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M4 소총의 장거리 저격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고, 제이크 역시 겪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권장하거나 시도되는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M4의 유효사거리가 500M로 제한되는 데다가, 5.56㎜ 나토탄의 공기 저항력도 다소 약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최대 사거리는 3,600M에 달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보나 기록 같은 것에 불과했다.
3,600M까지 탄이 날아간다고 해도 살상 위력이 있는 게 아니었다.
각도가 안 좋으면 피부를 때리고 지나갈지도 몰랐다. 종종 유효사거리를 초과하는 초장거리 저격 기록이 나오긴 하지만, 그건 탄의 종류부터 달랐다.
최소 7.62㎜부터 중기관총에 들어가는 50구경 탄환까지.
만약 5.56㎜를 사용하는 M4로 장거리 살상이 충분히 가능했다면, 미군의 수많은 분대 지정 사수들부터 M4에 스코프만 갈아 끼웠을 것이었다. 굳이 수급이 부족한 7.62㎜ 전용 지정 사수 소총을 따로 쓸 이유가 없었고.
쉽게 말해서 장거리 저격은 M4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저격 소총에 공격을 당할 때는 아주 단단한 엄폐물에 숨거나 도망가야만 했다.
까딱 잘못하면 방탄판까지 뚫릴 테니까.
그리고 저격수를 이기려면 폭격이든, 아군 저격수든, 지정 사수든 호출해야만 했다.
이는 제이크도 마찬가지였다.
“퇴출 작전 즉각 실행 바람, 하우스 지휘관, 대원 각각 1명 사망, 찰리 넷 중상. 반복한다, 즉각 퇴출해야 하며…….”
심각한 사태를 알렸으나, 돌아온 답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었다.
-적 저격수 위치 재송신 바람, QRF는… 아직 준비되지 않음. 차량 이상으로 정비 후 출발 예정. 추가로 우리 측 무인기로 저격수 확인 불가능한데… 찰리 드론 정보 확실한지 응답 바람.
최악이었다.
적 저격수에게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 구조 팀은 출발도 안 했고, 심지어 무인정찰기는 저격수조차 찾지 못한 상황.
그 와중에 제이크의 시야에 강태가 들고 있는 물건이 보인 것이었다.
8배율 망원 스코프 케이스.
제이크의 입이 거의 반사적으로 열리면서, 저격의 가능성을 묻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리고 이건 의구심이나 불안 따위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그저 저격의 가능성을 물을 뿐이었다.
강태의 실력은 이미 계산하고 말고 떠들어 댈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규격 외.
작전이든, 훈련이든, 뭐든. 제이크가 그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봐 왔기에 잘 알았다.
즉, 강태가 된다고 하면 되고,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기준이 능력이든, 의지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강태의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행히도, 그가 기대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 앞집 견제부터 해 주십쇼. 레이첼하고 얘기해서 각도 나오는 놈부터 따겠습니다.”
단순히 가능하다는 대답이 아니라, 필요한 대안과 사살하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역시 능력만큼이나 판단력과 행동력도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마커스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제이크 역시 그 말에 대답하기보다는 무전기 버튼을 누르는 행동을 먼저 보였다.
“찰리 다섯, 여기는 찰리 하나. 현 시간부로 찰리 셋에게 적 위치와 사선 파악 후 필요한 통신 지속하고, 찰리 둘은 신호하면 1번 타깃 동시 제압 사격한다, 이상.”
레이첼에게는 강태와 통신 지속을, 호세에게는 제압 사격 준비를 명령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이 동시에 제 할 일을 위해 움직였다.
제이크는 대대장인 막심 주위로 몰려들었던 육군 특전대 대원들을 떼어 내서 사격 가능한 위치로 옮겼고, 강태는 레드 닷 조준경과 3배율 광학 조준경을 탈거하면서도 동시에 레이첼과 대화하며 움직였다.
도착한 곳은 집과 낮은 담벼락 사이의 좁은 틈.
상체를 숙인 강태가 담벼락과 집 사이로 들어간 뒤에 총을 고쳐 잡으면서 무전했다.
“찰리 다섯, 여기는 찰리 셋. 현 위치 맞는지 확인 바람.”
적 위치를 눈으로 보기 전에,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준비해 두려는 것이었다.
빠르게 적을 찾지 못하고 허둥댄다면, 머리에 총구멍이 나는 건 적이 아니라 강태 자신이 될 테니까.
다행히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여기는 찰리 다섯. 찰리 셋, 현 위치 정확함. 이상.
강태가 마지막으로 호흡을 골랐다.
강철 멘탈 덕분에 크게 요동치는 건 없었는데, 저격 소총이 아닌 M4는 처음이라서 조금 신경이 쓰인 것이었다.
무엇보다 강태는 초탄을 버리고, 두 번째 탄에서 승부를 보려고 했었다.
M4나 8배율 스코프의 영점을 모두 맞춰 놨다고는 해도, 현 장소의 습도나 온도, 바람까지 고려한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즉, 첫 발은 맞히고 싶어도 못 맞힐 가능성이 컸다.
남은 건 두 번째.
재수 없으면 세 번째까지 쏴야 하는데, 그때는 강태도 위험할 가능성이 컸다.
적 저격수는 이미 아군 몇을 쓰러뜨려서 거리 감각이나 사격 감각이 최적화된 상태일 게 분명했고, 저격 수준도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었다.
훈련받은 군 저격수 출신일 확률이 높고, 그중에서도 세르게이의 부하일 가능성이 컸다.
물론 일단 사살하고, 시체를 건져서 확인해 봐야 할 터.
판단을 마친 강태가 방아쇠울에 검지를 살짝 올려놓고, 미리 방향을 잡을 무렵, 총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소음기가 달린 MP5 기관단총의 격발음이었다.
제이크가 제압 중인 상황.
스윽, 강태가 담벼락에 팔꿈치를 걸치며 견착했고, 스코프에 접안하며 말했다.
“찰리 셋, 저격하겠음.”
* * *
카마르니아 육군 특전대 작전지역으로부터 약 720M 떨어진 3층 빌라의 발코니.
그곳에 두 사람이 있었다.
주저앉은 채로 T-5000 저격 소총을 잡은 저격수와 마찬가지로 옆에 나란히 앉아서 관측경을 든 관측수.
둘 다 작전지역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그중 저격수가 든 T-5000의 총구가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는데, 스코프에 접안한 저격수의 눈알은 그와 반대로 바쁘게 지역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그의 옆에 앉은 관측수도 마찬가지.
관측경 안에 들어오는 것들을 급하게 그리고 샅샅이 훑고 있었다.
동료 저격 팀으로부터 들어온 뜬금없는 무전 때문이었다.
바로 공격당했다는 소식.
다행히 저격 팀의 누군가가 피격당했다는 말은 없었지만, 이를 들은 관측수의 미간은 일찍부터 구겨져 있었다.
‘공격을 당해? 도대체 무슨 소리를… 오발탄을 착각한 거 아니야?’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현 위치가 파악되었다고 해도, 피격당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공격할 수단이 없었다.
육군 특전대가 소지한 MP5와 근접전용 샷건 몇 자루, 거기에 G&G Corp의 M4가 전부.
그걸로는 650M나 떨어진 아군 저격수를 공격할 수 없었다. 물론 겨누고 격발을 할 순 있겠지만, 그런 순간은 잠깐에 불과할 것이었다.
몇 발 쏘고 나서 오히려 저격 소총에 당할 테니까.
곧 관측수가 짜증 난다는 듯 물었다.
“제기랄,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야? 그쪽에선 뭐 보이냐?”
“아니, 아무것도 안 보여.”
“도대체 무슨 피격을 당한다는 건지… 쯧, 겁을 처먹었나…….”
저격수의 짧은 답에 구시렁거리듯 중얼거린 관측수가 새 무전을 날렸다.
“첨탑, 첨탑. 여기는 글러브, 현 위치에서 적 확인 불가. 피격 상황 좀 자세히 설명하기 바람.”
약간의 짜증이 담긴 말이었다.
불쑥 공격당했다고, 적이 보이냐고만 말했으니까.
한데, 그렇게 송신을 마치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헤드셋을 타고 확 파고들어 왔다.
-그, 글러브! 여기는 첨탑! 첨탑 저격수 사망! 첨탑 저격수 사망, 즉시… 억! 아으… 그으으…….
말이 끊기더니 신음이 들렸고, 오래지 않아서 신음도 곧 멎었다.
그리고 더는 들려오는 소리가 없었다.
관측수가 멈칫했다.
“……?!”
그가 당황해서 입을 떼려던 때, 다행히 무전을 같이 들은 그들의 보스, 세르게이의 음성이 헤드셋으로 전파됐다.
-글러브, 여기는 월계관. 보이는 거 있나?
“여기는 글러브, 확인 불가함.”
-시계 불량인지, 각도가 안 나오는지 답변 바람.
“시계 불량하나 적 식별은 가능함. 각도가 안 나오는 것 같음.”
-월계관 QRF(Quick Reaction Forces: 신속대응군) 출동할 테니, 글러브는 계속해서 작전지 주시하고 필요시에는 퇴출하고 보고해도 좋다, 이상.
“글러브, 수신 양호.”
자못 긴장했던 관측수가 대답하면서 한시름 덜었다.
세르게이가 꾸린 QRF가 직접 온다고 했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거리도 멀지 않았다.
차량 탑승 시에 1분 정도면 충분했다.
뭐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을 거고, 수습도 될 터.
다만, 끊어진 무전과 신음이 걸렸다.
‘피격당했다는 게… 정말 총이라도 맞았다는 건가?’
여러 생각을 잇던 중.
관측수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심장의 펌프질이 가속화된 듯 손끝이 맥박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확 퍼진 것이었다.
‘어쩌면 놈들 QRF가 현장을 덮쳤을지도 몰라.’
휙, 관측경에서 눈을 뗀 그가 급하게 뒤를 돌아봤다.
“…….”
느낌이 너무나도 싸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중동에 실 작전을 나갔다가 고립되어서 죽을 뻔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동료 여럿이 죽었고, 절반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었다.
그 생각을 하던 무렵.
아직 스코프에 눈을 붙이고 있던 저격수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이봐, 지금 뭐해?”
“아니… 불안해서, 혹시 놈들의 QRF가 온 거 아냐?”
“카마르니아에서? 말 같은 소리를 해. QRF는 무슨… 그 머저리들은 상황 파악도 못 하고 빌빌댈 거야. 설령 운 좋게 출발했어도 무전했을 거고, 그럼 소령님이 먼저 전파해 줬을 거야.”
“그게 그렇긴 한데…….”
그가 중얼거리던 순간.
관측경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타깃들이 들어간 집의 담벼락 쪽.
이를 쳐다보는 순간.
피융― 콰각!
총탄이 스쳐 가는 소리와 함께 뒤편의 뭔가 터져 나갔다.
“……!”
피격이었다.
누가 맞진 않았지만, 관측수의 옆을 스쳐 갔으니 상당히 정밀한 저격을 당한 셈.
말도 안 되는 일에 주춤했던 관측수가 반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적 발견! 주택 3시 방향 담벼락…….”
그가 막 저격수에게 알려 주던 찰나.
퍼적! 스으윽―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기울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관측수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사람이 아닌 시체가 있었다.
그것도 왼쪽 안구에 구멍이 뚫려서 절명한 상태.
철퍼덕.
이내 시체가 쓰러졌다.
피격되고서 약 1초 정도 흐르고, 이제 2초가 될 무렵.
관측수는 죽음을 느끼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따위에서 전장의 사신으로 묘사되던 스나이퍼를 드디어 마주한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간 죽어 간 타깃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건지도 몰랐다.
공포와 체념, 당황함 따위의 온갖 감정들이 몰아치는 가운데, 관측수가 직업적인 본능으로 입을 뗐다.
“워, 월계관…….”
그리고 이어서 말하려던 순간.
퍽!
입속이 터져 나갔다.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쏘아진 각도였고, 정확히 뇌를 뚫고 나가는 경로였다.
관측수도 저격수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도 철퍼덕하고 쓰러질 무렵, 세르게이의 음성이 전달됐다.
-여기는 월계관. 글러브……? 글러브, 응답 바람. 글러브, 응답… 이런 씨발…….
뚝, 마지막 무전이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