 건 아니지만, 적잖이 쓰라린 수준이었다.

“쓰… 이건 좀 따가운데. 뭐, 이 정도면 양호하지. 섬광탄 터지고도 살았으니까…….”

“그래, 안 뒤진 게 대단해… 나는 네가 뒤졌을 줄 알았어. 섬광 던지고 진입해 본 입장에서 말이야. 너도… 아니지, 그 눈깔로 뭐가 보이긴 보였냐?”

안드레이가 기가 막힌다는 듯 물었고, 강태가 HK416의 탄 걸림을 해결하면서 대답했다.

“잘 안 보이는데, 이렇게 고개 돌리니까 대충 시야가 나오더라고.”

“…병신 같은 자세군.”

강태가 고개를 비스듬히 꺾어 보였다.

대충 봐도 정상적인 사격 자세와는 거리가 먼, 몸 어딘가가 불편하게 마비된 듯한 형태였다.

안드레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런 자세로 저 새끼들 머리통을 터뜨렸다고?”

“어, 보이기만 하면 되거든.”

명사수 특성의 발동 조건이 그랬다.

그냥 자동으로 조준이 되는 에임핵과는 달리, 쏠 곳을 보고 조준해야 했었다.

그 덕에 연달아 진입한 적을 모조리 사살했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허공에 몇 발 격발하고서 총구멍이 나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상당히 위험했던 상황이지만, HK416을 재장전까지 마친 강태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무전했다.

“가로등, 여기는 돌고래. 주변에 적 없는지 확인 바람.”

대강의 마무리를 한 강태가 늦기 전에 무전을 치자, 금세 레이첼의 답이 돌아왔다.

-현재 확인 불가, 마이애미 팀 보조 중.

“아.”

강태가 짧게 반응했다.

일종의 양동작전 중인 셈이고, 제이크의 팀도 강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쪽은 둘이지만, 그쪽은 제이크를 포함해 총 11명.

산속에 배치된, 호세를 포함한 저격수들도 그쪽을 도울 터.

이에 강태가 아쉽다는 듯 반응할 때였다.

-돌고래, 여기는 파이프. 건물로 인해 시야 일부 제한되나, 당소 측에서 최대한 상황 봐 주겠음. 퇴출 시에 뒤쪽 안전은 완벽하게 확보할 수 있음.

호세의 목소리였다.

강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미국에서 공수해 온 최고급 망원 스코프를 가진 그라면, 드론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저격 실력도 괜찮으니, 안전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을 거고.

판단을 마친 강태가 입을 열었다.

“파이프, 그럼 현재 당소 바깥 상황 어떤지?”

-여기는 파이프, 현재 시야 일부 가려져서 전부 확인 불가능하나, 근방이 혼잡한 것으로 보임. 마이애미 공격으로 인한 퇴출 인원과 반격 인원이 섞여 있으며, 굉장히 무질서함.

“돌고래, 수신 양호.”

강태가 짧게 답했다.

바깥 상황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됐다.

제이크가 유격전을 제대로 수행 중이고, 거기에 반응한 반군은 개판을 치고 있다는 뜻.

안드레이도 할 일을 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싹 다 챙기면 되겠군. 내가 맞은편 방부터 훑고 나올게.”

그가 베테랑답게 빠르게 움직였고, 강태도 바로 SSE에 착수했다.

시신의 소지품을 모두 확인하여 신분을 증빙할 만한 것을 챙겼고, 신체 사이즈를 기록했으며, 얼굴 촬영 및 지문 채취까지 진행했다.

방에 있는 모든 사물을 파악하여 서류나 자료가 될 만한 것들 위주로 챙겼고.

이어서 부엌 겸 거실 같은 공간으로 나갔을 때였다.

“어……?”

강태가 주춤했고, 안드레이의 미간도 구겨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군용 드론이 담겨 있는 큼직한 하드케이스.

“이거 네가 부순 거랑 같은 거냐?”

“아마도…….”

강태도 확신하지는 못했으나, 기억을 되돌려 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밤중에 야간 투시경을 통해 불분명하게 본 거라서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추락시킨 기체와 비슷한 것 같았다.

아니어도 SSE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면 알 수 있을 터.

그렇게 메모리 카드를 비롯해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담아 나갔다.

그렇게 거의 마무리가 될 즈음.

끼이익─

주방이 아닌, 입구 쪽에서 작은 마찰음이 들려왔다.

문이 천천히 밀리는 소리.

안드레이가 바로 총을 고쳐 잡으며 반응했고, 청력이 회복되기 시작한 강태도 시선을 들었다.

이어서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말은 없었지만, 총구 끝이 움직이는 걸로 각자가 경계할 방향을 정한 것이었다.

이어서 둘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벽을 타고 들어가듯 엄폐하면서 각자의 화기를 든 것이었다.

그리고 안드레이가 벌어진 문틈에서 진입해 오는 형체를 목격한 순간.

텅! 텅! 터어엉─!

소음기를 거쳐 간 묵직하고도 제법 큰 총성이 울려 퍼졌다.

강태의 것이었다.

“……!”

안드레이가 주춤했다.

강태의 실력이 상상외로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솜씨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들었고, 작전을 함께하면서 어깨너머로 봐서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단둘이 투입되고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진짜 미친 새끼가 따로 없군.’

분명 안드레이도 훈련받은 대로, 또한 작전을 수행했던 대로, 건물의 구조를 떠올리면서 적의 상체가 있을 만한 쪽으로 총구를 겨눴었다.

심지어 오른손잡이가 사격하기 좋은, 엄폐물을 왼쪽에 낀 편한 위치.

한데 안드레이가 적을 인지했을 때, 강태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도 무려 세 번.

더불어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고, 쇄골과 목, 얼굴까지 가뿐하게 맞혔다.

“허…….”

기가 차서 한숨을 뱉은 안드레이가 여전히 문가를 겨누던 무렵이었다.

-돌고래! 건물 외부에 적……!

돌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자신이 누군지도 밝히지 않은, 다급한 내용.

그러나 강태와 안드레이 모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서 부엌에 있는 조그만 창가로 총구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호세였고, 여기서 위험한 외부 공간은 창문 하나인 탓이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다다당─!

투두둥!

창밖에서 쏘고, 안드레이가 응사했다.

눈 깜짝할 사이.

그러나 도와야 할 강태의 위치에서는 각도가 안 나와서 적의 총구 끝만 가까스로 보였다.

보이지 않으니 쏠 수도 없었다.

급하게 걸음을 옮겨서 시야가 보이는 자리로 옮기려던 순간.

퍼벅─!

뭔가 터져 나가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핏방울이 창가 안으로 튀고, 묽은 액체 따위가 공중으로 흩날렸다.

“……!”

자리를 옮기던 강태의 눈이 동그래졌다.

방금 들은 소리가 뭔지, 본 게 뭔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머리통이 터지면서 뇌수가 나온 상황.

강태가 다가가다가 주춤한 사이, 헤드셋으로 목소리가 들어왔다.

-여기는 파이프, 타깃 다운.

호세였다.

망원 스코프로 상황을 보던 그가 무전하고, 이어서 격발한 거였다.

조금 늦어서 안드레이와 적 사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긴 했으나, 어쨌든 저격에 성공했다는 소리.

호세의 무전이 덧붙어 나왔다.

-돌고래, 이상 없는지?

강태의 눈이 거의 반사적으로 안드레이에게 향했다가 멈칫했다.

피가 보인 탓이었다.

그것도 목덜미 부근에서 적잖게 피가 나온 모습.

“안드레이?!”

“으, 이런 개좆같은…….”

안드레이가 목을 짚었다.

방금 사격 과정에서 목덜미 쪽이 화끈거리면서 피격됐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목이 관통되거나 깊게 파인 건 아니었다.

스쳐 간 수준.

그러나 안드레이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1㎝만 더 안쪽으로 들어왔으면, 목의 살과 근육이 한 움큼은 떨어져 나갔을 거라고.

그랬다면 당연히 죽었을 것이다.

경동맥 같은 게 터져서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로 죽든지, 가까스로 응급 처치하고도 후송하는 과정에서 결국 눈을 감을 터.

“상처가 얼마나 깊어? 의식은? 시야는 괜찮고?”

강태가 황급히 다가오며 상태를 물었는데, 안드레이가 짜증 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됐어, 뒤질 정도는 아니야.”

“기다려 봐, 일단… 이걸로 지혈하고 있어.”

강태가 허리춤 뒤에 달린 구급 키트에서 붕대 한 뭉치를 꺼냈고, 안드레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서 대충 감았다.

피가 번져 나갔으나, 다행히 출혈 속도나 출혈량이 심각하진 않은 수준.

“나가기나 하자, 다 챙겼잖아?”

안드레이가 그렇게 할 일을 바꿔 말할 때였다.

-돌고래, 여기는 파이프! 신속히 복귀하도록! 다운된 타깃 근처로 미식별자 접근 중. 약 10명… 거리 가까워질 시 사격하겠음. 즉시 퇴출하기 바람.

호세의 목소리가 헤드셋을 타고 전해졌고, 그와 동시에 강태와 안드레이도 시선을 주고받았다.

의미는 명확했다.

퇴출.

“내가 전방하고 우측 맡고, 네가 좌측… 괜찮겠어?”

강태가 핵심만 빠르게 뱉어 냈다.

퇴출 시에 각자 경계할 방향을 말하는 거였는데, 듣던 안드레이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괜찮기는 제기랄, 좀 다쳤다고 병신 취급을… 좌측은 몸뚱이를 던져서라도 다 막을 테니까, 개같은 걱정은 하지 마. 안 그래도 쪽팔리니까.”

단단하다 못해 아주 거친 대답에, 강태가 씩 웃으며 발을 내디뎠다.

이제 퇴출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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