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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61화 (61/185)

61화

시간은 흘러서 어느덧 2월 중순이 됐다.

대외협력국장 로버트가 말했던 작전 투입과 관련된 말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퇴원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마커스.

나는 허벅지가 다 나아서 재활실에서 개인 근력 운동을 시작한 지 오래됐었다.

배에 저격탄을 맞아 장기가 망가졌던 마커스가 웬만한 치료를 마쳤고, 이제 통원 치료를 시작할 정도로 몸이 나은 상황이었다.

물론 나처럼 무게를 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상 생활은 충분히 가능할 정도.

그 결과, 퇴원 약속까지 잡았다.

다름 아닌 제이크가 오리건주에서 퇴원 축하 겸 데리러 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말렸었다.

그가 사는 포틀랜드에서 병원이 있는 페어팩스까지는 직선거리로 3,700㎞가 넘는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직항 노선조차 4~5시간 정도 소모되는 거리.

말이 같은 나라지, 거리만 따지면 다른 나라로 넘어갈 만한 장거리라서 괜히 시간 쓰지 말라고 했는데,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내가 몇 주 전에 테러당한 사실을 알고,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한 탓이었다.

이해는 됐다.

최근 작전에서 마커스하고 나하고 둘 다 잠깐이지만 죽다 살아났었으니까.

‘마음의 빚도 있겠지…….’

결국에 그와 만나는 퇴원 약속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좋긴 했다.

어쨌든 제이크는 대단한 괴물이니까.

나 때문에 부각되진 않았을 뿐, 최근에 카마르니아에서 그가 했던 작전도 상당히 대단했다.

정확히는 저격 후에 반격하던 시점.

물론 그 전에, 내가 저격하는 사이에 앞집을 정리한 것도 대단히 신속하고 정확한 일 처리였지만, 그다음이 더 대단했다.

대열 후방에서의 적 사살.

그것도 일개 반군이 아니라, 몰래 접근했던 세르게이의 부하 다섯 놈을 모조리 사살했었다.

당연하게도 웬만한 특수부대원들도 해내기 힘든 성과였다.

‘…어쨌든 그 양반 있으면 웬만한 국밥보다 든든하지.’

퇴원하는 순간부터 동행하게 될 테니, 정말 겁나는 것도 없었다.

작정하고 수십 명이 중화기로 무장해서 덤비면 몰라도, 그 이하는 제이크와 내가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거기다 마커스까지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나았다.

그의 손에도 총 한 자루 들려 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였다.

그렇다고 해서 제이크의 방문이 마냥 기다려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몇 주 전에 로버트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왜 연락이 없지……?’

분명 일 처리가 좀 진행되면 내 퇴원을 진행한다고 했었고, 그에 맞춰서 준비한 병기와 장비도 마련해 준다고 했었다.

심지어 체크한 리스트까지 보여 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제이크와 약속을 잡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먼저 연락해야 하나 싶은 즈음.

우우우웅― 우우우웅―

드디어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내 담당 직원인 릴리 모건의 연락이었다.

“마침 퇴원할 때 맞춰서 연락줬네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미스터 리.

“예? 맞다고요?”

일부러 여태 말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스피커 너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늘이 디데이입니다.

“근데 왜 그걸 이제야…….”

-기밀 엄수로 관련 인원들도 이제 작전 내용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아… 빡세게 준비했구나…….”

어렵지 않게 납득하고 말았다.

상대가 월터 그레이슨, 국무부 차관보급 고위직이기 때문이었다.

내 입장에서야 빨리 처리해 버리고 싶은 놈이지만, 로버트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기밀 엄수를 해 가면서 상대해야 할 관계자니까.

아마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강구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결과가 디데이의 통보가 됐을 거고.

게임 플레이 화면에서는 볼 수 없던 그런 번거로운 과정들이 있으리라 짐작하는 사이, 릴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맞습니다, 그래서 인력 충원도 없을 겁니다. 경찰 도착 전에 사후 처리해 줄 인원만 올 겁니다.

“아니, 그럼 뭐 어떻게 해요?”

디데이에 인력 지원이 없다는, 당황스러운 말에 얼른 되물었을 때였다.

-미스터 리는 퇴원 시에 계획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뭔 계획이요?”

들은 적도 없던 거라서 또 물었는데, 금세 낭랑한 대답이 돌아왔다.

-미스터 리가 하기로 했던 걸 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총포상 겸 사격장에 방문하는 거죠. 다만, 그 중간에 전과 같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아… 습격이요?”

-맞습니다, 국경 인근 한적한 도로에서 차량 강도를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마 같은 방식으로 할 것 같습니다. 차 한 대로 길 막고, 좌우에서 나와서 공격하는 방식이에요. 현재 파악된 인원은 대략 9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걸 상대하면 됩니까? 근데 아직 차량하고 무기 등 준비된 게 없는데……? 지금 가져오는 겁니까?”

-러셀 팀장이 가져오고 있습니다.

“우리 팀장이요? 그럼 팀장하고 함께 작전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이름이나 얼굴도 모르는 쓸데없는 지원보다는 제이크 한 명이 훨씬 나았다.

동시에 그가 굳이 온다고 한 이유도 떠올랐다.

“그럼 작전 때문에 오는 겁니까?”

-아니요. 작전 통보 전에 이미 약속을 잡았던 거로 압니다.

“크… 역시…….”

제이크의 됨됨이에 감탄하는 사이, 릴리는 본업에 집중하듯 설명을 이어 갔다.

-미스터 리에게 지급될 총기와 장비는 그의 차량에 모두 준비되어 있으니, 안에서 착용하면 됩니다.

“제이크의 차량이요?”

-네, 전에 탔던 그 B6 등급의 방탄 차량입니다.

“아니… 그럼 지금 오리건주에서 차 타고 오는 거라고요?”

놀라서 되물었다.

비행기로는 4~5시간이지만, 차로 이동하면 40~50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순수한 이동 시간.

중간에 식사하고, 눈도 붙이다 보면 최소 3일 이상 걸릴 거였다.

내 짐작이 맞다는 듯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맞습니다. 그의 차량이에요.

“아니… 운전을 그렇게 하고 작전을…….”

할 수 있겠냐고 되물으려다가 입을 닫고 말았다.

제이크는 할 수 있었다.

아니, 마커스와 호세, 레이첼도 다르지 않을 거였다.

작전 앞에서는 불굴의 의지로 밀어붙이는 사람들이고, 그만한 능력도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대신 다른 걸 물었다.

“그럼 마커스는요? 그도 함께 가기로 했는데… 떼어 놓고 갑니까? 아니면 총격전에 휘말리게 될 텐데.”

-마커스 워싱턴은 어제 계약을 마쳤고, 마찬가지로 작전 내용을 통보받았을 겁니다.

“…어제요?”

전혀 몰랐었다.

분명 마커스는 어제부터 지금까지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네, 어제 맞습니다.

릴리의 명랑한 대답에 반사적으로 대꾸하려다가 말았다.

떠올려 보면은 마커스도 제이크만큼이나 입이 무거운 편이었다.

굳이 떠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여기는 병원이라서 우리와 관계없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음… 알겠습니다.”

-그럼 성공적인 작전 수행을 기원합니다.

뚝,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핸드폰을 품에 넣으면서 바로 마커스의 방으로 향했다.

그도 마찬가지로 전화를 끊고 있었다.

“리, 왔군.”

“어제 사인했다면서?”

“맞아. 이제 들은 건가?”

“그래, 작전에 휘말릴까 봐 물어봤더니 알려 주더라. 옆방인데 말은 해 주지 그랬냐?”

“흐흐, 그래서 기분이 상했나?”

“아니, 대단하더라. 나 같아도 가서 물어봤을 건데…….”

그를 따라서 나도 웃으면서 답했다.

서운한 감정은 없었다. 이런 계약 사실을 알고도 아무 말을 안 한 게 오히려 놀라웠다.

이에 바라보는 사이, 마커스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본 그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마침 팀장도 온 모양이군.”

그 말을 끝으로 나와 마커스 모두 병실을 정리했고, 조촐한 옷 가방만 하나 들고나왔다.

마커스의 말처럼 병원 앞에는 전에 봤던 그 차가 서 있었다.

B6 등급의 방탄 픽업트럭.

“이건 또 봐도 진짜… 어마어마하네…….”

일반 차량을 짓밟고 넘어가는 험비하고 비교해야 하는 크기였다.

아마 한국 도로 폭보다 넓어서 달리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도로에서 기동하는 장갑차처럼 차선을 두 개씩 써야 할 터.

그 생각을 하는 사이, 창문이 내려갔다.

“둘 다 걸어 나와서 기쁘군.”

“그동안 못 봐서 그런가… 왠지 어깨랑 팔이 더 두꺼워진 것 같은데요?”

“그래, 운동 좀 했어.”

“좀 한다고 몸이 그렇게 커지는 게 사람이 맞긴 맞는지…….”

고개를 갸웃할 무렵, 어느새 마커스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리, 안 춥나? 어서 타지.”

“아아, 그래야지. 할 일도 있고…….”

그 말과 함께 계단을 몇 칸씩 올라가듯 조수석에 올랐을 때였다.

뒷좌석에서 헛웃음이 들려왔다.

마침 차에 탄 마커스가 흘린 감탄 같은 소리였다.

“뭐가 많군요.”

“…아, 진짜 싹 다 가져왔네?”

나도 마커스의 말을 따라 뒤돌아봤다가, 준비된 장비에 감탄했다.

상당히 많았다.

사람 한 명이 앉을 자리를 다 차지할 정도로.

그 뒤로 제이크의 목소리가 건너왔다.

“준비들 해.”

* * *

입고 있던 패딩을 벗은 지 오래됐다.

대신에 작전 장비들이 꽂힌 플레이트 캐리어를 걸쳤고, 총기 멜빵을 걸었으며, 야투경 어댑터까지 끼운 방탄 헬멧까지 썼다.

이 정도면 평소 작전하는 것과 똑같았다.

제이크와 마커스도 마찬가지고.

물론 상황은 달랐다.

타고 있는 게 작전 차량이 아니라 제이크의 개인 차량이고, 달리는 도로는 내전 지역의 비포장길이 아니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도로였다.

특히나 나는 미국 내에서 총기를 구입하거나 소지하겠다고 등록한 적도 없는 상황.

그런 것 때문인지, 로버트가 왜 조용히 일을 진행했는지 알 만했다.

뭐가 됐든 하나라도 실수로 새어 나갔다가는 그냥 번거로운 게 아니라, 정말 시끄러워질 수 있을 테니까.

이에 습관적으로 약실을 확인 할 때였다.

“다 왔군.”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작전 투입하기 전에 집결지에 모이듯 하는 말 같았으나,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렇지 못했다.

도로를 가로막은 차량과 갓길에 세운 승용차, 어설프게 숨어 있는 사람 몇 명.

쉽게 말해, 습격당하기 직전이었다.

달칵.

무전 버튼을 켜자, 헤드셋 너머에서 제이크의 음성이 이어졌다.

-내가 전면, 마커스가 좌측, 리가 우측을 맡고, 피격 즉시 반격하도록.

선제공격도 좋지만, 이 방법도 나쁘지 않았다.

적이 자동차라는 큰 타깃을 쏘느라 정신을 판 사이에 역으로 공격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적의 화기를 정확히 파악하고, 차량도 소총탄을 막아야 할 정도로 단단해야 하며, 반격할 이들의 실력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시도하기 어려울 뿐.

우리는 전부 해당돼서 이행에 무리가 없었다.

나는 문손잡이를 당겼다.

덜컹.

그렇게 차 문을 여는 순간, 바로 HK416을 들었다.

알 자마쉬에서 건너온 건 아니지만, 총기 설정을 그대로 맞춰 준 새 물건이었다.

이것도 거리가 멀어지면 영점이 좀 안 맞겠지만, 웬만큼 정교한 사격이 아니라면 가까운 거리는 크게 따질 게 없었다.

웬만하면 상체나 머리통에 박힐 테니까.

그렇게 막 열어젖힌 문짝을 방패 삼은 뒤,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터엉―!

소음기를 거치는 묵직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달려들던 놈이 크게 흔들렸다.

가슴 한복판에 적중했는데도 약에 취했는지 몇 번을 더 뛰기에 한 발을 더 쐈다.

텅!

다음 순서는 그 옆과 뒤 그리고 전방 쪽에서도 달려오는 놈들이었다.

다 해 봐야 다섯.

공항에서보다 한 명이 더 늘어났으나, 일말의 걱정도 안 됐다.

그때와 달리 완전 무장을 했으니까.

텅! 터더더텅! 터엉―!

5.56㎜ 탄피가 연사처럼 튀어 나가길 잠시.

곧 잠잠해졌다.

동시에 헤드셋 안에서 나직한 무전이 전달됐다.

-전방 2명 사살.

-좌측 2명 사살.

“우측 및 전방 5명 사살, 올 클리어 같은데… 차량 수색 합니다?”

미리 고지받은 9명의 인원을 모두 제거한 상황.

곧 제이크의 목소리가 건너왔다.

-리, 너와 내가 2인 1조로 차량 수색하고, 마커스는 경계하도록.

역시나 베테랑다운 간결하고 신속한 지시.

“알겠습니다.”

대답하면서 나섰고, 제이크와 함께 서 있던 차량들을 모두 수색했다.

그리고 결과는 내가 말했던 그대로였다.

“맞군, 올 클리어.”

제이크의 걸걸한 목소리가 왠지 김빠진 것처럼 들렸다.

이런 작전이 상당히 시시했기 때문이었다.

갱단원 9명 정도는 별것 아니었다.

약 먹고 돌격 소총으로 무장했다고 해도 마찬가지.

델타나 데브그루 대원들이 CIA나 국토안보부 파견을 왜 심심하게 여기는지 알 만했다.

그러자 다소 허황된, 우스운 생각도 떠올랐다.

‘이런 식이면 갱단 다 밀어 버리고, 미국 밑바닥도 싹 청소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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