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가 회의실을 나왔다.
늘 하던 휘하 팀장급과의 미팅이 아니라, 그의 직속 상관이자 국무부 실세인 군비 통제 및 세계 안보 차관(Under Secretary for Arms Control and International Security Affairs), 일명 군세 차관과의 회의를 진행한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긴 시간 동안.
굵직한 국외 범죄자 현안과 내부 업무 추진 등 주요 사안을 논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안건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강태.
그가 지금까지 일궈 낸 업적과 추후 쓰임새, 거기다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테이블 위로 오르고 내렸었다.
이번에는 스카우트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거의 회의 시간 절반 가까이를 그 얘기로 보냈는데, 다행히도 로버트는 결과적으로 원하는 답을 받아 냈다.
계약을 진행해도 좋다는 허가.
물론 조건은 있었다.
강태의 국적이 미국이어야 한다는 것.
이는 억지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의 안보를 외국인에게 맡길 수는 없으니까.
이것만큼은 실용성이나 자유주의 같은 게 통하지 않았다.
강태는 오로지 미국인이어야 했다.
그런 이유로 강태의 국적 변경을 권유해야 하지만, 로버트의 표정은 별로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밝은 편이었다.
‘이 정도면 선방한 셈이지.’
다른 모든 것을 양보받은 덕분이었다.
계약을 위한 애국심이나 사명감 확인, 개인 성향이나 인성 검사, PTSD를 비롯한 심리 테스트, 지능지수 측정과 어학 시험 등등의 커트라인을 상당히 낮출 수 있었다.
즉, 자격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미국 국적만 취득하면 대외협력국 요원으로 채용할 수 있다는 뜻.
그렇다고 해서 강태에게 결격 사유가 있고, 이를 무마해 준다는 뜻은 아니었다.
강태의 수준은 여러모로 좀 높은 편이었다.
사명감과 애국심만이 걸릴 뿐.
그러나 이것도 과거 언행을 살펴보면 충분히 넘어갈 만했다.
미국을 사랑하진 못해도, 싫어하진 않았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라, 강태는 과거 이력조차 방금 만들어진 것처럼 완벽했고, 평소의 언행이나 핸드폰 및 인터넷 사용 결과도 아주 깨끗했다.
주요 관심사조차 개인 전술 장비 검색과 격투기 영상 시청이 전부.
보면 볼수록 탐나는 인재였다.
‘술, 담배, 약까지 처먹으면서 사고치는 몇몇 1티어 요원에 비교하면 인간이 아니라 성인이나 천사에 가깝지.’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가장 중요한 건 강태의 결정이겠지만, 그것도 크게 우려되진 않았다.
시민권 취득에 관련된 예상 결과도 추려 낸 덕분이었다.
[국적 변경에 매우 긍정적이거나 긍정적일 가능성: 85%]
그간 수집해 온 강태의 언행이나 태도를 토대로 만들어진 결과였다.
부족한 15%도 애국심과는 거리가 있었다. 정확히는 강태가 전역한 ‘특전사’와 관련된 그리움 때문에 생긴 수치였다.
그리고 그 15%의 아쉬움도 가능한 선 안에서 다 채워 줄 요량이었다.
관심사인 장비나 격투기와 관련된 지원은 물론이고, 고급차든, 집이든, 돈이든 뭐든.
직권으로 처리가 안 된다면, 보고하고 결재까지 받을 각오도 했었다.
나라를 팔아먹는 일만 아니라면.
‘다 해 줘야지.’
어쩔 수 없었다.
의도했던 자연스러운 미국 시민권 취득과 계약은 강태가 알려지면서 물 건너갔으니까.
이제부터는 그를 무조건 데려와야만 했다.
다른 곳으로 넘어가선 안 됐다.
미국 내의 유사 동종 부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타국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야말로 재난이었다.
‘유사시에 우리 쪽으로 총구를 돌리면…….’
끔찍한 상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와 대인전이라도 치르게 된다면, 힘들게 육성했던 1티어 특수부대원들이 어마어마하게 희생될 것이었다.
잠입해서 후방 교란이나 요인 암살을 행한다면 더더욱 위험할 것이다.
이는 허황된 생각 같은 게 아닌, 대인전 시뮬레이션 결과였다.
사람 간의 결과에서 강태가 패배할 확률은 ‘0’에 수렴하며, 열세의 상황에서도 패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엄폐물이 없는 개활지에서 다수의 적으로 사살해야만 가능성이 있었다.
‘그마저도 80%가 채 안 됐지…….’
20% 확률로는 강태가 적을 모두 제압하고 살아남는다는 소리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각종 기록을 토대로 진행했던 시뮬레이션 통계가 그랬다.
로버트로서는 당장 그리고 직접 카마르니아 공화국으로 가고 싶었다.
강태와 만나서 계약서를 쓰길 바랐고.
그러나 당장 날아가서 협상을 진행할 순 없었다.
진행 중인 세르게이 수색 작전이 어느 정도 준비된 탓이었다.
곧 있으면 자세한 계획서가 올라올 터.
물론 작전 타깃에 세르게이가 포함될 가능성은 적지만, 관계자들을 모두 사살하거나 체포할 확률은 제법 높았다.
반대로 공격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카마르니아 정부 협조를 받았고, 육군 특전대도 실습을 목적으로 함께 움직이니, 충분히 할 만할 것이라고 봤다.
무엇보다 강태가 있었으니까.
‘세르게이를 직접 죽이긴 쉽진 않을 테니. 새로운 단서라도 하나 나오면 좋겠군.’
로버트가 그러면서 입맛을 다셨다.
정확히는 세르게이의 배후에 대한 증거를 원했다.
아직까지는 로버트의 심증에 불과해서 따로 보고조차 못했지만, 뭔가 나오기만 한다면 상부에 알리고 대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국장실에 도착한 로버트가 새로 올라온 보고서들을 확인했다.
그중 가장 위에서 그가 기다렸던 서류가 있었다.
바로 카마르니아의 실작전 계획서.
로버트가 곧장 서류를 집어 들었고, 자리에 앉으면서 꼼꼼히 확인하던 그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나쁘지 않군…….”
다행히 큰 변수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로버트도 바로 서명하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가능한 지원 수단을 펜으로 갈겨 적어 추가한 것이었다.
단시간의 UAV 운용, 주변국에 미군 대기, 외교적인 협조 등등.
효과를 못 볼 수도 있고, 효과도 크진 않겠지만, 변수가 있다면 이것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부디 웃는 낯으로 미국에서 만나길…….’
로버트가 기대와 걱정을 담아 찰리 팀의 명단을 바라보길 잠시, 이윽고 결재 서명을 마쳤다.
* * *
카마르니아 국경, 옐브루스 산맥 끄트머리의 채석장 근처.
비포장도로 옆에 지어진 투박한 벽돌 주택 앞에 까만색 4인승 왜건 차량이 멈춰 섰다.
달려온 길에서 먼지바람이 날리는 가운데, 금세 시동이 꺼지고 차 문이 열렸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차에서 3명의 러시아계 백인들이 내렸는데, 그중 한 사람이 유독 남달랐다.
두 사람이 경호하듯 그의 좌우로 나뉘어 선 데다가, 당사자의 외모도 위압적인 탓이었다.
큰 체격에 쩍 벌어진 어깨, 각진 턱, 날카로운 눈매까지.
바로 세르게이 볼코프였다.
러시아 FSB 알파 그룹 장교 출신으로 세계적인 테러리스트가 된 인물.
그가 현관문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문고리가 돌아갔다.
“오셨습니까, 소령님.”
“안부 묻기 전에 용건부터 들어 보자.”
세르게이가 말하자마자, 눈인사를 했던 부하가 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내통자에게 전달받은 복사본입니다. 우선 그것부터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세르게이가 대답 대신에 곧장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G&G Corp 자문단과 육군 특전대의 합동 실작전 계획 수립의 건]
저질 잉크로 출력되어 문장 중간중간이 끊겨 있긴 하나, 내용을 읽는데 무리는 없었다.
스윽, 종이를 넘긴 세르게이가 걸음을 옮기다가 푹 꺼진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몇 장을 더 살피다가 시선을 들었다.
“반군과 지하드의 거점을 치겠다는 소린데… 그래서?”
계획 수립의 건이라고는 하나, 구체적인 조직이나 일자가 전혀 없었기에 묻는 것이었다.
그저 대략적인 윤곽만 드러나 있었다.
세르게이가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 눈앞의 부하를 바라보자, 금세 준비된 답이 돌아왔다.
“나머지는 구두로 전달받았습니다. 내부에서도 극비로 취급하여 문서 작성을 미루는 모양입니다.”
그 말에 세르게이가 쓰게 웃고 말았다.
기가 막힌 일처리였다.
극비라서 문서 작성을 미루는 것도 웃긴데, 그 기밀 내용을 하급 장교가 알고 있고, 심지어 돈 몇 푼에 팔아 버렸으니까.
이러니 국가로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짧은 잡념 끝에 세르게이가 탁자에 서류를 놓으며 물었다.
“그래서 뭐라든가?”
“용병 자문단과 합동으로 세 곳을 습격한다고 했는데… 세 곳 모두 저희와 거래했던 곳입니다.”
그 말에 세르게이의 찢어진 눈매에 주름이 잡혔다.
추격하는 게 분명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늦어도 며칠 안에 무기 거래나 마약 유통 따위에 사용했던 장소 여러 곳이 노출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최종 은신처인 현재 위치까지 발각되는 건 예견된 수순.
“이 빌어먹을 개새끼들이…….”
세르게이가 까득 이를 갈면서 욕설을 흘렸고, 앞에 서 있던 부하가 움츠러들 무렵.
감정을 삭인 그가 공적인 사안을 떠올렸다.
“…미사일은 어떻게 됐나?”
이게 현재 세르게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바로 핵탄두 탑재용 미사일 개발.
세르게이의 유일한 보스이자 후원인인 피칼이 그에게 직접 말해 준 세계 혁명의 첫 번째 과업이었다.
이에 부하를 바라보는 사이, 주저하는 답이 돌아왔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말에 세르게이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겠어.”
시간이든 뭐든 주고 싶지만, 그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너무 촉박했다.
‘타릴 제도에 있을 때만 해도 충분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떠올리던 그가 곧 단어 하나를 떠올렸다.
G&G Corp.
그중에서도 알 자마쉬에 있던 찰리 팀.
그들이 자신을 쫓고 있었다.
인터폴 같은 국제기구나 국가 정보기관이 아닌 PMC의 일개 팀에 불과하지만, 추적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물론 배후에는 미국이나 미국의 무슨 기관이 있겠지만, 그것도 확인하지 못한 짐작에 불과했다.
아직 제대로 알아낸 게 아무 것도 없던 탓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조차 최근에서야 확신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정확히는 찰리 팀이 카마르니아에 입국한 날.
이미 주의를 기울이던 상황에서 여러 번의 작전을 거치면서 의심이 점점 커졌고, 이번에 카마르니아에 입국하면서 분명해진 것이었다.
‘UN OCHA 조사 팀도 사전 계획 없이 급조됐었지… 경호라는 명분을 만들려고.’
그런 이유로 세르게이는 카마르니아에 퍼져 있던 과격 무슬림들을 있는 대로 끌어모았고, 수십만 달러를 써 가면서 레스토랑 습격도 지원했었다.
이렇게 된 김에 찰리 팀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런데 단 한 사람도 죽이지 못했었다.
오히려 당했다.
내보냈던 46명의 과격 무슬림들이 전부 초짜에다가 나약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뉴스에서 떠들어 댔듯 용병과 군경의 합동 작전으로 막아 낸 건 더더욱 아니었고.
이유는 단 하나.
생각보다 찰리 팀이 너무 강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아시아 인종의 용병, 이강태가 혼자서 수십 명을 사살했다고 했었다.
놀랍긴 했으나,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과격 무슬림들이 멍청하게 난사하면서 돌진하기도 했고, 기능 고장이 난 대전차로켓포와 경기관총을 제대로 고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계해야만 했다.
이후로 찰리 팀을 감시하러 나갔던 FSB 출신의 부하 넷이 강태에게 모조리 사살된 탓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무전을 들어서 알았다.
말보다는 피 끓는 가래 소리에 가까웠지만, 무전기 너머로 들려온 단어는 오직 하나, 이강태였다.
그의 상념이 깊어지는 사이, 눈치를 보던 부하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요, 소령님.”
“…….”
세르게이가 잠시 침묵하며 고민하길 잠시.
늦지 않게 입을 열었다.
“복수해야겠지.”
“……!”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부하는 세르게이가 말한 복수의 대상이 누구인지 잘 알았다.
동료 넷을 죽인 범인, G&G Corp의 강태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소령님.”
그도 힘주어 답하는 사이, 세르게이는 탁자에 놓아 둔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때마침 놈들의 작전 계획도 갖고 있었다.
기다렸던 순간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타이밍이었지만, 놈들을 상대하기에 때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나라는 모든 게 최악인 카마르니아였고, 이 은신처는 세르게이의 것이었다.
지상만이 아니었다.
지하에는 무기 보관과 유통을 위해 오래전에 땅굴도 마련해 놨었다.
그리고 이는 거래했던 반군이나 과격 무슬림들에게도 공개된 적이 없는 사실이었다.
아는 건 세르게이와 부하들뿐.
‘안으로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모조리 죽일 수 있다. 병신 같은 현지 군인들은 들어오지도 못할 거고…….’
몇 번이나 상황을 떠올려 보며 가정을 마친 뒤.
세르게이가 첫 지시를 내렸다.
“감시 인원 제외하고 전원 복귀시켜, 즉시 작전 수립하고 전투 준비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