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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51화 (51/185)

51화

-찰리 하나, 저격 지점에 적 테크니컬 2대 도착. 적 하차 및 산개. 총원 10명으로 파악되며 훈련받은 것으로 보임. 각별히 주의 바람.

레이첼의 무전이 전파됐다.

동시에 제이크가 운전 중인 강태의 어깨를 짚었다.

“정차해.”

이어서 그가 뒤를 바라보자, 따라오던 카마르니아 육군 특전대의 테크니컬 차량들도 줄줄이 정차하기 시작했다.

“하차합니까?”

강태가 물었고, 제이크가 이내 전방을 살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서부터 도보로 이동한다.”

동시에 힘이 바짝 들어간 제이크의 눈알이 사방을 낱낱이 뜯어 보듯 살펴 나갔다.

훈련받은 저격수에 의해 육군 특전대 대대장이 즉사했고, 마커스까지 당했기 때문에 더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동시에 카마르니아군에서 지급한 무전기가 지직거리며 투박한 영어를 뱉어 냈다.

-…찰리! 찰리! 무인정찰기 영상에서 귀소 경로 변경된 것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답변 바람.

사전에 약속된 카마르니아군의 무전이었으나, 제이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작전 변경에 대해 알리지 않았었다.

단순히 카마르니아군이 무능하거나 답답해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무전이 감청되거나 내부자에 의해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을 크게 본 탓이었다.

방금의 저격이 그 증거였다.

적절하게 선점한 위치, 준비했다가 작전 돌입 전에 격발한 타이밍 그리고 훈련된 사격 솜씨까지.

말인즉슨, 어떤 식으로든 내부 자료가 빠져나갔다고 봐야 했다.

당연히 다른 피해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이동 경로에 맞춰서 대전차지뢰나 부비 트랩이 깔려 있을 수도 있고, 대전차 화기를 든 테러범이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다소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목숨이 걸린 일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

이에 하차한 육군 특전대 대원들을 불러서 대열을 갖출 무렵.

레이첼로부터 새 무전이 들어왔다.

-찰리 하나, 여기는 찰리 다섯. 주변 150미터에서 250미터 사이에 신원 미상자 넷 이상 등장. 후미 경계 강화 필요함.

“병기나 특이사항은?”

-파악된 바 없으나, 아군을 관찰하는 것으로 보임. 적 정보원이나 정찰 병력일 가능성이 큼.

“찰리 하나, 수신 양호.”

단단하게 답한 제이크가 바로 강태를 호출했다.

“리! 단독으로 선두를 맡고, 레이첼과 교신하면서 이동하도록 해. 적 발견 시에 알아서 판단하고 선조치해. 나는 후미로 간다.”

“알겠습니다. 몸조심하십쇼.”

그 말에 제이크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모두 조심을 해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강태기 때문이었다.

훈련받은 적들의 첫 타깃이 될 터.

설령 아무런 위협이 없다고 해도, 선두는 이동하면서 경계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는 자리였다.

훈련이든 작전이든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교대해야만 할 정도.

한데 강태는 그 자리를 별말 없이, 늘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하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후미에 서게 될 자신을 걱정하면서.

곧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리,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어. 위험한 상황에서는 멈추거나 물러서도 된다, 알겠나?”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럼 다치지 말도록.”

그 말을 끝으로 제이크는 21명의 육군 특전대 대원들을 지나쳐서 가장 뒤로 갔다.

강태를 보조하면서 그의 측면을 지켜 주고 싶었으나, 후미 경계를 육군 특전대에게만 맡기는 게 더 불안한 탓이었다.

그간 육군 특전대도 훈련하면서 체계를 갖췄고 이전에 교전을 여러 번 치렀다고 하는데, 제이크가 봤을 때는 아직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해서 어쩔 수 없었다.

반면에 강태는 1티어 특수부대들을 압도할 만한 실력자.

보조한다면 이동 속도든, 뭐든 좀 더 낫겠지만, 없다고 쳐도 강태가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었다.

거기다 전혀 예상치 못한 8배율 스코프를 챙겨 왔을 정도로 준비도 철저했다.

어떤 상황이든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 터.

그사이, 대열 후미에 위치한 제이크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리, 출발해.”

* * *

세르게이는 저격 포인트인 빌라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부하들에게 각 위치를 할당해 줬다.

방어와 공격에 용이한 각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었다.

1층에는 세르게이 자신을 포함한 4명, 2층에 3명 그리고 실외에 3명.

병기와 역할이 각자 달랐으나, 모든 게 신속하게 이뤄졌다.

지난 몇 년간 손발을 맞춰 보기도 했고, 다들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특수부대 출신들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대다수가 FSB와 스페츠나츠 출신.

한마디만 해도 열을 알아듣는 이들이라서 이것저것 재거나 묻고 답해 줄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럴 여유도 없었고.

그렇게 마지막 인원에게 지시를 내린 세르게이는 계단이 있는 빌라의 쪽문으로 들어가 골목을 겨누었다.

척.

어깨에 총기 견착을 마친 세르게이가 문틈 밖을 지향했다.

그가 있는 곳은 적이 진행할 만한 주 진입로와 우회 가능성이 있는 좁은 길목을 모두 볼 수 있는 위치고, 내부적으로는 2층으로 이동 가능한 계단이 있는 아주 전술적인 위치였다.

또한, 건물 가까이 세워 둔 테크니컬의 기관총과 짐칸에 실린 RPG-7의 엄호도 받을 수 있는 아주 안전한 요충지.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전투뿐이었다.

물론 찰리 팀에게 있는 드론이나 무인정찰기는 없었지만, 인근에 부하들을 여럿 풀어놔서 단점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었다.

일종의 정찰조.

그들이 자신의 눈과 귀가 되어 정보를 전달해 주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월계관, 여기는 4구역. 적 20여 명 도보 접근 중, 코너 앞에서 조우할 것으로 보임.

“월계관, 수신 양호.”

세르게이는 응답 직후, 바로 무전으로 같은 내용을 전파하고서 긴장이 섞인 날숨을 흘려 냈다.

‘이제 시작이겠군.’

상황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그의 부하들이 지리적 이점으로 적을 먼저 발견하게 될 거고 적절한 타이밍에 공격을 가할 것이었다.

정확히는 테크니컬에 거치된 기관총이 발포하는 순간.

2층에서 대기 중인 부하들이 동시에 제압할 거고, 그걸 피해서 건물에 붙으려 들면 1층에서 공격하여 대열을 완전하게 무력화시킬 예정이었다.

만에 하나 우회해 오거나 살아남아서 접근해 오는 병력은 세르게이나 후방에서 대기 중인 기관총이 산산조각 낼 것이었고.

계획은 완벽했다.

제이크나 강태가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에는 사람인 만큼, 이 작전을 단독으로 깨부술 순 없었다.

드론 지원이 있어도 마찬가지.

이는 단순한 자신감 같은 게 아니었다.

차를 날려 버리려고 준비해 둔 테크니컬 짐칸의 RPG-7과 2층의 부하가 가져간 대전차 무반동총 AT4, 거기에 별도의 유탄 발사기도 노출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서 둘 사이에는 밝혀지지 않은 어마어마한 화력 차이가 있었다.

‘차를 타고 오든, 걸어오든 어쨌든 너희는 전부 죽은 목숨이야.’

세르게이의 이가 다시금 까드득 갈리는 무렵.

투다다다다다다다―!

투두두두두!

타다당! 타다다당!

기관총의 사격을 시작으로 온갖 총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장송곡이 시작됐군.’

아직 그의 시야에 적이 보이진 않았으나, 소리만 들어도 상황을 가늠할 수 있었다.

싸구려 소음기를 낀 MP5의 격발음이 질서 없이 터져 나오고, 2층에 이어서 1층에서도 돌격 소총으로 응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대로…….’

상황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려던 찰나.

-월계관! 2층! 2층, 인원 2명 사망!

“……?!”

-지원 요청 바람! 적 대열 예상 진행로 통과 중! 즉시 지원 요청 바람!

세르게이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교전을 시작하자마자 2명이나 사망하는 건 예상치도 못한 탓이었다.

심지어 그의 시야에는 적도 안 보이는 상황.

당황했으나, 세르게이가 급하게 수를 냈다. 수많은 작전을 치르면서 숱한 변수를 겪어 봤었고, 그럴 때마다 늘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는 사용 가능한 수단부터 써야 했다.

계획과는 달라지겠지만.

“AT4! AT4 발사해! 건물을 터뜨리든, 뭘 하든 일단 쏘라고!”

AT4는 차량을 향해 쏘거나 고화력의 적, 아니면 대열 중간을 향해 날려야만 했다.

지금은 대열 초입 부분이겠지만, 필요하면 쏴야 했다.

다행히 급한 와중에도 대답이 돌아왔다.

-2층, 수신 양호!

그렇게 일단락됐다고 생각하던 찰나.

-월계관! 1층, 1명 사망……! 1층, 지원 바람! 1층, 지원 바람!

세르게이가 반사적으로 1층으로 뛰어가려다가 총을 고쳐 잡고 다시 경계했다.

사망자가 눈 깜짝할 새에 또 늘어났다는 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고 대기 병력처럼 뛰어갈 순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적의 대열이 전부 들어온 게 아니기 때문에, 우회로와 주 진입로를 지켜봐야 했다.

잠시 주춤했던 세르게이의 입이 결국 2층과 같은 대답을 줬다.

“1층! 유탄 발사해! 화력으로 밀어 버려!”

이것 역시 우선순위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 공격이었지만, 급할 때는 일단 쓰고 봐야 했다.

그리고 세르게이가 연이어 무전했다.

2층이나 1층이 아닌, 바깥쪽에 포진한 총 5명의 정찰대원들.

“1구역부터 5구역, 전원 무장하고 즉시 적 후미 공격해!”

그들에게서 차례로 대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섯 명이나 되는 특수부대 출신 병력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 적 후미를 공격해서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교란도 가능할 터.

이어서 세르게이가 긴장하며 총을 견착했다.

드디어 적 대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늦은…….’

홀로그래픽 조준경을 들여다보려던 찰나.

그가 주춤했다.

예상했던 소리가 안 들렸기 때문이었다.

대전차 화기인 AT4와 유탄 발사기에 의한 강렬한 폭음.

그게 전혀 없었다.

오로지 소음기 달린 총소리만 들릴 뿐.

“1, 2층, 사용 가능한 모든 화기를 허용한다, 즉각 사용하라. 즉각…….”

말을 잇던 그가 입을 닫았다.

돌아오는 답이 전혀 없었고, 답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즉, 전부 죽었다는 뜻.

당연하게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교전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부하 6명이 전부 무전이 끊긴단 말인가?

그러다가 멈칫했다.

최초에 시끄럽게 들려오던 기관총 소음까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

놀라고 당황했으나, 길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그에게는 아직 임무가 남아 있었다.

즉시 새 무전을 쳐야만 했다.

“RPG, 기관총은 적 발견 시 즉시 공격하고 퇴출 준비해.”

시신이 된 부하들과 정찰 병력을 버리는 셈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러다가는 다 죽게 될 테니까.

이를 꽉 깨문 그가 신속하게 쪽문을 나섰다.

주 진입로에서 러시아 위장 패턴 군복을 입은 카마르니아 육군 특전대가 보이기에, 급하게 견제 사격을 해 가면서 테크니컬 차량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트럭 운전석으로 힘겹게 기어 올라갔다.

부하가 둘이나 있지만, 둘 다 기관총과 RPG-7을 든 상황이라서 운전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직접 해야만 했다.

꽂혀 있는 키를 돌리면서 시동을 거는 순간.

콰강―!

RPG-7이 발사됐다.

발사 후폭풍이 트럭 옆으로 쏟아져 나가고, 탄두가 날아가는 게 백미러로 선명히 보였다.

그리고 세르게이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핸들을 잡다가 멈칫했다.

“……?”

RPG-7 탄두가 이상한 곳으로 날아간 탓이었다.

적이 아닌, 꽤 높은 하늘 방향.

포물선으로 RPG-7 탄두가 쏘아져서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

기껏해야 20미터.

당연히 수평으로 쏴야 했었다.

이를 격발 실수나 오차라고 여기려던 때였다.

스으윽.

그의 부하가 뒤로 기울어졌다.

차가 움직여서 그런 게 아니라, 격발 직후부터 무너지는 것이었다.

RPG-7을 어깨에 짊어진 채.

그의 부하가 이윽고 짐칸 밖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쿵.

흙바닥에 그대로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세르게이는 깨달았다.

거치한 기관총도 조용하다는 사실을.

급히 돌아보니, 직전까지 멀쩡했던 부하의 머리통이 기관총 위에 엎어져 있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당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고.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 그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들이차기를 잠시.

오른발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부아아아앙―!

악셀을 밟았고, 두 손이 급히 핸들을 붙잡고 내달렸다.

기관총 위에 엎어졌던 부하의 시신이 떨어져 나갔으나,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우선 피해야만 했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혼자 살아남은 건 자명한 사실이었으니까.

그의 눈이 전방의 길만 찾던 때였다.

덜컹! 덜컹!

차가 요동치듯 흔들렸다.

타이어가 탄환에 터져 나간 것이었고, 핸들도 조종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아직 악셀에 발이 올라간 상황.

결국 테크니컬이 옆 빌라 담벼락을 들이받고 말았다.

콰아아앙―!

에어백이 터지고, 세르게이의 몸뚱이가 크게 부딪혔다가 뒷좌석에 처박혔다.

그리고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총을 찾으려고 움직이려던 무렵.

세르게이는 뒤늦게 깨달았다.

방금의 충격으로 몸속이 완전히 아작났다는 사실을.

팔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한 모금의 숨조차 내뱉거나 마셔지질 않았다.

끄륵, 피거품 끓는 소리만 가까스로 났다.

이에 가슴팍이 몇 번인가 움찔거리기를 잠시, 세르게이의 머리가 에어백이 꺼진 운전대에 엎어졌다.

털썩.

그가 쓰러짐과 동시에 벌컥 문이 열렸다.

달려온 강태가 열어젖힌 것이었는데, 안으로 빠르게 총구를 겨누었다가 금세 내리고 말았다.

척 봐도 심각하게 박살 난 탓이었다.

차 내부든, 사람이든.

이를 바라보던 강태의 표정이 찌푸려졌고, 금세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아… 여기서 죽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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