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눈이 뜨였다.
자욱한 먼지 사이로 레스토랑 천장이 보이고, 전등 불빛이 껌뻑거리다가 꺼지는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듯, 현 상황을 깨달았다.
“……!”
무슬림, 기관총, RPG.
단어들이 장면이 되어 떠올랐다.
북한에서 쓰는 73식 대대기관총의 7.62×54㎜탄이 소나기처럼 들이쳤었고, RPG탄은 로비 한가운데로 날아와 폭발했었다.
쉽게 말해 한바탕 휩쓴 상황.
급하게 타일 바닥을 짚자, 돌조각과 유리 파편 따위가 손바닥을 따갑게 찔러 왔다.
‘시각, 청각, 촉각까지 다 멀쩡하고…….’
텁텁한 입안의 흙먼지 맛을 느끼고, 팔다리를 당겨서 멀쩡한지 살피기를 잠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드러난 피부마다 상처가 조금씩 있었고 걸친 코트 곳곳이 파편 따위로 찢기긴 했으나, 중요한 몸뚱이나 팔다리는 정상적으로 움직인 덕분이었다.
물론 어깨나 등짝이 결리듯 욱신거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었다.
전투 끝나고 파스나 붙이면 될 터.
중요한 건 내 사지가 멀쩡하다는 사실이었다.
이어서 거추장스러운 코트를 벗어서 내려놓고, 총기 멜빵에 걸려 있던 MP7 총을 고쳐 잡는 순간.
터벅, 터벅.
정문 근처에서 발소리가 퍼지면서 쑥덕거리는 듯한 아랍어도 들려왔다.
11개 언어 팩에서도 이해 못 하는 구부러진 말들.
얼른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누르면서, 놈들의 접근을 알렸다.
“…여기는 1호차, 놈들이 정문으로 접근해 옵니다.”
그리고 무릎 앉아 자세를 취하려던 찰나, 옆쪽에 먼지를 뒤집어쓴 무언가가 보였다.
그게 무엇인지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이첼……!”
차마 크게 소리 지르진 못하고,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외쳤는데, 미동조차 없었다.
“…씨팔!”
욕과 함께 얼른 기어가 코밑에 손을 대서 호흡을 확인했고, 동시에 출혈이 있는지도 살폈다.
다행히 숨도 쉬고, 피 같은 것도 없었다.
아마 RPG의 충격으로 넘어지면서 뇌진탕을 입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러나 더는 진단하거나 지켜보기 어려웠다.
발소리가 가까워진 탓이었다.
다시금 무전을 쳤다.
“2호차, 여긴 1호차, 레이첼 의식 없음. 즉시 지원 바람.”
이어서 은·엄폐물을 찾아서 움직이는 사이, 늦지 않게 답이 돌아왔다.
-2호차… 젠장, 호세! 1호차로 지원 갈 수 있겠나?
제이크였다.
그도 타격을 좀 받았는지, 말끝에서 지친 숨소리가 묻어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생각해 보면 멀쩡할 리가 없었다.
RPG-7이 로비 창문을 깨고 한가운데에 떨어졌는데, 거리상 나보다는 제이크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재수 없다면 터진 탄두 조각이나 구조물 파편에 상처가 났을 수도 있었다.
그것도 피부가 긁힌 수준이 아니라, 살 속 깊이 처박히거나 관통해서 지혈이 어려운 상황들.
한숨이 나오려던 무렵, 다행히 호세의 답도 들려왔다.
-바로 가겠습니다.
-그럼 자네가 리를 돕도록 하고… 3호차! 상황은?
그와 동시에 마커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직 버틸 만합니다, 급하면 호세를 부르겠습니다.
-민간인들은?
-다친 데 하나 없이 안전합니다, 지금은 전부 냉장창고에 전원을 끄고 들어갔습니다.
-다행이군, 현지 군경에 지원 요청했으니까, 곧 올 거야. 버티고 있게. 그리고… 리!
제이크가 1호차라는 말이 아닌 내 이름을 불렀고, 다소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레이첼을 끌고 주방으로 올 수 있겠나?
“지금은 좀 어렵습니다.”
짧게 답하면서 총구를 겨눴다.
발소리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탓이었다.
“교전 직전이라, 한번 정리하고 가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욱신거리는 어깨를 당기면서 총을 똑바로 잡았다.
다행히 총구는 흔들리지 않았고, 손끝 역시 멀쩡했으며, 미친 듯이 뛰어야 할 심장도 차분했다.
이어서 격발하기 직전에는 머리까지 맑아질 무렵.
욕이 나왔다.
“염병…….”
이 상황은 게임 플레이하고 조금이 아니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인원도 2~3배는 많았고, 없었던 RPG-7도 여러 개를 갖고 있는 데다가 북한에서 운용하는 73식 대대기관총까지 거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그게 왜 여기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중요한 건 그걸 다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더더욱 빡세게 각오할 무렵.
다가오는 적의 머리통이 레드닷에 찍혔다.
투두두두두!
바로 방아쇠를 당기면서 연발 같은 속사로 놈들을 무력화시켰다.
투두두! 투두두두!
머릿수건을 둘러쓴 근처의 광신도 둘을 고꾸라트렸고, 난사하면서 달려들려던 놈까지 쓰러트렸다.
그제야 접근하던 나머지 인원들이 AK-74의 탄환을 쏟아붓듯 쏴 갈겼다.
투다다다다― 투다다다다! 투다다다다다다다!
타다닥! 쨍그랑― 콰직!
얼른 피했으나, 쏟아지는 탄 뒤로 깨진 바닥 타일 조각과 흙먼지, 거기에 뭔지 모를 파편 따위가 튀어오기 시작했다.
눈까지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
“윽!”
얼굴이며 전신으로 날카롭고 단단한 파편들이 쉬지 않고 튀어서 고개를 돌렸다.
거기다 도비탄이라도 맞았는지, 가슴팍의 방탄 플레이트 한쪽에서는 통증도 전해지는 상황.
“에라이……!”
급해서 섬광탄을 깠다.
그것도 갖고 있던 두 개 전부.
막힌 실내가 아니라 레스토랑 정문에 쓰긴 부족했지만, 그렇다고 코앞에서 맞기에 만만한 물건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분명 피할 거고, 잠깐의 여유가 생길 터.
그때 반격해야 했다.
한데, 다행히도 더 좋은 효과를 냈다.
“!إنها قنبلة يدوية(수류탄이다!)”
“!احترس(조심해!)”
쏴 갈기던 놈들이 수류탄이라고 착각이라도 했는지, 소리를 내지르면서 확 흩어졌다.
파앙! 파앙―!
동시에 섬광탄이 터졌다.
실내에서라면 수류탄 못지않은 폭음이 났을 텐데, 야외라서 별거 없는 소리.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애초부터 섬광탄으로 조지려던 게 아니었으니까.
잠깐의 틈이 생긴 때, 상체를 살짝 내밀고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두두두두두―!
내 조준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흩어진 적들의 머리통과 몸뚱이에 꽂혔다.
“아악!”
피탄된 놈들은 그대로 저세상에 가거나 쓰러져서 숨이 다한 생선처럼 꿈틀댔다.
순식간이었다.
방금 공격으로 아홉 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자가 된 것이었다.
그러자 한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القرف! أطلق عليها الآن(제기랄! 당장 쏴 버려!)”
동시에 다시금 총알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당―!
파바박! 쨍그랑―! 투드드득―
난사 같은 총알 세례에 뭔가가 부서지고 터져 나가는 바람에 황급히 고개를 감춰야 했다.
그리고 나는 운 좋게도 그리고 불운하게도, 그 전에 엿 같은 광경을 목격했다.
찰나의 순간이고, 장면이었다.
바로 RPG-7과 73식 대대기관총.
이 두 조합이 다시 준비되는 광경이었다.
“…니미.”
그걸 구경만 했던 건 아니었다.
분명 RPG-7과 73식 대대기관총 사수를 하나씩 골로 보냈었다.
덤으로 옆에 있던 놈들도 쐈었고.
못해도 지금까지 15명 정도 죽었을 텐데, 이 과격 무슬림들은 아직도 30명인 것처럼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제대로 미친놈들이었다.
늦기 전에 상체를 숙이고 레이첼 쪽으로 뛰었다.
지금은 반격이 어려운 탓이었다.
시야 확보와 엄폐가 가능하면서도 쏠 만한 각도가 없었다.
더구나 지금도 창문과 문 쪽에다가 미친 듯이 난사해서 응사하려고 손을 내밀면 손이 날아갈 정도였다.
이에 낚아채듯 레이첼의 코트 깃과 전술 조끼 하나를 움켜쥔 순간, 도움의 손이 더해졌다.
어느새 뛰어온 호세였다.
“뛰어어어!”
레이첼을 끌고서 전력 질주로 뛴 순간.
콰아아아앙―!
RPG-7이 정문에 적중하면서 폭발음이 울렸다.
건물이 진동하고, 화염과 먼지가 등 뒤로 덮쳐 오면서 몸 역시 휘청했다.
그러나 다행히 멀었다.
오히려 나와 레이첼, 호세는 주방과 가까웠고, 그곳에서는 제이크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들어와!”
황급히 레이첼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빌어먹을! 레이첼 상태는 어떤가? 리, 너는 괜찮나?!”
제이크가 다급히 물어왔는데, 왜 그가 직접 안 오고 호세를 보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의 손 하나가 불편한 듯 옆구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팀장? 몸이 왜……?”
“빌어먹을 파편이 박혔어. 너는?”
“아… 네, 전 괜찮고, 레이첼은 뇌진탕 같습니다. 외상은 없었고…….”
대답하다가 주춤하고 말했다.
마주한 제이크의 미간이 고통을 참듯 심하게 일그러졌기 때문이었다.
“…팀장은 진짜 괜찮은 거 맞습니까?”
“그래, 아직 서 있을 정도는 돼.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했지만, 내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레이첼처럼 곤히 자는 거면 몰라도, 제이크처럼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게 쉽지 않은 탓이었다.
어느새 옆구리를 움켜쥔 그의 손에 핏물도 점차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호세! 지원해! 놈들이 온다!”
주방 후문 쪽에서 마커스가 소리쳤고, 동시에 탄이 빗발치는 소리가 들렸다.
거의 반사적으로 호세가 튀어 나간 사이.
나는 주방 문을 바라봤다.
별거 없는 나무 문짝이었다. 총으로 쏘면 죄다 관통당해서 구멍 뚫릴 터.
그러나 문짝만 나무고 나머지 벽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었을 테니, 그걸 장애물로 버티면 됐다.
이 문구멍으로만 넘어오지 못하게 하면 되니까.
다만 문제가 있었다.
‘주방 안으로 RPG가 날아오면 다 뒈지는 건데…….’
다행히 민간인들은 주방 안쪽에 있는 큼직한 냉장창고에 들어가서 타격은 없을 터.
그러나 우리 찰리 팀은 아니었다.
주방 안으로 뭐가 들어오든, 제대로 대항하긴 어려울 것이었다.
그렇다고 로비로 나갔다가는 이미 깨진 여러 개의 창문을 통해 RPG-7이나 총탄이 날아와 죽을 게 뻔했고.
그러니 이 안으로 뭐든 들어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방어하는 수밖에 없었다.
답은 금방 나왔다.
‘여기서 막는다.’
탁.
나무 문을 살짝 열고, 거기에서 엎드려쏴 자세를 취했다.
“리?”
제이크의 부름에 전면을 응시하며 답했다.
“로비에 못 들어오게 할 겁니다. 아니, 들어와도 살아 있진 못할 겁니다.”
“…그래, 지금은 자네만 믿어야겠어.”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돌아볼 뻔했는데, 다행히도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기랄… 출혈이 좀 있는지 어지럽군.”
“…그냥 누워 있어요.”
내가 하려던 말이었는데,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내가 압박할게요. 그리고 지금 어떻게… 아니, 상황이 몹시 나쁘군요.”
레이첼의 음성이었다.
그 뒤로 제이크의 목소리가 덧붙었다.
“레이첼, 괜찮나? 두통이나 구역질은?”
“약간 어지러운 정도에요, 괜찮아요. 일단 팀장부터 누워 보세요. 이쪽으로.”
그렇게 부상자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조용히 전방을 주시했다.
‘정문까지 거리가 19~22미터 정도, MP7 정도면 충분히 다 조질 수 있어…….’
RPG-7을 쏠 기회도, 73식 대대기관총을 가져와서 난사할 기회도 안 줄 생각이었다.
그냥 들어오는 건 죄다 쓰러트릴 것이다.
각오를 마친 순간.
투두두두! 투두두!
내 MP7이 불을 뿜었고, 들어오던 첫 놈과 두 놈이 쓰러졌다.
움찔한 세 번째 타깃까지.
투두두─!
“으으으으아아아!”
덜 죽은 놈의 비명이 울려 퍼지길 잠시.
내부의 공기가 바뀌는 듯하더니, 난사가 시작됐다.
다행히 기관총은 아니었다.
AK-74.
타다다다다다다당!
거기에 그 유명한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기까지 했다.
“!الله أكبر(알라는 위대하시다!)”
그리고 뛰어들기 시작했다.
총알받이라도 내세우듯 우르르 몰려드는 것이었다.
“이 정신 나간 새끼들이……!”
투두두두두두두두두두!
검지에 경련이 일 정도로 빠르게 방아쇠를 당겨 대기를 반복했다.
들어오는 놈들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여럿이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지만, 동시에 펄떡이듯 버티거나 관성으로 10M 넘게 뛰어온 놈도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주방 문짝이 관통되며 나뭇조각이 튀었다.
파바박! 피융─! 쩌적! 콰직!
나무 문짝이 완전히 개박살이 나는 걸 들으면서, 노출된 어깨 부분에도 뭔가 튕겨 맞듯 통증이 느껴진 순간.
털썩.
난사하면서 달려들던 마지막 놈까지 쓰러졌다.
“후우우…….”
한바탕의 난전에 한숨을 쉬길 잠시.
오른쪽 어깨가 피로 축축해졌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리고 탄알집을 갈다가 깨달았다.
로비에 쌓인 시체가 꽤 많은데, 내가 파악했던 놈들이 거의 다 죽었다는 사실을.
“…이러면 한두 놈 남은 거 아닌가?”
로비 정문에서 버티면서 그리고 이곳 주방 입구에서 쏴 죽인 놈들을 포함하면 다해서 26명이었다.
그리고 내가 최초에 보고한 병력이 30명.
그것도 여유 있게 잡은 숫자였다.
아마 원래는 26~28명 정도 됐을 것으로 생각됐다.
즉, 지금 다 죽었거나, 있어 봐야 한두 명 있다는 소리.
턱.
계산을 마치면서 몸을 일으켰고, 마커스와 호세가 있는 후문 쪽을 바라봤다.
“부팀장, 상황은?”
“아직 대기 중, 강철 문이라 버티고 있어!”
“후… 밖에 정리하고 돌아갈게.”
이어서 지혈 중인 레이첼과 제이크를 바라봤다.
응급 처치가 이뤄지는 상황인데, 다 깨진 나무판자와 돌조각, 거기에 온갖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아마 나도 다르지 않을 터.
어느새 레이첼이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목소리를 냈다.
“나가 봐도 돼요. 팀장은 아직 괜찮아요.”
“…부탁 좀 합시다.”
쓰라리고 욱신거리는 양쪽 어깨를 움직여 총을 견착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주방을 나서자마자, 두 개의 형체가 보였다.
픽업트럭 위에서 RPG-7을 조작하고, 73식 대대기관총을 장전하는 모습.
불량인지, 실수인지, 농땡이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좋았다.
내가 먼저 죽이게 됐으니까.
투두두두두두!
빠르게 송장으로 만들고, 이어서 텅 빈 차량과 마주한 건물을 경계하면서 움직였다.
레스토랑을 빙 둘러가듯.
후문에 있는 것들도 다 죽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병력 절반이 아니라, 다 죽고 둘만 남아 있어도 순교하려고 덤비는 것들이니까.
그러나 곧 우뚝 서고 말았다.
“……?”
거친 엔진음과 함께 군용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청사에서 봤던 국기를 매단 채.
조수석에는 그곳에서 봤던, 통역 장교라는 사람도 있었다.
즉, 현지 지원군이라는 뜻이었다.
“일찍도 오네, 씨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