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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50화 (50/185)

50화

“찰리 다섯, 라스트 탱고(Tango: 타깃의 약어) 다운됐는지 확인 바람.”

타깃이 뒤로 쓰러지는 것까지 확인했음에도 일부러 요청했다.

상대가 나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서 육안으로 시신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머리가 뚫리고 살아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빌라 앞에서 비슷한 사례도 있었고.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입안으로 탄환이 들어가 뇌를 뚫었을 것 같긴 하지만, 아직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살아 있다면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몰랐다.

그냥 병사가 아니라 특수부대 출신인 훈련받은 저격수고, 거기다 세르게이의 부하일 확률도 높았으니까.

이에 레이첼의 대답을 기다리면서 스코프에서 눈을 떼지 않았으나, 다행히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주인 잃은 저격 소총과 관측경뿐.

그 외에 발끝으로 보이는 형체가 있긴 했지만, 그 외에 사람의 형체라고 볼 만한 건 없었다.

따지자면 식별이 쉽지 않았다. 놈들이 자리 잡은 발코니는 불을 끈 상태고,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등진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저격하기 좋은 자리.

적 위치를 찾아냈던 레이첼의 도움이 또 필요했다.

이에 차분히 주시하면서 기다릴 무렵, 곧 원하던 답이 돌아왔다.

-여기는 찰리 다섯, 라스트 탱고 미동 없으며, 출혈이 지속되며 급격한 체온 저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망한 것으로 파악됨. 올 탱고 다운.

“찰리 셋, 수신 양호.”

짧게 답하면서 스코프에서 눈을 뗐다.

“후… 돼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M4 장거리 사격은 처음인 데다가 낯설어서 주의를 좀 기울였는데, 결과와 과정이 예상외로 좋았다.

외부 요인인 날씨도 그저 흐리고 추울 뿐이고, 바람이나 습도도 저격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거기다 M4의 초탄 낙차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그러나 온전히 명사수 특성만으로 이뤄 낸 건 아니었다.

보너스와 월급을 쏟아부어 가면서 구입한 6,000달러짜리 스코프 덕도 상당히 컸다.

일반 스코프에는 없는 화질 개선과 음영 조절 기능 같은 게 들어 있길 망정이지, 그냥 배율만 늘어나는 망원 렌즈였다면 식별조차 어려웠을 것이었다.

이에 고가의 스코프가 달린 M4와 함께 건물로 들어가려던 무렵.

계속해서 들리던 MP5 총성도 멎었다.

동시에 제이크의 걸걸한 목소리가 헤드셋을 타고 들어왔다.

-여기는 찰리 하나, 타깃 1번 제압 완료. 현 시간부로 퇴출 실시한다, 골목으로 전원 집합.

내가 저격하는 수십 초 동안 내내 총을 쏴 대더니 끝끝내 1번 집도 마무리를 해 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지휘관 생포 역시 시도조차 안 했을 것 같았다.

마커스가 중상을 입은 상태였으니까.

그저 신속하게 퇴출하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었다.

“여기는 찰리 다섯, 수신 양호.”

짧게 답하면서 집으로 들어가자, 들것에 실린 마커스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아직 가슴 쪽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

그 옆에도 들것에 고정되어 이송 준비가 된 이들이 있었는데, 바라보다가 멈칫하고 말았다.

이름 모를 대원과 막심의 시체가 머리끝까지 천을 덮고 들것에 실려 있었는데, 이것도 다분히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

특히 막심은 여기서 이렇게 죽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게임 속에서의 그는 카마르니아에 머무는 동안 계속해서 퀘스트를 주는 NPC였다.

육군 특전대의 부하들은 자잘한 합동 미션을 하다가 총상을 입고 사망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막심은 카마르니아를 떠날 때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추모할 시간은 없었다.

움직여야 했다.

마커스가 중상을 입은 상태였고, 당장 치료해야 하니까.

그렇게 정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가자, 이미 제이크의 지휘에 따라 육군 특전대 대원들이 자리를 잡고 경계 중이었다.

나도 제이크에게 다가가려던 무렵.

찰리 팀 내부 무전으로 레이첼의 음성이 급하게 전파됐다.

-테크니컬 2대 발견! 저격 지점으로 이동 중! 남동쪽 600미터 방면!

그 말에 주춤하고 말았다.

지금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건 아군 아니면 적이었는데, 아군일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오직 적이었다.

저격을 마친 지 아직 1분도 안 된 시점이었으니까.

이런 타이밍에 등장했다는 건 근처에서 기다리던 적이라고 봐야 했다.

그 안에 세르게이가 있는지, 부하들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팀일 가능성이 컸다.

마침 제이크 역시 같은 판단을 내린 모양인지 새 명령을 하달했다.

-현 시간부로 작전 변경한다. 사상자 후송은 찰리 둘 이하 팀이 맡고, 나머지는 적 섬멸하러 이동한다.

호세에게 마커스를 맡기고, 나머지는 세르게이 팀을 치러 간다는 소리였다.

-네?!

동시에 골목에 무릎 쏴 자세로 경계 중이던 호세의 고개가 이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놀란 음성이 무전을 타고 전달됐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도 당연히 놈들을…….

-그럼 마커스를 카마르니아군에게만 맡길 셈인가? 누군가는 옆에 있어야 해.

-…제기랄.

짧은 대화가 내 헤드셋으로도 들렸다.

그 말속에 담긴 의미는 굳이 묻지 않아도 잘 알았다.

육군 특전대원들 몇 명 붙여서 마커스를 보냈다가는 처치 미흡으로 영영 못 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는 상식대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다른 팀원이 가도 되긴 하지만, 당장 갈 만한 적당한 사람은 호세뿐이었다.

각자 역할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가 무능력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호세는 어디에 가서도 1인분은 하고 남을 실력자였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믿음직한 동료였다.

지금도 그가 자주 쓴다는 MK.13만 있었다면 나 대신 적을 처리했을지도 몰랐다.

이런 사실을 호세 역시 잘 알 터.

욕을 뱉었던 그가 다른 말 대신, 곧장 손짓하면서 팀원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우린 사상자와 함께 복귀한다! 움직여!”

그의 말 뒤로 제이크도 주춤거리는 육군 특전대를 불러모았다.

“우리는 적에게 반격하러 간다, 전원 전투 준비하고 차량으로 이동해.”

기존 계획에도 없는 일이었으나, 다행히 육군 특전대 대원들은 거절하지 않고 움직였다.

부족한 군대라고는 해도 대대장이 사망했으니, 분노가 이는 모양이었다.

지금도 몇몇 대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뛰고 있었다.

물론 마음대로 변경한 작전이니 카마르니아군 상부에서는 싫어할 게 뻔하지만, 그렇다고 우릴 어쩌지도 못할 것이다.

그냥 PMC 소속의 미국인도 아니고, 국무부를 배후에 둔 미국인들이었으니까.

그렇게 차량에 올라 내가 직접 시동을 걸었을 때였다.

-여기는 찰리 둘, 현재 찰리 넷 후송 중이며…….

바람 소리가 섞인 호세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어왔다.

동시에 귀를 기울였다.

강철 멘탈 덕분에 아직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되거나 흔들리진 않았는데, 마커스의 안위가 신경 쓰인 탓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커스는 라레플의 캐릭터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지난 몇 달간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전우였으니까.

그리고 곧 기다리던 답이 이어졌다.

-차량 이동으로 통증을 느끼고 의식을 찾는 것으로 보임.

다행이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려던 때.

호세의 무거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찰리 하나, 찰리 셋. 반드시 그 개자식들에게 내 몫까지 복수해 주길 바람. 이상.

그제야 호세의 음성이 왜 이렇게 낮은지 알 만했다.

픽업트럭 뒤에서 다친 마커스를 돌보고 있으니, 열이 꽤 뻗친 모양이었다.

나조차도 방탄판이 뚫린 마커스를 봤을 때 움찔했었으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더구나 호세와 마커스는 절친 중의 절친이었고.

이에 대답하려고 했는데 헤드셋 수신기에서 그리고 조수석에서 더 무거운 대답이 들려왔다.

“찰리 하나, 수신 양호.”

답하는 제이크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살벌하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 * *

테크니컬로 만들어진 닛산 픽업트럭이 덜컹거리기며 달리는 사이.

조수석의 세르게이는 무전기를 놨다.

이동하는 내내 저격 팀에게 무전을 했으나,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버튼 누르는 딸깍 소리만 울려 퍼질 뿐.

그의 이가 까득 갈리듯 다물렸다.

‘제기랄…….’

상황만 보면 전부 죽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탓이었다.

그러나 수긍하기 어려웠다.

폭격을 맞거나 대전차 화기의 묵직한 탄두가 터진다면 이해가 가지만, 그런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무전이나 정황을 봐서는 저격에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상대 병기는 M4에 불과한 데다가 모든 상황도 저격 팀에게 유리하게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저격 지점 설정부터 그랬다.

동쪽 방면으로 태양을 등져서 시야 확보에 유리했고, 또한 높은 곳에 자리 잡아서 위치 또한 우위를 갖고 있었다.

거기다 두 사람이 소지한 것도 평소 사용하던 저격 총이었다.

사격장 같은 곳에서 연습 좀 한 게 아니라, 실전에서 사용한 오른손 같은 병기.

더불어서 관측수들도 모두 저격 교육을 받은 저격수들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저격 팀 전원이 죽는 건 말도 안 됐다.

G&G Corp 측에서 역으로 저격을 준비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외부 변수는 전혀 없었다.

감청하고 있는 카마르니아군의 무전도, 사방에 풀어 둔 그의 정보원들과 부하들 역시 모두 조용했으니까.

찰리 팀 내부 무전까지 감청하진 못했지만, 그건 별문제가 되진 않았다. 어찌 되든 간에 임무 보고와 하달 등은 카마르니아군하고 교신해야 했으니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감청 중인 카마르니아군의 무전 내용이 흘러 들어왔다.

-…지금 찰리가 말했던 위치로 테크니컬 두 대가 접근하는데, 찰리가 병력을 이동시키는 건지? 후송은 어떻게 되는 건지 대답 바람.

역시나 예상한 그대로의 무능한 교신이었다.

현 위치나 나타난 경로만 봐도 찰리 팀이 아닌 적이라는 걸 알아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알게 되겠지만, 그것도 두렵진 않았다.

인근에 만든 비밀 땅굴로 들어가면 추적도 못할 테니까.

그보다 중요한 건 저격 팀이 전멸한 목적지였다.

“도착 30초 전.”

운전수의 보고와 동시에 세르게이가 픽업트럭 뒷창을 쳤다.

쿵! 쿵! 쿵!

그리고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면서, 무전으로 도착 30초 전임을 알렸다.

이후에 세르게이도 교전을 준비할 무렵.

감시조로 깔아 둔 부하로부터 예상치 못한 무전이 들려왔다.

-…카마르니아 테크니컬 2대, SUV 1대 접근 중! 포인트로부터 300… 아니 250미터!

세르게이가 멈칫했다.

포인트는 저격 지점을 의미하는 통신 음어였기 때문이었다.

고로, 적 차량 3대가 저격 지점으로 오고 있고, 잠시 뒤에 마주친다는 의미였다.

300M면 늦어도 1분 안에 올 테니까.

그러나 지금 감청 중인 카마르니아군과의 교신에서는 이런 내용이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었다.

있는 거라고는 사상자 후송이 전부.

‘설마…….’

세르게이의 미간이 구겨졌다.

어떤 이유로든 통보하지 않고, 작전 부대가 독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지휘관이 죽은 부대를 이끌고.

그 가운데 누가 있는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뻔했다.

찰리 팀장, 제이크.

‘…일이 아주 개좆같이 돌아가는군.’

그는 세르게이도 들어 본 적 있는 델타포스의 전설 같은 사람이었다.

당연히 조우하기 껄끄러운 상대였고.

거기다가 휘하에 있는 이강태의 실력도 대단할 테니, 전투가 쉽게 풀리진 않을 것이었다.

육군 특전대도 머릿수가 많아서 조금 거치적거릴 터.

그러나 그게 패배한다는 뜻은 아니었고, 또한 도망가야 한다는 말도 아니었다.

맞서 싸워야만 했다.

찰리 팀은 자신을 뒤쫓는 놈들이고, 부하를 죽인 원수인 데다가, 미사일 개발에도 걸림돌인 장애물들이었으니까.

추가로 저격 팀의 시신과 장비도 모두 회수해야만 했다.

저번처럼 다 빼앗겼다가는 부하들에게 체면이 서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르게이에게 유리한 것도 있었다.

육군 특전대보다 병력의 질이 우수하기도 하고, 그 병력이 탑승한 차량이 저격 지점에 먼저 도착하며, 차량에는 암시장에서 구해 온 대전차 화기가 실려 있다는 사실.

원하던 타이밍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을 더하면 손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차를 타고 지하 땅굴로 퇴각하면 될 일이었다.

종합적인 판단 끝에 세르게이의 입이 열렸다.

“…전원 전투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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