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마커스와 호세가 후방과 맞은편 건물을 주시하고, 레이첼이 전방의 차량을 경계하는 사이.
어느새 제이크가 M4를 건네며 말했다.
“현 상황 보고해.”
교전 상황인 만큼 원인이나 이유, 그 외에 뭐가 어떻게 된 거냐는 물음이 아닌 간략한 지시를 꺼낸 것이었다.
역시나 타고난 군인답고, 리더다운 모습.
감탄하는 대신 나도 노리쇠를 당기고 약실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적 총원 4명 중에 1명이 생존한 것으로 보이고, 무기는 AK 종류의 돌격 소총으로 파악됩니다. 생존자는 아마 피격되어 출혈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요.”
“너는?”
돌연 제이크가 나를 위아래로 살피며 물었는데, 그의 눈에서 걱정이 보이는 듯했다.
바로 고개를 끄덕여 줬다.
“괜찮습니다.”
따지자면 파편 같은 게 튀면서 목덜미에 상처가 났고, 꿰맸던 어깨가 쓰라리긴 했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걱정시킬 이유도 없을뿐더러, 교전 중에 이런 건 상처로도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가 소속됐던 중대에서도 몸에 구멍이 뚫린다던가, 신체를 따로 주워 와야 할 정도는 되어야지 부상으로 취급했었다.
이에 탄창을 확인하고 총을 고쳐 잡으려던 찰나.
절로 주춤했다.
“어?”
평소처럼 M4 총구를 내리고, 총몸을 가슴 가까이 붙이다가 깨달은 것이었다.
플레이트 캐리어가 없었다.
아니, 착용하지 않았다.
방탄판 삽입이 가능한, 온갖 장비가 달린 총 2만 달러에 달하는 전술 조끼 대신에 200달러짜리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쉬는 시간이라서 무거운 플레이트 캐리어를 벗어 뒀었고, 그사이에 빌라 앞에 주차한 차량으로 심부름을 다녀왔을 뿐이니까.
M4를 벽에 기대어 둔 채 내려온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달이 터져서 문제였지.
그리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감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방탄복과 방탄 헬멧, 보호경조차 없었다.
파편이 눈가에 튀어서 잘못 맞으면 실명이고, 도비탄이 머리에 튀면 중상이며, 파편 같은 게 뱃속의 장기라도 찔렀다면 치명상이었다.
나는 그런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글록17을 뽑아 들고 머리통을 날려 버린 것이었다.
얕게 한숨을 흘려 냈다.
‘까딱하면 뒈질 뻔했지만… 뭐, 딴 방법이 없었지.’
어차피 적이었다.
여기서 죽이지 않으면 더한 일들을 벌일 게 뻔하니, 결국에는 내가 죽여야만 했다.
무엇보다 놈들이 이 출입구를 주시하다가 서로 아이 콘택트까지 했었다.
내가 해야 할 행동은 딱 하나, 선제공격뿐.
차분하고도 빠르게 잡념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제이크가 팀원들에게 무전을 마치고서 내 어깨를 짚었다.
“억?”
수술한 오른쪽 어깨라서 움찔했는데, 그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얼굴로 목소리를 냈다.
“일제사격 준비해, 적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거야.”
“알겠습니다.”
차량과 사람을 전부 벌집으로 만들겠다는 소리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엔진이나 휠 같은 단단한 부분만 아니라면, 차체는 기본적으로 5.56㎜ 소총탄에 깨끗하게 관통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차량도 엔진이 있는 정면이 아니라, 후면이 보이는 상황.
“사격 준비.”
제이크의 걸걸한 목소리 뒤로 얼른 엎드려쏴 자세를 잡았고, 동시에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조정간 연발로 바꾸고 기다릴 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차량이 폭발했다.
후덥지근한 열기가 몸을 덮쳐 오면서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콧속으로 쳐들어왔다.
동시에 사방으로 기아 프라이드였던 잔해와 불똥 같은 것들이 튀며 떨어졌고, 새까만 연기가 화악 피어올랐다.
자연스럽지 못한, 다소 인위적인 폭발이었다.
애초에 외부 충격도 별게 없었다.
내가 격발한 9㎜탄이나 주차된 차를 살짝 박은 게 전부였으니까.
즉, 자폭이라는 말이었다.
이를 추측하면서 실눈 틈으로 바라보길 잠시.
“전원 대기, 추가 공격이나 기타 특이 사항 확인되는지 보고 바람.”
제이크의 명령이 떨어졌다.
아마도 나를 제외한 모두가 무전으로 말을 주고받는 모양이었는데, 내 생각이 맞았다는 듯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리, 나와 레이첼이 접근할 테니까 여기서 엄호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추가 폭발 조심하십쇼.”
“그러지.”
제이크가 답하면서 까만 보안경을 툭툭 건드렸고, 이내 총기를 견착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레이첼도 움직이고, 나도 엄호에 들어간 뒤.
제이크가 어느새 불타는 차량 가까이에 도달했는데, 짧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전원 사망했다는 의미였다.
* * *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가 출근 후에 밤 동안 밀린 업무 결재 따위를 할 무렵, 그에게 새로운 보고가 올라왔다.
우선순위에 두었던 카마르니아 건.
로버트가 제이크에게서 올라온 전자메일과 함께 보고서를 읽었다.
특별할 건 없었다.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강태가 적을 모두 사살했다는 내용이었으니까.
‘역시나 우리 주인공께서 해결하셨군.’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그간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세운 것에 비교하면, 4명을 처리한 건 별일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숙소 앞에서 총격전을 벌였고, 강태가 먼저 선제공격했다는 사실이 조금 눈에 띄었으나, 그건 크게 걸고넘어질 것도 아니었다.
카마르니아의 치안 상황이 나쁜 탓이었다.
경찰과 군대 모두 무능력하고 태만했으며, 범죄자나 자경단이 더 능력 있고 바쁠 정도로.
집 앞의 총격전이나 선제공격은 문제 삼지 않아도 됐다.
오히려 자세히 확인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이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레스토랑 테러도 보고서가 전부였지…….’
기다렸던 녹화 파일과 상세한 보고서는 없었다.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제이크와 레이첼 모두 기절하고 다치는 바람에 바디캠의 렌즈가 천장이나 딴 곳을 향한 탓이었다.
거기다 기억하는 것도 거의 없었고.
‘다시 생각해도 아쉽군.’
제대로 된 녹화본 하나만 있으면, 정말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터였다.
열악한 상황임에도 레스토랑 정문에서 28명, 후문에서 12명, 합계 40명을 혼자서 처리한 영상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모든 사체의 미간이나 심장 쪽에 구멍이 났었다.
더불어 심장이 뚫리지 않은 시체는 상체에 추가적인 총상을 입으면서 즉사했었고.
즉, 한 발에 한 명은 아니지만, 공격 한 번에 한 명을 사살한 셈.
‘보고하기에도 좋고, 선전용이나 교보재로 쓰기에도 적합한 영상이라 갖고만 있어도 이득이었을 텐데…….’
그렇게 상념을 정리한 로버트가 시선을 내려서 남은 문장을 살폈다.
역시나 짐작한 대로였다
오늘 죽은 네 사람도 강태가 전부 머리를 맞혔고, 그 와중에 한 명만 뺨이 관통당해서 살아남았었다가 결국에는 자폭했다는 내용.
물론 이마저도 충분히 놀라운 내용이지만, 강태의 활약이라 그러려니 했다.
감탄도 나오질 않았다.
그간 대단한 공적을 세우기도 했거니와, 당장 5일 전에도 40명의 광신도를 죽인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가볍게 넘어갈 무렵.
로버트의 시선이 얼마 안 가서 멈춰야 했다.
걸리는 게 나타난 탓이었다.
[…시신의 신분을 증빙할 직접적인 자료나 증거가 발견되지 않음.]
[…폭발과 화재로 인해 시신이 전소되었으며, 차 내부와 시신 4구 모두 안면부 위주로 인화 물질을 뿌린 흔적이 발견됨.]
[…현지 기술로는 시신의 추가 자료를 얻기 제한되어, 주변국이나 CIA 출장 지원이 필요함.]
로버트의 눈썹이 구겨졌다.
‘얼굴을 일부러 태웠어……?’
자폭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죽기 직전에 얼굴에다가 인화 물질을 부은 건 의아한 일이었다.
최대한 신분을 감추겠다는 의미일 터.
‘이렇게까지 했다는 건 단순한 광신도나 반군이 아니라는 소린데…….’
몇 줄을 더 읽던 로버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게이군.’
과한 망상이 아닌,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강태가 제이크에게 언급했던 진술도 전부 그쪽과 관련되어 있던 탓이었다.
[…감시하는 것처럼 보였고, 스킨헤드의 러시아계 백인이 총구를 겨누었다고 함.]
이 모든 게 세르게이를 향해 있었다.
로버트가 서류 마지막 부분에 단어 하나를 갈겨 적었다.
[팀 발각.]
대외협력국이 그러듯, 세르게이도 찰리 팀을 감시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대외협력국까지 노출되진 않았을 터.
추적하는 존재를 의식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미행하는 사람을 알아보듯.
이건 의심이나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연한 일이 한 번이면 의심하겠지만, 두 번부터는 확신으로 여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내 로버트의 미간이 구겨졌다.
‘원래였으면 즉각 복귀시키고 팀을 재조직하겠지만…….’
그가 길게 숨을 내쉬면서 고민했다.
수년 전부터 애타게 찾던 세르게이가 고작 일주일 거리에 있었고, 심지어 카마르니아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팀을 빼면 일이 어그러질 것이었다.
세르게이와의 거리도 멀어질 터.
입술을 씹은 그가 짧지 않은 시간을 고심하길 잠시, 결단을 내렸다.
‘지금은 도망칠 때가 아니라, 위험을 감수할 때지.’
세르게이가 찰리 팀을 감시하고 있다면, 지금처럼 모습을 드러내야 할 것이었다.
부하를 시키든, 관련자를 이용하든, 직접 나타나든.
“후…….”
그의 날숨 끄트머리가 떨리며 흘러나왔다.
굉장히 위험할 게 분명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대외협력국의 주요 자원인 제이크와 레이첼이 모두 살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살아와도 부상으로 은퇴할지도 모르고.
그러나 절망만 있는 건 아니었다. 희망도 있었다.
어제 영주권 발급을 마친 이강태.
‘리…….’
로버트가 강태를 상기했다.
그가 있다면, 죽을 상황에서 다치는 것으로 끝날 수 있고, 다칠 상황에서는 멀쩡히 걸어 나올 확률이 높았다.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 한 명에게 기대를 건다는 게 우스울 수도 있으나, 강태는 단순히 그냥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됐다.
이제껏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병기였다.
예컨대 현존 최강 전투기인 F-22 랩터.
모의 전투에서 144대의 주요 전투기들을 파괴한 전적처럼, 강태 역시 그런 성과를 낸 존재였다.
비록 스텔스나 정밀 레이더 기술은 없지만, 대신 강태에게는 다른 능력들이 있었다.
사격술, 체력, 정신력.
그중 사격술은 이미 여러 번 확인했고, 체력은 올림픽 국가 대표 이상으로 추측되며, 정신력 역시 인간을 초탈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물론 체력이나 정신력 부분에서는 전문가를 동원해서 테스트를 해 봐야겠지만, 이 역시 강태가 보여 주었던 각종 결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짧게 말해, 강태는 현존 최강의 대인 병기였다.
그가 있으면, 분명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그를 우리 팀에 넣어야 해, 확실하게.’
로버트가 한발 더 나아가, 강태를 소속시키기 위해 더 마음먹었다.
결심이자, 결정이었다.
영주권을 발급하고, 천천히 진행하는 것만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CIA와 국토안보부가 강태에게 접근하기 위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강태가 부분 승인국인 카마르니아에 있기에 망정이지, 어디 중동이나 유럽, 미국에 있었다면 웬만한 사람들과 진즉에 미팅했을 것이었다.
또한, 다른 국가의 정보국들도 마찬가지.
강태에게 대외협력국의 존재를 공개하고, 데려와서 계약을 진행해야 했다.
물론 최우선은 시민권이었다.
국무부와의 위장 계약을 통해 대외협력국에 소속되긴 하지만, 외국인을 직원으로 쓴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적 외에도 충성심과 사명감도 파악하고, 갖은 테스트도 거쳐야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느 정도 감점을 용인해야 했다.
강태는 현존 최강의 인간 병기, 혹은 비대칭 전력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존재였으니까.
무엇보다 이제 강태에게 기대야 할지도 몰랐다.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가치를 제대로 아는 건, 아직 찰리 팀과 대외협력국뿐일 터.
늦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띡-
로버트가 인터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미국 시민권, 계약서, 테스트 절차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