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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48화 (48/185)

48화

“팀장, 저 테크니컬(Technical: 민간 무장 차량), 아니… 육군 특전대 친구들 말인데. 여기 말고 저쪽으로 정차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작전지역에 도착한 호세의 말이었다.

반사적으로 총을 고쳐 잡는데, 제이크의 음성이 묵직하게 깔려 나왔다.

“위험한가?”

“흠, 위험한지는 모르겠지만, 저쪽 2층 이상의 건물에서 저격 각도가 나옵니다. 2킬로미터 바깥이긴 하지만, 더 높은 빌라도 보이고요.”

이에 되묻거나 재확인하는 대신, 제이크가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하우스, 여기는 찰리. 현 위치 저격 위험 있으므로, 우측 담벼락으로 이동하기 바람.”

그러자 곧장 무전기가 흔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찰리! 저격수 발견했나?!

“저격수 파악은 못 했으나, 저격 가능성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동하기 바람.”

좀 놀란 모양이었는데, 다행히 제이크가 아까와 같은 무겁고 차분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또한, 돌아오는 말도 상황을 이해했는지 차분해졌고.

-아… 음, 수신 양호. 전원 이동하겠음.

주춤한 대답 뒤로 차량들이 다시 이동했는데, 운전 중인 호세의 뒷모습에 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미처 놓치고 있었는데, 역시나 든든한 존재였다.

‘그래, 네이비씰 저격수였지. 해상에서도 쏴 재끼는…….’

얕은 감탄이 입가를 맴돌았다.

말 많고 시끄러운 이미지긴 하나, 본업에서만큼은 역시나 출중한 사내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여기서는 그가 아낀다던 MK.13 저격 소총을 들진 못했지만, 그래도 저격수 출신은 역시 남달랐다.

사방을 훑는 눈빛만 봐도 현역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예리했으니까.

그렇게 차가 멈출 무렵.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 호세가 어느새 웃음기를 머금은 눈으로 뒤를 쳐다봤다.

“자, 탑승객 여러분 목적지까지 다 왔습니다. 모두들 안전한 여행 되시길 바라고, 다음번에도 호세 페레즈의 투어 패키지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씨익 웃는데, 저격 포인트를 찾아내어 위험을 사전에 막았던 눈빛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마커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라티노 중에서는 네가 가장 재미없을 거야. 말하는 거에 비해서 말이야.”

“아니, 네가 오해하는 거야. 내가 입대 하기 전에는 스탠딩 무대에서 코미디도 여러 번 했었거든? 그때 반응이 아주…….”

“…그럼 지금 15년 전에 했던 개그를 했다는 소리야? 이거 너무 오래돼서 상한 치즈 냄새가 날 것 같은데?”

두 사람이 라티노 억양과 흑인 억양으로 말을 주고받을 때였다.

“둘 다 내려.”

제이크가 간단하게 제압 겸 중재했고, 전원이 순식간에 하차했다.

그중 레이첼은 알아서 커다란 하드 케이스 가방을 챙겼고, 각자 맡은 위치에서 경계할 무렵.

대대장인 막심이 허겁지겁 다가왔다.

“통제는 확실하게 됐습니다, 그럼 작전대로 진행합니까?”

“네, 대원들 부르십시오.”

이게 작전의 시작이었다.

육군 특전대 32명을 나눠서 찰리 팀 4명에게 8명씩 붙이고, 3개의 집을 각 팀마다 하나씩 맡은 후 남은 한 팀은 거리를 경계하는 형태.

거기서 경계는 마커스의 몫이었고, 남은 셋은 동시에 3곳으로 침투할 예정이었다.

건물들이 서로 마주 보듯 모여 있고 그 상황을 모두 무인정찰기로 파악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내 막심이 병사들을 불러모아서 팀별 분리를 지시했다.

“다 됐습니다, 제이크 팀장.”

그리고 보고 아닌 보고를 한 뒤, 제이크가 나와 호세, 마커스에게도 시선을 보내왔다.

“초동 조치 신속하게 하고, 무전 확실하게 하도록.”

단단한 말에 다들 힘주어 대답했고, 나도 돌아서서 8명의 대원을 격려했다.

물론 길게 할 말은 없었다. 작전 투입 직전이었으니까.

“같이 잘해 봅시다.”

중간중간에 긴장한 안색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단순 교전을 여러 번 해서인지 특별히 떠는 얼굴은 없었다.

오히려 제법 담담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자, 그럼 이동합시다.”

내가 말하면서 수신호를 함께 했다.

그들의 영어가 조금 부족한 탓이었는데, 그래도 2주 넘게 교육받은 덕분인지 간단한 의사소통은 됐다.

가자, 멈춰, 공격해, 숨어 같은 말들.

물론 정 급하면 내가 상용어 중의 하나인 러시아어를 해도 될 일이었으니, 상관은 없었다.

이에 줄 선 대원들을 확인하고, 선두에 설 제이크를 보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3개 주택으로 향하는 도보 이동이었다.

거리는 약 50여 미터.

차량 엔진음이 들리는 걸 방지하고 기도비닉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발소리를 죽여 가며 이동하던 무렵, 헤드셋으로 레이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찰리 다섯, 찰리 팀 전원 확인했으며, IR(Infrared Ray: 적외선) 램프도 체크 완료. 각 인원 수신했는지, 확인 바람.

그 말 뒤로 찰리 하나인 제이크부터 답하기 시작했고, 호세와 나, 마커스도 차례로 무전했다.

곧 레이첼 역시 알았다는 말과 간단한 정보가 오고 간 뒤.

얼마 안 돼서 제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는 찰리 하나. 찰리 둘, 찰리 셋 모두 진입 준비 마치고 보고하도록.

지휘관 집 앞에 제이크가 도착했고, 판자로 대충 만든 빈 초소를 넘어가고 있었다.

호세도 마찬가지.

나도 대원과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투박한 벽돌 담장을 넘어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퍼석.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었는데, 거의 동시에 무전기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스나이퍼어어어어어!”

“……!”

나도 모르게 주춤했다.

듣는 순간, 저 목소리가 절규에 찬 마커스의 음성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저격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게 아니었다.

피격됐을 것이었다.

호들갑을 떨지 않는 그가 저렇게까지 소리칠 일은 없을 테니까.

이에 그를 향해 몸을 돌리려던 때였다.

-마커스는 내가 맡을 테니, 전원 엄폐해.

제이크의 낮고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떼던 발을 다시 붙였고,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커스가 쓰러졌더라도, 제이크가 있으면 믿을 만했다. 응급조치도 충분히 이뤄질 터.

그리고 나는 할 일을 해야 했다.

반군 거점 침투와 제압.

작전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안전 확보라는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급하다고 담벼락 같은데 숨어서 기다려선 안 됐다.

스나이퍼와 한 팀이든 아니든, 반군들이 깨어나서 공격해 올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마땅히 이 안을 소탕하고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그 판단과 함께 대원 한 명이 끼워 넣고 있던 빠루를 내가 대신 힘껏 눌렀다.

끼이이이익―! 덜컥!

싸구려 철문이 그대로 벌어졌고, 함께 잠금장치도 빠졌다.

동시에 송신 버튼을 켜면서 말했다.

“찰리 하나, 3번 타깃 안전 확보할 테니까, 급하면 이쪽으로 와도 됩니다.”

제이크라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만, 혹시 몰라서 선택지를 주는 것이었다.

동시에 호세도 같은 판단을 한 모양이었다.

-나도 같습니다, 팀장! 아, 찰리 하나!

그 뒤로 곧장 총성이 울려 퍼졌다. 헤드셋으로 그리고 옆집에서.

투두두! 투두두두!

타다다다다다다당―!

아마 호세가 나보다 더 빠르게 진입한 모양이었다.

그 소리를 배경음으로 들으면서, 나 역시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총구를 들었고, 발을 딛으며 전진했다.

뒤에서 육군 특전대의 다소 투박한 발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반군 한 명을 발견했다.

잠에서 방금 깬 모습.

그러나 민간인과 다르게 불법 개조에 락카 칠까지 된 AK-47을 들고 있었다.

탄이 걸렸는지, 장전을 반복하던 모습.

그에게 항복을 권유하거나 총을 내려놓으라고 경고하지 않았다.

일단 격발하고 봤다.

투두두두!

바빠서 그런 게 아니었다.

교전 수칙이 그랬다.

선제공격하거나 사살해도 되며, 지휘관만 생포를 시도하고, 지휘관도 생포가 불가능하면 마찬가지로 쏴도 좋다고 했었다.

그리고 애써서 살려 둘 만한 포로들이 아니었다.

정부에 반대해서 무기를 든 군인이나 시민이 아니라, 대다수가 약탈과 포로 처형을 일삼는 쓰레기들인 탓이었다.

이에 실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지는 반군을 확인하고 몸을 돌려 나왔다.

나머지도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아마도 단층짜리 집이라서 좀 더 빠르고 수월할 터.

“클리어.”

그렇게 상황을 전파하며 복도로 나온 순간.

마침 적들이 나오고 있었다.

죽이기 좋은 명분을 주기라도 하듯, 모두 한 손에 돌격 소총 따위를 든 모습으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 투두두! 투두두! 투두두!

순식간이었다.

마지막 놈마저 총구를 겨눌 틈도 없이 총알을 박아 넣었다.

철퍼덕―

시체가 된 반군들이 그대로 고꾸라지면서 문턱과 복도에 고깃덩이처럼 자빠지는 사이.

다른 방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파키스탄제 MP5에서 들린, 아군의 격발 소리였다.

텅텅! 텅! 텅!

그리고 제법 절도 있는, 동유럽 특유의 억양이 들려왔다.

“클리어!”

그 뒤로 남은 방을 확인한 대원들의 보고가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내가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올 클리어. 그리고 찰리 하나? 괜찮습니까?”

방 확인과 동시에 무전을 보낸 순간, 후미를 지키던 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군이라는 단어였다.

투박하면서도 분명한, 제이크라는 글자도 있었다.

“제이크?”

나 역시 현관 쪽으로 움직였고, 곧 마커스를 짊어진 제이크를 마주했다.

추가로 그의 손에 한 명이 더 들려 있었다.

육군 특전대 복장.

누군지 얼굴을 보다가 주춤했다.

“대대장……?”

육군 특전대 대대장 막심이었다.

제이크가 천천히 눕히자, 그의 피가 바닥을 타고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총상이 방탄복 한가운데 있었으니, 등까지 관통된 셈.

절명했을 것이었다.

이를 깨달을 무렵, 어느새 놀란 대원들이 달려갔고, 집으로 들어온 다른 대원들도 막심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다급하면서도 울음 섞인 말이 들리는 사이.

“…마커스를 감싸다가 전사했어.”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기절한 마커스에게 응급 처치를 마치고, 어느새 대원들에게 둘러싸인 막심 쪽을 바라봤다.

“저격수들이 우리를 노렸고, 대대장은 그걸 알아차린 것 같더군.”

“예? 아니…….”

대꾸하려다가 다시금 멈칫하고 말았다.

제이크의 야상도 피탄된 듯 터져 나간 모양새였고, 그 아래로 팔꿈치 부분과 손목 쪽으로 피가 맺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시선을 알아본 건지, 제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괜찮아, 심하지 않아.”

“그래도…….”

“됐어, 지금은 지휘관이 전사한 건을 마무리 지어야지. 개자식들에게 복수도 해야 하고.”

그러면서 그가 무전기로 무인정찰기를 운용 중인 육군 쪽과 접촉하는 사이, 내부 무전망을 타고 호세의 목소리가 쏟아지듯 들어왔다.

-씨발, 2번 타깃 올 클리어! 아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이… 마커스는? 괜찮은 거 맞습니까? 예? 팀장?!

“팀장은 무전 중이야, 마커스는… 아직은 괜찮고.”

내가 대신 답해 주자, 한결 가라앉은 답이 돌아왔다.

-제기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딜 맞았는데?

“복부, 방탄복이 뚫렸어.”

-씨발, 저격탄으로 준비하고 쐈군. 의식은 있어?

“아니, 기절했고… 그리고 대대장이 사망했어. 마커스를 감싸다가…….”

-뭐, 아니… 이런 씨발…….

“이제 현장 지휘는 제이크가 맡게 될 거야. 통신도 그가 하고 있어.”

-정말 개좆같은 상황이군… 너는? 넌 어때?

“난 괜찮아, 아… 혹시 저격 위치 짐작 가능해? 동쪽 방면 같았는데…….”

상황을 추측하며 묻자, 곧 호세의 빠른 답이 돌아왔다.

-맞아, 그쪽이긴 한데 거리가 애매해. 무인정찰기가 놓쳤다면 3, 400미터 안쪽의 가까운 건물에 숨어 있을 거고, 아니라면… 훨씬 더 멀리 있을 거야. 대략 6, 700미터 이상, 초장거리라면 1㎞인데, 너무 멀어서 거기까진 없을 거야. 조금만 움직여도 빗나갈… 씨발, 맞은편!

호세가 설명하다가 소리쳤고, 동시에 현관 쪽에 있던 특전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 공격! 엎드려!”

투다다다다다다다!

쨍그랑! 파바박! 콰각!

거친 총성이 울리면서 창문이 모조리 박살 나고 내부 가구가 터져 나가는 소음이 집을 채웠다.

반사적으로 엎드리고, 온갖 파편과 먼지 따위가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마치 소낙비처럼 몰아치는 사이.

욕을 뱉고 말았다.

“…하, 씨팔. 존나 빡세네.”

중얼거리면서 몰아치는 탄을 기다리는 사이, 아주 명료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헤드폰 너머의 레이첼이었다.

-여기는 찰리 다섯, 작전지에서 동남 쪽 카스피해 방면 650미터, 720미터에서 적 저격수 2인, 관측수 2인 파악.

“어?”

-민간인 주거 지역으로 폭격 불가하므로 QRF나 스나이퍼 필요함.

“……!”

자못 놀라웠다.

혼잡했던 방금 상황에서 드론을 움직여서 적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져온 정보를 되새길 무렵.

“……?”

내 손이 저절로 허리춤의 보조 파우치 쪽으로 움직였다.

이건 특성 같은 영향이 아니었다.

사격 연습하면서 숙달한 거라서 내 손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이 파우치 안의 장비가 뭔지 잘 알았다.

바로 8배율 망원 스코프.

반사적으로 스코프 케이스를 꺼내 들면서 방금 무전을 마친 제이크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고, 내가 입을 열려던 때였다.

제이크가 먼저 물었다.

그는 이미 내가 뭘 말하려는 건지 아는 듯한 모습이었고, 말의 내용도 다르지 않았다.

“M4로 가능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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