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강태의 피격 소식을 보고 받은 로버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그의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강태가 타깃이 될지도 모른다고 언질을 주긴 했지만, 그게 이렇게 터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테러가 빈번한 중동이나 아프리카라면 몰라도, 여긴 선진국인 미국이었다.
그런데 도로 한복판에서의 총격전이라니?
물론 없는 일은 아니었다.
미국은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총기 사고와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나라였으니까.
그러나 이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계획한 테러 청부.
뉴스에는 갱단원들의 총기 범죄 정도로 보도되겠지만, 그건 로버트가 작성할 가이드라인에 불과했다.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다.
최근에 강태의 정보를 유출한 배신 정황을 찾아냈는데, 오늘은 그 주인공인 강태가 공항에서 나오는 길에 테러까지 당했으니까.
거기다 중요한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이곳이 슬럼가나 빈민가가 아닌, 워싱턴 D.C가 바로 옆에 있는 버지니아주의 도시라는 사실.
그것도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30분밖에 안 떨어진 곳이었다.
약 한 시간 거리 안에는 세계적인 대기업 지사는 물론이고, 미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의 주택 그리고 백악관까지 있었고.
여기서 총격전을 벌인다는 건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당하겠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아주 신속하게.
이는 총을 쏜 사람만이 아니라, 사주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즉, 강태를 타깃으로 삼은 범인이 밝혀진다는 뜻인데, 막상 로버트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오히려 어두웠다.
돌아가는 상황이 보통의 경우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손에 들린 보고서의 내용이 그랬다.
[…총격 가담자 8명 전원 남부 라틴 계열 갱단 소속으로 확인됨. 상세 신상 별첨.]
[…갱단원 1명은 병원에서 옮겨져 총상 치료 중이며 생명에 지장 없음.]
[…갱단 보스 및 간부 2명 펜타닐 급성 중독으로 사망.]
갱단을 이용한 테러 그리고 보스의 죽음.
완전한 꼬리 자르기였다.
배후를 찾아내는 건 정말 어려울 것이고, 아마 불가능할 확률이 높았다.
갱단원 중 1명의 숨이 붙어 있긴 하지만, 살려 봐야 알아낼 정보도 없을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저 약을 하고, 시키는 대로 총이나 쏘는 놈들일 터.
‘…그래서 갱을 이용했겠군.’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강태를 꼭 죽이고 싶었다면 최소한 군 이력을 가진 전문 용병을 팀 단위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갱단원 수십 명을 중화기로 무장시키든지.
당연하게도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령 시도한다고 해도 중간에 엎어질 가능성이 컸다.
사이즈가 큰 테러는 국토안보부나 국가안보국, 그 외의 수많은 정보기관의 레이더에 먼저 걸리기 때문이었다.
즉, 이 8명이라는 머릿수는 발각되지 않는 선과도 비슷했다.
배신자는 그걸 지키면서 테러를 진행했었고.
‘당연히 의도한 거겠지.’
강태의 성과와 신상을 뿌린 배신자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중동과 캅카스에서 세운 말도 안 되는 전과는 군 미필도 알 만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단순히 강태의 죽음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물론 테러의 첫 번째 목적은 죽음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얻어걸리길 바랄 가능성이 컸다.
결국에 고용한 건 기껏 8명짜리 소규모 갱단에 불과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효과는…….’
로버트가 잠깐을 계산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많았다.
강태를 죽이지 못할 뿐이지, 강태에게 온갖 안 좋은 영향을 다 주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이미지 훼손부터 일상생활의 어려움, 지인의 죽음이나 부상 발생으로 인한 심리적 장애 등등.
거기다 주마다 무기 소지 규제도 다르니, 권총을 잘못 휴대하면 소란이 발생할지도 모르고, 총을 뺏겨서 빈 몸으로 있다가 피격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는 대외협력국 위장 요원일 뿐, 공개적으로는 PMC 보안 직원에 불과했으니까.
즉, 이 사건으로 강태가 적잖게 불편해진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운이라도 좋아서 도비탄 같은 게 잘 맞는다면, 강태를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었다.
‘지능적이고 번거로운 놈이군…….’
로버트의 미간이 구겨졌다.
여기서 선택지는 단 두 개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도망치든지, 반격하든지…….”
그러나 미국에서 나간다고 해서 안전을 보장할 순 없었다.
적이 살아 있으니, 더 심한 꼴을 당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반격이 쉽지도 않았다.
계속해서 파고들면 결국에는 연관성을 찾을 수는 있겠으나, 그 과정에서 타깃이 멀쩡하다고 확신하기 어렵고, 또한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 다 보통의 경우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강태는 달랐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AR-15 계열의 돌격 소총으로 공격하는 갱단원 4명을 9㎜ 권총, 그것도 10발짜리 탄창 하나로 끝내는 괴물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베테랑 경찰 특공대나 특수부대 군인들도 일단 머리부터 숙일 화력 차이니까.
그런데도 로버트는 이걸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있었다.
상대가 강태였으니까.
‘그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겠지.’
간교한 상대마저 강태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됐다.
아니, 다 죽이고 이길 게 분명했다.
여기에서는 대전차 로켓포 같은 걸 상대하지 않아도 되니, 장비만 잘 갖춰진다면, 다치거나 죽을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공식적으로 승인받지 못한 작전이고,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만큼 업무 협조를 받기도 어려웠다.
대외협력국 자체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
즉, 믿을 건 강태뿐이었다.
로버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강태 리와 만나야겠어, 일정 잡아 둬.”
* * *
사태는 잘 수습됐다.
나는 물론이고, 마커스도 경찰관과 대면하지 않았고, 뉴스에도 단순히 갱단의 노상 강도질로 보도됐기 때문이었다.
사망한 존 역시 소속이 아니라, 무명의 시민으로 처리가 됐고.
이후로 나는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던 마리아를 전화로 돌려보냈고, 담당 직원인 릴리 모건과 통화했으며, 따로 다친 데가 있는지 병원에서 추가 검사까지 받았다.
이틀 동안 그렇게 1인실 병실에서 쉬는 사이.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답은 하나였다.
‘…이건 내 불찰이었어.’
그간 병원복을 입고 쉬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기가 워싱턴 D.C와 가까운 공항 근처라고 여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다시금 내 운명을 깨달았다.
나는 방탄복을 입고, 총기를 착용해야만 했다.
신이 내린 명령인지, 뭔지,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라레플에 들어온 것만은 사실이니, 달리 떠올릴 만한 것도 없었다.
근래 들어서 시간이 남을 때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해 왔었다.
라레플의 스토리가 틀어지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였다.
내가 여기에 왜 있는지, 뭘 해야 하는 건지, 굳이 내가 선택된 이유는 뭔지.
예전에 생각했던 것이 방바닥에 쓰러진 나이 든 내 몸뚱이와 부대에 있거나 전역한 선후임, 동기에 대한 거였다면, 이제는 좀 다른 상상을 하곤 했었다.
예컨대 삶의 의미 같은 것.
물론 지금의 내 목표는 뚜렷해서 생각이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오로지 핵전쟁 막기.
그러나 그건 내가 죽기 싫어서, 우선 살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
가만 놔두면 피칼이 핵전쟁을 벌일 테니까.
다만, 핵전쟁을 막는 사이에 흘러가는 인생과 핵전쟁을 막고 난 다음의 삶은 고려해 보질 못했다. 그래서 몇 번인가 떠올려 봤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 쉽게 답이 나오질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서 그냥 이것 자체가 내 운명이라고 느낄 뿐.
그런 상념을 떠올릴 무렵, 내가 호출됐다.
“잠깐 이동하시죠. 국장님이 오셨습니다.”
그 말에 따라 나가자, 전에 독일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느낌의 묵직한 차가 서 있었다.
이번에는 밴이 아닌, 4인승 대형 세단이었다.
브랜드는 삼각 별이 달린 벤츠.
까맣게 선팅되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고급 차였다.
내가 다가가자, 안내해 준 이가 뒷좌석의 문을 열었고, 동시에 로버트의 모습이 보였다.
상당히 피곤한 모습.
독일에서 만났을 때보다 눈 밑이 더 거멓게 변해 있었다.
체격이 건장해서 툭 쓰러질 인상은 아니었지만, 속 어딘가가 곪아 있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리, 어서 들어와요.”
“…국장님은 과로하시나 봅니다.”
“과로해야지요. 알다시피 워낙 많은 일이 터지다 보니까.”
“유감입니다.”
내 말에 쓴웃음을 지은 로버트가 한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펄럭거렸다.
“우선 이것부터 보면… 모든 검사에서 아주 건강하다고 나오는군요. 초능력자나 슈퍼 솔져일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근지구력이나 폐활량 정도만 상위 0.01%라고 나오네요.”
“제 겁니까?”
“예, 병원에서 임의로 가져온 겁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개인 정보를 중시하는 미국에서 이걸 그냥 줄 리가 없으니, 의사를 매수하든, 훔쳐 오든 했을 터.
한데 내 반응을 오해한 건지, 로버트가 어르듯이 말했다.
“기분 나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국무부는 미국 내에서 FOIA(Freedom of Information Act: 정보 자유법)가 가장 지켜지지 않는 부서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어도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슈퍼 솔져일지도 모르는 기록을 받아 왔다는 흔적을 남겨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뭐, 편한 대로 하십쇼. 개인 정보는 이미 한국에서 많이 털려서…….”
“……?”
“아닙니다, 근데 브리핑 때문에 절 부른 겁니까?”
“기록 확인 이후에 줄 것도 있고, 말할 것도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요? 뭘 주시려고…….”
말하는데, 그가 의자 뒤에 꽂힌 큼지막한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이름은 우선 그대로 했습니다. 원한다면 다른 걸로 바꿔도 됩니다.”
“무슨… 아!”
서류 봉투를 펼쳐 보다가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시민권 증서와 카드로 된 시민권, 거기에 남색 표지의 여권까지 들어 있었다.
즉, 미국 시민이 됐다는 뜻.
“어… 벌써 나왔어요?”
“주소지는 임의로 해 두었는데, 주택을 마련해서 옮겨 두면 될 겁니다. 그리고 이름도 영어식으로 변경하고 싶으면 변경해도 됩니다.”
“빠르네요.”
잠깐 잊고 있던 물건이었다.
“…그럼 전 이제 검은 머리의 미국인인 겁니까?”
“한국에 국적 상실까지 신청하면 분쟁 거리가 없는 미국인이 되는 겁니다. 아마 KCIA(Korea CIA: 국정원)에서도 연락이 오겠군요.”
“아… 거긴 잘 해결됐습니다.”
“다행입니다.”
로버트가 안 다는 듯 엷게 미소 짓고서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할 말은…….”
“예, 하십쇼.”
“불분명한 타깃의 건입니다.”
“아, 그거. 이제 확실한 타깃이 된 건이요?”
“맞습니다. 내부 사정이 좀 복잡합니다. 아직 내부에도 정확하게 전파하지 못했고…….”
“복잡하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리에게 하려는 말이…….”
그 말에 불쑥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세르게이보다 먼저 죽는 국무부의 고위직 배신자, 월터 그레이슨.
“혹시 배신자라도 나온 겁니까?”
“…….”
놀라거나 섣부른 대답이 나오진 않았지만, 마주한 로버트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거의 동시에 깨달았다.
‘…그 새끼 맞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