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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39화 (39/185)

39화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가 찰리 팀 전원의 생존 소식을 들은 건 새벽 5시 즈음이었다.

-찰리 팀, 전원 무사합니다!

그 뒤로 제이크가 부상을 입었고, 레이첼도 뇌진탕으로 기절했었으며, 강태마저도 자잘한 상처가 있다는 말이 덧붙었으나, 우선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했다.

중무장한 40~50명의 과격 무슬림이 벌인 테러 속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작정하고 벌인 습격으로 예상되는 상황.

길게 숨을 내쉰 로버트가 상황을 알린 당직실 직원에게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일단 그거면 됐네. 전후 상황 파악하고, 추가 소식 들어오는 것도 정리해서 보고서 초안부터 작성하게.”

그다음, 로버트는 국장실에서 전화를 들고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직속상관인 차관에게 구두로 직보했고, 당사국인 카마르니아의 군경과 병원을 관리하고, 언론에 제공될 가이드라인을 잡았다.

그 외에 주변에 배치된 CIA나 국토안보부의 위장 요원까지 선별해서 호출했다.

이는 사태를 마무리 지으려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었다.

또 다른 시작이었다.

정확히는 테러를 지시한 배후가 누구인지 캐내기 위한 준비 과정.

물론 배후도 없는 점조직의 무슬림들이 UN OCHA 조사 팀과 용병을 말살하기 위해 알아서 중무장하고 모여서 공격했을 수도 있었다.

확률로 따지면 소수점 이하.

오히려 로버트가 즉석 복권 1등에 당첨되는 게 현실적이었다.

당연하게도 테러를 지시하거나, 지원하거나, 조언한 조력자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로버트는 짐작을 넘어서 확신했고, 후보까지 추려 놨었다.

‘…세르게이 볼코프, 그놈이겠지.’

국제적인 주요 테러리스트이면서, 현 대외협력국 제거 대상 1순위.

몇 년째 쫓기고 있는 만큼, 더 멀리 달아나기 위해서 강경하게 반응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 이유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놈과의 거리가 좁혀졌고, 예상보다 가까이 있을 가능성이 크고…….’

평소 세르게이가 하던 흔적 지우기나 교란 수법도 이제는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었다.

뜬금없던 타릴 제도 우회도 같은 방식이었고, 그런 이유로 모두 파악했었다.

‘어쩌면 놈이 카마르니아나 주변국에 머물 수도 있겠군. 중요한 단서 같은 게 남아 있거나.’

그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상황이 떠올랐다. 이 또한 다각도로 검토해 볼 가치가 있기에 정리하여 지시할 무렵.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직원의 목소리가 문을 건너왔다.

“팀장님, 보고서 초안 가져왔습니다.”

“들어와.”

지시를 내린 지 대략 30분 만에 올라온 보고서였다.

로버트가 받으면서 새 서류를 건넸다.

“이거 CIA로 넘기고, 이건 국토안보부로 보내.”

“알겠습니다.”

“수고했어, 나가 봐.”

직원을 돌려 보낸 로버트가 한차례 마른세수하고 난 뒤에 겉표지를 넘겼다.

그리고 실핏줄이 올라온 눈을 비비면서 읽어 내려가길 잠시.

굳게 닫혀 있던 입이 작게 열렸다.

“허…….”

헛바람이 절로 뱉어지더니, 고개가 좌우로 작게 흔들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이어서 벌어진 입에서는 주춤거리듯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아남은 게 아니라… 다 죽였다고……?”

최초에 찰리 팀의 생존 보고를 받았을 때만 해도 로버트는 다행이라고 안도했었다.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까.

한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다.

강태가 놈들을 죄다 죽여 버린 것이었다.

심지어 민간인은 티끌만 한 찰과상도 없이 멀쩡했고, 다친 건 오직 찰리 팀밖에 없었다.

이윽고 로버트의 시선이 흔들리면서 보고서의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 내려갔다.

[…이강태는 정문에 있는 28명의 테러범을 살상한 후 현지 군경 200여 명, 마커스 워싱턴, 호세 페레즈와 함께 18명을 추가로 제압함. 총 46명의 테러범 전원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여기에 사용한 주 무장은 MP7으로 40발들이 탄창 3개를 소모했고…….]

28명을 단독 살상, 18명을 함께 살상해서 도합 46명 전원을 제압했다는 내용.

그것도 MP7 40발들이 탄창 3개인 총알 120발로 끝냈다.

언뜻 보면 많아 보이는 숫자지만, 수십 명을 상대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수량이었다.

뇌나 심장을 정확히 뚫는 게 아니라면, 탄 1발로는 사람을 막기 어려운 탓이었다.

최소 2~3발, 많으면 5~6발까지 필요했다.

즉 120발로 수십 명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한 발의 낭비도 없이 모든 게 적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강태의 실력으로 보면 아주 당연하겠지만, 이번에는 결코 쉽다고 할 수 없었다.

무장과 상황의 차이가 큰 탓이었다.

[…적은 73식 대대기관총 2정, RPG-7 3정, AK-74 43정, AK-47 7정, Vz.61 2정, Vz.54 1정, TOZ-106 2정, 마카로프 권총 8정, CZ-100 1정, 벌목도 39개를 소지했으며…….]

북한, 소련, 체코 등지에서 쓰이는 온갖 무기들이 나열된 가운데, 정말 위력적인 게 섞여 있었다.

경기관총과 대전차 로켓포.

이건 소총 든 일반 보병들이 상대하기에 아주 위험한 병기들이었다.

발사만 된다면 북한제든, 뭐든 상관없었다.

그만큼 위력적이니까.

제이크가 부상을 입고 레이첼이 기절한 것도 재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RPG-7이 그 정도로 강력한 탓이었다.

한데 강태가 그 말도 안 되는 위험을 뚫고서 혼자서 일을 해결했다.

물론 운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마지막에 정문에 있던 RPG-7과 73식 대대기관총이 기능 고장이 났었으니까.

심지어 후문에 거치됐던 건 발사조차 안 됐었고.

‘…이건 추가 보고를 받아 봐야 하겠군.’

제이크와 레이첼의 보고서, 바디캠 녹화 파일 등을 떠올리면서 다음 장을 넘길 무렵.

이내 로버트가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46명 중 43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치명상을 피한 테러범 3명은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 중이며…….]

46명 중에서 3명만 살아남았다.

여기에는 분명 강태의 사격 솜씨가 한몫했을 것이었다.

그것도 로켓포와 기관총을 뚫고서.

로버트가 끄덕거리기를 잠시, 곧 테러범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들에게 CIA 위장 요원을 보낼 생각이었다.

일명 취조 전문관.

대화를 하든, 고문을 하든, 약물을 쓰든 그들이라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마침 당사국이 캅카스의 전장인 카마르니아라서 다행이었다.

최빈국에 준하는 개발도상국.

포로가 고문을 당하든, 사망하든, 묻어 버리기 쉬운 나라였다.

물론 일련의 과정은 전부 불법이고 비인도적이겠지만, 그 정도는 감안해야 했다. 적은 그것보다 더 잔인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대외협력국이 지키는 건 범죄자의 인권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설립 목적도 오직 그것뿐이었고.

어느새 로버트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반드시 응징해 주마.’

* * *

“이상 없다고 하네요.”

병원 검사실에서 나온 레이첼의 말이었다.

“뇌진탕이랍니까?”

“네, 가벼운 정도였어요. 근데… 미안하게 됐어요, 중요한 순간에 짐이 돼서…….”

어느새 그녀가 풀 죽은 모습으로 고개마저 떨어트렸다. 뒤통수 부근에 붙인 큼직한 거즈가 눈에 띄기에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기절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대충 답하고 마는데, 그녀가 내 어깨로 눈짓했다.

“당신은 좀 괜찮아요?”

“예, 뭐… 몇 바늘 꿰맸어요.”

다해 봐야 9바늘 정도.

일전에 왼쪽 어깨를 18바늘이나 꿰맸는데, 이번에는 반으로 줄어든 셈이니 오히려 나았다.

물론 살 속에 쇳조각이 박혀서 뽑느라 애먹긴 했지만, 이 정도면 별거 아니었다. 분리된 신체도 없고, 전부 멀쩡히 움직이니까.

“나머지는 괜찮고요?”

어느새 그녀가 나를 훑듯이 물어왔다.

아마 여기저기 붙인 거즈와 밴드를 보고 하는 말일 것 같아 가볍게 답했다.

“붙여 주길래 붙인 거예요, 별거 아닙니다.”

뒤통수에는 커다란 혹이 있었고, 얼굴부터 정강이까지 온갖 자잘한 상처가 가득했었다. 웬 파편이나 조각 같은 걸 꽤 빼내야 했었고.

그러나 이건 어깨에 비하면 꿰맬 것도 없는 가벼운 찰과상들이라 넘어갈 만했다.

그사이, 레이첼은 입을 앙다물더니 미간까지 구겼다.

“그리고… 리, 당신이 날 구해 줬다고 들었어요.”

“에이, 됐다니까…….”

“목숨을 빚졌으니, 언젠가 나도 목숨값을 하도록 할게요.”

손을 내저으며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제법 살벌한 말이었다.

정말 목숨을 나눌 전우가 할 만한 소리였고.

그러고 보니 어느새부터 그녀가 나를 관찰 대상이 아닌, 동료로 보는 것 같았다.

말과 행동에서 그런 게 종종 느껴지곤 했었다.

꼭 지금처럼.

‘하긴, CIA 출신에다 대외협력국 캐릭터지만… 레이첼이 사명감 하나는 끝내주는 부류지.’

비로소 심적으로 더 가까워지는 듯했다.

이미 믿고 있긴 하지만, 제이크처럼 더 끈끈하게 믿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이에 긍정의 답을 하려던 때였다.

덜컹.

수술실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들과 침대 하나가 나왔다.

동시에 대기석에 걸터앉아 있던 마커스와 호세가 벌떡 일어났다.

수술을 마친 제이크가 실려 나온 탓이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팀장은?!”

마커스가 달려들듯 묻고, 의사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대답했다.

“그는 파편 제거가 성공적으로 끝났고… 봉합도 끝났고… 그리고…….”

그렇게 더듬거리는 말이 이어지고, 간호사들이 제이크가 실린 이동식 침대를 밀고 지나갈 때였다.

턱, 내 손이 잡혔다.

이동식 침대가 덜컹거리며 멈추고, 간호사들이 움찔한 순간.

뭐가 내 손을 잡았는지 깨달았다.

“리.”

제이크였다.

그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어느새 찌푸리듯 눈까지 뜨고 날 보고 있기에, 흠칫했다.

“으어? 예? 팀장?!”

동시에 간호사들도 놀란 듯 뒤로 반걸음씩 물러나는 사이.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몸은 좀 어때?”

“아니… 전… 제가 아니라, 팀장은요? 마취도 안 하고 수술한 겁니까?”

“아니, 방금 깼네. 마커스의 목소리가 들리길래.”

“아니, 뭔……?”

말도 안 돼서 쳐다보는 사이에, 제이크의 걸걸한 음성이 이어졌다.

“마커스.”

“아… 아, 네!”

마커스도 놀란 듯 보다가 대답했고, 제이크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내 상태가 이러니, 네가 팀장 대행을 맡아야겠어.”

“아, 알겠습니다.”

“3일 뒤면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 너무 우려하진 말고.”

그 말 뒤로 제이크가 아직 잡고 있던 내 손을 힘주어 꽉 잡았다.

과연 마취한 게 맞나 싶은 힘.

“아니… 진짜… 뭐 잘못된 거 아니죠?”

“걱정 마. 전에도 비슷한 적이 있었어. 그리고… 모든 게 네 덕분이야, 리. 고맙네.”

“그거야 뭐 할 일을 한 거죠, 고맙기는…….”

“그럼 병원은? 안전한가?”

“예, 군경 쫙 깔렸어요. 우리 동유럽 지부에서 지원도 온 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짧게 답한 그가 아직 얼떨떨한 간호사를 향해 턱짓했다.

“이제 마저 갑시다. 머리가 좀 어지럽군.”

진짜 사람이 아니라, 반신인가 싶을 무렵.

주저하던 간호사가 침대를 당겼고, 의사가 뒤늦게 뒤를 쫓았다.

그리고 호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커스, 저게 무슨… 팀장 인간 맞냐? 진짜 토르 아니야? 아니면 바이킹의 왕족, 그런 건가?”

호세가 묻고, 복도를 바라보던 마커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들어 본 적은 있어.”

“뭘? 바이킹이라고?”

“아니, 마취가 잘 안 듣는다고. 그래서 발바닥에 생겼던 종기와 물집을 생으로 뜯었다더군.”

“으… 미쳤군, 그것도 인간이 할 짓은 아니야. 내 생각에 팀장은 토르의 후손이 아닐까 싶어. 약물이 통하질 않잖아.”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던 무렵.

호세가 나를 쳐다봤다.

“참, 너도 어깨가 다쳤다면서? 좀 어때? 치료 끝난 거야?”

“어어, 난 부분 마취 잘됐어. 아직도 얼얼해.”

“흐하하하하하.”

한바탕 웃은 그가 거즈가 없는 반대편 어깨를 툭 쳤다.

“마취가 잘돼도 넌 팀장하고 같은 과야.”

“내가?”

“괴물이라고, 괴물. 정문을 혼자서 감당했잖아. 아니, 네가 다 박살 냈지.”

“아… 그냥 뭐, 하다 보니까…….”

“후문에 있는 놈들도 네가 대부분을 사살했잖아. 10명? 11명?”

“12명.”

“오, 이런! 진짜 미친놈이었어! 그걸 어떻게 셌지? 머저리 같은 군인들이 난사했었잖아?”

그 말처럼 지원군은 개판이었다.

제대로 된 대응은커녕, 오히려 안 좋은 상황으로 끌고 갔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이 이목을 끌었고, 내가 그 틈에 빠르게 사살할 수 있었다는 사실뿐.

이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볍게 대꾸했다.

“마침 에임이 딱 맞더라고.”

“오! 누가 보면 혼자 FPS 게임이라도 하는 줄 알겠군.”

“아, 사실 맞아.”

“흐하하하, 농담을 농담으로 받을 줄이야. 그럼 목숨은 몇 개나 되나?”

“하나일걸? 아직 죽어 본 적이 없어서.”

“하하하하하, 그래. 죽으면 알겠지, 그럼 난이도 조절은?”

“음, 그건 없는데?”

연속으로 묻고 답을 듣던 호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이런, 그게 무슨 게임이야? 그냥 우리 인생이잖아? 하나뿐인 목숨에, 선택 불가능한 난이도. 아! 물론 네 사격술 만큼은 게임하고 비슷하겠지. 중국에서 만드는 불법 프로그램 말이야. 빌어먹을 핵… 이런! ‘빌어먹을’은 맞지만, 너한테 하는 말은 아니야. 그리고 인종차별도 아니야. 너한테 중국인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가 혼자서 놀라고 움찔대며 떠드는 사이, 마커스가 스윽 끼어들었다.

더는 못 참겠다는 듯한 모습.

“호세, 그만 좀 하지? 리에게는 휴식이 필요해.”

그러면서 그가 내 등을 툭 치고서 눈짓했다.

“좀 자 둬, 네가 가장 고생했잖아.”

“체력은 괜찮은데.”

“그건 내가 잘 알지. 하지만 쉬고 있어, 팀장도 누워 있는데 너까지 무리하게 둘 순 없어.”

그러면서 마커스가 호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데려가 버렸다.

동시에 레이첼이 슬쩍 다가왔다.

“혹시 호세가 싫으면 말해요. 내가 떼어내 줄 테니까.”

“예? 그런 건 아니에요.”

“방금 게임과 관련된 대화를 나눌 때, 표정이 좀 어둡던데요?”

되물으려다가 새삼 그녀의 눈썰미를 깨달았다.

돌아보니 아마 그랬을 것 같았다. 게임이라는 말에 불편했던 옛날의 몸뚱이가 불쑥 떠올랐었으니까.

레이첼이 더 오해하기 전에 얼른 대답해 주었다.

“옛날에 게임했던… 하여튼 딴 생각을 좀 했었어요, 별거 아니에요. 자자, 갑시다.”

드디어 카마르니아에서의 첫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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