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발을 떼는 사이에 생각 몇 개가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놈들을 전부 제압하든, 죽이든, 어떤 식으로든 처리할 마음을 먹긴 했으나, 근원적인 물음까지 해결된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바로 놈들이 어디서 온 누구고, 왜 왔냐는 것.
물론 막연한 짐작은 가능했다.
‘…피칼하고 엮여 있겠지.’
G&G Corp 간부급 배신자, 대릴이 피칼과 만났던 흔적을 남긴 곳이 바로 여기였으니까.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도 그래서 우리를 이 장소로 보냈을 것이다.
다만, 딱 거기까지.
그 이상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 마을과 관련된 당사자이자 배신자인 대릴이 자살했고, 용병을 지휘할 만한 세르게이가 죽었으며, 머리 역할을 겸했던 배신자 월터 그레이슨이 감시받는 판이었으니까.
적어도 내가 아는 게임 속 인물은 다 나왔다고 봐도 무방했다.
한데, 여기에 또 다른 특수부대가 있었다.
물론 피칼이 직접 움직이거나 용병을 고용했을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바닥을 쳤다.
피칼은 군 출신이 아니어서 현장 지휘를 할 줄 모르고, 용병과 직접 계약해서 전면에 모습을 드러낼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에 있는 캐릭터 설정조차 막후의 인물이나 비밀스러운 존재였다.
물론 스토리가 싹 다 바뀌어서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예측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였지만.
터벅.
한 걸음 걷는 찰나의 사이에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간에… 일단 잡고 본다.’
가능하면 생포해서 취조하는 게 베스트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최소 특수부대라고 판단할 만한 행동과 움직임을 보여 줬고, 가진 장비 역시 맞대응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찰리 셋, 적 둘 사살. 클리어.”
-찰리 하나, 적 셋 사살. 클리어.
무전하면서 나오자, 어느새 제이크도 복도에 나와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참을 겨누고 있었다.
‘ㄷ’자로 꺾이는 구조.
1층을 보기 위해서는 좁은 계단을 함께 지나가듯 내려가야 했다.
미리 사격을 준비 중이라면 내려가는 입장이 조금 더 불리할 수 있었다. 시야 확보 역시 1층이 우선이었고.
다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못 내려갈 것도 없었다.
그리고 내려가야만 했다.
적에게 노출됐을 가능성이 큰 만큼, 최대한 신속하게 제압해야만 했다.
그때, 옆에서 제이크가 움직였다.
달칵.
그가 내 마음을 읽듯 플레이트 캐리어에 달려 있던 섬광탄을 떼어 낸 것이었다.
투척할 수신호까지 하면서.
동시에 걸걸한 목소리로 전파했다.
“섬광탄 투척할 예정이므로 찰리 다섯은 외부 상황 파악하고, 델타는 투척 후 IR 패치 확인하여 창문에서 지원 사격 바람.”
그 말끝으로 빠르게 대답이 돌아왔다.
-델타 하나, 수신 양호.
-찰리 다섯, 수신 양호.
동시에 제이크의 손이 내 허벅지를 툭툭 건드렸다.
전진을 뜻하는 신호.
HK416을 가볍게 견착한 채, 적외선 레이저를 켜고 천천히 전진했고 계단참에 도착했을 때였다.
“투척.”
제이크의 나지막한 음성 뒤로 섬광탄이 벽에 부딪히며 1층으로 날아갔다.
휘익― 탁! 탁탁! 데구르르―
야외의 빗소리를 뚫고 이질적인 소음이 복도를 채운 순간.
“피해!”
누군가 소리쳤다.
정확히는 우리가 아니라, 잠잠하던 1층.
그것도 콩고에서 쓰이는 불어나 아랍어가 아닌, 영어였다.
이어서 우당탕하며 몸을 던지는 소리가 난 뒤.
퍼엉-!
섬광탄이 터졌다.
귀를 울리는 폭음이 들리고, 동시에 감긴 눈꺼풀 위로 섬관탄의 반사광이 스쳐 갔다.
그리고 다음은 내 차례.
신속하게 ‘ㄷ’자의 계단참을 돌아 1층으로 내려갔다.
동시에 내부 구조가 드러났다.
‘좌우로 방문 3개, 중앙에 현관문 1개.’
CQB 상황 시에 필요한 정보를 반사적으로 인지하며, 가장 위험한 곳부터 경계했다.
나와 가장 가까이 위치한 열려 있는 방문.
적이 느닷없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기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마저 걸음을 내디뎠다.
아니, 빨리 내려가야만 했다.
하필 계단이 좁아서 내 옆에서 커버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럼 뒤에서 봐 줘야 하는데, 그것도 권장할 만한 전술 교리가 아니었다.
오발탄을 맞을 가능성도 큰 탓이었다.
물론 사격 실력이나 경험이 많으니, 내가 제이크의 탄환에 맞을 가능성은 적겠지만, 그래도 옆에서 쏘는 것과는 달랐다.
즉, 지금은 혼자 상대해야 한다고 봐야 했다.
그렇게 움직인 순간.
“……!”
시야에 총구가 드러났다.
방문 쪽에서 나와서 복도 쪽을 겨누려는 잘 훈련된 움직임.
그리고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나와 제이크가 동시에 나뉘어서 방을 수색하듯이 그들도 함께 나와서 이쪽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와 제이크도 그러듯, 이들도 작은 차이는 있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고, 총기를 다루는 숙련도에 차이가 있으며, 선호하는 자세도 달라서 똑같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이 먼저 총구를 꺼내고, 이어서 다른 사람의 총구가 드러나고 있었다.
물론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0.5초 내외.
초시계로 측정할 수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건 소수점 이하의 초 단위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정도 차이라면, 혼자서도 제압이 가능할 거였다.
텅!
일단 한 발을 쐈다.
몸통이나 머리가 아니라, 총을 든 팔 부분.
어쩔 수 없었다.
그 맞은편 열린 문에서 총구가 따라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쪽도 마찬가지로 팔 부분이 드러난 상황.
바로 총구를 돌리는 순간, 아직 방아쇠울 안에 있던 검지가 지체없이 움직였다.
터더덩! 텅텅! 텅!
거의 연발처럼. 팔에 이어서 상체까지 드러내던 적을 완전히 무력화했다.
동시에 옆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사격하면서도 몇 걸음을 내려갔는데, 어느새 옆에 제이크가 도착한 것이었다.
그도 나와 같은 소음기를 낀 HK416로 내가 한 발 맞춘 적을 완전하게 제압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조준하는 사이.
투두두두두―!
바깥쪽, 건물 창가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소음기를 낀 M4의 총성.
바깥을 경계 중이던 아군, 안드레이의 것이리라 짐작하는 사이에 무전도 이어졌다.
-여기는 델타 하나, 1층 남동쪽 방, 적 2명 제압. 확인 필요.
“찰리 하나, 수신 양호.”
옆에서 제이크가 대답했고, 곧 총구를 들어서 진입 신호를 주고받았다.
뒤쪽에서 허벅지를 터치하는 마커스의 전진 신호까지 온 뒤.
총구를 겨누며 빠르게 진입했다.
그리고 야투경 너머로 적을 확인한 순간.
“윽!”
명치 부근에서 뜨끔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제야 총소리가 들렸다.
타당!
반 박자 늦는 소리 뒤로 몸이 휘청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왼손이 아직 수직손잡이와 총열을 제대로 쥐고 있고, 검지도 방아쇠에 압력을 주고 있다는 사실.
즉, 조준과 격발 모두 잘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탄환이 쏘아졌다.
텅! 터덩!
투두두두두!
내가 쇄골과 목, 머리를 차례로 맞혔고, 뒤따라 진입한 마커스가 다시 몸통을 쏘면서 적을 쓰러트렸다.
“리?! 괜찮아?!”
마커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피격된 건 내 방탄판이 잘 막아 준 데다가, 응사는 쓰러지는 순간에도 완벽했으니까.
그것도 특성 덕분이지만, 쓰러지면서도 적을 조준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었다면, 특성은 발휘되지 못하고 허공을 맞혔을 터.
이에 쓰러졌던 몸을 일으키는 사이, 마커스가 부축하듯 내 팔을 잡아 줬다.
“어디 맞았어? 방탄판이 관통되진 않았고?”
“어어, 괜찮아. 배에 니킥 한 방 먹은 것 같은데… 다행히 움직일 만해.”
비싼 돈 들여서 방탄판을 산 보람이 있었다.
일반 방탄판은 탄환을 막더라도, 거기서 나오는 충격까지 막아 주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었다.
뼈가 부서지거나 장기가 파열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나도 한 발 맞고 숨이 억, 하고 막혔지만, 부축받아 일어나는 걸 보면 멀쩡하다고 봐야 했다.
그사이, 마커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근데… 그 와중에도 기어코 머리를 맞힐 줄이야.”
마커스가 시체 확인을 한 건지 중얼거리더니, 곧 제이크에게 무전을 쳤다.
“찰리 둘, 적 1명 사살. 클리어.”
그리고 복도로 나올 무렵.
소음기를 거쳐 나온 총성이 울려 퍼졌다.
-여기는 찰리 넷, 숨어 있던 쥐새끼까지 클리어.
-…올 클리어.
호세에 이어 제이크의 음성이 들리면서 레이첼의 낭랑한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여기는 찰리 다섯, 거점 주변 특이 사항 없음.
그 말을 끝으로 한숨 덜면서 복도로 나오자, 마찬가지로 방을 나온 제이크가 내 쪽으로 턱짓했다.
“부상자 있나?”
“없습니다.”
“다행이군. 그럼 현 시간부로 SSE(Sensitive Site Exploitation: 정보 수집) 실시하고…….”
말하던 제이크가 내 옆의 마커스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마커스, 네가 확인할 게 있어.”
“폭발물입니까?”
곧장 나온 물음에 제이크가 바로 대답했다.
“그래, 뇌관과 타이머가 연결된 것 같진 않은데, 안전한지 확인이 필요해.”
동시에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작전 중에 활약하지 못했고, 드러난 적도 없었지만, 마커스의 주특기는 폭파였다.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폭발물처리) 교육도 수료한 인재였고, 통로 개척 시에 문짝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물론 문은 제이크가 빠루 한 자루로 다 따서 굳이 나서지 않았을 뿐.
어쨌든 이 안에서 폭발물을 가장 잘 아는 건 그였다.
“그럼 어디 한번 보죠.”
그렇게 마커스가 방으로 들어간 다음.
자동 권총 P226의 약실 확인을 마친 호세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이 수상한 새끼들이 누군지 좀 알아보자고.”
“그래, 2층부터 훑고 내려오지.”
“2층에서… 어? 그러고 보니까 이 새끼들 다해서 12명이야.”
“아…….”
12명의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
미 2티어 특수부대인 스페셜포스, 일명 그린베레의 1개 분견대 인원과 같은 숫자였다.
그리고 스페셜포스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의 특전사도 마찬가지.
SAS의 편제인 16명과 함께 12명 편제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팀 단위 중 하나였다.
거기서 8명, 혹은 6명, 4명 등 짝수로 줄일 수 있었고.
“어때? 굉장히 수상하지? 현역 군인은 아니겠지?”
“어, 현역 군인은 아닐 거야.”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라레플 속에서는 상대한 적 중에 이런 서양인 위주의 현역 특수부대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꼽아 보면 러시아와 중국인 조금.
그 외에 게임 속에 등장하는 현역 군인 대부분은 테러리스트와 싸우는 정의로운 편이었다.
“…일단 SSE부터 하자.”
그렇게 호세와 함께 2층을 훑고, 1층마저 훑어서 쓸어 담는 사이.
“잠깐 모여 봐.”
어느새 제이크가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안드레이까지 안으로 불러 모았다.
“여기서 가까운 거점으로 이동해서 포로 생포하고… 빠지면서 테크니컬(Technical: 민간 무장 차량)이 있을 창고를 날릴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날린다고?”
안드레이가 물었고, 마커스가 대신 답했다.
“이 집에 고체 TNT를 비롯한 폭발물이 꽤 있어. 원거리에서 터뜨릴 선도 있고.”
“오, 그래?”
비 맞으며 외부만 지키던 안드레이가 되묻고, 다시금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폭발 시에 적이 반응하겠지만, M23의 수준이나 야간 우천 상황을 고려하면, 전면전이 아닌 단순 퇴각인 만큼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호세가 상황을 그리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폭발물을 남길 수도, 가져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한 적의 테크니컬도 얌전히 둬서 좋을 게 없었다.
함께 싹 날리는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어느새 안드레이의 입이 가로로 길게 찢어지듯 열렸다.
“새해 기념 불꽃놀이를 드디어 보게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