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시신의 개인 용품까지 전부 확인했나?”
12구의 사체가 있는 집을 떠나기 전, 제이크가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물었다.
다른 곳이라면 SSE(Sensitive Site Exploitation: 정보 수집)가 끝나고 넘어갈 텐데, 이곳은 재확인 없이 넘어가기에는 수상쩍은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인계 철선과 조명지뢰를 설치하고 CQB 전술에 대응한 솜씨나 콩고에서 구하기 힘든 FN사(社)의 SCAR-H, SIG SAUER 사(社)의 MCX 같은 총기를 사용한 점, 거기다가 용병이나 UN 직원을 제외하고서는 이 지역에서 보기 힘든 백인이 시체의 절반이나 차지한다는 사실까지.
전부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제이크가 우려하는 건 따로 있었다.
‘어쩌면 세르게이 같은 놈들일지도 모르지. 단순한 테러를 넘어서서 국가 전복이나 아프리카 혼란을 바라는 악의 존재들…….’
이에 SSE를 맡겼던 강태와 호세를 바라봤는데, 다행히도 만족할 만한 답이 돌아왔다.
“네, 소지품까지 남김없이 다 털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리가 양말하고 팬티까지 전부 뒤집는데… 이러다 항문까지 열어 보는 줄 알았습니다.”
호세가 말끝에 웃음을 달았으나, 강태는 진심으로 뭐든 하려고 했었다.
제이크만큼이나 시체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국의 안보나 세계 평화라는 거창한 이유보다는, 그저 피칼과 관련이 있을 확률이 대단히 높아서 그랬다.
물론 그것도 따지고 보면 세계 멸망을 막는 일이긴 했으나, 강태의 신념은 그렇게까지 추상적이진 않았다.
어쩌다 보니 이러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잘사는 게 꿈일 뿐.
그사이, 제이크가 고갯짓을 했다.
“그럼 이동하지, 마이크 빅터 37로.”
이 역시 사전에 추려 두었던, 지휘 통제실로 의심했던 건물 중 한 채였다.
총 3곳.
그중 한 곳은 이미 별거 없는 숙소나 생활 공간이라고 파악했으니,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군으로 따지면 고위 장교나 당직 사령 즈음 되는 자를 잡기 위해서.
-찰리 하나, 여기는 찰리 다섯. 마이크 빅터 37… 경로 및 도착지 특이 사항 없음.
“찰리 하나, 수신 양호.”
짧게 답한 제이크의 말 뒤로 각각 SSE를 하느라 가득 찬 더플백을 짊어졌다.
최소 10㎏에서 3, 40㎏까지 나가는 무게.
제이크가 묵직한 군용 전자 장비가 가득 들어 있는 더플백을 맸고, 나머지도 하나씩 짊어지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철퍽, 철퍽.
무거워진 탓인지 진흙이 각자의 워커 밑창을 끈적이며 붙드는 사이.
오래지 않아서 마이크 빅터 37로 명명한 건물에 도착했다. 이번 건물은 첫 건물에 비해 작긴 하지만, 정문에 초병이 졸고 있었고, 외부에 발전기에 쓰일 연료통이 제법 많은 데다가, 개인 차량으로 쓰이는 것 같은 차도 있었다.
쉽게 말해 고위 장교가 머물 가능성이 큰 장소.
이번에도 선두에 섰던 강태가 HK416을 내리고, 대신에 옆구리에 있던 대검을 뽑아 들며 움직였다.
스윽.
선두여서 비교적 가벼운 10㎏대의 더플백을 짊어진 상황이라 움직임은 더디지 않았다.
휘익― 푸욱!
신속 정확하게 명치 안쪽으로 검 끝이 들어갔고, 동시에 장기를 파괴하며 뽑혀 나왔다.
촤악, 몸속에서부터 검날이 나오면서 초병이 움찔하기를 잠시.
비를 가릴 만한 조그만 위병소 안에서 그대로 주저앉듯 쓰러지며 숨이 끊어졌다.
대검을 회수한 강태가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야투경 렌즈를 손으로 닦아 가면서 무전했다.
“여기는 찰리 셋, 정문 확보 완료.”
동시에 건물을 확인하며 경계하는 사이, 출발하겠다는 무전과 함께 나머지 인원들이 움직였다.
이후 작전은 모두 정해진 대로, 훈련한 대로 이뤄졌다.
외부 및 후방 경계 인원이 배치되고, 내부로 들어가서 차례로 격실을 수색하며 적을 제압하는 CQB 전술.
직전에도 했던 거지만, 이번에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손쉬웠다.
자다가 깬 반군은 반격은커녕, 병기를 찾을 생각도 못 하고 허둥지둥하다가 현지어 한두 마디를 뱉으며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은 건 제법 큰 침실.
술인지, 약인지, 뭔지 모를 걸 처먹고 늘어지게 자는 지휘관 정도로 보이는 인물을 생포했다.
입에 테이프를 꽁꽁 감고, 팔다리를 묶을 때였다.
-이런 씨발…….
마커스의 저음이 헤드셋을 타고 전파됐고, 제이크가 묻기도 전에 설명이 뒤이어 나왔다.
-찰리 하나, 여기는 찰리 둘. 맞은편 방에서 사망한 여성 셋 발견했습니다.
“…….”
이에 포로의 손발에 플라스틱 수갑을 채우고 있던 호세가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여전히 비몽사몽으로 묶이던 놈이 벌거벗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충 봐도 전후 상황 짐작이 됐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한 짓이겠군요.”
“…….”
호세의 말에 제이크도 인상을 구기며 답했다.
“…여기는 찰리 하나, 무기나 기타 위협 없으면 나오도록.”
-찰리 둘, 수신 양호.
그 대답 뒤로 짝을 이뤄서 방 수색을 진행했던 마커스와 강태가 함께 침실로 돌아왔다.
둘 다 표정이 좋지 못했다.
건너편 방의 시신들이 안 좋은 방식으로 죽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내 강태가 한숨과 함께 한국말을 중얼거렸다.
“실제는 진짜 좆같네…….”
라레플을 플레이 하면서 민간인 학대나 살해 같은 전쟁 범죄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강철 멘탈이 정신을 잡아 주긴 했으나, 다른 감정까지 해소해 주진 못했다.
쉽게 말해, 불쾌함이나 역겨움은 선명하다는 뜻.
‘하긴… 지금까지 운이 좋았지…….’
찌푸려진 미간을 한 강태가 어느새 반년이 넘는 용병 생활을 떠올렸다.
총에 맞고, 기절하고, 수술과 재활까지 하는 와중에도 오늘 같은 장면은 보질 못했었다.
그게 콩고의 어느 산간 마을에서 드디어 나온 거였고.
잠깐의 상념을 떠올리던 강태의 시선에 굳은 얼굴의 제이크가 들어왔다.
‘그래서 제이크가 세계 평화 같은 걸 바라는 건가…….’
제75레인저연대에 스페셜포스, 델타포스까지 역임했던 그라면 비슷한 상황을 수도 없이 봤을 게 분명했다.
전 세계에서 실 작전을 가장 많이 한다고 알려졌을 정도였으니까.
동시에 자신 같아도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때였다.
휙― 턱.
제이크가 화물을 어깨에 얹듯 포로를 어깨에 걸쳐 메면서 입을 열었다.
“SSE와 포로 확보 완료했고, 바로 테크니컬 파괴하러 바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마커스의 말 뒤로 전원 방을 빠져나왔고, 테크니컬이 주차된 차고로 향했다.
흔한 일제 픽업트럭뿐만 아니라, 트랙터 같은 농기계의 상부를 개조해서 미니건과 발칸포 따위를 설치한 테크니컬이 여러 대나 있었고, 정규군에게서 노획한 걸로 보이는 장갑차까지 있는 곳이었다.
그중 강태가 차 안에서 졸던 경계병을 처리한 뒤.
남은 인원들이 경계를 서고, 마커스가 챙겨 온 폭발물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다소 싱거운 시간이 흐르길 잠시, 제이크의 귀로 기다리고 있던 무전이 들어왔다.
-찰리 하나, 여기는 찰리 둘. 폭발물 설치 완료.
“여기는 찰리 하나. 현 시간부로 전원 안전 지역으로 이동하고 퇴출 준비하도록.”
사전 정보도 없고 준비할 시간이 없는 것치고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정확히는 적이 너무 무능했다.
중간에 특수부대로 추정되는 12명을 사살한 것을 제외하고, 침투가 노출되지도 않았고, 부상자나 사망자 등도 없었으니까.
또한 비 내리는 마을도 여전히 어둠에 잠겨서 잠잠하기만 했다.
이윽고 폭발물과 연결된 선을 수십 미터나 풀어서 물러나고, 전 인원이 엄폐물 뒤에 숨었을 때였다.
“폭파.”
제이크가 말했고, 마커스가 폭파를 복창하며 온오프식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하는 작은 마찰음이 발생한 뒤.
콰가가가아아아앙―!
차고가 폭발했다.
굉음과 함께 진동이 퍼졌고, 동시에 화염이 터져 올랐다.
사방이 환해지면서 열기도 퍼졌다.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한 위력을 체감할 무렵.
투두둑, 쿵. 쿠궁.
폭발로 인한 온갖 파편과 조각 따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성공적으로 터졌음을 깨달을 무렵, 제이크가 작전지에서의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전원, 즉시 퇴출하도록.”
* * *
퇴출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갑작스러운 폭발로 시끄러워졌으나, 야간에다가 우천 상황이 겹쳐 제대로 된 대처를 못 하는 모습.
천 명에 달하는 대대 몇 개를 합친 병력 중에서 단 한 명도 우리를 쫓아오지 않았다.
대한민국 육군에도 있는 오분대기조나 특수부대 QRF(Quick Reaction Forces: 신속대응군)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을 쉼 없이 뛸 무렵.
-선두……! 찰리 셋! 후우… 속도 좀 줄이지 그래? 찰리 팀과 우리의 거리가 너무 멀어, 델타 넷도 퍼지고 있고.
내 귀로 안드레이의 숨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델타 하나를 맡고 있으니, 델타 넷은 함께 움직이던 팀원일 터.
바로 속도를 낮추며 후방을 돌아봤을 때였다.
“……!”
내 뒤에서 바로 따라오던 제이크를 발견했다.
등에 30㎏이 넘는 SSE가 끝난 더플백을 매고, 왼쪽 어깨에는 70㎏이 거뜬히 넘을 포로를 짊어지고, 오른손으로는 총기를 꿋꿋이 파지한 모습.
물론 100㎏이야 나도 스쿼트나 데드리프트로 너끈히 들긴 하지만, 그건 헬스장에서나 되는 거였다.
산지를 뛰어다니면서, 심지어 고정되지도 않은 걸 저렇게 들 순 없었다.
도대체 한계가 어디인가 싶을 무렵.
주춤하고 말았다.
녹색으로 발광하는 야투경 너머, 제이크의 가슴팍이 여느 때와 다르게 크게 부풀고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호흡이 가쁘다는 뜻.
그러나 꽉 다문 입을 보니 힘들다는 말이 나올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예상대로 그가 짧게 지시했다.
-찰리 셋, 계속 가. 아직 적과의 거리가 좁음.
그 말이 맞긴 했다.
몇 분 동안 힘껏 달렸으나, 기껏해야 600~700여 미터 멀어진 정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나, 우리 흔적을 따라서 쫓아오면 금방 뒤를 잡을 만한 거리였다.
복귀할 때까지 10시간은 가야 할 테니까.
제이크는 팀장으로서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게 또 말처럼 되는 건 아니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10시간이 넘는 산행을 했고, 마을에서 여러 번의 교전을 거쳤으며, SSE로 생긴 각종 짐까지 짊어지고 있었으니까.
물론 현역 때 했던 양성 훈련이 더 어렵겠지만, 그들은 모두 퇴역한 30대의 사내들이었다.
제이크는 곧 마흔을 보는 나이였고.
후욱, 후욱.
어느샌가 제이크마저 거친 호흡을 내뿜기 시작했다.
처지는 바람에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 그 뒤의 인원들은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됐다.
지쳤을 게 뻔했으니까.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제이크의 목소리가 전달됐다.
-여기는 찰리 하나, 전원 현 위치에서 5분간 휴식, 휴식 간 경계는…….
“경계는 찰리 셋이 맡겠음.”
내가 알아서 나서자, 동시에 숨소리가 많이 섞인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래… 고마워, 찰리 셋.
“뭘요, 쉬십쇼.”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호흡이 벅차지 않은 건 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총을 고쳐 들고 경계하기 적합한 위치로 걸음을 옮겼다.
빗물에 불어 터졌을 발과 워커가 비탈길을 천천히 밟으며 내려갔고, 무전으로 위치를 알리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동시에 1㎞ 내외의 거리에서 우리가 휩쓸고 온 마을의 전경이 보였다.
새까만 밤에 비까지 내리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불꽃이 남아 있었고, 마을 중간중간에 전기를 가동한 듯 불빛도 켜진 덕분이었다.
이에 밀어 놨던 접이식 3배율 스코프를 당겨서 마을 쪽을 살피려던 순간.
“……!”
이질적인 뭔가가 보였다.
대략 400~500M 거리.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의 움직임이었다.
사람인지, 동물인지, 잘못 본 건지 몰라 주의를 기울이면서 조준하다가 주춤했다.
‘드… 론?’
나무와 수풀 따위로 잘 보이지 않았으나, 형태가 저고도 운용 드론을 닮아 있었다.
이에 적외선 레이저를 켜서 조준까지 하려는 순간.
“……!”
드론이 빠졌다.
방금 켠 적외선 레이저를 알아본 모양.
그러나 내 명사수 특성이 그보다 더 빠르게 총구를 움직였다.
이미 조정간 단발로 맞춰 놓고, 검지 역시 방아쇠울 안으로 들어가서 누르기 직전의 상황.
드론을 조준하면서 그대로 당겼다.
터엉─!
HK416의 총성이 연하게 울렸다.
빗소리에 조금 가려지기는 했으나, 주변에서 못 들을 정도로 작은 건 아니었다.
다 들릴 정도.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1초 단위로 일어난 일이라 보고할 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찰리 셋?!
제이크의 당황한 목소리에 스코프 너머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여기는 찰리 셋, 드론을 맞힌 것 같음.”
-정확히 보고 바람.
“400에서 500미터 거리, 드론으로 추정되는 물체 발견, 조준 후 상승하는 것을 저격함. 정확한 확인을 위해서는 접근해서 확인해야 함.”
-…….
대답 대신 빗소리가 연하게 헤드셋 너머로 들려오는 사이.
-하… 미치겠군, 씨발. 드론이라고?
안드레이의 욕설이 튀어나왔고,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레이첼이 우리 대열에 합류해서 전까지만 해도 근방에 추격자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방금 격추시킨 드론을 수거하고 싶지만, 수백 미터를 돌아가야 해서 그렇게 하자는 말을 꺼낼 순 없었다.
괜히 갔다가 저격탄에 맞을지도 모를 일.
이윽고 제이크가 정답을 내놨다.
-전원 휴식 종료하고, 즉시 퇴출 재개한다.
SSE로 수거한 각종 짐을 갖고 있기도 하니, 돌아가면 뭐가 됐든 결과가 나올 터.
판단을 마치면서 갈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