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G&G Corp 동유럽 지부에서 가져온 M4에 내 전용 부착물들을 장착했다.
HK416부터 MP7에도 착용했던 1배율 레드닷 스코프를 비롯한 3배율 광학 조준경, 수직 손잡이, 레이저 표적 지시기, 라이트, 리모컨 등등의 필요한 모든 것들.
그리고 수직 손잡이와 총열에 손가락을 걸쳐 가며 C그립을 잡아 보고, 동시에 조준경과 접안 거리까지 잡아 나갈 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면서 마커스가 들어왔다.
“아, 놀래라. 무슨 일인데?”
집중하던 상황에 움찔하자, 그가 눈썹을 올리면서 이마 위로 주름을 만들어 보였다.
“복싱 연습하자면서?”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잠깐… 좀 앉아 있어. 바로 정리할게.”
그에게 침대 자리를 권하고 늘어놓았던 장비를 정리했다.
제이크가 수술 후 회복하고, 군부대 훈련 교관 계약이 진행되는 기간에 마커스에게 복싱 과외를 받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마커스가 아마추어 복싱 선수도 했다기에 첫 휴가를 나가기 전에 기초 과정을 잠깐이나마 배워 봤었다.
물론 알 자마쉬에서 몇 번 받았던 MMA 수업과 마찬가지로 실력이 늘진 않았지만.
어쨌든 시간이 날 때마다 도움을 받고 있었다.
안 배운 것보단 나을 테니까.
그렇게 장비를 치워 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건지 마커스의 점잖은 목소리가 거들듯 들려왔다.
“장비값을 많이 썼겠어.”
“그렇지, 뭐… 보너스 받은 게 거의 다 여기 들어갔지.”
싱겁게 대답했지만, 받은 돈이 적었다면 적잖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었다.
어제 전투 중에도 방탄판을 하나 해 먹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도비탄이 방탄판의 쇄골 아래 가슴팍 부근에 박혔었는데, 그 가격만 3,000달러에 달했다.
한화로 대략 380만 원.
치명상을 피하는 대가로는 아주 저렴한 편이지만, 월급이 8,000달러라는 점을 고려하면 싸다고 할 순 없었다.
돈이 없었다면 한 번 정도는 더 쓰거나 중국제를 갖다 쓸지도 모를 일.
나는 가정도 없고, 돈 쓸 데도 없으니 상관없을 뿐이지, 가정이 있는 마커스나 호세는 상황이 다를 것이었다.
그사이, 아직 내 장비를 보는 건지, 마커스의 말이 덧붙었다.
“…5.56밀리 탄알집도 커스텀 한 걸로 가져왔었어?”
“어, 혹시 몰라서.”
“어제까지는 분명 과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취소해야 되겠군. 결국 네 선택이 옳았으니…….”
어제 카마르니아에 도착해서, 내 배낭을 보고 그런 반응을 보였었다. 레이첼도 그랬고.
물론 거기에 할 대답은 매번 같았기에, 얼른 화두를 돌렸다.
“됐어, 이제 복싱이나 좀 알려 주라, 전에 배워 뒀던 게 벌써 아리까리해.”
“흐흐, 그러지.”
내 말에 마커스가 침대에서 일어났고, 스트레칭과 버피 테스트 따위로 몸을 풀었다.
그리고 스텝부터 잽, 라이트, 레프트, 훅, 어퍼컷, 거기다 더킹과 위빙 따위를 반복해서 배우고 연습했다.
마커스도 시범을 보여 주고 내 주먹질을 손바닥으로 받아 주며 움직일 무렵.
간간이 배웠던 거라 그런지, 점점 몸이 달궈지기 시작했다.
그도 생각보다도 잘 가르쳤고.
한데, 갑자기 한숨과 함께 지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 좀 쉬었다가 식사나 하는 게 어때?.”
털썩, 의자에 힘을 빼듯 앉은 마커스가 땀을 닦으면서 목소리를 냈다.
“이거… 내가 먼저 쉬자고 할 줄은 몰랐어. 네 체력이 좋은 건 알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 전에 연습은 턱도 없이 부족했겠어?”
“뭐, 그렇진 않은데… 아, 시간이 꽤 됐네.”
문득 벽에 걸린 시간을 보고 깨달았는데, 마커스의 감탄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그래, 복싱 초보자라면 두세 번 정도 구토하고 구석에 엎어져 있을 시간이지. 웬만큼 훈련한 복서들도 쉬자고 말할 타이밍이고.”
“하하, 내가 체력이 좀 좋은 편이라…….”
가볍게 대답하니, 마커스가 재차 신기하다는 듯 바라본 뒤.
결국 그의 말대로 복싱을 끝내고 식사를 했고, 이후에는 헬스장에 가서 기구를 다뤘다. 꿰맨 어깨 때문에 제대로 된 동작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시간을 보냈다.
작전하던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가는데, 끝나고 난 뒤에는 여기저기 근육통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검진 받지 않아도 뻔했다.
근력 부족.
물론 내 몸이 약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군용 장비부터가 가벼운 게 없을 만큼 무거워서 그만큼 힘이 들었을 뿐이었다.
앞으로 다루게 될 M4만 해도 3.4㎏이고, 플레이트 캐리어에 담는 방탄판 역시 개당 무게가 2.3㎏을 넘었다.
거기에 탄약이며 온갖 장비를 추가하면, 최소 10㎏ 이상을 추가로 짊어지고 다니는 셈.
작전마다 필요한 추가 장비를 달면 2, 30㎏도 훌쩍 넘었다.
지금껏 수십 분 안쪽으로 작전이 끝났으니 망정이지, 몇 시간 짜리나 며칠 짜리 작전을 수행하다 보면 근육통으로 몸 곳곳이 쑤실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근접전에서 달려드는 적을 제압하려면 힘이 더 필요하기도 했다.
몸싸움을 하게 되면 손으로 밀든, 때리든, 던지든 이겨야 할 테니까.
이에 다음 날도 마찬가지로 복싱 연습을 했고, 헬스장에 가서 다시 기구를 잡았다.
어깨가 쓰라렸지만, 며칠을 내내 반복했다.
그렇게 5일차가 되던 날.
마커스가 복싱 과외 대신에 새 지시를 가져왔다.
“훈련 교관 계약을 마무리했다는군. 짐 챙기고, 체크아웃 할 준비해.”
“숙소는 근처 빌라로 가나?”
용병들이 흔히 쓰는 게 단기 임대식 빌라이기도 하고, 라레플에서도 낙후된 빌라에서 생활했기에 묻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긍정의 답이 돌아왔다.
“그래, 여기에 계속 머물기에는 비용이 너무 비싸거든.”
“그럼 체크아웃 하기 전에 헬스장 한 번만 더 다녀올게. 거긴 기구도 없을 거 아냐.”
아쉬움에 말하자, 마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무리하진 마, 어깨 더 다치니까.”
“아냐, 젊을 때 무리 좀 해야지. 늙어서는 하고 싶어도 못 하거든.”
“…늙어 봤던 것 같은 말투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의아해하는 얼굴에 대꾸하고, 이어서 그의 말대로 정리를 할 무렵.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서 레이첼인가 싶었는데, 문을 열자 예상치 못한 얼굴들이 보였다.
“……?”
주춤한 나를 보면서, 호세가 웃으면서 팔을 벌렸다.
“왕께서 돌아오셨다, 모두 경배하라!”
과장된 연극 톤의 말이 나오고, 옆에 서 있던 제이크가 걸걸한 목소리를 냈다.
“별일 없었나, 마커스?”
나처럼 마커스도 주춤했는데, 곧 같은 생각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제이크? 퇴원한 겁니까? 아니, 걸어 다녀도 되는 겁니까?”
마커스가 동그란 눈으로 보고, 제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마치 아쉬운 듯한 모습.
“그래, 좀 늦었어.”
“늦다뇨?”
“3일이면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리더군.”
“무슨… 이제 5일차 아닙니까?”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한 마커스의 말에 호세가 낄낄대듯 입을 열었다.
“바이킹의 군주님께 5일이면 충분하지.”
작은 소란을 들었는지, 맞은편에 있던 레이첼의 방문도 열렸다.
동시에 그녀의 당황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벌써 퇴원한 거예요?”
“그럼! 해야지. 넌 토르가 입원하는 걸 본 적 있어?”
이번에도 호세가 대신 답할 무렵.
어느새 방에 들어온 제이크가 정리 중이던 짐을 휘 둘러보더니 말머리를 돌렸다.
“체크 아웃 준비하나?”
마커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입을 열었다.
“아, 네. 방금 새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군부대에 훈련 교관 계약이 마무리돼서, 근처 빌라에 단기 계약하러 가야 합니다.”
그 말에 제이크가 잘됐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침 일정이 딱 맞았군.”
* * *
미국 워싱턴 D.C, 해리 S. 트루먼 빌딩, 국무부 대외협력국 국장실.
국장 로버트의 손에 기다리던 새 보고서가 들어왔다.
[카마르니아 테러 피의자 취조 보고서.]
테러 발생 13시간 만에 취조 전문가들이 카마르니아 현지에 도착한 뒤, 범죄자를 인도받아서 심문한 결과물이었다.
겉장을 넘긴 로버트가 내용을 빠르게 훑어가기 시작했다.
테러 발생 개요, 피의자 3인의 신분, 그 외 사망자들에 대한 정보와 사용된 무기, 현장 등등.
이는 중요하긴 하지만, 핵심적인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테러의 배후였다.
이에 살피기를 잠시.
어느새 로버트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보고서를 십여 장이나 넘긴 끝에, 그가 원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테러와 관련된 질문 과정.
내용이 상당히 많긴 했으나, 촬영본이 드라마 대사처럼 나열되어 찾기 어렵진 않았다.
여러 번 종잇장을 넘기던 로버트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드디어 원하던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의 도움으로 계획보다 많은 동료를 모집하게 됐습니다. UN과 지역 의원을 지키는 용병들이 강하다고 주의도 줬습니다.]
[…AK-74뿐만이 아니라, RPG-7과 기관총, 차량까지 배달해 줬습니다.]
[…그가 우리의 테러를 지지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는 볼코프라고 불렸습니다.]
마지막에 나온 이름, 세르게이 볼코프를 읽은 로버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역시… 이놈이었군.’
테러가 발생했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다른 테러 집단을 이용하는 범죄 방식도 그렇고, 물량을 지원하거나 행적을 지우는 스타일도 세르게이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게 조금 전까지는 전부 심증이었다면, 이제는 충분한 증거가 된 상황.
상부에 보고할 가치가 있었다.
물론 취조 과정에서 발생한 폭행, 물고문, 미다졸람(진정·마취제)과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 환각제) 주사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으나, 그건 기밀로 삭제 처리될 예정이라서 개의치 않았다.
설령 노출되어도 다를 건 없었다.
윤리니, 인권이니 하는 건 우선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더군다나 인도적인 취조 방법을 아예 건너뛰었던 것도 아니었다.
총상 수술이 막 끝난 세 명의 피의자들에게 차분히 물었고, 식사까지 주면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질문하기도 했었다.
원하는 정보만 준다면, 굳이 서로 고생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 모든 게 보고서 초반 부분에 낱낱이 적혀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결과는 좋지 못했다.
피의자 대부분이 무응답, 혹은 거짓 대답으로 조사관들을 기만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만이 아니었다.
신념까지 미친 광신도와의 대화는 쉽게 끝난 적이 없었다.
온건한 수단이 아니라, 협박과 폭력, 물고문을 자행해야만 반응했다. 물론 그것도 효과가 작아서 이번처럼 정맥 주사를 놔야 했고.
이번 보고서도 그랬는데, 다행히 정말 필요한 정보가 있었다.
[…테러 발생 2일 전까지 세르게이 볼코프가 카마르니아에 있던 것으로 확인됨. 예상 경로 별첨.]
이를 보던 로버트가 아랫입술을 꽉 씹었다.
오늘 날짜로 계산하면, 세르게이가 고작 일주일 전까지도 카마르니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로버트에게서 분노와 희열이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디어 일주일까지 좁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