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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72화 (72/185)

72화

노출을 피하고자 산등성이와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움직였다.

시간이 더 걸리긴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감수해야만 했다.

몇 주 전에 첫 작전을 마치고 오는 길에 드론이 따라붙어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상대할 적이 최소 10배는 더 많은 수백 명의 반군이고, 그 안에 저번 같은 특수부대 출신도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가는 길에 들키기라도 하면 죄다 몰살될 터.

그걸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좀 더 들여서 안전하게 가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체계 없는 콩고군이 우리에게 침입 루트를 할당하거나 관련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거였다.

즉, 지금 가는 길이 침투 루트고, 콩고군을 통해 정보가 노출될 염려도 없었다.

1시간에 가까운 산악 행군 후에 레이첼이 드론을 띄운 결과도 같았다.

-여기는 가로등, 주변 특이 사항 없음.

그녀가 바뀐 통신 음어로 무전해 왔다.

작전이 위험한 만큼 정보 유출의 최소화를 고려한 제이크가 투입 전에 전부 바꾼 것이었다.

그 나름대로 굉장히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였는데, 충분히 그럴 만했다.

아주 위험한 작전인 탓이었다.

물론 제이크라면 현역 시절에 더 위험한 것도 해 봤겠지만, 내가 합류한 이래로 이만한 규모의 작전은 처음이었다.

정확히는 상대할 적이 너무 많았다.

약 300명.

그들과 전면전을 벌이는 건 아니었으나, 퇴각을 지연시켜야 하는 만큼 최소한 여러 번의 유격전을 벌여야 했다.

그것도 17명으로.

아무리 비정규전을 유도하고, 퇴각을 지연시킨다고 한들, 부담이 큰 일이었다.

수적인 차이가 너무 컸으니까.

또한, 지형이나 기후도 아군보다는 반군에게 유리할 것이고, 재수 없으면 300명보다 더 많은 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콩고에 오고 이튿날에 야음을 틈타서 훨씬 큰 마을에 침투하긴 했으나, 그건 정찰이 주목적이지 퇴각 지연이나 교전을 목표로 한 게 아니었다.

즉, 오늘은 내가 라레플에 들어온 이후로 가장 많은 적을 상대하는 날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급속 행군하면서 산지를 누빌 무렵.

“여기는 돌고래, 목적지 도착.”

-여기는 마이애미, 돌고래 잠시 대기. 가로등, 드론 작동하고, 저격수들은 각 저격 위치 확보하도록.

돌고래가 된 내가 알리고, 마이애미가 된 제이크가 답한 뒤.

이어서 레이첼과 호세의 대답도 들려오는데, 그중 호세가 커다란 MK.13 저격 소총 하드 케이스를 들고 나타났다.

“후우… 역시 리! 마침 저격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있군. 네 옆이 가장 좋은 자리일 줄 알았어.”

“보기 편한 자리로 오긴 했는데… 여기가 저격하기 가장 좋다고?”

“와우… 본능적으로 저격에 적절한 위치를 찾아낸 건가? 역시 대단해. 저격 위치 선정 같은 건 교육 받을 필요도 없겠어.”

그러면서 하드 케이스를 연 호세가 주섬주섬 저격 준비를 하다가 나를 휙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까…….”

“……?”

“나중에 함께 저격 임무를 수행해도 좋을 것 같아. 원하는 병기도 수급이 되는 만큼… 적당한 것 하나 구매해 와서 사용하면 되잖아? 특히 콩고는 저격하기 나쁘지 않기도 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애초부터 저격 임무를 피하거나 가렸던 건 아니었지만, 주로 선두에 설 생각만 했었다.

내가 서야 아군의 위험이 덜하니까.

그러나 덜 위험하다면은, 원거리에서 호세와 함께 저격 임무를 수행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네이비씰 스나이퍼 출신이었던 호세에게 배울 것도 있을 거고.

“그래, 할 수 있으면 뭐…….”

그에게 가볍게 대답하면서, 옆으로 젖혔던 3배율 스코프를 당기며 광산을 들여다봤다.

고배율이 아니라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대강의 상황은 얼추 보였다.

수백 명이 퇴각을 준비 중인 상황.

공터에 주차된 테크니컬과 트럭, 각종 차량에 자루 따위에 담긴 화물이 적재되고 있었고, 개중 가득 찬 트럭은 무질서하게 광산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거, 잡으려면 골치 좀 아프겠는데…….’

일사불란하게 대오를 갖춰 이동하는 게 아니라, 되는 대로 나가고 있었다.

규율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

‘인원이 조금만 더 많았으면 충분히 될 것 같기도 하고…….’

반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서인지 숫자만 들었을 때와 달리, 도착해서 본 모습에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수백 명이라는 숫자는 위협적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난사하면서 달려드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고 총알구멍이 날 터.

그러나 상황을 잘 이용한다면은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물론 그것도 17명보다는 조금 더 많은 숫자여야 원활하겠지. 지금 상황에서는 여러모로 난감했다.

물론 특수부대원들이 일당백이라고는 하는데, 좀 과장된 소리였다.

나조차도 반군 100명을 혼자 상대하라고 하면 섣불리 하겠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동료들이 있으니까 버틸 뿐.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제이크가 조금 더디게 등장했다.

“…….”

표정도 조금 굳은 모습.

평소였다면 도착과 동시에 내 옆에 와서 상황을 살폈을 사람인지라, 무슨 일이 있나 싶을 때였다.

그의 입이 자못 무겁게 열리더니, 마이크까지 끄고 나직하게 말을 전해 왔다.

“리… 저곳에서 확보해야 할 게 생겼어. 증거나 사람인데…….”

“확보요?”

“그래, 저번 마을에서 사살한 적과 관련됐다더군. 사무실의 타깃일 가능성도 크고.”

사무실은 대외협력국을 지칭하는 은어였다.

그러니까 확보할 게 생겼다는 건 대외협력국이 내린 기밀 명령이라는 뜻이었다.

“아…….”

그 말에 제이크가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두워졌는지 알 것 같았다.

콩고군이 준 임무 난이도가 확 상승한 탓이었다.

퇴각을 지연시키고, 거기다가 침투하든, 공격하든 물건이나 사람을 확보해야 할 터.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요?”

“상공에서 확인한 건 저기 기다란 건물 3시 방향 맞은편에 있는 건물 보이나? 안테나 같은 게 꽂혀 있는…….”

제이크가 기다렸다는 듯 현장의 건물 한 곳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100% 확실한 게 아니니까, 현장에서 파악하는 게 나을 거라더군.”

“음, 그래요……?”

제이크가 알려 준 대외협력국의 정보도 다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은 휴민트(HUMan INTelligence: 인적 정보)는커녕, ISR(Intelligence, Surveillance, Reconnaissance: 정보, 감시, 정찰)도 한계가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의 한복판, 콩고민주공화국.

심지어 작전지역은 도심이나 마을도 아닌 광산에 딸린 부속 시설이었다.

그마저도 크기가 너무 작아서 기껏해야 1~2개 중대만 머물 만한 크기.

접근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대외협력국만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우리도 접근하기가 마냥 쉽진 않다는 거였다.

“그럼 유격전 플러스 침투라는 소린데… 일단 그걸로 하시죠.”

“리… 자네가 들어가야 할 거야.”

“압니다. 그러니까 하자는 거죠. 아니면 누구한테 맡기겠습니까?”

“…나는 그래서 입이 떨어지지 않더군.”

그 말에 가볍게 대꾸하려다가,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제이크의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 듯했고, 그 안에 미안함도 있는 것 같았다.

‘이 양반이…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을 건데…….’

전부터 느꼈던 건데, 내심 신기했다.

라레플에서 봐 왔던 제이크는 분명 상남자에다가 걸리적거리는 걸 때려 부수는 사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태도가 달라진 탓이었다.

말투나 행동도 그랬다.

내가 대충 대답해도, 별다른 쓴소리 한번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물론 왜 그러는지 알 것 같긴 했다. 내가 보여 준 성과가 다분히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으니까.

다만, 제이크가 이렇게 될 줄은 몰라서 내심 신기했다.

게임 속의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실제였으면 동경했을 법한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에 바라보기를 잠시, 적진을 짚으며 짧게 답했다.

“기관총 진지부터 탈취하는 정공법으로 가시죠.”

전투의 기본이었다.

막강한 화력으로 적을 박살 내든지, 아니면 적의 막강할 만한 화력을 먼저 박살 내든지.

그중 우리는 화력이 딸리므로, 적의 것을 먼저 탈취해야만 했다.

어느새 전방을 확인한 제이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걱정한 적도 없다는 듯, 흡사 육식성 맹수와 비슷한 눈으로 전방을 살피는 모습.

입 밖으로 나오는 것도 한발 더 나아간 현장 리더의 지시였다.

“그래, 여기서 10시 방향의 폐기물 더미를 돌아서 침투하는 게 좋겠군. 그쪽에서 기관총 진지로 침투하는 게 이상적이겠어.”

“크으… 역시…….”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다 못해, 순식간에 변모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훌륭한 지휘관감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최소 인원으로 들어가서 기관총만 탈취해야 해. 리, 자네하고 보조할 인원 한두 명 정도. 그 인원으로 기관총부터 무력화하고, 이어서 중간 지점으로 침투해야 해. 나머지 인원은 저쪽에서 유격전을 벌이는 방식으로 퇴각을 지연시킬 거고.”

쉽게 말해 두 팀으로 나뉜다는 뜻.

물론 한쪽은 팀이라고 하기에 두세 명이 전부여서 우습긴 했으나, 어쨌든 작전은 두 가지가 동시에 벌어질 예정이었다.

하나는 내가 주도하고, 다른 하나는 제이크가 맡을 터.

그래서 그가 더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상황이 발생하면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테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 실력 더 늘었습니다.”

“…….”

제이크가 대답 대신에 다시금 전방을 노려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다른 방법은 없겠군.”

“저도 이것뿐이라고 봅니다.”

일종의 양면 전술.

위험하기는 해도,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그나마 나은 방법이었다.

아니면 이 인원으로 중심부로 뚫고 가는 전면전을 해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절반 이상은 반드시 시체로 돌아갈 게 분명했다.

나머지도 팔다리가 온전하진 못할 거고.

“방법이 없다고?”

안드레이였다.

샷건을 부무장으로 달고 있는 그가 나와 제이크 사이에서 전방을 보며 말했다.

“…혹시 저길 들어가려고?”

“상황이 그렇게 됐어.”

“누가? 리?”

“그래, 혼자보다는 한두 명 자원 받거나, 안 되면… 마커스라도 함께 들어가야지.”

레이첼이 드론을 띄우고, 호세가 저격총을 잡고, 제이크가 팀장으로서 총지휘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남는 건 마커스뿐.

그러자 안드레이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총 맞았던 반병신을 무슨… 근데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나? 연대장은 퇴각 지연만 시키라고 하지 않았어?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만 끌면…….”

“저번에 사살했던 용병들의 정보가 있을 수 있다더군.”

“들어가게 만드는군. 제기랄…….”

그러면서 뒤를 스윽 돌아본 안드레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둘까지 데려갈 필요 없이 내가 들어가지.”

“안드레이?”

“부르긴 뭘 불러? 저 중에 나보다 나은 새끼가 있을 것 같나? 내가 봤을 때는 지금 마커스도 나한테 상대가 안 돼. 컨디션 100%도 아니잖아?”

“네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

“그럼 새 작전이나 진행해. 저 개새끼들 계속 나가잖아?! 저대로 도망치게 놔둘 거야? 저 개씨발놈들을?”

하는 말마다 전부 맞는 말이었다.

제이크도 같은 생각인 듯 꺼뒀던 무전을 켜며 말했다.

“전원 전투 준비, 현 시간부로 변경된 작전 하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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