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30화 (30/185)

30화

국무부 대외협력국장 로버트 엔더슨은 한창 야근 중이었다.

장기화될 거라고 여겼던 세르게이 추적 건이 점차 해결되면서 증거들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바로 미사일 거래와 실험 흔적.

구체적으로는 남중국해 타릴 제도의 무인도와 해상에서 벌어진 일들인데, 그 한가운데에 세르게이가 있었다.

그것도 단순 연관이 아니라, 아예 주도하고 실행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상황.

‘…늦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는군.’

로버트가 피곤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보고서를 바라봤다.

우회한 메일 기록을 토대로 연관된 수십만 건의 다크웹 기록을 살피고, 범죄자를 비롯해 관련 인물들과 접촉해서 얻은 휴민트 정보를 분석하고, 거기에 인공위성과 고고도 무인정찰기의 영상을 픽셀 단위로 비교해서 얻어 낸 인간 승리의 결과물이었다.

그야말로 개고생인데,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세르게이의 활동 예상 지역.

‘카마르니아 공화국…….’

이내 로버트의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관련 자료들이 떠올랐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이었으나, 현재는 독립하여 아제르바이잔과 러시아 사이에서 위태하게 버티고 있는 캅카스의 부분 승인국.

친러파와 반러파가 내전을 일으키고, 영토가 인접한 아제르바이잔 역시 갈등을 빚고 있었다.

캅카스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위험한 전장.

그러나 남중국해에 인접한 국가들의 정보 유실로 교차 검증을 하지 못해서 보고서에 관련 기록을 다 기록할 수 없었다.

대부분 추측이고, 가정이었다.

세르게이의 흔적이 묻은 자료 몇 개가 카마르니아로 향할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를 보는 로버트의 눈은 달랐다.

‘위장이든, 아니든… 흔적이 남았다는 건 이유가 있는 법이지.’

타릴 제도를 이 잡듯 뒤졌던 것처럼 카마르니아도 같은 방식으로 찾아보면 금방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그렇게 로버트가 마지막 확인을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려던 무렵.

띠리리리─

인터폰의 벨소리가 울리면서 LCD 화면이 깜빡거렸다.

띡, 버튼을 누르고 용건을 물었을 때였다.

-한국에서 긴급 보고가 왔습니다, 국장님. 전자메일을 확인 부탁드립니다.

“바로 확인하지.”

대답한 그가 종료했던 컴퓨터를 다시 켰고, 아이콘을 클릭해서 올라온 전자메일을 확인했다.

이어서 내용을 읽어 내려가길 잠시, 이내 인상을 쓰고 말았다.

“이런…….”

강태가 출국 과정에서 따로 분류됐다는 내용이 기록된 탓이었다.

그것도 옵저버로 선발된 요원들이 공항에서 10분간 지켜보다가 올린 보고여서 길게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몇 초의 생각 끝에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잠깐 대기하고 있어.”

그리고 이걸 해결할 만한 한국의 정보원을 찾으면서 고민했다.

정확히는 강태의 출국 과정에 개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서 저울질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의 정보원을 찾는 순간부터 마음이 한쪽으로 기운 것과 다름없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결정하지는 못했다.

강태가 단순 오류로 잡힌 건지, 아니면 임시 억류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체포나 구속되어 수감된 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혐의나 이유도 모르는 데다가, 그 외에도 개입하기 걸리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강태가 미국인이 아니라는 점, 또한 한국의 기관에 의해 잡혔다는 점 그리고 연락하는 순간부터 강태와 국무부의 관계가 드러난다는 점 등등.

그러나 그중에서도 신경 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리를 빼내는 순간부터 노출될 텐데…….’

로버트가 고민하는 노출은 국무부와 강태의 관계나 강태의 뒤에 국무부가 있다는 의혹 같은 게 아니었다.

대외협력국의 실질적인 역할은 드러나지 않을 거고, 만에 하나 드러난다고 해도 부서명과 직원들을 갈아엎으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강태였다.

그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 이제부터는 미국만의 강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강태가 될 가능성이 컸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소문으로는 이미 CIA나 국토안보부도 강태의 실력을 대략적으로 인지하고 있다고 했었다.

이으고 로버트의 입에 헛웃음이 어리고 말았다.

‘…모를 수가 없겠지.’

200M 내외의 적도 조준과 동시에 사살할 수 있는 순발력과 적의 엄지손가락만 날려 버리는 정교함까지 가진 인간 병기이자 사격의 천재였으니까.

이걸 아는 순간, 사방에서 눈독 들일 게 분명했다.

또한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어쩌면 한국이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발 빠르게 협상 중이라면?

미국으로서는 뼈아플 것이었다. 영주권도 못 내줬으니까.

반면에 한국은 강태의 국적은 물론이고 과거까지 갖고 있으므로, 협의에 더 유리한 입장이었다.

로버트의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리를 미국인으로 만드는 장기 계획을 앞당겨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결정을 내리려던 순간.

우우우웅―

인터폰이 아닌, 정장 안주머니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본 로버트가 멈칫했다.

‘제이크?’

사적인 일로는 절대 전화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작전과 관련된 사안 아니면 대외협력국과 연관 있는 일로만 연락해 왔기에, 이 전화 역시 로버트의 관할일 게 분명했다.

판단과 동시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이크의 용건이 건너왔다.

-로버트, 리에게 일이 생겼는데 알고 있습니까?

“보고 받은 게 있긴 한데, 자네의 말이라면 다 제쳐 두고 일단 듣겠네.”

-리와 통화를 했었습니다. 원래 장거리 사격장에 가기로 하고 항공권을 변경한다고 했었는데, 공항 직원에 의해서 따로 대기 중이라고…….

“잠깐만, 뭐라고?”

-자신을 따로 대기시켰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 전에. 장거리 사격장?”

로버트의 눈이 빛났다.

시가전과 CQB의 천재인 강태의 스나이퍼 솜씨가 기대돼서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제이크가 만든 약속에 추가할 만한 제안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잠깐 동안 사무실 천장을 보던 로버트가 얼른 말을 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나? 사격장에 간다고 했으니까, 그린 카드 발급도 함께 진행하는 거야. 자연스럽게.”

-그린 카드라면, 영주권을 말하는 겁니까?

“그래, 리는 자네만큼 훌륭한 미국의 전략적 자산이 될 수도 있네. 최소한 영주권 정도는 있어야, 미국이 보호하고 함께 할 수 있지. 그게 아니어도 총기를 구입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린 카드가 필요한 법이고.”

-…동의합니다만, 정정할 게 있습니다.

“정정? 뭐 틀린 게 있나?”

로버트가 자신의 말을 되짚으며 묻는 사이, 제이크의 짧은 답이 돌아왔다.

-리는 이미 저보다 훌륭한 전략 자산입니다.

“아, 그 말이었군. 알겠네. 아, 그리고…….”

로버트가 잊을 뻔했다는 듯 말을 달았다.

“리의 스나이퍼 테스트 기록은 영상과 표적지까지 첨부해서 상세하게 보고하게.”

-그럼 리의 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해결 가능합니까? 저와의 약속으로 항공권을 변경한 거라서 책임감이 큽니다.

“걱정하지 말게, 이미 보고 받았었네. 곧 처리할 테니, 사격이나 즐기게.”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과정은 간단했다.

국무부 간부를 통해 한국에 연락하고, 거기에 G&G Corp에게 전달받은 공식적인 항의 서한을 보내는 것인데, 채 10여 분도 안 걸렸다.

강태가 격리된 지 30분 만에 모든 게 해결된 셈이었다.

로버트가 이내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그린 카드 한 장 준비해 두게.”

* * *

이른 오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공항.

쌀쌀한 11월 초의 날씨에, 패딩 점퍼의 지퍼를 올리며 공항 밖으로 나왔을 무렵이었다.

“리!”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들면서 반응하려다가 헛숨을 내뱉고 말았다.

오래간만에 봐서 그런지, 그의 덩치가 더 커 보였기 때문이었다. 흡사 공항을 받치던 기둥이 움직이듯.

‘패딩 입으니까 더 커 보이네…….’

감탄하던 무렵,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에서의 일은 잘 해결됐나?”

“예, 실수했대요. 죄송하다고, 좌석도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해 주더라고요.”

“잘됐군.”

짤막하게 대꾸한 그가 바로 한쪽으로 턱짓했다.

“내 차로 가지.”

“그러죠, 근데… 어디로 갑니까?”

“아침 식사했나?”

“예, 기내식 먹었습니다.”

“그럼 사격장으로 가지.”

“예? 바로요?”

주춤하며 되묻자, 나란히 걷던 제이크가 멈칫하며 날 돌아봤다.

“싫은가?”

“아니, 그건 아닌데… 호텔 잡고 가방은 놓고 가려고 했죠. 배우는 게 좋긴 한데, 도착하자마자 갈 줄은 몰랐거든요.”

“후임은 이미 사격장에 있어.”

“아… 그럼 가야죠. 대단들 하시네요, 해 뜬 지 얼마나 됐다고…….”

“차는 저쪽이야.”

제이크가 용건이 끝났다는 듯 앞을 보며 나아갔다.

그의 추진력에 헛웃음이 나던 무렵.

“타, 이 차야.”

제이크가 차로 손짓했는데, 그걸 보면서 또 멈칫했다.

“……?!”

전차 같은 픽업트럭이 한 대 있었다.

험비보다도 컸다.

대충 봐도 길이가 6M를 넘어서 7M에 달했고, 폭도 2.5M는 충분히 넘는 사이즈.

“와… 차도 자기 같은 것만 타네…….”

“뭐?”

“아, 아니… 차가 엄청 크다고요. 이건 군용 아니에요? 특임대에서 행사할 때 봤던 것 같은데…….”

“맞아, F450이라고 미 육군에서 쓰던 픽업트럭이야. 차체와 창, 전부 방탄이어서 험비하고 다를 게 없지.”

“와아… 지리네, 그러니까 팀장은 동네에서 험비를 탄다는 거잖아요? 위에 기관총 없는 민간 버전으로.”

“그런 셈이지.”

“원래 험비 스타일을 좋아하는 겁니까?”

게임 속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차량이라서 물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한데 제이크가 조금 무거워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아. 미국은 총으로 세워진 나라고, 많은 적성국으로부터 테러의 위협도 받고 있으니까, 나 역시 위험을 대비하고 있을 뿐이지.”

“…….”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길 바라지만, 어쩌면 마트에 가던 와중에도 이 차가 필요하게 될 수도 있고.”

이어지는 그의 말에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갑자기 분위기를 바꿔서 어색했다거나 신념 같은 게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제이크의 말대로 되기 때문이었다.

할리우드 영화나 FPS 게임 스토리가 다 그렇듯, 라레플에서도 미국의 워싱턴 D.C를 배경으로 총격과 폭탄 테러가 발생했었다.

핵전쟁이 나기 직전의 클라이맥스 상황에 피칼이 벌인 일이었다.

그리고 전투에 참여했던 세르게이가 죽었는데, 사실상 별 의미는 없었다.

다음 시나리오가 핵미사일 발사였기 때문이었다.

테러는 그저 눈가리개 용도였고.

그사이, 제이크가 운전석의 묵직해 보이는 문을 열면서 말했다.

“타, 얼른 가자고. 50마일(80㎞) 거리야.”

그 말에 나도 무슨 덤프트럭에 오르듯이 조수석에 탑승했다.

이후로는 별말 없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30분도 채 안 되어서 건물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온통 밭이었다.

가끔씩 가로수보다 훨씬 키가 큰 나무들이 도로 좌우에 서 있기도 했으나, 그 사이사이에는 끝이 없는 밭이 펼쳐져 있었다.

‘역시 미국… 무지하게 크네…….’

그렇게 3차선 대로를 타고 밭을 가르듯 한참을 달린 뒤.

비로소 차의 속력이 줄어들었다.

연하게 들려 오던 총성이 점점 커졌고, 곧 사격장 안내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곳도 내가 봤던 땅덩어리처럼 넓었다.

축구장 수십 개를 깔아 놓은 크기.

탄을 막아 줄 언덕이 멀찍이 하나 있을 뿐, 나머지는 광활한 평야였다.

중간중간에 거리별 표적과 탄을 막아 줄 흙더미가 좀 쌓여 있긴 했는데, 워낙에 면적이 커서 그런 건 티도 안 났다.

‘크으… 죽인다……. 이게 사격장이지.’

길도 없는 산등성이에 400M짜리 표적을 심었던 기억 때문인지, 재차 감탄만 나왔다.

원치 않는 산악 구보는 또 얼마나 했었는지.

옛날 생각에 쓴웃음을 지을 무렵, 어느새 사무실에서 사람이 한 명 나왔다.

척 봐도 제이크의 후임으로 보였다.

떡 벌어진 어깨나 다부진 체구 그리고 힘 있는 눈빛이 누가 봐도 군인 같았으니까.

예상대로 그가 제이크와 인사를 나누고, 내게도 악수를 청해 왔다.

“드디어 만나는군요! 당신 얘기를 얼마나 들었는지… 워우, 정말 반갑습니다. 브래드라고 합니다.”

덥석, 힘주면서 악수를 하는데, 그가 연이어 목소리를 냈다.

“그게 사실인가요? 당신이 테러범의 엄지를 날렸다는 게?”

“아… 예.”

“정말 끝내주는군요, 그럼 날아오는 대전차 수류탄을 맞힌 것도 진짜겠군요. 엄지에 비하면 별거 아니니까.”

“그것도 그렇긴 한데…….”

“오, 어서 보고 싶군요, 갑시다.”

그가 나를 떠밀 듯 데려가기에 혹시나 해서 물었다.

“그… 제가 배우러 온 입장인데, 알고 계시는 거죠?”

“아아, 제이크가 그런 말을 하긴 했는데… 역시 듣던 대로 겸손하군요.”

“예?”

“내기나 합시다, 점심 내기 어때요?”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같은 사로를 쓰는 동료를 대하는 듯한 태도.

괜히 부끄러워져서 둘을 잡아끌었다.

“…아휴, 일단 들어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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