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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71화 (71/185)

71화

찰리 팀과 델타 팀이 신고식 버금가는 첫 작전을 마친 뒤, 강태의 각오와는 달리 며칠간 평탄한 일과를 소화했다.

물론 막사에서 쉬거나 논 건 아니었다.

콩고군도 비싼 돈 들여서 부른 용병을 써먹으려고 애썼지, 편의를 봐주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이유로 G&G Corp 소속 용병들이 돌아가면서 며칠 내내 부대 밖으로 출동했었는데, 막상 밖에 나가면 별거 없었다.

교전도, 또한 적도 없었다.

출동했던 팀이 한 거라고는 산악 행군 하는 정도의 훈련이 다였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콩고군이 가져온 정보나 작전이 대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고로, 적과 마주치는 일이 아주 드물었고, 마주치는 것조차 거의 우연에서 비롯되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꿋꿋이 시키는 일을 다 해낼 무렵.

“팀 전원 작전 준비해서 모이라는군.”

제이크가 콩고군 지휘부로부터 소식을 가져왔고, 동시에 같은 막사를 쓰던 델타 팀도 장비를 챙겨 움직였다.

목적지는 매 작전 투입 전에 갔던 지휘 통제실이 아닌 연병장.

군용 트럭에 병력과 물자가 적재되는 와중이었다.

차량 엔진음과 현지 콩고어와 프랑스어 따위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사이.

“…드디어 출동하나 본데?”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강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기껏 나가서 정보 수집을 해 왔는데 추가 작전을 나가는 게 아니라, 다른 일들을 시켰으니까.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작전 지시가 내려왔다.

그게 출정 선언과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는 게 웃긴 일이긴 했으나, 이제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여긴 체계라고는 없는 곳이었다.

반군보다 좀 나은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제대로 된 군대 같지도 않았다.

계획 수립, 작전 수행, 사후 처리까지 모두 다소 급하게, 또한 담당자나 전문가들 없이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강태가 지휘관의 마지막 말을 통역했다.

“이제 차에 탑승하랍니다.”

“…미리 짐작하고 준비해 둔 게 다행이군.”

제이크가 그러면서 주변 팀원들을 둘러보며 물건들을 다 챙겼는지 확인했다.

평소 사용하지 못했던 호세의 MK.13 저격 소총, 통로 개척(Breaching)을 위한 마커스의 폭발물 등등.

“놓고 온 건 없나?”

“이럴 줄 알고 다 가져왔습니다.”

“그래, 이제 출발하지.”

그 말과 함께 G&G Corp 찰리 팀도 군용 트럭에 몸을 실었고, 오래지 않아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

“저게 뭔……?”

‘PRESS’라고 큼지막하게 프린트된, 누가 봐도 언론사 같은 기자 승합차가 따라왔다.

동시에 호세의 입이 열렸다.

“오, 이런. 우리 지금 훈련 영상 찍으러 가는 겁니까? 아니면 실작전입니까? 아니… 우리를 찍어도 되는 겁니까?”

동시에 제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거절해. 찍으면 테이프를 뺏고.”

“요즘도 카메라에 테이프가 들어갑니까? 언제적 얘기를…….”

“뭐든 뺏으라고.”

“크흠, 아… 옙, 절대 못 찍게 하겠습니다.”

호세가 눈치 보면서 제대로 대답한 뒤.

평탄화된 길을 따라 움직이던 차량이 3~4시간 만에 멈췄다.

도착한 곳은 일전에 작전했던 마을 초입.

비 오던 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차에서 내린 인원들이 며칠 전에 터뜨렸던 차고와 부서진 테크니컬(Technical: 민간 무장 차량)의 잔해 따위를 살펴볼 때였다.

부아아앙―!

돌연 기자 차량이 마을 안쪽으로 달렸다.

이어서 현지어와 프랑스어가 터져 나오면서 큰 소란이 났다.

“……?!”

반사적으로 G&G Corp 용병 팀이 총을 고쳐 잡을 때였다.

“아…….”

프랑스어 단어 몇 개를 알아들은 이들이 인상을 썼고, 제이크의 귀에도 곧 통역된 내용이 전달됐다.

“…구덩이에서 학살된 민간인 시신들이 나왔답니다.”

“…….”

제이크도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총을 든 만큼 험한 일을 많이 보는데, 그럼에도 학살된 민간인을 보는 건 적잖이 충격적이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그 틈에 있는 아이들을 보는 건 더 힘든 일이었고.

진심으로 미국의 안보와 세계 평화를 바라는 제이크로서는 그런 상황을 더더욱 견디기 힘들어했었다.

그렇게 제이크의 걸음이 멎었을 때였다.

“아, 혹시 그쪽이 소문이 자자한 아시아 용병이신가요?”

누군가 강태에게 다가왔다.

목에 카메라를 달고, 팔에 ‘PRESS’ 완장을 찬 중년의 백인.

“……?”

강태가 쳐다보자, 백인 사내가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는 영국의 유서 깊은 일간지, 데일리 스탠다드에서 온…….”

“죄송합니다.”

강태가 인사하던 와중에 말을 잘랐다.

인터뷰가 아니라, 말도 안 섞겠다는 태도였는데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오는 길에도 제이크가 촬영하면 카메라 테이프를 뺏으라고 했지만, 소속 자체가 비밀 기구인 대외협력국이다 보니 언론에 노출돼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었다.

한데 거절당할 걸 알았다는 듯 사내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인터뷰 요청을 드리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오프 더 레코드로 할 테니까, 편하게 말씀이라도…….”

“됐습니다.”

“식사, 아니면 술? 바라는 게 있습니까?”

그가 뭐든 좋다는 얼굴로 묻자, 강태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세계 평화요.”

“……?”

기자가 주춤했다가 되물었다.

“세계 평화? 진심입니까?”

“예.”

따지자면 핵전쟁을 막는 거지만, 어쨌든 비슷한 의미로 한 말이었다.

그게 그거였으니까.

한데 돌아오는 답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방금과는 다른 작고 나직한 목소리.

“그럼 당신이 바라는 세계 평화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볼 생각인데, 작은 관심이라도 있다면…….”

“아, 기자가 아니셨구나?”

강태도 이제 알았다는 듯 바라봤다.

기자가 뜬금없이 자신만 딱 골라잡는 것부터 인터뷰와 대화를 거부했음에도 다가오는 태도가 영 이상해서 의심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 UN군으로 위장한 CIA 요원을 본 영향도 있었고.

“아뇨, 저는 기자가 맞습니다. 다만, 정말 좋은 조건으로 당신을 스카우트하고 싶어서 온 겁니다.”

“MI6(영국 비밀정보국, SIS)에서요?”

강태가 불쑥 물었다.

라레플을 플레이 하다 보면 몇 번은 등장하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지켜보던 제이크가 움직일 무렵, 명함 한 장이 나왔다.

“편할 때 연락 한번 주십시오. 언제가 되었든 환영합니다.”

그리고 사내가 휙 자리를 뜬 다음이었다.

다가가던 제이크가 걸음을 멈추고서 명함을 넣는 강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전에 CIA의 명함을 받았을 때는 주춤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별 반응 없이 그저 서 있기만 했다.

영국의 정보기관이 미국보다 못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며칠 전에 대외협력국에 강태에게 접촉한 CIA 관련해서 구두 보고를 올렸다가 들은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강태의 국가관과 가치관에 대한 내용.

콩고에 오기 전, 페어팩스의 종합 병원에서 진행했던 심리 검사 결과 일부를 전달받았었다.

‘…가치관은 반(反) 테러, 목적은 테러리스트 제거라고 했었지.’

아주 훌륭한 신념이었다.

그 안에 아쉽게도 미국의 안보가 없긴 했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대외협력국의 설립 취지와 딱 들어맞는 것들이었다.

평소 언행도 그랬고, 최근에 CIA 명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었고.

강태가 다른 곳에 넘어갈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낼 무렵.

이윽고 무전기가 울었다.

G&G Corp뿐만이 아니라, 전군 재이동한다는 내용이 전파되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헛수고군.”

누군가의 말 뒤로 품에 명함 두 장을 갈무리한 강태도 쓰게 웃고 말았다.

‘믿고 기다려야지, 뭐…….’

여기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제이크나 다른 용병들이 그러듯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

그러나 싱거웠던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튿날부터 기다렸다는 듯 교전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3시 방향 적!”

타다다다당! 타다다당!

어디선가 고함과 함께 총성이 울려 퍼지고, 사방이 전장으로 변했다.

콩고군이 멋모르고 진군하는 사이, 달아났던 M23이 반격하는 과정에서 나온 전투였다.

지난 여러 작전이 그랬듯, 전투도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다.

“씨발! 이 병신 새끼들이 어디에 쏘는 거야?!”

안드레이가 욕설과 분노를 뱉었다.

상부에서 내린 측면 교란의 임무를 수행하러 이동 중이었는데, 현장의 콩고군에게 기관총으로 집중포화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인 사격으로 인한 전사자가 실제로 더 많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용인된다는 건 아니었다.

비슷한 경우가 있어서도 안 됐다.

그 와중에 단 한 발의 탄도 안 맞았다는 게 다행이었는데,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여러 번 반복됐다.

거기다 추격 중인 M23과의 교전도 치러야 했고.

결국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작전 진행에 차질이 생길 정도로 부상자가 늘어났다.

알파 팀 2명, 브라보 팀 3명, 델타 팀 1명.

전부 종합병원이 있는 가까운 도시로 후송됐고, 그곳에서 몸에 박힌 탄환이나 파편 따위를 제거하거나 잘린 손발을 치료했다.

찰리 팀에 부상자가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데, 그렇다고 해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건 아니었다.

후유증이 남을 정도로 심각하지 않아서 버틸 뿐.

다들 부딪혀서 피멍이 들고, 어딘가가 찢어지고, 박혔던 파편을 뽑아내서 흉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마지막 명령이 떨어졌다.

“구리 광산의 정찰과 침투입니다.”

콩고군 연대장의 말을 강태가 계속해서 통역했다.

“이곳을 확보하는 게 최종 목적이라고 합니다.”

제이크도, 강태도 모두 짐작했던 사실이었다.

최초에 침투했던 마을도 광산과 멀지 않아서 부대 주둔용으로 쓰이는 곳이었고, 지난 몇 주 동안 했던 교전 역시 광산으로 가는 길에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이내 연대장의 말에 강태가 빠르게 통역을 이어 갔다.

“UN군에서 확보한 고고도 유인 정찰기 자료에 따르면, M23이 퇴각을 준비 중인 장소로, 저희가 먼저 가서 정찰하고 적의 퇴각을 지연시키랍니다.”

“지연?”

“예,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만 끌면 된다고 합니다.”

“적 규모는?”

“일반 보병 1, 2개 중대 정도라고 합니다. 인원으로는 대략 300명…….”

“…….”

강태가 답을 전해 주자, 제이크의 미간이 굳었다.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었다.

알파 팀부터 델타 팀까지 모두 멀쩡해도 23명밖에 안 되는데, 거기서 6명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이었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 브라보는 팀장이 후송되면서 와해되기 일보 직전.

그의 머리가 바쁘게 돌았다.

‘우선 알파와 브라보를 한 팀으로 합쳐서 알파 팀장한테 지휘권을 주고, 찰리가 전면에, 중간에 델타, 후방을 알파한테 맡겨서 부담을 덜어 내는 방식으로…….’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무렵.

“이번에도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

강태가 나직하게 말해 왔고, 제이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가야 했다.

퇴각 준비 중이라고 했으니, 망설이다가 늦게 가면 허탕만 칠 게 분명했다.

지금 가야만 뭘 건질 수 있을 터.

무엇보다 제이크는 주어진 임무는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저 해낼 뿐.

다만, 마음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강태가 맡은 선두 자리의 중압감은 물론이고, 지난 몇 주 동안 해낸 일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찰리 팀에 부상자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전면에 선 강태가 위험한 순간에 자처해서 나서고, 적을 사살하며, 악착같이 전진한 결과.

제이크는 얼굴에 상처가 난 강태를 보다가, 한숨을 섞듯 대답했다.

“…부탁하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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