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명사수 특성이 좋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봤었다.
특히 장거리 사격 부문.
거리 편차와 풍향, 풍속, 습도, 시야 왜곡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수 킬로미터의 초장거리만이 아니라, 400M, 500M만 넘어가도 영향을 받는 거라서 신경을 써야 했다.
당연히 오조준하든, 스코프를 수정하든, 뭘 해야만 했다.
탄이 그만큼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심지어 초속 몇 미터가 안 되는 바람에도 휘어지니까.
물론 이론적으로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게 다였다.
저격 총을 이용한 장거리 사격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고, 저격 총조차 만져 보질 못했었다.
심지어 저격 총의 명품으로 꼽히는 TAC-50도 오늘에서야 실물을 처음으로 봤고, 그게 커스텀이 되었다는 것도 방금 알았다.
한마디로 저격 분야에서는 문외한이었다.
그게 방금까지의 나였는데, 지금 막 1,203야드의 표적을 모두 맞혔다.
“…통하네?”
내가 미소 짓고 있다는 걸 한 박자 늦게 알았다.
이어서 브래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 남은 탄까지 다 써 봐요.”
뒤를 돌아봤는데, 그가 아직 관측경을 들고 있었다.
동시에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에도 1,203야드의 G3 표적. 쏠 수 있겠죠?”
“예, 한 번 더 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나 역시 측정기를 들여다봤다.
풍향은 같고, 풍속만 조금 세진 상황.
‘여전히 좌에서 우로 불어오고, 속력은 대략 6mp/h(Miles per hour) 정도…….’
이것도 정조준하려면 크리크를 수정해야 하지만, 바람이 일정하지 않으므로 일일이 망원 조준경의 터렛을 돌려가면서 바꿔서는 안 됐다.
당연히 오조준을 해야 했다.
조금 전의 사격에서도 0.2MIL 정도 오조준을 했었고, 이번에는 바람이 세졌으므로 오조준 값이 좀 더 커졌을 뿐.
그렇게 스코프에 눈을 대는 순간.
명사수 특성이 발휘됐다.
목표물과 별개로 내 의지대로 빈 곳을 정확하고도 빠르게 조준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호흡을 가라앉힌다든가, 떨리는 스코프를 멈추기 위해 손가락에 긴장을 뺄 필요가 없었다.
그냥 방아쇠를 당기면 됐다.
타아아아앙―!
총성 뒤로 격발의 충격이 개머리판을 받치고 있던 왼손과 어깨로 전해졌다. 동시에 총구 좌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가스 압력이 열기와 함께 훅 터져 나가는 게 느껴졌고.
그 뒤로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끝을 스쳐 갈 무렵이었다.
“…명중.”
뒤편에서 브래드의 목소리가 들리기에 나도 사격을 예고했다.
“이어서 한 번 더 갑니다.”
말하면서 방아쇠울에서 빼냈던 검지를 다시 방아쇠 위에 얹었다.
풍향이나 풍속의 변화가 없는 상황.
계산도 필요 없이 같은 곳으로 다시 쏘면 됐다.
스코프 안의 광경이 눈에 담기는 순간.
타아아앙―!
마지막 탄까지 격발하면서, 5발들이 탄창을 깨끗하게 비워 냈다.
철커덕.
약실을 비우고, 탄창을 뺀 순간.
다시금 뒤쪽에 있던 브래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중.”
듣는 것만으로도 아주 뿌듯해지는 단어였다.
따지고 보면 편차 표시나 계산 모두 장비빨로 해냈고, 사격 역시 명사수 특성 덕분에 성공한 것이긴 했지만.
굳이 따질 건 없었다.
이제부터는 장거리에서도 활약할 수 있다는 사실만 인지하면 됐다.
단거리, 장거리 따질 것 없이.
정 안 되면 게임에서 그러듯 저격 총을 들고서 근거리 돌격 스나의 역할을 해도 됐다.
물론 하고 싶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전장 상황이 최악이라는 뜻일 테니까.
그사이, 어느새 관측경에서 눈을 뗀 브래드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봐도 점심 내기 정도는 해도 될 것 같은데…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볼게요.”
무슨 말을 하나 바라보자, 금세 말이 덧붙었다.
“호흡 조절과 조준 안정, 격발 타이밍을 건너뛰는 능력… 도대체 어디서 얻은 겁니까?”
“……?!”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브래드가 말한 그 모든 단어가 명사수 특성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얻냐고 물어보다니?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멈칫한 사이, 브래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타고난 유전이에요? 아니면 후천적인 훈련으로 습득한 겁니까?”
“아… 그 말이었군요.”
그의 말뜻을 이해하고 헛웃음을 지을 무렵.
브래드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 51구역이나 CIA 비밀 기지 같은 곳에서 생체 실험이라도 받은 겁니까? 캡틴 아메리카 같은 슈퍼 솔져 실험이나…….”
“하하하, 아뇨. 따지자면 타고난 겁니다.”
“음… 설령 비밀 실험을 받았다고 해도 말할 수 없겠죠. 나도 그동안 수행했던 임무를 말하지 않는 것처럼…….”
브래드가 이해한다는 듯 말하기에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휴, 그런 거 진짜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부인한다면야, 사격의 천재로 정정하죠.”
“…슈퍼 솔져보다 낫긴 한데, 천재보다는 그냥 잘 쏘는 걸로 해 주시죠. 좀 민망하네요.”
“좋습니다, 잘 쏘는 리. 시원한 맥주하고 바비큐 폭립으로 내기나 한번 합시다. 제이크의 것도 포함해서.”
“원래 배우는 입장이라 거절하려고 했는데…….”
멋쩍은 미소를 지워 내면서 대답했다.
“까짓것 합시다.”
* * *
내기는 간단했다.
두 사람이 각자 사로에 앉아서 제이크가 불러 주는 하나의 표적을 맞히는 것.
즉, 먼저 맞히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 규칙이었다.
그것도 고정형 표적뿐만 아니라, 레일을 따라 시속 6-10㎞/h로 움직이는 이동형 표적 사격까지 포함해서.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가운데 선 제이크가 관측경을 들었고, 곧 걸걸한 목소리로 표적 번호를 읽었다.
“810야드(740M), 에코 4.”
알파벳 E를 뜻하는 용어 뒤로 강태와 브래드가 곧장 스코프에 눈을 댔다.
아까처럼 관측경을 보고 스코프를 조절하는 게 아니었다.
오직 스코프에 표기된 조준선 눈금을 봐 가면서 오조준을 하여 격발해야만 했다.
관측경을 보고 터렛을 조작했다가는 이미 늦을 테니까.
그 순간, 첫 발이 터졌다.
타아앙―!
강태였다.
총성이 울려 퍼졌으나, 2초가 채 되기 전에 관측경을 보던 제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표적 옆의 흙이 튄 탓이었다.
“리, 놓쳤어.”
그사이에 브래드는 한쪽 눈을 감고 호흡을 조절하면서 방아쇠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강태의 선제 사격에도 숙련된 저격수다운 모습으로 차분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모든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다.
‘됐어.’
짧은 판단 끝에 브래드의 검지가 적절한 세기로 방아쇠를 당겼다.
일순, 두 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타아아앙─!
“……!”
지켜보고 있던 제이크의 눈이 확 뜨였다.
브래드와 강태가 거의 동시에 격발했고, 두 총알 모두 사람 상체 모양의 표적에 적중했기 때문이었다.
제이크가 먼저 총성이 들린 쪽을 바라봤다.
“브래드, 명중.”
제이크의 선언 뒤로 강태가 쓰게 웃었다.
“아깝네.”
편차에 따른 계산만 잘했으면 첫 발에 맞았을 수도 있었고, 아니어도 두 번째에 먼저 명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입맛을 다시면서 약실의 탄피를 빼낼 무렵.
마찬가지로 노리쇠를 후퇴 전진하면서 새 탄을 장전하던 브래드의 눈이 빛났다.
‘그사이에 두 번째를 맞혔어……?’
역시나 대단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아까 5발들이 탄창 하나를 소모하는 사격에서 느끼긴 했지만, 강태의 조준 속도와 격발 속도는 인간을 초월한 정도였다.
지금도 마찬가지.
‘더 집중해야 되겠어.’
브래드가 정신을 좀 더 가다듬었는데, 그렇다고 방금 사격이 못한 것도 아니었다.
격발 직전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4, 5초.
10초 룰을 가진 사격 대회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 사격 좀 한다는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
그런데 강태는 그사이에 무려 두 발을 쐈고, 심지어 한 발을 타깃에 맞혔다.
거의 2초 만에 격발한 셈.
내심 감탄할 무렵, 제이크가 목소리를 냈다.
“자, 다음. 사격 준비.”
철커덕, 강태가 재장전을 마쳤고, 브래드도 두 눈을 모두 뜨고 전방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신호가 떨어졌다.
“1,013야드(926M), F3. 확인됐나?”
“예, 보입니다.”
강태가 대답하고, 브래드가 빠르게 접안하며 위치를 찾아 오조준하는 사이.
타아아앙─!
강태가 또다시 먼저 격발했다.
그러나 관측경을 들고 있던 제이크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탄이 표적지 앞부분의 흙을 때린 탓이었다.
“더 올려야겠어, 리.”
흙먼지가 풍기고, 철커덕 소리와 함께 노리쇠가 움직이는 사이.
“후…….”
호흡을 정돈한 브래드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타아앙─!
이번에도 총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전과 마찬가지로 강태가 또 따라 쏜 것이었다.
결과도 직전과 같았다.
“브래드 명중.”
제이크가 말하며 관측경에서 눈을 뗐다.
그러나 스코프에서 접안을 마친 브래드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다소 불만족스러운 모습.
“조금 아쉽네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제이크도 잘 알았다.
브래드는 사람 상체 모양인 표적의 어깨 부분을 가까스로 맞혔는데, 반면에 강태는 가슴 정중앙을 명중시켰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강태는 두 발이나 쐈다.
물론 첫 발을 놓친 바람에 두 발을 쏜 것이지만, 그건 강태가 아직 숙련되지 못해 벌어진 일일 뿐.
결과적으로 두 번째 탄을 명중시키면서 실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재장전은 일종의 페널티와도 같았다.
반자동 저격 총이라면 가스압으로 자동 장전되어 연이어서 사격해도 상관없지만, TAC-50은 볼트액션식이라서 직접 장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즉, 고정했던 자세를 풀어야 하고, 사격 준비를 새로 해야 한다는 뜻.
그리고 강태는 페널티나 다름없는 모든 과정을 어마어마한 속도로 커버한 것이었다.
“자, 사격 준비.”
제이크가 씩 웃으면서 턱짓했다.
그리고 방금처럼 거리를 알려 주고, 표적 알파벳과 번호를 부른 순간.
타아아앙─!
또 강태가 먼저 쐈다.
그러나 앞선 두 사격과 달리, 관측경으로 보고 있던 제이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리, 맞았어.”
드디어 단번에 성공한 것이었다.
“……!”
아직 스코프 눈금에 표적도 걸지 못했던 브래드의 눈이 동그래졌다.
표적을 불러 주고 고작 2초가 지난 상황.
“하… 이런 말도 안 되는…….”
아까는 맞지 않아서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은 맞았으니까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표적은 무작위고, 스코프는 모두 기본 상태였다.
사격 좀 한다는 일반인들은 아직 표적도 못 찾았을 게 분명했다.
자신조차 눈금을 봐 가면서 오조준을 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2초 만에 맞히다니?
강태가 탄피를 빼면서 겸연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지금 건 운이 좋았습니다, 간신히 옆구리를 맞혔네요. 바람이 좀 더 약했으면 빗나갔을 겁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집니다, 아까 어깨를 맞혔으니까.”
강태와 브래드가 말을 주고받을 무렵.
제이크가 만족스러운 듯 금빛 수염이 풍성한 입을 열었다.
“이제 제대로 된 대결이 되겠군.”
그 뒤로 제이크가 더 커진 목소리로 표적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음식이라도 주문하는 듯.
그렇게 두 라인의 모든 표적을 부른 제이크가 곧장 옆에 있는 새로운 사로로 눈짓했다.
장거리 이동 표적지가 있는 곳이었다.
모래주머니로 가려진 레일을 따라서 표적지들이 시속 6-10㎞/h로 랜덤하게 움직이는 곳.
이것도 같은 규정을 적용했고, 금세 내기를 겸한 사격이 진행됐다.
둘이 가져온 탄약 박스를 텅텅 비울 때까지.
그리고 오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자, 둘 다 수고 많았어.”
30점 대 30점, 무승부.
사격 중간중간에 미소를 짓고 있던 제이크가 그 어느 때보다도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오늘은 꽤 즐거운 날이군.”
“제이크, 후임이 고전하는 꼴을 보니까 행복한 겁니까?”
브래드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고, 이내 제이크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보기 드문 명승부였잖나?”
“하… 보기 드물긴 했죠. 세상에, TAC-50을 처음 만져 봤다는 사람을 못 이겼으니까.”
그러면서 브래드의 시선이 강태에게 닿았다.
“리, 솔직히 말해 봐요, CIA 비밀 실험 같은 걸 받은 겁니까? 아, 혹시 제이크도 같은 데서 만든 슈퍼 솔져 맞죠?”
“제이크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말이 안 되잖아요, 오늘 TAC-50을 처음 만졌는데… 어떻게 비길 수가 있죠? 사격의 달인이라고 해도, 이건 처음이라면서요?”
농담기가 있긴 했지만, 반 정도는 진심이었다.
그냥 천재라고 하기에 말도 안 되는 조준 속도와 격발 솜씨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숙련되지 않았을 뿐.
강태가 5주짜리 저격수 양성 코스만 다녀와도 자신을 압도할 게 분명했다.
만약 수 개월짜리 저격수 고급 코스에서 교육받는다면, 그저 자신을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저격수가 될 것이었다.
교육이 아니어도, 충분히 숙련만 되면 저격의 달인이 될 게 분명했다.
그사이, 듣고 있던 강태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못 맞힌 게 더 많아서 좀 민망합니다. 실전이었으면 실패한 거니까… 그냥 제가 진 걸로 하시죠.”
그 말에 브래드가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당신은 저격 총도 처음 다뤘으니까… 사실 내가 졌다고 봐야죠. 나는 각종 저격 훈련을 1년 넘게 받은 사람입니다. 실전은 10년이 넘었고요.”
“아…….”
예상보다 긴 경력에 강태가 주춤한 사이.
“그러니까 무승부로 하고, 차라리 제이크가 사는 거로 하죠. 명승부를 구경한 티켓값으로.”
그 말에 제이크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영상부터 회수해야겠어.”
말끝에 그의 손가락이 스코프에 달린 조그만 전자 장치로 향했다.
렌즈에 담기는 것을 자동으로 녹화할 수 있는 일종의 저격 총기용 블랙박스였다.
브래드가 다 안다는 듯 씩 웃었다.
“슈퍼 솔져를 만드는 귀중한 데이터겠군요.”
그 사이에서 당사자인 강태가 눈을 껌뻑거렸다.
“이게 녹화도 된다고요? 스코프 배율은……?”
“배율 조정한 것도 그대로 녹화되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당신이 스코프로 본 모든 것이 그대로 저장된다고 생각하면 돼요.”
“와… 별 게 다 있구나…….”
강태가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이, 브래드가 픽 웃고 말았다.
“뭔들 당신만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