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늦은 밤, 고마(Goma)시에서 남서쪽으로 65㎞가량 떨어진 북키부(Nord-Kivu)주와 남키부(Sud-Kivu)주의 경계.
우리를 실은 차량이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비포장도로 위로 이동하길 잠시, 멀리서 빛 하나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오래지 않아 목적지가 드러났다.
철망과 바리케이드, 드럼통도 있는 연대급의 군부대였다.
우리가 당분간 머물게 될 숙소.
이에 장교가 들어가면서 설명을 하는데, 몇 문장을 듣다가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전기 사용 주간 통제에다가 야간에는 불가능, 샤워는 물론이고, 식수와 식사까지 통제된다고…….’
물론 대비는 했었다.
태양광 충전기와 식수 정화기 따위를 가져오긴 했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숙소에 먼저 도착해 있던 G&G Corp의 델타 팀을 마주하면서 알게 됐다.
“그거 돈 좀 달라는 개 같은 소리야.”
안드레이 모루스의 말이었다.
라레플에서 조력자의 역할을 잘 해내는 동료이자, 일전에 카마르니아에서 만났던 용병.
그리고 최근에 로버트에게 붙여 달라고 요청한, 실력 깨나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우리를 가벼운 눈인사로 맞이하면서 말을 이었다.
“좆 만한 구실 찾아서 뜯어먹는 거지. 여기 있는 매트리스, 침낭, 벌레 약하고 휴지… 전부 웃돈 좀 찔러 줘야 가져오지, 아니면 귓등으로 안 들어먹어.”
“아…….”
그의 말마따나 돌아보니 야간에 쓰지 못한다는 전등을 쓰고 있었고, 허름한 벽돌 건물에 비해 잠자리가 제법 괜찮았다.
어느새 매트리스에 걸터앉은 안드레이가 우릴 쳐다봤다.
“그나저나… 우리가 UN 짐덩이 챙겨서 떠난 뒤에 카마르니아에서 한바탕 난리 쳤다던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시아 친구와 마커스가 죽을 뻔했다면서?”
“어, 쉽진 않았지.”
마커스가 답하고, 안드레이가 날 쳐다봤다.
동유럽 특유의 강인한 인상을 마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뭐… 그랬지.”
“말해 주기 싫은 모양이군. 보너스도 두둑이 받았다더니… 그럼 가져온 건 좀 있나? 오늘부터 같은 방 써야 할 텐데, 배낭이나 좀 풀어 보지 그래?”
그의 말처럼 찰리 팀인 우리와 델타인 안드레이 팀이 한 공간을 숙소로 써야 했다.
알파와 브라보도 한곳에 배정됐고.
이에 각 자리를 찾아 짐을 푸는 사이, 제이크가 목소리를 냈다.
“장비 자랑은 나중에 하는 걸로 하고, 총기는 어딨나?”
내일 아침에 공항에 갈 때는 현지에서 쓰는 병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 안드레이나 방구석으로 턱짓했다.
“저기. 알아서 갖다 쓰라더군.”
구석의 더플백에 뭐가 한가득 들어 있었는데, 다가가 여는 순간 그게 총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것도 AK 종류와 그 외 공산권 등지에서 많이 쓰이는 총들.
물론 안드레이를 포함한 델타 팀 6명은 각자 AR-15 계열 돌격 소총에 산탄총, 저격총까지 소지하고 있었다.
내 시선을 본 건지, 안드레이가 알아서 설명하듯 알려 줬다.
“여기 브로커 하나가 올 텐데, 그놈한테 말하면 원하는 거로 갖다줄 거야. 6.8㎜ 쓰는 총기와 탄약만 아니면 다 된다더군.”
미국의 새 제식 총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제이크가 AK-47을 하나 빼 들면서 대꾸했다.
“우리 건 내일 가지러 가기로 했어.”
“오, 역시. 에이스답게 준비성도 철저하군. 어떻게 준비했어? 오기 전에 브로커와 미리 연락을…….”
안드레이가 계속해서 묻는 사이, 제이크가 툭 말을 잘랐다.
“대충하고 자는 게 네 신상에 이롭지 않겠나? 아니면 내가 예전처럼 직접 재워 줘도 되고.”
나도 들었던 얘기였다.
제이크가 안드레이의 어깨를 주먹으로 때려서 부숴 버렸다고.
한데 표정을 보니 어깨만 부서진 게 아니라, 아마 기절까지 같이한 모양이었다.
제이크가 엄포를 놓듯 말하자, 안드레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으음, 그때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군. 혹시 소인배인가?”
“뭐라고?”
“아, 들렸나? 혼잣말한다는 게 참… 잘 테니까, 자네도 어서 자지 그래? 그 덩치로 하루를 보내려면 휴식이 필요할 텐데.”
두 사람의 대화에 내가 멈칫했다.
언성이 높아지거나 흥분한 건 아니었으나, 나누는 얘기가 자못 따갑게 들리는 데다가 분위기도 꽤 날카로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라레플에서도 두 사람이 다투는 건 몇 번인가 봐서 잘 알고 있었다.
시네마틱만이 아니라, 인게임 안에서도 두 사람이 마주칠 때마다 투닥거리듯 날 선 말을 주고받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다만, 그게 모니터 속 영상이 아닌 현실이라서 느낌이 사뭇 달랐다.
심지어 제이크는 말할 것도 없는 괴물 같은 사람이었고, 안드레이 역시 마피아나 스킨헤드 저리 가라 할 만큼 무서운 외모를 가진 전직 외인부대 출신의 용병이었다.
그 둘에게서 풍기는, 화면으로는 느낄 수 없는 아우라가 상당했다.
‘이 안에서 싸움 나면… 진짜 누구 하나 뒈지겠는데…….’
그런 생각까지 들 무렵.
의외로 싱겁게 상황이 마무리됐다.
“그래, 안드레이. 안 그래도 자려고 했어.”
제이크가 말했고, 안드레이도 편한 자세로 매트리스에 누웠다.
“내일 보자고, 제이크.”
조금 전까지 날을 세웠나 싶을 만큼 무덤덤한 말투였다.
그걸 들으면서 새삼 안드레이의 성깔이 정말 상상 이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괴물이라는 제이크를 직접 마주하고도, 그리고 한 대 맞아서 어깨가 부서지고 기절까지 했음에도 대들었고, 지금은 아주 멀쩡하게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으음… 잘 부른 거겠지?’
그렇게 다소 어수선한 취침을 한 뒤.
날이 밝았다.
오전 일찍부터 부대를 나갔던 마커스와 호세가 현지 운전병과 함께 돌아와서 총기와 탄약, 그 외의 장비를 분배했다.
수령과 동시에 미소가 지어졌다.
“크… 이거지.”
현지에서 주고 쓰라던 무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 구입하고 사용한 HK416이 있었다.
진작에 영점을 맞춰 두고, 레일에 유성 매직으로 부착물 위치를 표시했으며, 거리에 따른 오차 표까지 인쇄해서 붙여 둔 내 병기.
거기에 추가로 구입한 경형 단안 야투경과 신형 고성능 소음기도 있었다.
그리고 장비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콩고군이 소집 명령을 내렸다.
팀장과 불어 통역관 한 명씩.
알파부터 델타까지, 다해서 8명이 모이는 거였는데, 그 자리에 나와 제이크가 들어갔다.
콩고 출장이 확정되면서 이미 사전에 논의한 바였다.
원래는 다국어 능력자인 레이첼이 맡기로 했었으나, 내 불어 실력이 예상외로 좋아서 선발된 것이었다.
물론 레이첼의 실력이 나보다 뒤지는 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나았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백인 여성이었기 때문에,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나는 프랑스어를 제외한 다른 언어도 할 줄 알았고.
아쉽게도 아프리카에서 꽤 많이 쓰이는 아랍어를 구사할 줄 모르지만, 그건 레이첼뿐만 아니라, 제이크, 마커스까지 구사할 수 있어서 크게 상관없었다.
이에 헬멧까지 다 쓰고, 완전 무장한 상태로 지휘부 건물로 향했을 때였다.
옆으로 안드레이가 다가와 건들거리듯 말했다.
“장비 들여오는데 돈을 꽤 썼나 봐? 빼앗고 싶을 정도로 근사하군.”
“안내나 하지. 저 건물인가?”
그 말을 제이크가 가볍게 묵살했고, 금세 지휘부에 다다랐다.
누리끼리한 페인트를 칠한 벽돌 건물 내부.
쿰쿰한 냄새가 풍기는 가운데, 참모장이 들어와서 프랑스어로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적진 정찰 후 가능할 경우에 적을 생포해서 복귀하고, 안 되면 일부라도 사살하는 것.
그러나 간단한 내용과 달리 실천하기는 썩 어려운 내용이었다.
작전지의 날씨와 토질, 출몰하는 동물이나 자생 중인 토착 식물 등등 고려할 게 수두룩한데, 입으로 대충 떠드는 내용과 지도 몇 장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작전 실행 시간이 회의 직후라는 거였다.
그러니까 앞으로 10분 뒤 즈음.
쉽게 말해 개판인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대가 정규군 소속이긴 한데, 그 안에 있는 병사 대부분은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은 실향민들이기 때문이었다.
각종 반군에게 쫓겨 도망 온 사람들.
그들에게 철제 헬멧에 삭은 전투복 그리고 AK 계열의 소총을 쥐여 주는 게 다였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정찰은 고사하고, 군사작전도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우리에게 들어온 정보도 후질 수밖에 없고.
어느새 듣고 있던 제이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개같군.”
그가 중얼거리자, 옆자리에서도 비슷한 음성이 넘어왔다.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알파와 브라보 새끼들이 부럽군.”
임무에 동원된 게 찰리와 델타였고, 알파와 브라보는 영내 대기 겸 병사 훈련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정 그러면 영내 대기로 바꿔 달라고 해.”
“알파나 브라보하고 팀을 하라고?”
대꾸한 안드레이가 험상궂은 얼굴을 구기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영내 대기를 해도 너희 팀하고 같이해야지. 그저 그런 알파나 브라보하고 함께할 생각은 없어. 너희들도 비슷한 생각일 것 아냐? 안 그래? 알파나 브라보보다는 우리가 낫잖아?”
“그건 네 생각이지. 난 어느 팀이든 상관없이 최선을 다할 뿐이야.”
“너야 빌어먹을 괴물이니까 상관없는 거고… 리, 너도 젠장할 괴물이나 다름없지만, 직접 말해 봐. 알파나 브라보보다는 우리가 낫잖아?”
돌연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올 무렵.
“…출발하랍니다.”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바깥으로 고갯짓을 했다.
마침 모든 얘기가 끝나고, 참모장이 우리에게 즉시 움직이라는 말을 불어로 해대고 있었다.
동시에 두 사람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영락없는 투입 직전의 군인 같은 모습.
신앙이나 성격 모두 정반대의 다른 이들이지만, 역시나 주어진 일 앞에서만큼은 같은 부류였다.
‘…보기 좋네.’
* * *
고마시에서 남서쪽으로 65㎞가량 떨어진 북키부주와 남키부주의 경계.
승합차 두 대가 앞뒤로 나란히 비포장길을 달렸다.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젖은 흙이 튀면서 차체 하부를 더럽게 만드는 사이.
퀴퀴한 에어컨 냄새가 차 내에 가득 찰 무렵, 호세가 속도를 줄였다.
“팀장, 여기부터 도보로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조금 더 들어가서 차량 은폐해.”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승합차가 풀숲 깊숙이, 나무 아래에 처박히듯 주차됐다.
뒤따라온 델타 차량도 마찬가지.
부르르릉─ 덜컹.
시동이 꺼지면서 찰리와 델타 인원들이 모두 내렸다.
제이크와 안드레이가 시선을 교차하며 문제없음을 서로 확인한 뒤.
이를 보던 강태가 목소리를 냈다.
“선두 출발하겠습니다.”
“출발해.”
끝에 제이크가 답하고, 강태가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방향은 북쪽.
반군의 캠프가 있다는 산등성이의 한 마을이면서 동시에 구리 광산의 관리 사무소 겸 거점으로 쓰이는 곳이었다.
강태는 한여름에 했던 속리산에서의 전술훈련을 떠올리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비슷하네… 한국하고…….’
식물이나 풍경이 한국과 좀 다르긴 해도, 습하고 더운 날씨와 젖은 풀을 밟는 감각은 다르지 않았다.
대략 3시간.
쉼 없이 걷고, 계속해서 걷던 강태가 드디어 발을 멈췄다.
아니, 멈춰야 했다.
약 10여 미터 떨어진 제이크로부터 무전이 왔기 때문이었다.
-찰리 셋, 여기는 찰리 하나. 잠깐 대기하도록. 현 위치에서 임시 캠프 설치하고, 델타 인원 둘 잔류한다.
“찰리 셋, 수신 양호.”
답하는 강태가 비에 젖은 네비게이션 보드를 보면서 인상을 썼다.
‘벌써 잔류라고……?’
마뜩잖을 수밖에 없었다.
산속이라 무전이 터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 중계기 역할을 하기 위해 남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게 고작 3시간 거리였고.
‘여기서 둘은 더 빠져야 되니까… 결국 델타는 둘 정도 남겠네.’
거리를 보며 가늠하는 사이, 제이크의 무전이 강태에게 닿았다.
-찰리 셋, 출발해.
그렇게 오전의 산행이 오후가 되고, 강태의 예상대로 델타 인원이 둘만 남을 무렵.
어둑한 작전지에 도착했다.
인근 광산의 숙소 겸 관리실로 사용되는, 그리 크진 않은 마을이었다.
분지 비슷한 곳에 자리 잡은 모습.
어느새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 불이 다 꺼져서 죽어 버린 듯한 풍경을 하고 있었다.
이를 관찰하며 대략 20여 분쯤 보낼 무렵.
레이첼이 드론을 복귀시키고, 야간 망원경을 내린 제이크가 뒤를 돌아봤다.
옆에 있던 안드레이도 마찬가지.
그리고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시선을 마주하는 사이, 강태가 상황을 정리하듯 말했다.
“이번에도 내가 선두에 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