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폭발과 함께 충격이 전신을 덮쳤다.
동시에 건물이 흔들렸고, 몸뚱이가 밀려났으며, 순간적인 열기가 뜨겁게 불어왔다.
반사적으로 피해야 했다.
무게 중심을 낮추며 머릴 숙였고, 시선까지 돌리기를 잠시.
1초도 안 되는 여파가 안을 한차례 뒤흔들고 사라지자, 내부에 적막이 깔렸다.
투둑, 돌 조각 같은 게 떨어질 무렵.
빠르게 건너편부터 확인했다.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안쪽 곳곳이 붕괴된 듯 먼지를 풍기고 있었다.
완전하게 무력화된 모습.
다행이지만, 머릿속은 그리 편하지 못했다.
이내 얕은 한숨까지 나왔다.
“후우…….”
방금 그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창문 너머에 적이 있다는 건 잘 알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AK-47을 든 놈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죽어 가는 순간에 내던진 대전차 수류탄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만약 건너편에서 사격한다는 걸 몰랐다면, 혹은 이반이나 우리 팀원에게 경계 전체를 맡겼다면, 내가 마침 적을 조준하지 않았더라면.
온갖 가정 속에 나온 결과는 하나뿐이었다.
‘까딱하면 뒈질 뻔했어.’
강철 멘탈 덕분에 심장 박동이 급히 올라가거나 오금이 후들거리진 않았지만, 원인과 결과가 그랬다.
방금 사선(死線) 위에 서 있었다.
건너편의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 작게 고개를 저었다.
‘라레플에 적당히 의존해야지……. 잘못하면 핵전쟁 하기 전에 뒈질 수도 있겠어…….’
지금껏 주어진 상황을 내 경험과 판단으로 해결했고, 거의 원만하게 해결되다 보니 안일했던 것 같았다.
이번 임무도 그랬다.
내 플레이에 따라서 의뢰자들을 살릴 수 있을 거라고, 그런 마음으로 움직였었다.
특성이 있고, 경험도 있으니까.
한데, 그래서는 안 됐다. 내 착각이었다.
스토리가 틀어지다 못해, 이제 게임과 무관한 게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철 멘탈이 좋긴 한데… 좀 후달려야 할 때도 존나게 멀쩡하니 원…….’
애꿎은 특성을 탓하면서 마음을 다잡을 무렵.
한 박자 늦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ساعدني! الجدار مكسور(도와줘! 벽이 무너졌어!)
“!اوووه! عيني يا عيني! لا أستطيع رؤية أي شيء(으아아! 내 눈, 내 눈! 아무것도 안 보여!)”
정확히는 맞은편 건물의 아우성이었다.
건물 자체가 박살 난 건 아니지만, 일부분이 무너지거나 부서지면서 안에 있던 적들이 소리를 지르는 상황.
어느새 호세가 자세를 낮춘 채 창가 쪽을 경계할 때였다.
이반의 입에서 나직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제기랄…….”
엎어진 테이블 사이를 바라보던 그가 어느새 한쪽 무릎까지 꿇었다.
묻지 않아도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다.
시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흰 와이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 위에 방탄복과 전술 조끼 등을 차려입은 러시아 용병.
그리고 다가가기도 전에 사망했음을 깨달았다.
그가 흘렸을, 온갖 발자국이 찍힌 혈액량이 찰박거릴 정도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체내 혈액의 절반 이상이 나왔을 터.
무엇보다 얼굴이 폭행당한 듯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고, 관자놀이에 처형하듯 총구멍까지 뚫려 있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용병도 마찬가지.
‘죽을 운명이었던 건가…….’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못 살린 그 경호원들을 놔둔 채, 몸을 돌렸다.
죽은 사람한테 더 신경 써선 안 됐다. 이 안에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요구조자가 있을 것이었다.
살아서 숨어 있던지, 경호원처럼 비슷한 꼴로 누워 있던지.
그마저도 죽으면 안타깝겠지만, 다행인 건 아직 이반하고 그의 수하 한 명은 멀쩡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임 플레이가 조금 엇나가면 전부 사상자가 되곤 했었는데, 이만하면 아직 나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결과도 금세 나왔다.
“생존자 발견! 요구조자인지 확인 바랍니다.”
레이첼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총을 겨눈 자세로 기다렸고, 이반과 남은 SVR 대원이 함께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도 뒤따라 움직였는데, 안쪽에서 러시아어가 들려 왔다.
울음 섞이고, 긴장한 듯 떠는 목소리.
살려 달라고, 고맙다고, 얼른 나가자면서 두서없이 횡설수설 떠들어 대는 말이었다.
바라본 그는 다행히 팔다리도 멀쩡했고, 어디 다친 곳도 없어 보였다.
즉, 미션은 일단 성공한 셈.
‘오케이,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이.
해석 가능한 러시아어가 귓속으로 들어왔다.
“Переводчик исчез, Я точно был вместе…….(통역관이 사라졌어요, 분명 함께 있었는데…….)”
“Давайте вернемся и поговорим об остальном.(나머지는 돌아가서 얘기하시죠.)”
이반이 말을 멈췄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잘 알았다.
통역관이라는 작자가 정보를 팔아넘기는 배신을 저지른 것이었다, 스캇이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어를 알아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게임을 해 봐서 잘 알았다.
통역관은 세르게이에게 정보를 팔았었다.
그리고 그 정보는 라레플에서 가장 중요한 메인 악역이자 핵전쟁의 주범인 피칼의 손에 들어갔다가 나왔고.
이는 어쩔 수 없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라레플 자체가 피칼이라는 범죄자를 막기 위한 게임이고, 엔딩 역시 피칼이 만든 핵전쟁으로 끝나니까.
그 생각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뭔 놈의 악역이 주인공도 아니고…….’
사실 그런 말도 많았다.
라레플의 찐 주인공이 피칼이라는 얘기.
그럴 만했다. 핵전쟁이라는 목표를 이룬 놈이 피칼이었으니까.
나도 핵전쟁 엔딩을 너무 많이 봐서 그 소리에 웃으면서 공감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됐다. 무조건 반대해야만 했다.
물론 일선에 있던 세르게이와 배신자들도 중요한 악역이고, 주인공이 돼선 안 되지만, 중요한 건 피칼이었다.
핵전쟁이라는 아이디어도, 그걸 받쳐 줄 자금도 그놈에게서 나온 탓이었다.
한숨이 나오려던 무렵, 다행히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여기는 브라보! 요르단에서 M60 달린 쓸 만한 험비 4대가 지원 왔음, 현 위치 송신 바람!
몇 분이 더 걸릴 텐데, 예상보다도 빠르게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냥 좋다고 마중 나갈 순 없었다.
우린 아직 전장에 있었다.
탕! 탕! 타당!
곧장 총성이 울려 퍼졌다.
2층 창가에서 눈만 내밀고 있던 호세가 바깥의 거리를 향해 쏜 것이었다. 동시에 반격하는 AK-47의 총알 소리가 났고, 이어서 건물 입구에서도 빠른 격발음이 울려 퍼졌다.
탕! 타당! 타당! 탕! 탕!
보진 않았지만, 1층 입구를 경계 중인 마커스일 터.
역시나 무전이 이어졌다.
-1층 입구 근처에 적 출현, 지원 바람.
제이크에게 내가 가겠다고 신호를 주는 사이, 호세의 짜증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빌어먹을 좀비 새끼들 같군. 폭발 소리 듣고 몰려오는 것 좀 봐. 헬파이어로 날려 버리고 싶을 지경이야.”
민간인들도 있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지만, 어쨌든 아직 처리할 게 많았다.
무전만 보면 상황이 마무리될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탈출로를 찾아 이동하고, 우군과 접선해서 험비에 안전하게 탑승해야 했다. 그리고 빠져나가는 순간까지도 중기관총이나 RPG-7, 지뢰와 대전차 수류탄을 조심해야 했다.
지원군 소식을 듣고서 다음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게임하고는 전혀 달랐다.
이에 얼른 계단으로 내려가자, 1층 입구의 벽에 기대어 경계 중인 마커스의 모습이 보였다.
사막색의 헬멧에 반들거리는 검은 피부가 유독 대비되는 모습.
내 인기척을 먼저 느낀 것인지, 그의 입이 열렸다.
“리?”
“그래, 나야.”
“다행이군, 든든한 명사수께서 오셨으니.”
“흐흐흐, 그래서 상황은 어때?”
“놈들이 늘고 있어. 확인된 것만 최소 8명 이상. 그리고…….”
말을 잇던 찰나.
탕! 탕! 타탕! 타타탕!
마커스가 다시금 총을 쏘고서 옆으로 빠져나왔다.
노리쇠가 뒤로 밀리며 멈췄다.
탄창이 비었다는 뜻.
“재장전!”
그의 고함에 맞춰서 내 발도 움직였다.
훈련하면서 제대로 합을 맞춘 적은 몇 번 안 됐지만, 반사적으로 그의 빈자리로 뛰어 들어간 것이었다.
마커스도 옆으로 비켜 줬고.
그리고 바로 어깨에 견착하며 적을 겨누자, 그의 나직한 말이 이어졌다.
“…마침 잘됐어. 자리를 바꿔 달라고 할 참이었거든.”
“탄 때문에?”
얼핏 본 그의 전술 조끼가 비어 있었고, 30발들이 탄창이 단 하나만 꽂혀 있었기에 한 말이었다.
소지한 120발 중에서 90발을 썼다는 뜻.
아마 그것 때문에 탄 낭비처럼 느껴지는 사격은 가급적 피했을 것이었다.
한데 돌아오는 답은 달랐다.
어느새 내 맞은편에서 자리 잡은 마커스가 씩 웃어 보였다.
“아니, 너였다면 그 여덟 명을 보는 순간 다 쓰러뜨리지 않았을까 해서 말이야.”
“고맙긴 한데, 네가 힘들면 나도 쉽진 않지.”
델타포스에게서 받은 인정이라 기쁘긴 했지만, 뒷말도 진심이었다.
특성 덕분에 에임 보정이 이뤄지고 즉각 사격이 가능하긴 하지만, 델타포스인 그가 못 쏘면 나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미처 인지하지 못하거나 에임이 잡히지 않으면 쏠 순 없으니까.
최소한 적을 인지하고 조준해야 한다.
“아냐, 리. 넌 달라.”
“…….”
따지자면 나도 내 실력이 아닌 특성 덕분이지만, 굳이 딴소리를 덧붙이진 않았다.
조용히 있었다.
어차피 특성이든, 뭐든 내 것처럼 써야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핵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주어진 조건을 전부 이용해야만 했고.
그렇게 짧은 상념 뒤로, 광학 조준경 안에 무너진 벽돌 잔해 틈이 보였다.
스쳐 가듯 보이는 형체였다.
아마 폭발에 총격까지 받고 나니, 단단히 움츠린 듯한 모습.
하지만 도망가는 건 아니었다.
정신 나간 광신도들이니, 그럴 리도 없었다. 뭔가를 준비할 터.
“놈들을 다 죽여 버려.”
“그러지.”
짧게 답하는 순간, 드디어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AK-47은 당연하고, 게임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묵직한 중기관총과 함께.
50구경 총탄으로 우릴 갈아 버리려는 모양이었다.
‘이래서 숨었어?’
판단을 마친 순간, 무전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적 기관총 발견.”
터엉─! 텅! 텅! 텅!
기관총 사수가 넘어가고, 손잡이를 잡으려던 부사수까지 마저 맞혔다.
이어서 넥마이크를 통해 기관총을 무력화했음을 알리면서, 동시에 AK-47을 들거나 빈 사수 자리를 차지하러 가는 놈들을 빠짐없이 쓰러뜨렸다.
텅! 텅! 텅! 텅! 텅! 텅!
소음기를 거친 격발음이 내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로 끊임없이 이어질 무렵.
철컥, 약실이 비었다.
“재장전.”
말하면서 얼른 물러섰고, 마커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동시에 탄알집을 빼고, 세 번째 탄알집을 끼워 넣었을 때였다.
마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들자, 광학 조준경을 보던 그의 입에 이상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허, 웃기는군. 내가 힘들면 너도 쉽지 않을 거라고? 날 놀린 건가?”
“뭐?”
“다 죽이라고 하면 죽일 수 있으면서… 왜 그런 약한 소릴 한 거야?”
그와 동시에 2층에서 목격한 것인지, 호세의 목소리가 인이어 수신기를 타고 전달됐다.
-오, 씨발. 뭐야? 미래형 유도 전자 총알, 이딴 거라도 쏜 거야? 총알만으로 놈들을 완전히 전멸시켰잖아?
그리고 차량 엔진음도 들렸다.
기다렸던 요르단 PMC의 지원 험비가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내 마커스의 웃음 섞인 말이 덧붙었다.
“거봐, 내가 넌 다르다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