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21화 (21/185)

21화

정리됐던 상황은 20M 정도 이동하자마자, 원상 복구되고 말았다.

또다시 매복과 습격이 시작된 탓이었다.

투다다다다다다당―!

투다다다다!

AK-47의 7.62㎜ 탄이 벽을 때려서 파편을 만들고, 흙바닥을 때리며 먼지를 뿌려 댔다.

찰리 팀과 브라보 팀이 반사적으로 엄폐와 응사를 실시하는 사이, 필요한 정보들이 넥마이크와 인이어 수신기, 헤드셋을 타고 전달됐다.

-전방에 적 둘 출현!

-9시 방향 창문에 한 명!

-놈들이 민간인하고 섞여 있어! 주의해!

그와 동시에 강태가 반응했으나, 직전처럼 빠르게 끝내진 못했다.

방금과 다르게 ISIL 잔당들이 몸을 사렸기 때문이었다.

건물에서 슬쩍 나와서 쏘고 다시 숨는 짓을 반복하거나, 아예 창문에 총만 내밀고 방향만 맞춰서 갈겨 대는 형식으로.

확 튀어나와서 몸을 드러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일부는 구경하는 민간인을 가장해 움츠리고 있다가 사격하고 달아나기도 했다.

간단하게 될 일이 아니었다.

물리적으로도 방아쇠 한 번에 한 명을 처리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한 번에 죽지 않으면 몇 발을 더 쏴야만 했다.

조금 전에도 그런 이유로 속사를 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지,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 팀과 함께 있는 상황.

그것도 6명이나 되는 브라보 팀이 받쳐 주고 있었고, 이반을 비롯한 SVR 대원들까지 반격하고 있었다.

쉽지는 않아도, 결국에는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9시 방향, 제압! 적 도주 중!

누군가의 말이 인이어 수신기로 전달되는 사이, 강태가 드디어 광학 조준경의 닷 포인트로 적을 조준했다.

숨어 있던 적이 내민 머리통 한가운데.

타당―!

마치 2점사와도 같은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조준경 너머의 적이 뒤로 넘어갔다.

“전방에 적, 하나 제압!”

강태가 외쳤으나, 빠르게 나아가질 못했다.

도망가고 죽어 나가는 숫자가 많았는데도, 다시금 그만큼의 인원이 보충됐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조금씩 다른 위치로.

-11시 2층! 적 출현!

-픽업트럭 뒤에도 하나 있어!

-우리 쪽 건물도 주의해, 놈들이 돌아올 수도 있어!

계속해서 말들이 쏟아지는 상황에 몇 발자국 나아가던 이반이 결국 고개를 저었다.

‘전술적으로 불리하군, 더 들어가긴 어렵겠어.’

담벼락과 건물로 전면과 측면을 가리고 있던 이반이 반대편 골목을 한차례 살핀 뒤에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여긴 이반, 더 진행하지 않고 여기서 버티겠습니다. 각자 소지한 탄약 확인하면서 응사하길 바랍니다. 앞으로 약 30분 이상 버텨야 합니다. 이상.”

30분이라는 시간이 꽤 길긴 해도, 여기서 버티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예상하기 어려운 극단주의자들이라서 난감한 부분들이 있을 뿐.

파병 경험과 특수부대 경력을 가진 용병들은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특히 강태는 예상외였다.

‘저 아시안은 자국 부대 출신이라고 했었는데……. 델타 출신들보다 눈에 띄는군.’

추가로 이들만이 아니라, 요르단과 바그다드에서 고용한 용병들도 곧 도착할 예정이었다.

각각 10분 간격으로 도착할 터.

그러면 탄약이 부족하거나 누군가 다쳐도 적당히 빠져나와서 수습할 수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노보로시스크에 주둔 중인 제108근위공수연대와 이란에 파병 나간 러시아 해병들이 도착해서 해결해 줄 테니까.

지름 4㎞에 불과한 이 마을은 붉은 깃발로 싹 다 뒤덮일 것이었다.

물론 그전까지는 이렇게 고생을 좀 해야 했다.

이반의 이가 까득 갈렸다.

‘빌어먹을 다에시(IS의 다른 말), 모조리 색출해서 죽여 버리겠어.’

그러면서 응사하려던 순간.

우우웅― 우우웅―

진동이 일었다.

카고바지에 넣어 둔 그의 폴더형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온 것이었다.

그리고 곧 핸드폰을 꺼낸 이반의 미간이 구겨졌다.

‘어디지?’

낯선 현지 연락처였기 때문이었다.

이곳으로 오는 러시아군은 아닐 테니, 아마 바그다드에 있는 PMC 관계자일 가능성이 있었다.

판단을 마친 이반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영어로 물은 순간.

-Т, Товарищ! Спаси меня!(도, 동지! 살려 주십시오!)

러시아어가 귓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자기소개도 안 했지만, 이반은 전화를 건 이가 누군지 바로 알아차렸다.

요구조자인 러시아의 주요 사업가.

이반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이, 재차 말이 덧붙었다.

-Т, Телохранитель не возвращается. Пожалуйста, спаси меня!(경, 경호원도 오지 않습니다, 제발 절 좀 살려 주십시오!)

“Успокойтесь. Где вы сейчас?(진정하십시오. 현재 위치가 어딥니까?)”

-Второй этаж! Это на втором этаже.(2층! 2층에 있어요.)

계속해서 높아진 목소리에 이반이 미간을 구겼다.

“Сначала понизите голос. GPS не работает. Так что объясните, что вы видите. Что внутри и снаружи здания?(우선 목소리부터 낮추세요. GPS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것을 설명하세요. 건물 안팎에 뭐가 보입니까?)”

-О, нет! GPS…….(오, 안 돼! GPS가…….)

“Сконцентрируйтесь и ответьте”.(집중하고 대답하세요.)”

이반이 헛소리하는 상대를 다독였고, 곧 약간의 소음과 함께 답이 돌아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식당이고, 밖은 무서워서 볼 수 없다는 내용.

이반이 GPS 오차 범위 내의 식당들을 떠올렸다.

‘2층 식당은 다해서 4개 정도… 하지만 골목을 마주 본 형태니, 어느 쪽에 있는지 확인해야 해.’

판단을 마친 그가 연이어 물었다.

“Итак, вы видите тень? В какой стороне находится солнце?(그러면 그림자는 보입니까? 태양이 어느 쪽에 있습니까?)”

-…Солнечный свет не поступает.(…햇빛은 들어오지 않아요.)

이반이 암기한 지도를 떠올리며 위치를 헤아릴 무렵.

-투다다당!

핸드폰 너머에서, 그리고 근처에서도 같은 총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숨소리 같이 줄어든 러시아어가 덧붙었다.

-Товарищ… они пришли. Спаси меня, пожалуйста…….(동지… 그놈들이 들어왔어요. 살려 주세요, 제발…….)

뚝.

통화가 끊어졌다.

이반의 치아가 꽉 물렸다.

머리가 바쁘게 회전하고 있었다. 요구조자의 위치, 상황, 구출 가능성 그리고 남은 시간까지.

‘제기랄, 최악의 상황이군.’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떠올려 보면, 요구조자의 위치가 발각됐을 가능성이 컸다.

근처에 테러범들이 많은 원인도 아마 그것 때문일 것이다.

인근을 수색 중일 터.

그렇다면 결국에 들킬 가능성이 컸다.

요구조자는 민간인으로서 숨을 줄 모르는 사람이고, ISIL은 그런 민간인을 찾아내서 참수하는 데 혈안이 된 놈들이니까.

더구나 무장한 경호원들도 없다고 했으니, 이미 사망하거나 전투 불능의 상태일 확률이 높았다.

최악이라고 할 만했는데, 모든 게 나쁜 건 아니었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우선 거리는 가깝고…….’

헤아린 요구조자의 위치는 직선거리로 약 90M였다.

총을 들고 뛰어도 20초 안에 도착한다는 뜻인데, 꺾인 골목을 고려해서 우회해도 3, 40초면 충분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었다.

‘찰리 팀의 실력이 생각보다 우수해. 델타도 그렇지만, 특히 저 아시안……. 저들을 데리고 가면 승산이 있을 거야. 이곳에 브라보 팀을 남겨서 다에시의 발목을 잡고, 나머지가 신속하게 들어가서 요구조자를 구출해 온다면…….’

1초, 2초가 마치 10분, 20분처럼 더디게 흘러가는 사이.

이반이 결정을 내렸다.

“찰리 팀장.”

약 2M 정도 뒤에 있는 제이크를 부른 그가 무겁게 말을 덧붙였다.

“방금 요구조자에게 전화가 왔는데, 상황이 급하게 됐습니다. 적에게 발각되기 직전이고, 경호원들도 모두 전투 불능의 상황으로 생각됩니다. 브라보 팀으로 다에시의 발을 묶고, 당신 팀과 함께 진입할 계획인데 그게 어려우면 저기 아시안이라도…….”

이반은 강태라도 보내 달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강태는 혼자지만 충분히 두, 세 명의 역할을 해 주리라고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이크에게 협조를 구하려던 찰나.

“찰리 집합.”

넥마이크로 찰리 팀을 소집한 제이크가 바로 이반에게 물었다.

“위치와 거리가 어떻게 됩니까?”

“아, 직선거리로 90미터, 우회하면 160미터 정도 되고, 2층에 있는 식당입니다. 그럼… 전부 갈 수 있겠습니까?”

이반이 확실한 답을 바라는 듯 제이크를 쳐다보자, 금세 대답이 돌아왔다.

“임무를 수행하는 게 우리 일이고, 나는 팀원을 홀로 보내지 않습니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바라보는 시선 역시 코앞에 겨누고 있는 한 자루의 샷건처럼 보였고.

정말 타고난 군인의 모습이었다.

바라보는 이반의 눈에도 결연함이 비쳤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무전기를 켜서, 브라보 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현 위치에서 적의 발을 묶으라고.

송신기를 타고, 브라보 팀장의 목소리가 바쁘게 전달됐다.

-뭐? 죽으려고 작정을 했나? 여기도 이 모양인데, 그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제이크, 너도 동의한 거 맞나?

“그래.”

-젠장, 통신 불능일 경우에는 5분 뒤에 현장 이탈할 거야. 우리 내규 알고 있지?

“알아.”

제이크가 짧게 두 번 답하는 사이, 어느새 그 뒤에 팀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개중 레이첼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제이크, 상부에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너무 위험한 일이에요.”

국무부 대외협력국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위험을 자초해서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게 되면 크나큰 손해가 될 테니까.

반면에 제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임무를 거절하는 델타는 없어. 그게 설령 죽는 길이라고 해도.”

“…….”

레이첼이 벽을 보듯 바라보는 사이, 강태의 목소리가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제 빨리 갑시다.”

* * *

이반의 SVR 팀 세 명이 먼저 달리기 시작했고, 그 뒤로 우리 찰리 팀이 붙었다.

ISIL 잔당을 우회하는 스타일인데, 효과는 얼마 못 갔다.

반도 못 가서 총격을 받은 탓이었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당!

AK-47을 갈겨 대는데, 이번에는 SVR 대원들의 반응이 더 빠르고 강력했다.

아예 연발로 제압사격에 들어간 것이었다.

있는 힘껏 반동을 잡으며 AK-47의 탄창을 비워 내는 모습에서 각오가 느껴졌다.

동시에 제이크를 비롯해서 우리 찰리 팀도 움직였다.

그리고 엄호하고, 반격하며 정석대로 차근차근 나아가던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앙―!

뭔가 폭발했다. 앞쪽이었다.

일순, 충격이 내 몸을 뒤로 밀어냈다.

중심도 못 잡았다. 순간적으로 몸의 균형이 무너졌고, 어느새 하늘이 보였다. 자욱한 먼지 틈새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완전히 뒤로 넘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사방의 소리가 사라지면서 초점이 크게 흔들릴 무렵.

“아……!”

정신이 들었다.

누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감이 내 팔을 움직였다.

서둘러 땅을 짚었고, 일어나면서 먼지 먹은 침을 퉤 하고 뱉어 냈다. 다행히 핏물 같은 건 없었다.

상체를 일으키고 보니, 팔과 다리도 모두 멀쩡했다.

그리고 몸을 마저 일으키면서 이런 상황이 있었는지 생각해 봤으나,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감정적이진 않았지만, 충격으로 생각이 더딘 모양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뭐가 터지긴 하지만… 이렇게 근거리는 아니었어. 게임하고 차이가 좀 생겼다는 건데…….’

생각이 정상적으로 되는 듯했으나, 일어나면서 멈칫하고 말았다.

자욱한 먼지 아래, SVR 대원이 누워 있었다.

그는 선두에서 두 번째에 위치해 있던 사람이었다.

가깝진 않았다. 나하고 그 사이에는 제이크가 있었고, 거리로 따지면 대략 5, 6M 정도 됐었다.

더군다나 나도 뒤로 밀리며 넘어졌었다.

거리가 더 멀어야 정상인데, 이 SVR 대원은 내 발치에 누워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에 코피도 나는 모습.

그러나 아직 살아 있었다.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그를 일으키려던 때.

탄식을 뱉고 말았다.

“니미…….”

그의 두 다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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