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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24화 (24/185)

24화

험비에 물건이 적재되듯 실렸다.

탑승 인원이 너무 많아서 좌석을 초과해서 앉은 것인데, 그 사이에서도 한 손은 문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HK416을 쥔 채 전투를 준비했다.

피격당할 시에 바로 내려서 반격할 수 있게끔.

내가 적을 꽤 많이 사살하긴 했지만, 잔당이 적잖게 남아 있던 탓에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알려졌던 2, 30명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 두 배 혹은 세 배.

그리고 탑승을 마치고 퇴로를 달리자마자, 예상대로 험비를 향한 공격도 시작됐다.

타다다당―! 타다당!

AK-47의 탄인데, 다행히 험비를 세우고 반격할 정도는 아니었다.

눈먼 총알이 험비에 튕겨 나가는 정도.

적이 사격을 못하기도 하지만, 우군이 가진 화력이 더 강력한 덕분이었다.

바로 험비 지붕에 달린 M60 기관총.

투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7.62×51mm의 탄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격발되고, 땡그랑거리는 탄피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자살 특공대처럼 달려드는 놈들이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어졌는데, 소모하는 탄에 비해 적의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정밀 사격이 어렵거나 사수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의도했기 때문이었다.

눈에 훤히 보였다. 왜 그러는지도 알았다.

이유는 하나.

바로 민간인 피해의 최소화였다.

그 외에 내전의 나라인 이라크에서 고려할 만한 사항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G&G Corp 팀들이 수류탄 같은 폭발물이나 칼 구스타프 같은 무반동포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고.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히는 무기들이라서 쉽게 쓸 수가 없었다.

물론 이곳이 외딴 전장이라면 고폭탄부터 일단 갈겼겠지만, 여기는 루트바라는 민가와 상가가 있는 조그만 도시였다.

민간인들이 있고, 그 틈에 ISIL 잔당들이 섞인 곳.

소총으로 조준 사격하거나 제압 사격하는 거라면 몰라도, M60은 거리를 조절하면서 쏘지 않으면 근처의 비무장 민간인까지 죄다 갈려 나갈 것이었다.

그러면 TV에 얼굴이 실리게 될 거고, 더 나아가 복잡한 법적인 책임까지 묻게 될 터.

물론 묻히고 가려질 사고가 더 빈번하겠지만.

어쨌든 그나마 다행이었다.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여기서 탈출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부아아아앙―

험비의 거친 엔진음이 울려 퍼지기를 잠시, 곧 우리가 타고 온 SUV까지 도착했다.

적의 위협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안전한 위치.

“후아……! 국경을 밀입국하는 기분이었어.”

호세가 너스레를 떨면서 좁은 험비에서 내렸고, 대기 중이던 브라보 팀은 세워 놨던 SUV에 얼른 올랐다.

덜컹.

호세와 제이크, 나, 이반 그리고 초췌한 요구조자가 함께 탄 다음이었다.

비로소 연한 긴장이 풀리면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후…….”

아까처럼 뛰쳐나가면서 반격할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됐다. 우릴 여기까지 데려다준 요르단 PMC에서 경호해 주듯 같이 운행해 준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어도 루트바 외곽 지역을 벗어나면서 더 이상의 위협 같은 것도 없었고.

그렇게 반사적으로 내 장비를 확인하려던 때였다.

“허…….”

헛웃음이 나고 말았다.

“아니, 산 지 얼마나 됐다고…….”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최근에 할부로 샀던 레이저 표적 지시기의 일부가 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케이블로 연결된 라이트의 렌즈도 금이 간 상태였고, 그 외에도 2, 30달러짜리 탄창과 지혈대, 무릎 보호대까지 전부 새로 사야 했다.

‘오늘 해 먹은 게 2,500달러 정도 되나?’

우리 돈으로 3백만 원이 넘었고, 내 월급의 30%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물론 다음 달에 월급의 500%가 보너스로 들어온다고는 했는데, 그것도 매번 받는 게 아니니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됐다.

그리고 저번 작전에서도 수백 달러를 손해 봤었다.

예전에 특전사 선배에게 들었던 PMC 얘기 중 하나가 떠올랐다.

‘많이 버는 것 같아도 남는 게 없다고 했었지……?’

용병에게 필수적인 장비 구입이나 수리, 각종 교육 수료부터 일상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전부 사비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었다.

심지어 보험조차 최소한의 책임보험하고 비슷해서 보상 액수가 형편없기도 했고.

거기다 돈을 좇는다는 사회적인 편견도 좋지 못했다.

이 모든 건 의무를 수행하고 충성했던 군 출신이 겪기에는 달가운 게 아니었다.

돈이든, 명예든.

생각보다도 아쉬운 직업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물론 다리 병신이었던 내 처지에서는 멀쩡하게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긴 했지만.

옆에서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통성명도 못 했는데… 이름이 뭡니까?”

이반이 날 건너다보고 있었다.

“이강태요.”

“이카앙… 크흠, 미안하지만, 편한 발음 없습니까?”

“리.”

“훨씬 좋군요, 리. 그런데… 아까 말을 들어 보니까, 최근에 산 레이저 포인터가 고장 난 모양이군요?”

“예, 뭐…….”

“비싼 겁니까? 한… 2천 달러 정도 되는 건가요? 2천2백 달러?”

“어? 아세요?”

“저도 비슷한 업종이다 보니……. 오늘 비용이 단단히 깨진 모양인데, 내가 당신 얘기를 잘해 두겠습니다.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면서 이반이 입꼬리를 당겨 웃어 보였다.

무슨 속셈인가 바라볼 무렵.

이반의 말이 덧붙었다.

“아니면 나하고 같이 러시아로 가면 제대로 챙겨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아시아계 미국인입니까? 아니면……?”

그가 국적을 물어보는 듯 말꼬리를 흐리기에 짧게 답해 주었다.

“한국인이요.”

“오, 한국! 정말 다행이군요. 일본인은 좀 별로지만, 한국인까진 괜찮습니다. 나하고 넘어가면 지금 당신이 받는 연봉의 두 배는 받게 해 드리죠.”

그제야 옅은 웃음이 났다.

이 SVR 대원이 무슨 말을 하나 예의 주시했는데, 알고 보니 스카우트 제의였다.

곧 이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농담이 아닙니다, 리. 여기서 당신이 받는 연봉이라고 해 봤자… 적으면 10만 달러? 많아야 15만 달러 아닙니까? 대신에 나와 함께 가면 그 2배! 연봉 30만 달러를 받게 해 주겠습니다. 계약금도 두둑이 챙겨 드리죠. 바그너 그룹에 친한 친구가 있어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바그너 그룹이면 푸틴의 사병이라고 불리는 러시아의 유명한 PMC였다.

국제적으로 이름도 있고, 악명도 있고.

당연히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2배가 아니라, 3배가 된다고 한들.

한데 읽기라도 한 것처럼 이반의 말이 돌아왔다.

“만약 러시아어까지 구사할 수 있다면 3배를 드리죠. 당연히 15만 달러 기준입니다. 그러니까 러시아어를 한다는 조건으로 45만 달러를 제안하는 겁니다.”

이미 러시아어를 알아들으니, 말만 할 줄 알면 5, 6억에 달하는 연봉을 받는다는 소리.

액수를 환산하는 사이에 운전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가 막히는군. 이봐, 러시아 친구. 당신 제정신이요? 동료들 앞에서 그딴 제안을 하게?”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호세가 불쑥 목소리를 낸 것이었다.

이반이 한쪽 눈썹을 휘어 보였다.

“이게 나쁜 짓입니까? 나는 리의 실력을 알아보고 인정한 건데… 오히려 좋은 일 아닙니까? 선택도 어차피 리의 몫이고.”

“당신 그러다가 반으로 접혀서 화물칸에 실려 갈지도 몰라. 여기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 그깟 바그너 그룹은 혼자서 다 때려죽일 델타의 괴물이라고, 괴물.”

“제안 좀 했다고 사람을 죽이기라도 할 겁니까? 긴말 필요 없이 리에게 대답을 듣도록 하죠.”

동시에 이반의 시선이 내게 오고, 백미러로 호세의 눈초리가 와 닿았다.

제이크는 묵묵히 앞만 봤고.

이반의 제안이 재미있어서 듣고 있긴 했지만, 분위기를 쎄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기에 얼른 대답해 줬다.

“저는 안 갈 겁니다.”

“…혹시 러시아가 싫은 겁니까? 미국인들이 그러듯?”

“아뇨.”

이반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따지자면… 뭐, 동료들이 좋아서지요.”

실제로 만난 건 이제 한 달도 안 된 사이였지만, 나한테는 몇 년을 함께한 관계였다.

종종 부러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지켜봤던 캐릭터들이었고.

무엇보다 이들과 있어야 피칼을 찾아내어 핵전쟁의 계획을 막을 수 있었다.

러시아로 갈 이유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연봉만큼은 혹할 액수긴 했지만, 그렇다고 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금액이 제법 커서 놀랐을 뿐.

그러자 곧 호세의 목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리! 믿고 있었다고! 아주 현명한 선택이였어.”

“믿고 있던 것치고는 눈빛이 좀 불안하던데……? 백미러로 나하고 눈 마주쳤잖아.”

“그럴 리가, 네가 잘못 본 거겠지. 하하하하하!”

호세가 시원하게 웃는 사이, 미련을 못 버린 이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인 걸 알지만, 하나만 묻겠습니다. 혹시 연봉을 더 받는 겁니까? 얼마나 됩니까?”

“아뇨, 이번 달 월급으로 8천 달러 받았습니다.”

“Блять!?(씨발!?)”

순간 러시아 욕설이 들려왔다.

놀란 것 같으면서도 화가 난 목소리.

이반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고작 월 8천 달러 준다고? 10만 달러도 안 되는 연봉으로?! 이런 미친……! 근데 왜 내 제안을 거절한 겁니까?”

“하나만 묻겠다면서요.”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도대체 왜……?”

“이해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피칼이 핵전쟁을 일으킬 거라고.

당연하게도 이건 때가 오지 않는 한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 *

작전이 끝난 후, 레이첼은 개인 정비 시간에 컨테이너 막사에서 나왔다.

목적지는 알 자마쉬 훈련 센터.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강태의 영상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급하게 차를 몬 그녀가 바로 훈련 센터 앞에 차를 멈췄고, 그대로 관리 직원에게로 직행했다.

얼떨떨한 직원이 두 눈을 깜빡거리기를 잠시.

레이첼이 곧장 용건을 말했다.

“훈련 영상을 하나 복사해 가야 해요. 원본은 삭제하고.”

“네? 무슨…….”

“개인 보안 때문에 그래요.”

그 말과 함께 레이첼이 주머니에서 10달러권 100장 묶음을 꺼내서 올려놨다.

직원의 동공이 화악 넓어졌다.

“어, 어떤 영상이죠?”

“오전에 1인 작전 코스를 이용했던 팀이에요. 내가 가서 같이 봐도 되겠죠?”

“예, 뭐 보안이시라고 하니… 당연히…….”

직원이 당황해하면서도 얼른 레이첼을 안내했고, 시키는 대로 복사해 주고 남은 건 삭제까지 마쳤다.

손에 두둑한 돈뭉치를 받은 채.

이어서 직원이 레이첼을 배웅하다가 주춤거리며 물었다.

“저기, 마담? 다음에는 언제 오시는지……? 제가 교대로 근무를 해서 말입니다.”

“더는 올 일 없어요.”

“아아…….”

아쉬워하는 그를 두고 레이첼은 알 자마쉬 훈련 센터를 떠났다.

여긴 다시 올 필요가 없었다.

강태의 실력은 확인됐고, 영상으로 확보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와서도 안 될 일이었다.

괜히 강태의 실력이 녹화된 영상이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모든 곳에서 귀찮게 굴 테니까.

이미 조짐도 있었다.

호세와 제이크가 있는 자리에서 이반이 강태에게 45만 달러를 제안한 사실.

아마 이 영상이 나가면 더 심해질 게 분명했다.

다행히 이반의 제안은 강태가 거절했지만, 다음은 모를 일이었다.

45만 달러가 아니라, 90만, 180만, 360만 달러를 주겠다고 한다면?

흔들릴 가능성이 컸다.

레이첼은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강태가 의리도 있고, 동료를 구실로 삼긴 했지만, 그와 G&G Corp의 관계는 기껏해야 2개월이기 때문이었다.

2개월이 과연 수백만 달러에 비교될까?

레이첼이 고개를 저었다. 비밀 조직 사이에서 일어나는 배신은 모두 돈 때문이고, 수백만 달러는 누군가가 배신할 만큼 충분히 큰돈이었다.

무엇보다 강태의 가치는 수백만 달러를 줘도 될 정도로 대단했다.

제대로 된 특수전 요원을 양성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0만 달러고, 강태의 실력은 그들을 압도할 만큼 대단했으니까.

당연히 다른 곳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인력이었다.

레이첼이 떨리는 마음으로 품에 있는 USB를 다시금 확인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리를 우리 쪽으로 회유해야만 해.’

방법은 불분명했으나, 정 안 되면 미인계라도 써야 했다. 육체적인 관계까지 맺은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홀려 본 적은 여러 번 있었다.

술과 분위기만 있으면 충분했다.

문제는 강태가 자신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뿐.

그런 생각 뒤로 레이첼이 에어컨 바람을 얼굴 쪽으로 돌려놨다.

얼굴이 괜히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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