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37화 (37/185)

37화

RPG-7을 관측했다는 보고에, 제이크의 얼굴이 굳었다.

반사적으로 큼직한 코트 자락을 걷은 그가 MP7 총 손잡이를 쥐면서 물었다.

“RPG를 들고 있는지, 아니면 차량에 그대로 있는지 확인해.”

-아직 차량 내부에 있는 것으로 보임.

“적은? 차내에 있나?”

-4명 전원 하차한 것으로 보임.

레이첼과의 빠른 통신에 제이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빌어먹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차에 둔 RPG-7은 위협용이 아닌, 공격용이 분명했다.

무기를 가진 적 역시 마땅히 사살해야만 했다. 그의 본능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부 죽이고 현장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그런 명령을 내려서도 안 됐다.

무기를 들고 있지 않은 비무장 상태의 적을 죽이는 건 명백한 전쟁범죄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들이 살해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

선제공격하거나 무기를 들지 않는 이상, 결코 죽여서는 안 됐다.

또한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레이첼이 목격한 게 RPG-7이 아닌 채석장이나 벌목장 따위에서 쓸 공구일 수도 있었다.

작전지에서는 정말 예상치도 못한 착각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아군끼리 오인 사격도 자주 나곤 했고.

결국, 제이크가 내놓을 수 있는 건 정석적인 답이었다.

“1호차, 계속해서 주시하고, 상황 발생 시 자체 대응 후 보고할 것.”

-1호차, 수신 양호.

그리고 바로 UN OCHA 조사단의 책임자이자, 지역 국회의원과 식사 중인 존의 귓가로 다가가 현 상황을 알리려고 할 무렵.

-2호차, 여기는 3호차.

주방 쪽 후문을 맡고 있던 마커스로부터 무전이 왔다.

-후문 방향에 은색 현대 승용차 1대 정차 중.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이크의 입이 열렸다.

“적이나 병기 확인되나?”

-구체적으로 확인 불가하나, 앞, 뒷좌석에 전부 탑승한 것으로 파악됨.

“…….”

제이크의 이가 꽉 다물렸다.

이제는 RPG-7을 가진 이들만 급습해서 사살하고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다. 앞뒤로 동시에 공격해서 적을 무력화하고, 최대한 빨리 빠져나와야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한쪽은 무기를 잡지 않았고, 다른 한쪽은 아예 몇 명인지 확인조차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선제공격했다가는 전쟁범죄로 찍히게 될 것이다.

그럼 대외협력국 수행 팀에서 퇴출당할 터.

아니면 탈출해야 할 텐데, 저들이 순순히 내보내 줄 리가 없었다. 엄폐물도 없이 건물을 벗어났다가는 벌집이 될 터.

이내 제이크의 눈이 빠르게 레스토랑을 다시 살폈다.

문과 창문의 위치, 엄폐물이 될 벽과 기둥,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안쪽에 있는 주방까지.

반사적으로 상황별 대안이 그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밖으로 탈출해야 한다면 정문이나 후문, 둘 중 하나를 제압하면서 로비 창문을 깨고 나가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주방 쪽에서 버티면서 지원을 기다리는 게 정석이겠군.’

동시에 UN OCHA 조사 팀 책임자인 존에게 마저 다가가서 말했다.

“정문과 후문에 수상한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지역 경찰이나 군인을 호출해서 경비를 요청하되,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병력을 보내 달라고 하십시오.”

“…잠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존이 마주 앉은, 이마부터 머리가 벗겨진 카마르니아의 지역 의원을 보며 말할 때였다.

제이크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긴급 상황 시에는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안전한 구조물을 찾아 몸을 숨기고, 지앤지 경호 팀의 지시에 신속하게 따라야 합니다.”

“이봐요, 제이크. 대답을 좀 해 봐요. 이곳 지역 의원님하고 식사 중이잖아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영어를 못 하는 지역 의원이 애써 웃는 표정을 지으며 제이크와 존을 보는 사이.

“전원 이해했습니까?”

어느새 제이크가 남은 UN OCHA 조사 팀을 바라보며 물었다.

“…….”

존을 제외한 조사 팀 인원이 당황한 모습으로 서로 눈치만 보면서 눈을 깜빡거렸다.

아직까지 위험을 체감하지 못한 탓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엄밀히 말하면 위험이 없는 그린 존과 다르지 않았다.

청사나 호텔과도 멀지 않으며, 유동 인구가 제법 있는 카스피해 해변의 건물인 데다가, 지역 의원도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현지인과 방문객 몇몇이 식사 중인 상황이었다.

물론 내전 지역이나 위험지역을 다녀 봤던 이들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여기긴 했지만, 존이 아직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만큼 조용히 있어야 했다.

그리고 곧 책임자인 존의 입이 열렸다.

“이봐요, 제이크. 내가 북한까지 다녀온 사람입니다. 독재자 킴, 알죠? 그자의 병사들한테 감시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이 말이요. 그러니까…….”

그 말에 제이크가 말 대신 행동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호세가 얼른 끼어들었다.

“직접 북한에 다녀왔으면 알 텐데? 모릅니까? 그 돼지 같은 독재자의 나라에는 정신 나간 무슬림 과격 주의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레스토랑 정문과 후문에는 이미 여러 명이 대기 중이죠. 그것도 이 테이블을 날려 버리기 적당한 RPG를 들고.”

“…….”

“참고로 팀장 주먹이 RPG 탄두처럼 폭발하지는 않아도, 그만큼 딱딱할 겁니다. 맞으면 존나게 아플 거요. 잘 생각하고 말하길 바랍니다.”

주춤하며 당황한 존을 상대로 호세가 경고하던 때였다.

바라지 않던 소리가 모두의 귀로 전해졌다.

투두! 투두두! 투두두!

소음기를 끼운 MP7을 격발음이었다.

돌격 소총보다 현저히 작은 소음이어서 깜짝 놀랄 정돈 아니었지만, 청력이 멀쩡한 이들은 모두 움찔했다.

저 총성이 뭘 뜻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사격.

즉, 긴급 상황이었다.

“전원, 주방으로 이동하고 구조 요청해! 당장!”

제이크가 고함치고, 강태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면서 호세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경호 그리고 대기.

뒤늦게 우르르 달려가는 UN OCHA 조사 팀을 지키고 있으라는 의미였다.

호세가 알아듣고는 빠르게 사람들을 통솔하는 사이.

타다다다다당!

아까와는 전혀 다른, 귀를 울리는 총성이 바깥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이건 돌격 소총이 분명한 총성이었다.

동시에 강태의 목소리가 무전으로 전파됐다.

-여긴 1호차. 적이 RPG를 겨눠서 사살했으며, 적 인원 응사 중! 증원군이 도착했으며, 현재 파악되는 인원은 대략…….

말을 잇던 찰나.

투가가가가가가가강―!

쨍그랑! 콰가가―! 탱! 타다닥.

레스토랑 창문이 깨지면서 내부 집기가 박살 나는 소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읍!”

파밧, 제이크도 반사적으로 엎드렸다.

지금 레스토랑 안을 부수고 있는 게 뭔지 확인하지 않아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최소 7.62㎜의 기관총.

예상대로 인이어 수신기에서 강태의 답이 튀어나왔다.

-북한 73식 대대기관총 1정 발견! 적 인원 대략 30명!

그 뒤로 총소리들이 울려 퍼지는 사이.

제이크가 엎드린 채 핸드폰을 꺼내 드는데 마커스의 무전도 이어졌다.

-여긴 3호차! 후문에 20여 명의 적이 기관총 배치 중! 퇴로 확보 불가!

까득, 이를 갈듯 꽉 다문 제이크가 서둘러 상부인 알 자마쉬의 G&G Corp 서남아시아에 전화를 걸면서 무전을 쳤다.

“최대한 빨리 주방으로 가! 거기서 응전한다!”

동시에 G&G Corp 서남아시아 지부와 통화가 연결된 순간.

-…RPG!

강태의 커진 목소리와 함께 곧 폭음이 들어찼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쿠르르르― 투두둑.

굉음 뒤로 먼지가 풍기고, 돌조각과 온갖 잔해들이 퍼져 나갔다.

동시에 충격파를 받은 제이크의 몸뚱이 위로도 희뿌연 흙먼지가 뿌려지기를 잠시.

“빌어먹을……!”

제이크가 반사적으로 감겼던 그리고 먼지로 뻑뻑한 눈을 뜨면서도 반사적으로 MP7을 입구 쪽으로 겨눴다.

시야가 흐릿하고 귀에서 이명이 좀 들렸지만, 피아 구분도 됐고 적을 상대할 순 있었다.

강태나 레이첼이 아닌 다른 형체가 들어오면, 즉각 사살할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면 얼마 못 가서 그도 사살될 가능성이 컸지만, MP7을 똑바로 잡고 겨눴다.

죽기 전까지 한 놈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서.

그리고 정문의 상황을 알기 위해 무전 송신 버튼을 누를 무렵.

-…제이크? 무슨 일인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핸드폰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G&G Corp 서남아시아 지부장, 론 마이어스의 목소리였는데, 이어서 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후… 여기는 1호차, 놈들이 정문으로 접근해 옵니다.

강태의 말이었다.

동시에 제이크의 시야가 좀 더 밝아지는 듯했다.

직전까지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으나, 그가 살아 있다면 아직 승산이 있었다.

제이크는 서둘러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잡았다.

* * *

새벽 4시경,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띠리리리― 띠리리리―

벨소리가 울리길 잠시.

대외협력국 국장 로버트가 잠든 지 세 시간 만에 다시 깨어났다.

한쪽 눈만 뜬 로버트가 핸드폰을 집어 들어서 화면을 확인하다가, 힘겹게 상체를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화면에 대외협력국 당직실 번호가 찍혀 있던 탓이었다.

“…무슨 일인가?”

아직 잠에서 덜 깨어 무겁게 잠긴 목소리로 용건을 물었을 때였다.

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뚫고 튀어나왔다.

-국장님! 마이어스 지부장으로부터 현재 찰리 수행 팀이 공격받고 있으며, 즉시 현지 군경을 통해 지원해 달라는…….

“자, 잠깐.”

찰리 수행 팀이라면 카마르니아에 있는 G&G Corp 소속의 제이크와 레이첼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로버트의 눈이 번뜩 뜨였다.

“상세하게 다시 설명해, 뭐가 어쨌다고?”

-아, 예! 기록한 내용 말씀드리겠습니다. UN OCHA 조사 팀이 현지 지역 의원과 식사하는 상황에서 레스토랑 정문과 후문을 과격 무슬림으로 추측되는 4, 50명의 인원이 포위 후 RPG와 기관총으로 공격 중이라고 합니다. 현재 레스토랑 내부에서 응전하고 있으나, 전멸할 가능성이 큰 바, 출동할 수 있는 인근 부대나 현지 군경을 즉시 동원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

로버트가 주춤했다.

다다다 튀어나온 긴 설명 안에 듣기 싫은 단어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격 무슬림, 40~50명, RPG, 기관총.

쉽게 말해서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쉬이 믿기지가 않았다.

G&G Corp 찰리 팀이 카마르니아에 간 지 이제 1일차밖에 안 됐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공식 일정은 모두 안전한 그린 존에서의 행사였고, 적과 마주할 만한 위기는 오늘이 아니라 며칠 뒤에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예컨대 교외 지역이나 빈민가를 돌면서 현장 조사를 할 때.

한데, 첫날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니?

로버트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확실한가? 연락은 누가 했나?”

-제이크 러셀 팀장이 지부장에게 직접 했다고 합니다.

로버트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미 검증 절차는 지부장인 론이 모두 진행했을 터.

확실하다는 소리였다.

“제길…….”

무엇보다 이 상황이 문제였다. 너무 심각했다.

어쩌면 인간 병기나 다름 없는 강태조차 헤쳐 나가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숫자부터 다분히 위협적인 탓이었다.

1, 20명이 아닌, 4, 50명.

그것도 공격에 겁먹고 도망가는 반군이 아닌, 자살 폭탄 조끼를 둘러메고서 몸을 던져 순교하는 광신도들이었다.

다행히 전략이나 전술을 구사하지 못하겠지만, 미치광이 50명이라면 레스토랑 하나를 점령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었다.

동료를 총알받이로 집어던지거나 일부러 자살하는 놈들이니까.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50명으로부터 탈출하거나, 50명을 다 죽여야 할 것이다.

판단을 마친 로버트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당장 카마르니아 쪽에 연락해서 군대든 경찰이든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동원하라고 해.”

-라인은 일전에 통했던 브로커를 이용하면 되겠습니까?

“무슨 브로커야?! 그냥 국무부 라인으로 연락해! 이건 수행 팀이 아니라, 자국민의 목숨이 달린 일이야!”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카마르니아 현지에서 수배 가능한 용병이든, 뭐든, 싹 다 수행 팀으로 보내!”

-네, 국장님.

“끊고 바로 움직여!”

탁, 로버트가 전화를 끊고서 길게 콧바람을 뿜어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불쾌함이 뇌리를 스쳐 갔다.

제이크나 레이첼, 강태를 비롯한 찰리 팀의 위험한 상황 때문만이 아니었다.

바로 이 사태의 원인이었다.

‘왜 그 미치광이들이 대낮에 이런 짓을…….’

물론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충분히 가능했다.

정신 나간 놈들인 만큼, 그린 존이고 뭐고 상관없이 총을 쏘고 폭탄을 터뜨릴 터.

그러나 카마르니아의 과격 무슬림은 이란은커녕, 아제르바이잔의 조직보다 수가 훨씬 적었다.

거의 점조직에 가까운 형태.

중동의 유명한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ISIL로 이어지는 거대 집단 따위는 없었다.

그럴 만한 인구도 안 됐다.

또한 종교가 다양하고 세력이 약하기도 했다.

수니파 이슬람교, 시아파 이슬람교, 러시아 정교, 기독교, 유대교까지 나뉘어서 얼마 안 되는 신자마저 각 지역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한데 그 얼마 안 되는 과격 무슬림 중 4, 50명이나 되는 순교자들이 레스토랑을 습격하다니?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평소 쓰던 AK 계열의 소총이나 마체테가 아닌, 아예 중무장을 한 상황

UN군도 아닌, UN OCHA 조사 팀을 살해할 목적으로는 너무 과했다. 경호 중인 용병들을 고려해도 마찬가지였다.

단순 테러로 보이질 않았다.

아주 단단히 준비하고 벌인 일이라고 봐야 했다.

‘…이 모든 게 우연일 가능성은 희박하지.’

로버트의 미간이 구겨지길 잠시.

하나의 추론이 내려졌다.

“…팀이 노출됐을 수도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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