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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66화 (66/185)

66화

상황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이거 잘하면 싹 털 수 있겠는데?’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 같은 생각을 했을 게 분명했다.

야간 망원경으로 직접 보고, 레이첼이 드론으로 파악한 정보가 그랬다.

비 내리는 날과 구름 낀 밤하늘 덕분에 침투가 쉬운 데다가 초병으로 보이는 반군들은 대놓고 취침 중이었고, 제대로 된 방어 시설도 없어서 그냥 들어가도 될 정도.

이내 제이크가 선두에 서겠다는 나를 쳐다봤다

-진입 순서는 전과 동일, 현 시간부터 1분 뒤 이동하도록.

“찰리 셋, 수신 양호.”

답하면서 약 3, 400M 정도 남은 마을을 바라봤다.

4안 야투경 속에 담긴 녹색으로 변한 마을에는 빛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진짜 불을 붙인 게 몇 곳, 전기를 사용 중인 곳이 한두 곳인 수준.

수천 명이 머무는 마을 규모와 비교하면 사실상 빛이 없는 암흑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마을을 볼 무렵.

-찰리 셋, 출발.

제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에게 답하면서, 물을 머금은 진흙을 밟으며 산등성이를 내려갔다.

방향은 초병조차 없는 무방비한 마을 어귀.

이미 빗물에 절어 버린 워커가 철퍽거리기를 잠시, 어느새 목표 지점에 다다랐다.

다음에 할 일은 아주 간결하고도 분명한 것이었다.

정찰 혹은 생포.

구체적으로는 무장 집단의 정체와 적의 규모, 무장 상태, 민간인 및 포로 현황, 적의 내부 상황과 앞으로의 일정 등등을 알아내야 했고, 가능하면 관련자까지 잡아서 콩고군 부대로 복귀해야만 했다.

할 일이 다소 많아 보이고 복잡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도 않았다.

이미 파악했듯 진입이 쉬웠기 때문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마을 한 바퀴 산책하듯 둘러보고 와도 될 정도.

동시에 한국에서 했던 훈련들도 떠올랐다.

침투를 예고한 전방 사단의 철책을 끊고 들어가서 지휘 통제실 문에 폭발물 스티커를 붙였던 날.

실탄만 쓰지 않았을 뿐, 그때가 좀 더 살벌했던 것 같았다. 긴장하기도 했었고.

반면에 지금은 강철 멘탈 덕분에 여유가 있는 상황.

그렇게 건물 몇 개와 골목을 지나서 지휘 통제실로 추정되는, 졸고 있는 초병이 있는 건물에 도달해서 무전했다.

“여기는 찰리 셋, 마이크 빅터 11에 도착.”

사전에 약속한 음어로 알리는 사이.

-찰리 셋, 여기는 찰리 하나. 잠시 대기, 델타 합류 후 신호하면 진입하도록.

-여기는 델타 하나, 30초 뒤 도착.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무전들이 오갔고, 나도 흡족하게 총을 고쳐 잡으며 문짝 옆으로 나란히 섰다.

그리고 곧 빠루를 든 제이크가 다가왔다.

빗물에 젖은 그의 수염이 흔들리면서, 곧 걸걸한 목소리가 이어져 나왔다.

“찰리 셋, 진입 준비해.”

* * *

꽈드드득― 덜컹.

나무 문짝이 틀어지면서 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덕분에 소음이 크게 번지지 않았고, 또한 금세 사라졌다.

그 뒤로 강태의 발소리를 시작으로 제이크와 마커스, 호세가 차례로 총구를 들며 진입했다.

내부는 제법 컸다.

기숙사나 군 막사처럼 가운데 복도가 있고, 좌우로 방이 있는 구조.

강태와 제이크가 문 앞에 도달하기 전, 서로 눈을 마주하고, 좌우로 갈라지듯 들어갔다.

마커스와 호세도 마찬가지.

이어서 빈 복도를 안드레이가 양안 야투경을 내려쓰고서 경계할 때였다.

“찰리 셋, 클리어.”

방에 들어갔던 강태가 빠르게 선언하며 몸을 돌렸다.

빈 나무 궤짝과 부러진 곡괭이, 찢어진 작업복 따위가 쌓인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이크도 마찬가지.

그렇게 다음 방으로 마찬가지로 좌우로 나뉘듯 들어간 다음.

들어서던 강태가 멈칫했다.

대충 널브러져서 자는 반군들이 여러 명 있었다.

하나만 남기고 전부 사살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강태가 총기 멜빵에 걸린 HK416을 내리면서 대검을 뽑아 들었다.

판단이 상당히 빨랐는데, 그 끝에 나온 행동은 더 신속했다.

푹! 푸욱― 푸욱―!

나란히 자던 셋의 갈비뼈 안쪽 깊숙이 대검을 찔러 넣은 것이었다.

장기가 파열되고, 반군 두어 명이 근육 수축 따위로 움찔하면서 한차례 발작한 사이.

소음을 들은 맞은편 반군이 머리를 들었다.

“음, 뭐야……?”

그가 졸린 눈을 비비는 사이, 강태가 지면을 차며 달려들었다.

타다닥! 푸욱―!

순식간이었다.

백업 역할인 마커스가 총구를 겨누는 순간에 강태가 적에게 대검을 찔러 넣어 버렸다.

“으어… 으그그……!”

푹, 다시 한번 찔러 넣은 순간.

“뭐 하는…….”

옆자리에서 현지 콩고 언어가 나왔다.

말뜻은 모르지만, 강태가 거의 반사적으로 그의 입을 막고 정확하고도 신속하게 대검을 찔렀다.

푹, 푹, 푹. 피가 낭자하고 버둥대던 반군이 멈추는 사이.

마커스가 남은 단 한 명의 뒤통수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

뻐걱! 철퍼덕.

상체를 일으키던 반군마저 쓰러지는데, 맞은편 방에서 더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지직! 뻐억―!

소음기를 거친 총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큰 소음이 들리기를 잠시.

-찰리 하나, 클리어.

제이크의 음성이 건너왔다.

이어서 주먹을 몇 번 턴 그가 반 즈음 꿇었던 무릎을 펴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슴뼈에 깊이 박혔던, 그래서 몇 번을 사용하지 못한 대검을 있는 힘껏 당겨서 뽑아냈다.

드드드득―!

사람 몸에서 듣기 힘든 소리가 나면서, 그의 대검이 핏물을 머금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검날이 뼈에 맞물리듯 박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주먹을 썼었다.

정확히는 너무 깊이 박는 바람에 힘줘서 뽑으려던 순간, 반군이 몸을 일으키기에 어쩔 수 없이 주먹을 휘둘러서 무성 무기를 쓰듯 움직인 것이었다.

스윽, 대검의 피를 닦아 낸 제이크가 검집에 넣으면서 방을 나왔다.

호세가 흠칫하며 비켜나기를 잠시.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태가 고개를 돌려 신호를 교환했고, 제이크가 수신호를 하면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찌르고, 때리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말미에 소음기를 거친 총성도 울려 퍼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이크의 음성이 무전기를 타고 전달됐다.

-올 클리어.

다행히 반군의 격발은 단 한 발도 없었다.

예상한 대로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수월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마무리된 내부를 돌아보던 강태는 물론이고, 제이크의 표정도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여기… 좀 아닌 것 같은데요.”

마이크 빅터 11로 명명했던, 반군의 지휘 통제실이나 관리실 정도로 짐작한 곳은 그들의 짐작과 많이 달랐다.

졸고 있는 초병이나 발전기 여부와 무관한 생활 공간으로 보였다.

제이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경계 인력 제외하고 SSE(Sensitive Site Exploitation: 정보 수집) 실시해. 찰리 다섯은 2차 목적지로 가기 전에 주요 건물 파악 재실시해.”

-찰리 다섯, 수신 양호.

제이크가 지시하고, 레이첼이 대답했다.

예상 밖의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모두가 다 알았다.

애초에 주어진 자료도 지도와 말 몇 마디가 전부였고, 그 외에 사전 파악한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모든 게 현장에서 결정한 사안이었다.

경계 중인 델타 팀원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가방에다가 지면으로 된 서류를 쓸어 담고, 전자기기 따위도 뜯어 내면서 SSE에 매달릴 무렵.

터벅, 터벅.

양안 야투경을 쓴 안드레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가방을 싸던 강태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리, 아까 네가 그랬지? 여기가 빌어먹을 지휘 통제실이 아닌 것 같다고?”

“어, 지휘 통제실보다는… 숙소 같다고 해야 되나?”

“맞아. 여긴 머저리들이 사는 집이고, 지휘 통제실은 따로 있다더군.”

“따로? 어떻게 알았어?”

“아직 숨통 붙어 있는 새끼가 있길래, 물어봤었지.”

“그래서?”

“여기 골목 맞은편에 있는 건물이 중요하다고 하던데… 아쉽게도 다음은 못 들었어. 누가 몸통을 부숴 버려서.”

안드레이가 제이크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사이.

“찰리 다섯, 마이크 빅터 11과 골목을 접한 건물 위주로 저공 비행해서 상세하게 파악해.”

-여기는 찰리 다섯…….

레이첼의 음성이 그 뒤로 꼬리를 물듯 바로 이어졌다.

-마이크 빅터 11 북서쪽 10미터 지점 건물에서 열 영상 반응 확인.

“……!”

-자동소총을 소지한 적 초병으로 예상되며, 건물 주변 경계 중인 것으로 파악됨.

“초병? 확실한지 대답 바람.”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주변을 경계 중인 것으로 보임.

야투경에 가려졌음에도 제이크와 강태, 안드레이의 시선이 얽히듯 몰렸다.

모두 깨달은 것이었다.

“…거기다.”

사망했다는 반군의 말과 레이첼의 말이 더해진 효과만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자동소총을 소지하고 경계 중인 초병.

마을 밖에서나 안에서나 관찰한 바에 따르면 제대로 된 초병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열에 아홉은 자고 있었고, 남은 하나는 의자에 기대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즉, 레이첼이 찾아낸 곳이 바로 지휘 통제실이었다.

아니어도 중요한 장소일 터.

예컨대 이 지역을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가 거주하는 공간이거나 금은보화나 각종 자료를 쌓아 놓은 곳일 수도 있었다.

가장 좋은 건 그게 다 몰려 있는 건데, 그건 직접 가 봐야 알 수 있었다.

여태 얻은 정보도 중요한 게 없었으므로.

곧 안드레이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된 김에, 포로도 거기서 잡는 게 낫겠어.”

이 건물 안에 있던 수십 명이 고작 몇 명에게 전부 사살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제이크의 명령은 처음과 같았다.

“포로는 가능하면 잡는 거고, 불가능할 때는 사살하고 돌아간다.”

“그거야 뭐… 싹 다 죽여 버려도 되지.”

그 말이 교전 수칙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여기 있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적의 정체 때문이었다.

M23.

대표적인 반군 단체 중 하나로, 10년 전 즈음에 평화 협정을 맺었다가 최근 들어서 다시 활동하는 불법 무장 단체였다.

그리고 M23은 단순히 정부에 반기를 든 반군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자는 죽이고, 여성은 강간하며, 아이들은 소년병으로 키우거나 자살 폭탄병으로 길러 내는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즉, 죽어 마땅하다는 뜻.

애써 살릴 필요가 없는 족속이었다.

모두가 이를 잘 알고 있기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고, 곧 제이크가 새 명령을 하달했다.

“2차 목표지 변경한다.”

* * *

변경된 2차 목표 지점은 이동부터 조금 더 까다로워졌다.

초병이 빗소리를 들으면서 누워 자거나 의자에 앉아서 조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경계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도 뚫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레이첼이 빗속에서도 열 영상 화면을 봐 가면서 드론을 조종한 덕분이었다.

-잠깐 정지, 좌측 벽면으로 밀착.

그녀가 마치 내비게이션처럼 길을 일러 주기를 잠시.

어느새인가 초병의 사각지대에 도달했다.

그제야 가려져 있던 건물의 모습이 온전히 육안에 담겼다.

‘여기 맞네…….’

지휘 통제실이 확실했다.

어둠 속이라서 정확히 몰랐는데, 지금 보니 주변 건물에 비해서 꽤 멀끔하고 좋아 보였다.

대충 봐도 상급자가 있을 만한 공간이었다.

이에 담을 살피면서 손부터 짚었다.

“그럼 담부터 넘겠습니다.”

2층을 경계하는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고, 탄력을 주면서 빠르게 담을 넘어갔다.

도움 받을 필요가 없는 1.5M의 높이여서 그랬다.

털썩.

착지하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서 사라지는 사이.

반사적으로 HK416을 빼 들면서 걸음을 내딛으려다가 멈추고 말았다.

아니, 그대로 얼어붙었다.

높게 자란 잡초 사이에 인위적인 뭔가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주 부자연스러운 선 하나.

거기 빗물이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사이.

그게 뭔지 깨달았다.

“…인계 철선.”

부비 트랩의 근본 같은 장치였다.

발이 걸리면 경보가 울리든, 폭발하든, 어떤 식이든 간에 신호를 주는 일종의 함정.

“여기는 찰리 셋, 전원 정지. 담 너머에 인계 철선 확인.”

빠르게 전파하면서, 인계 철선 끝을 바라봤다.

마찬가지로 높은 잡초 따위로 가려져 있었는데, 아주 조심스레 다가가서 자세히 확인했다.

-찰리 셋, 부비 트랩 위치와 종류 확인되는지?

동시에 담 너머에 있는 제이크의 음성이 건너오기에 마저 살피면서 대답했다.

“…현재까지 인계 철선 한 줄, 조명지뢰 파악함.”

인계 철선에 수백 그램의 작은 압력이라도 가해지는 순간, 사방을 환하게 밝히는 조명탄이 발사될 것이다.

M23이 못 가질 이유는 없으나, 다소 의아한 장치였다.

보는 순간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이걸 M23이 했다고……?’

인계 철선의 위치나 설치한 솜씨가 훌륭했다.

습관적으로 발밑을 살피지 않았다면 그리고 빗방울이 선에 맺혀 있지 않았더라면, 방심해서 급하게 움직였다면, 내가 조명지뢰를 작동시켰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를 의식하는 순간, 싸한 감각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그 새끼들이 했을 리가 없지.’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말이 안 됐다.

방금까지 상대했던 수십 명의 M23은 자다가 총알 한 발 못 쏘고 죽은 수준 이하의 적이었으니까.

지금 내가 보고 들은 건 M23이 할 만한 게 아니었다.

‘제대로 훈련받은 놈들이 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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