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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73화 (73/185)

73화

안드레이와 함께 광산 방향으로 내려갔다.

약간의 비탈을 타고, 우거진 나무와 수풀을 젖히고 꺾으며 잘라 내면서 이동하길 잠시.

“악, 이런 젠장……!”

안드레이가 욕설을 뱉었다.

반팔 소매 아래, 팔꿈치 부근이 어딘가에 긁힌 듯 상처가 생긴 탓이었다. 금세 굵은 핏방울이 맺히더니 줄줄 흘러내리기까지 했고.

이에 확인하고서 다시 전방을 경계하며 물었다.

“안드레이, 멀쩡하지? 중독된 건 없고?”

“으… 그냥 가, 제기랄.”

그의 말에 그러려니 하고 마저 움직였다.

안드레이의 성격이 괄괄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나도 여러 번 다쳐 봐서 아는 것이었다.

교전 상황이 아닌데도 긁히거나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특전사 시절에 훈련하면서 겪어 본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콩고의 밀림에서 더 많은 상처를 봤었다.

열대 기후에 걸맞은 토착 식물의 사이즈나 생김새가 종종 예상을 건너뛴 데다가 벌레까지 상상 이상으로 크거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람 땀 냄새에 환장하는 건지, 툭하면 날벌레 같은 게 들러붙어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곤 했다.

콩고군이 이것 때문에 발전이 더딘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탁.

내가 목덜미에 붙은 손가락만 한 벌레를 잡았고, 동시에 안드레이가 마체테를 휘둘러 덩굴을 끊어 냈다.

콰직!

식물이 아니라, 무슨 고기를 베는 듯한 소리가 들릴 무렵.

전방을 좀 더 예의주시해서 바라봤다.

어느샌가 냄새가 난 탓이었다.

흙이나 풀 냄새, 달달한 과일과 꽃향기가 아닌 매캐하고도 인위적인 냄새.

구리 광산의 것이었다.

“가로등, 여기는 돌고래. 이동 경로 깨끗한지 확인 바람.”

바로 무전을 쳤는데, 아까 거슬렸던 그 문제가 여기서도 나왔다.

-돌고래, 여기는 가로등. 나무로 인해 식별 어려움. 상공에서 확인 가능한 위치로 이동하기 바람.

“수신 양호, 이동하겠음.”

나무가 너무 많고 크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였다.

이에 움직여서 하늘이 보일 만한 곳으로 이동하자, 바로 레이첼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는 가로등, 돌고래 현 위치 파악됐으며, 예상 경로로 현지 인부나 반군으로 추정되는 신원 미상인들 파악됨. 최소 3명 이상. 주의하면서 접근하기 바람.

“돌고래, 수신 양호.”

안드레이도 드디어 마체테를 회수해서 허리춤에 걸었고, 대신 그의 AR-15를 들었다.

그리고 그와 신호를 주고받은 뒤에 있는 힘껏 뛰었다.

첫 목적지는 폐기물 처리 공간.

정확히는 꽤 높게 쌓인 자루 뒤, 레이첼이 알려 줬듯 사람 몇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었다.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바쁘게 달려 움직인 뒤.

묵직하게 담긴 자루에 기대면서 얼른 좌우를 확인했다.

멀리서 본 것보다 상황이 안 좋았다.

‘…진짜 숨을 틈이 없네.’

담벼락이나 주차된 차량 같은 장애물이 있는 마을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대충 만든 곳이었다.

광산에 필요한 설비가 먼저 만들어진 뒤, 남는 자투리땅에 숙소나 관리실을 올린 상태.

그마저 흙벽돌을 이용해 되는 대로 지어 올린 단층짜리 건물만 있었다.

그래서 나와 안드레이가 가야 하는 기관총 진지 역시 2, 3층이 아닌, 1층 지붕에 올라가 있었다.

“씨발, 여기서 어떻게… 존나 달리는 수밖에 없나?”

안드레이가 내 바로 옆에서 중얼거리듯 말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 잘 아네.”

“알기는… 제기랄…….”

“그럼 약속한 순서대로 가자. 알지?”

짜증을 삭히는 그에게 미리 얘기했던 것을 상기시켜 줬다.

모든 건 내가 판단하고, 내가 우선하여 움직이며, 안드레이는 그걸 순순히 따르는 조건.

쉽게 말해 단둘뿐인 팀의 임시 팀장인 셈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건지, 안드레이가 찌푸린 얼굴로 대답했다.

“그 약속을 깨 버리고 싶지만… 젠장할, 제대로 뛰어. 신호나 잘 주고.”

“그래. 그럼… 가로등? 여기는 돌고래, 현재 이동해도 되는지?”

그에게 대답하고 나서 바로 레이첼에게 물어서 안전하다는 답을 듣고 뛰었다.

물론 그마저도 마땅치는 않았다.

길가에 있을 만한 담벼락 같은 장애물이 없어서 대충 쌓은 흙벽돌 건물에 바짝 붙어야 했으니까.

이에 바짝 붙은 채로 바로 안드레이에게 신호를 줘서 뛰게 했다.

그걸 세 번이나 더 반복한 뒤.

탁!

드디어 기관총 진지가 있는 건물에 무사히 도착했다.

퇴각 준비로 광산 구역이 아주 개판이고, 레이첼이 기가 막힌 지시를 내려 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기관총 진지는 올라갈 사다리만 덩그러니 있는 상황.

또한 기관총 사수도 도망갈 준비를 하는지, 위에서 부스럭대면서 가방을 싸고 있었다. 부사수는 진작부터 없었고.

마지막으로 주변을 훑으며 추가 위험을 파악하는 사이, 안드레이가 수신호를 해 보였다.

그가 직접 올라가겠다는 뜻.

이에 고개를 끄덕여서 허락하자마자, 안드레이가 갖고 있던 AR-15를 비스듬히 돌려놓고, 품에서 대검을 꺼내어 사다리를 올랐다.

나무 사다리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를 잠시.

“크헉, 으얽……!”

지붕 쪽에서 비명이 들리면서 잠깐 몸부림치는 소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깐을 더 덜그럭거린 안드레이가 손에 뭔가를 들고 사다리를 내려왔다.

“부품 좀 빼 왔어, 존나 뻑뻑하더군.”

짧게 말해 무력화시켰다는 뜻.

엄지를 들어 보이는데, 불쑥 레이첼의 무전이 들려왔다.

-돌고래, 여기는 가로등. 목표 건물에서 2명 출타함. 12시 방면 화물 적재 중인 트럭 방향으로 움직였고, 건물에 최소 4명 내외로 있을 것으로 추측됨.

“돌고래, 수신 양호. 즉시 이동해도 되는지?”

-3시 방면 주의하면서 이동하도록.

답을 듣자마자 바로 뛰었다.

인원이 두 명 줄어든 것만으로도 승산이 확 뛰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가 패배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위험해지거나 총에 맞을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 터.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내가 해야 하는, 스스로의 행동 강령을 되짚으면서, 레이첼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움직였다.

그리고 도착한 단층 건물 옆.

“후우… 후우…….”

호흡을 고른 안드레이가 등에 메고 있던 샷건을 문고리에 가져다 댔다.

통로 개척(Breaching)을 위한 총구의 위치와 발사각도 모두 완벽한, 그야말로 모범적인 자세.

격발하기 전에 사전에 약속한 대로 제이크에게 무전부터 했다.

“마이애미, 여기는 돌고래. 현장 도착 완료. 신호 필요함.”

-여기는 마이애미, 신호하겠음.

콩고군과 미리 말했던 그 퇴각 지연을 하려는 거였다.

정확히는 우리가 소음을 낼 만한 때에 맞춰서 퇴각하는 적과 유격전을 벌이는 일종의 양동작전.

제이크가 시끄럽게 하면, 그 사이에 우리가 치고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윽고 안드레이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 올라가고, 나도 견착할 준비를 하며 총을 고쳐잡는 사이.

콰앙-!

타다다다다다당!

멀리서 폭음과 함께 총성이 울려 퍼졌고, 동시에 우리 쪽에서도 샷건 총성이 터졌다.

퍼엉!

이어서 벌어지는 문 사이로 어깨를 밀어 넣으며, 바로 총을 들었다.

그냥 마구잡이로 들어가는 건 아니었다.

레이첼의 드론으로 파악한 건물 크기, 창문 위치, 문에 달린 경첩 따위로 내부 구조를 대강 짐작하고 들어가는 거였다.

원래 훈련 때는 도면을 거의 암기하는데, 여기서는 어쩔 수 없었다.

도면이 있을 리가 없는 곳이니까.

또한 체계도 없는 콩고군과 함께 일하는 상황인 만큼, 현장에서 알아서 판단하고 움직여야 했다.

지금처럼.

‘들어가서 바로 왼쪽에 방문, 맞은편 대각선에 방문 그리고 직선거리에 부엌 겸 식당…….’

육안에 담긴 정보를 빠르게 해독하면서, 동시에 발을 내디뎠다.

서서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설령 잘못 봤더라도 우선 앞에 주어진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예컨대 진입.

내가 입구에서 주저하면 뒤에서 안드레이가 백업은커녕, 들어오지도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로 왼쪽 방문을 열고 알아서 들어갔다.

‘빈방.’

직선 거리의 방구석부터 남은 구석을 90도로 돌아보듯 확인한 뒤에 바로 몸을 돌려 나왔다.

안드레이가 마침 복도를 경계하는 상황.

바로 그의 허벅지를 쳐서 신호를 주고, 대각선 방향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고 했는데, 문이 저절로 열렸다.

“……!”

내가 들어가려는 동시에, 안에서 문을 열고 나오려는 거였다.

민머리의 백인.

첫 작전에서 봤던 용병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차고 있는 장구류나 복장까지.

그 모든 게 주춤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은 뻔했다.

텅텅텅―!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냥 선 채로 쏘진 못했다.

발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관성 때문에 내 발은 계속 앞으로 뻗어지고 있었다.

한데 상대 역시 앞으로 나오는 상황.

이러다가는 얽혀서 제대로 격발하지도 못할 거고, 쏴 봤자 방탄복 위에 탄환이 박힐 게 분명했다.

‘씨팔!’

옆으로 눕듯 황급히 몸을 틀고, 동시에 HK416을 몸 바싹 붙이면서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텅텅! 텅텅텅!

몸이 기우는 와중에도 머리에 가까스로 한 발을 맞혔다.

쿵, 하고 바닥에 넘어지고 난 뒤, 누운 채로 확인 사살을 하려던 때였다.

철컥.

방아쇠가 걸렸다.

‘아, 기능 고장.’

탄 걸림인지 뭔지 확인하고 조치해야 되지만, 얼른 글록19를 뽑아 쐈다.

이 방으로 적이 들어올 것 같기 때문이었다.

방금 총성이 들렸고, 인기척도 느껴진 탓이었다.

이에 확인 사살을 마무리한 글록19를 여전히 든 채로,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려던 때였다.

-제기랄! 부엌에 최소 둘! 나는 좌측 방에서 못 나가고 있어! 그쪽 조심해.

“내가 섬광탄을 던질게.”

대답하고 나서 내 플레이트 캐리어에 달린 섬광탄을 잡을 때였다.

툭, 데구르르―

뭔가가 굴러왔다.

시선이 반사적으로 소리를 따라 내려갔다가, 반 박자 늦게 상황을 인지했다.

‘섬광탄?’

아직 내 거는 떼지 않았고, 방금 하나가 굴러 들어와 있었다.

그것도 핀이 뽑힌 상태.

‘씨팔.’

아주 짧은 순간에 본 거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방금 목격한 게 내가 쓰던 것과 동일한 제품이었으니까.

당연히 소리 내어 욕하거나 알릴 틈도 없었다.

소리를 듣고, 시선을 내리고, 상황을 인지한 것조차 아주 짧은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이론적으로 이다음에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도망.

그러나 방에 갇힌 상황이라, 최대한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섬광탄은 빛으로 눈만 멀게 하는 게 아니라, 폭음으로 귀까지 나가게 하며, 충격파까지 적잖이 주니까.

몸을 날렸다.

들어오는 순간에 잠깐 봤는데, 아마 매트리스가 있을 것 같은 위치였다.

아니어도 어쩔 수 없었다.

적이 총구를 겨누고 준비 중일 문밖으로 점프할 순 없었으니까.

물론 적을 모두 사살할 자신은 있지만, 나도 적이 쏜 탄환을 피하긴 어려울 거였다. 아마 두어 발은 몸의 어딘가에 박힐 게 분명했다.

최소 부상, 심하면 사망이었다.

이에 머리를 돌리고, 눈을 감으며, 귀를 덮은 헤드셋을 양손으로 누르는 순간.

퍼어어어엉―!

감은 눈꺼풀 위로 강렬한 빛이 확 스쳐 갔다.

동시에 헤드셋 틈으로 날카로운 소리가 찌르듯 들어왔으며, 목덜미와 팔뚝 같은 가리지 못한 피부 위로 폭발의 열기가 끼쳤다.

“읍!”

이어진 충격이 장기를 흔들어서 절로 신음도 나왔다.

내가 남의 방에 던져 넣기만 했었는데, 막상 섬광탄을 맞고 보니 역시나 차원이 달랐다.

강철 멘탈 덕분에 이 모든 상황을 돌아볼 수 있었는데, 중요한 건 다음이었다.

훈련받은 놈들이라면 앞으로 1, 2초 안에 들이닥쳐서 사살할 터.

내가 먼저 쏴야 했다.

물론 일어나서 제대로 자세를 잡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누운 채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는데, 심지어 HK416이 기능 고장 났으니, 글록19를 들어야 했다.

이에 감았던 눈을 뜨면서 아직 오른손에 들려 있던 글록19를 겨누었다.

다행히 뭔가가 보이긴 보였다.

그러나 다 보이는 게 아니라, 시야 중간중간이 뜯겨 나간 것처럼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뭐가 떠 있기도 했고, 형광처럼 발광하는 잔상 따위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보이긴 보였다.

각도에 따라 다르긴 해도, 고개를 좀 돌리면 다소 이상한 자세로 원하는 곳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더 이상 고민하고 준비할 시간은 없었다.

적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소리가 아니라, 땅을 통해서 전달되는 진동으로 파악했다.

아마 귀도 충격을 꽤 먹었을 터.

그걸 깨닫는 순간, 찢긴 시야 사이로 적의 신체 일부가 보였다.

쇄골과 목, 얼굴까지.

투두두!

바로 격발했다.

고개를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기울이고, 총구는 똑바로 겨눈 아주 요상한 자세였지만, 결과는 의도했던 대로였다.

철퍼덕.

투두두두!

한 놈을 쓰러뜨리고, 이어서 오는 두 번째 놈까지 추가로 처리했다.

‘남은 탄은… 3발.’

기다리는 사이, 진동이 또 느껴졌다.

다시 머리를 이상한 방향으로 기울이면서 재차 글록 19를 겨눌 때였다.

“……?!”

“쏘지 마! 나야, 리!”

안드레이가 나타났다.

반 즈음 당기고 있던 검지에 힘을 빼자, 조심스레 들어오던 안드레이의 입이 열렸다.

“오, 이 씨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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