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그로부터 2주가 흐른 12월 중순.
도합 64명의 카마르니아 육군 특전대는 돌아가면서 전술 교육을 받았고, 조악한 훈련장에서 매일같이 훈련했다.
처음과 비교해 많이 성장한 모습이었으나, 보고 있던 제이크의 시선은 좋지 못했다.
‘아직도 멀었군.’
훈련도 실전처럼 해야 하는데, 훈련을 훈련으로만 대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비사격 훈련에서 조정간 조작을 소홀히 하거나 기계적으로 움직이다가 실수로 총구 앞을 지나가기도 하며, 표적을 적이 아니라 나무판자처럼 대하는 태도들.
델타 양성 기간이었다면 바로 욕설을 뱉고, 얼차려를 가했을 것이다.
거의 물고문 하듯 괴롭혔을 터.
그래서 단호하게 여러 번 지적했었는데, 쉽게 나아지질 않았다.
“흐음…….”
제이크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애초에 무능력한 카마르니아 군경에서 지원자를 받은 데다가 그들 중 다수가 높은 수당을 보고서 지원했었기 때문이었다.
사명감과 끈질긴 정신력을 가진 자는 일부였고.
그래서인지 평소 훈련량이 부족한 편이었고, 연습 과정에서의 태도도 좋지 못했다.
훈련을 이행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정도.
그사이 육군 특전대 대대장 막심 바예프가 조심스레 제이크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팀장님, 우리 대원들은 좀 어떻습니까?”
“많이 부족합니다.”
“그럼 실탄 훈련은 어떻게… 어렵겠습니까?”
막심이 걱정을 담아 물었다.
이런 식으로 훈련이 엎어지는 게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무려 세 번째였다.
카마르니아가 부분 승인 국가로 독립한 이래로 군사고문단을 지원받은 적이 두 번이나 있었는데, 둘 다 수업 진행에 차질이 생겨서 다 하지 못하고 돌아간 전례가 있었다.
이에 제이크를 보는 사이, 담담한 답이 돌아왔다.
“예정대로 진행할 겁니다.”
“아……! 가능합니까?”
“통제하에서 소규모로 진행하면 됩니다.”
그 말에 막심의 눈이 밝아졌다.
“오,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럼 혹시… 실전은……?”
제이크로부터 받았던 교육 커리큘럼에 기재되었던 ‘실전’을 정말 수행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시가전과 CQB를 활용하여 실제 중범죄자를 일망타진하는 내용.
그것도 마약이나 범죄 집단을 대상으로 작전을 벌이기로 되어 있었는데, 처음에만 해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하기에는 위험이 따르는 일이고, 육군 특전대가 수행할 능력도 부족한 탓이었다.
어쩌면 G&G Corp 측에서 형식적으로 적어 놓은 내용일 수도 있었고.
한데, 지금 보니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제이크의 말과 태도가 그랬다.
위선이 섞이거나 허세 따위가 전혀 없는 데다가 형식적인 말도 하지 않는 인간이 바로 그였다.
내뱉는 모든 말은 사실이었고, 또한 의지였다.
이에 제이크의 입을 보는 순간.
답이 나왔다.
“여건에 맞게 진행할 겁니다.”
“…조, 좋습니다! 필요한 건 최대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막심의 얼굴이 밝아졌다.
말이 육군 특전대지, 여태 제대로 된 실전을 한 번도 못 해 봤기 때문이었다.
해 본 거라고는 반군과의 소규모 교전 정도.
타국에서 온 군사고문단에게서 많은 걸 전수받지도 못했었다.
사정이 그랬다.
특수부대의 기본이나 마찬가지인 공수는 공항이 자꾸 폐쇄되거나 항공기의 노후로 일회성 체험만 해 봤고, 수상 보트 운용은 선박이 침몰하는 바람에 오히려 개고생했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열의나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고.
그게 세 번째 반복되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정말 실전이라는 걸 해 볼 모양이었다.
그것도 델타포스가 가르친 CQB 위주로.
‘다행히 실작전 흉내는 낼 수 있겠어.’
대대장인 그조차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교전만 했을 뿐, 시가전 교리나 CQB 전술을 운용한 특수전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내세울 거라고는 정말 힘들게 허가받았던 8주짜리 SAS 기초 위탁 교육이 전부.
그것도 소령인 막심과 팀장급인 대위 한 명만 수료했었다.
민망한 일이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카마르니아는 독립한 지 얼마 안 됐고, 부분 승인국이라서 해외 교류도 어려운 탓이었다.
국내 치안과 국방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어떻게 보면 이 육군 특전대는 기적이나 다름없는 결과물이었고, 이번에 만나게 된 제이크의 팀은 군사고문단에 버금가는 조력자들이었다.
막심의 얼굴에 연한 미소가 어렸다.
‘이들은 행운이야…….’
처음에 G&G Corp라는 PMC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는 내심 걱정하고 경계했었다.
카마르니아에 왔던 용병들을 꽤 봤었는데, 대부분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유명 PMC도 다를 바 없었다.
하청에 재하청, 거기에 재재하청을 줘서 수준이 많이 떨어진 탓이었다.
그런 이유로 현장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용병들은 푼돈을 벌러 나온 현지 반군이나 자경단들이었다.
쉽게 말해서 다 아는 얼굴들.
한데 G&G Corp의 자문은 달랐다. 전역한 지 몇 년 안 된 델타포스와 네이비씰을 주축으로 이뤄진 팀답게 전술이나 시범이 그야말로 완벽했다.
막심이 받았던 8주짜리 SAS 위탁 교육이 떠오를 정도로.
그사이, 환영할 만한 말이 나왔다.
“실탄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시범을 먼저 보겠습니다.”
마커스의 목소리였다.
그 말에 대기 중이던 특전대원들이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제이크의 눈에도 힘이 들어갔다.
정확히는 시범을 준비 중인 강태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지난 2주 동안 녹슨 스타일을 지웠던 것 같은데… 얼마나 변했으려나?’
강태는 혼자 보충 훈련하듯 연습했었다.
정확히는 제이크가 알 자마쉬의 훈련 센터에서 말했던 녹슨 것 같다던 움직임을 바꾸는 연습이었다.
마커스가 말하고, 호세가 선보였던 시범처럼.
그 시간은 기껏해야 2주밖에 안 됐지만, 특수전 요원에게 짧은 시간이라고 볼 순 없었다.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을 것이었다.
완전히 숙달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당사자가 강태였으니 뭐가 달라져도 달라졌을 게 분명했다.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기대가 어릴 무렵.
“시작하겠습니다.”
선두에 선 마커스의 말과 함께 시범이 진행됐다.
임시 패널로 만든 복도 사이에서 어깨나 허벅지를 1, 2회씩 터치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연히 아주 부드러웠고 정확했으며 신속하기까지 했다.
탕! 타당! 탕! 탕!
소음기를 연결한 M4의 소음이 적당하게 울려 퍼지면서 나무 패널을 뚫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강태가 견착할 때였다.
“오오오……!”
특전대원 여럿이 긴장과 감탄 섞인 소리까지 냈다.
강태가 M4를 들면 눈 깜짝할 새에, 정확한 위치에 총알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가슴에 두 발, 머리에 한 발.
형언하기 힘든 속도와 정확도였다.
거기다가 근래 수업했던 격실 수색과 이동 방법이 깔끔하게 재현되기도 해서 그야말로 완벽한 시범.
이를 바라보는 제이크의 눈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제는 아예 할 말이 없군.’
녹슬지도 않았으니, 그야말로 완벽했다.
이대로 녹화해서 미국 특수전 부대의 교육 자료로 보급해야만 했다.
그걸 눈앞에서 본 육군 특전대 대원들은 손뼉을 쳤다.
2주간 교육받고 훈련하면서 제법 친해진 덕분인지, 중간중간에 누군가 휘파람을 하면서 이름까지 불렀다.
특히 강태를 향한 환호가 셌다.
“리! 리! 리! 리! 리!”
한 사람이 외치자, 여러 사람이 따라 소리쳤다.
나름 친해지기도 했으나, 대원들이 가졌던 선입견이 박살 났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들어 본 적도, 본 적도 없던 특전사 출신이라는 것과 아시아 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생각이 그랬다.
물론 티 내지 않고 대원들끼리 서로 뒷말을 했을 뿐이었지만, 모든 게 싹 바뀌었다.
오늘의 시범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강태가 부대에 도착했던 첫날, 교육이 끝난 직후부터 편견이 깨져 나갔었다.
사격 연습을 한다고 강태가 M4를 들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솜씨를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과장된 환호가 한바탕 몰아친 뒤.
제이크는 비로소 할 일을 상기했고, 쉬는 시간에 강태에게 다가가 말했다.
“리, 휴가 나갈 때 말이야. 미국에 잠깐 같이 갈 수 있겠나?”
“아, 예. 그럼요. 사격하게요?”
강태가 M4를 손질하며 묻자, 제이크가 짧게 답했다.
“아니,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대외협력국으로부터 받은 간단한 지시였다.
시간 약속을 한 뒤에, 강태를 데리고 미국으로 오라는 내용.
정확한 목적이나 내역은 모르지만, 아마도 강태를 섭외하는 과정일 게 분명했다.
‘테스트나 면접을 보겠지. 사실상 통과했겠지만…….’
이 정도 추론은 제이크도 가능했다.
대외협력국에서 꾸준하게 강태와의 관계를 신경 썼고, 자료를 요구해 왔으며, 영주권까지 발급받게 하라고 했었으니까.
뭐가 어쨌든 간에 결과적으로 제이크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위장 신분인 G&G Corp 용병 대신에 진짜 소속을 알릴 수 있었으니까.
내심 답답한 부분이 해결되는 것이었다.
정작 더 오랜 기간을 동료로 지낸 마커스나 호세에게는 여전히 말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긴 했지만, 이는 보안 유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내 임무는 미국의 안보 수호니까…….’
그가 작성한 대외협력국과의 계약서는 1급 기밀로 처리되어 향후 30년은 개봉되지 않을 거고, 다음 대통령이 기밀 기한을 연장시켜서 죽을 때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지금의 제이크는 그냥 용병이었다.
대통령이나 국무장관, 대외협력국장인 로버트가 서류를 꺼내 들지 않는 이상, 국무부와의 관계는 평생 드러나지 않을 것이었다.
즉, 나라를 위해서 죽든, 혹은 죽이든 공식적인 명예를 치하받는 건 불가능했다.
자못 매정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국가에 소속된 특수전 요원이라면 1티어 특수부대도 있고, CIA도 있으니까.
물론 그것도 위장하고 조작하겠지만, 각 부대나 본부 같은 소속이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대외협력국은 달랐다.
평생 금고에 들어 있을 계약서 한 장을 믿고 일해야 했다.
주로 국가 소속 요원이 가서 좋을 게 없는 지역에 침투하고 활동했으며, 그게 아니면 국무장관 직권에 해당하는 임무를 수행했었다.
오직 미국의 안보를 위한 일이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세뇌한 것도 아니었다.
제이크가 선택했을 뿐.
그런 이유로 그에게는 작은 걱정도 하나 있었다.
‘로버트가 어떻게 설득할진 모르겠지만… 이런 일이라면 강태가 거절할 수도 있겠어.’
나쁜 경우에는 그 여파로 팀이 해체될지도 몰랐다.
강태를 다시 만나기도 어려워질 터.
‘그건 안 되는데…….’
제이크가 은근히 염려했으나, 바라보는 강태는 엷게 미소 짓고 있었다.
지금 저 말을 예상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속뜻을 짐작할 뿐.
타이밍은 오히려 생각보다 빠르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제는 놀라울 게 없었다.
근래 들어서 바뀐 일들이 워낙 많은 탓에 시간이 앞당겨진 건 그러려니 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강태가 제이크의 눈을 마주했다.
‘…아마 대외협력국에서 오퍼 넣는 거겠지, 같이 일하자고.’
후임이라면 이미 밝혔을 거고, 여자나 친구일 가능성은 없으니, 중요한 사람은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뿐이었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게임에서는 거의 중반부 넘어갈 즈음에 만나는데…….’
당연하게도 계약은 진행해야 했다.
물론 강태 역시 요구할 것들을 정리하고 있긴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싫다고 거절해서는 안 됐다.
대외협력국을 이용해야 피칼을 죽이든, 핵전쟁을 막든, 뭐가 되었든 간에 더 수월하게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사이, 제이크의 물음이 덧붙었다.
“리, 그럼 시간 좀 내어 줄 수 있나?”
강태의 합류를 기대하면서, 동시에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근심이 반반씩 섞인 말이었다.
그 표정을 본 강태가 다시금 피식 웃었다.
“아휴, 그럼요. 약속 끝나고 사격장이나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