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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9화 (19/185)

19화

호세의 입에서 소위 말하는 ‘F-word’로 된 욕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거칠고 저질스런 용어지만, 나쁜 뜻은 아니었다.

엿같이 잘한다느니, 존나게 미친 실력이라느니, 빌어먹을 마법을 쓰냐는 등의 칭찬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강태가 빛에 적응하면서 실소를 흘릴 무렵, 그 중간에서 마커스가 끼어들었다.

“알았으니까 닥치고 100달러나 꺼내지 그래?”

“…젠장.”

호세가 한숨처럼 비속어를 뱉고서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강태가 안에 들어간 직후, 두 사람이 내기를 한 것이었다. 마의 기록이라고 불리는, 훈련 센터의 비공식 1등조차 깨지 못했던 2분의 기록을 더 짧게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결과는 눈앞의 조그만 전광판에 표기되어 있었다.

[RECORD: 01'56"10]

무려 1분 56초.

2분을 넘긴다는 것에 걸었던 호세가 100달러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마커스가 씩 웃으면서 채 가듯이 빼 가는 사이, 이윽고 호세의 눈이 강태에게 향했다.

돈을 뜯겨서 짜증을 내면서도 여전히 놀란 모습으로.

“리,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빌어먹을 이 훈련 센터를 와 봤던 거야? 아니면 크리스토퍼 리브처럼 투시라도 하는 거야?”

“크리스토퍼 리브가 누군데?”

“슈퍼맨! 오리지널 슈퍼맨 말이야. 몰라?”

“아… 그게 그 사람이었어?”

“그래서 너도 투시를 할 줄 아는 거야? 정말로? 아니면 어떻게 2분을 돌파한 거야? 난 네가 1등을 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빠르게 끝낼 줄은 몰랐어. 여기 1등 기록이 2분 6초라고. 2분 6초! 그런데 어떻게 그걸 10초나 줄인 거야? 중간에 탄 걸림 상황만 아니었다면 거기서 몇 초를 더…….”

줄줄이 말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머니에 100달러를 챙긴 마커스가 자르듯 끊어 냈다.

“이제 못 들어 주겠군. 언제까지 떠들 셈이냐?”

“마커스, 넌 저게 안 신기해? 2분 6초도 존나게 빠른 거잖아? 거기서 어떻게 10초를 더 줄이냐는 말이지. 중간에 탄 걸림만 아니었으면 더 빨랐을 거 아냐.”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신기하다 못해서 환상적이지. 하지만 너처럼 나불대지는 않아. 이럴 거면 차라리 랩을 배우지 그래? 가르쳐 줄 테니까 배워 볼래? 내가 이래 봬도 디트로이트의 50센트였거든.”

“지랄하지 마, 흑인 중에서 가장 랩 못하는 새끼가 무슨 랩을 가르친다고…….”

두 사람이 싸우듯 말을 주고받으며 떠드는 사이.

제이크는 가만히 강태를 바라봤다.

호세의 말처럼 마냥 대단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현장에는 늘 변수가 있고 사람마다 행동 방식이 다른 법이라 정석이랄 게 없다고는 하지만…….’

잠깐의 생각 끝에 제이크의 입이 열렸다.

“마치 녹슨 것 같더군, 리.”

“…예?”

노리쇠를 후퇴시키고 약실을 비우던 강태가 눈을 껌뻑이며 되물었고, 제이크가 무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자세나 움직임을 말하는 거야. 은퇴하고 한동안 쉰 늙은이 같았어. 혹시 네 스타일이 원래 그랬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그러자 투닥거리던 호세와 마커스도 하던 짓을 멈췄고, 제이크와 비슷한 반응을 내놨다.

“…맞아, 팀장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어.”

“음, 그래… 갓 전역한 것치고는 동작이 좀 크고 무거웠지. 불필요하다고 해야 하나?”

강태의 기록이 압도적으로 대단해서 굳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뿐, 모니터로 파악한 움직임은 사격 실력에 비교하면 상당히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정확히는 좀 더 많은 실전이나 훈련을 거쳐야 할 것 같은 느낌.

그사이, 눈을 껌뻑이던 강태가 되물었다.

“…진짜 그렇게 보였다고요?”

“그래, 네 사격술과 더 대비돼서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마치 10년은 쉬었다가 돌아온 것 같더군.”

그 말에 호세와 마커스의 시선이 자연스레 제이크에게 갔다가, 다시 강태에게로 닿았다.

동시에 강태의 입이 벌어졌다.

“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인데, 심지어 정확한 지적이라서 저절로 흘러나온 감탄이었다.

‘별반 차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티가 났다고……?’

제이크를 보는 강태의 눈에 새삼스러운 놀라움이 어렸다.

‘…진짜 보통이 아니야.’

곧장 동의한 마커스와 호세도 마찬가지였고.

곧 강태의 입이 열렸다.

“뭐든 지적해 주시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달리 댈 만한 변명이나 핑계는 없었다.

분명히 배우고 훈련했던 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모든 팀원이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제이크는 10년은 쉰 것 같다는 말까지 했었고.

그때,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네가 고쳐야 할 건 없어.”

“예?”

“의아하긴 하다만, 그게 전부야. 넌 그 녹슨 스타일로 모든 작전을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성공시켰어. 방금 테스트에서는 기록까지 경신했지. 근데 내가 뭘 고치라고 제안하겠나? 넌 CQB 강의를 들으러 온 PMC의 초짜 용병이 아니라, 한국의 특수부대에서 10년이나 복무하고 들어온 베테랑이잖나? 작전이나 훈련을 좀 더 하다 보면 녹 따위는 전부 사라지게 돼 있어. 만약에 네가 녹슨 스타일을 원한다면, 굳이 고칠 이유도 없고.”

제이크가 평소에는 하지 않던 긴 말이었다.

강태가 주춤하고, 호세와 마커스도 제법 놀란 얼굴로 제이크를 쳐다봤다.

‘와, 진짜… 드럽게 멋진 양반이야. 보면 볼수록 사람 참 진국이네.’

강태의 생각이 가벼운 상상으로 이어졌다. 제이크가 군 생활 때 선임이었으면, 혹은 담당관이나 지휘관이었으면 어땠을지.

‘쥑인다, 이게 로망이지……!’

물론 복무했던 부대에도 괜찮은 상급자들이 있긴 했지만, 제이크만 한 사람은 없었다. 그 부대가 아니어도 애초에 찾기 힘들 만한 캐릭터기도 했고.

이내 제이크가 용건이 끝났다는 듯 레이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레이첼, 네 차례야.”

분위기가 한마디에 휙 정리되면서,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갈게요.”

그녀의 얼굴에 연한 긴장감이 비쳤다.

곧 테스트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방금 강태가 남긴 영상 때문이었다.

‘…이 영상으로 확실해졌어. 리는 델타나 씰 요원들조차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실력자야. 진짜 인간 병기라고 불러야 할 만한 남자고… 일대일뿐만 아니라, 일대다의 전투에서도 절대로 지지 않을 무기와도 같아.’

내내 계산을 마친 레이첼은 짧게 결론을 내렸다.

‘영상부터 확보하고, 국장님께 보고해야 해. CIA나 홈랜드 시큐리티(Homeland Security: 국토안보부)로 넘어가면 시끄러워질 거야.’

* * *

레이첼이 1인 코스에 들어갔다 나온 이후로 남은 팀원들도 테스트를 마쳤다.

결과는 다들 비슷했다.

약 2분 중후반대.

1분 56초라는 내 테스트 결과가 독보적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뿐, 그 외에 특이할 건 없었다.

호세의 슈퍼맨 농담을 다시 한번 들었을 뿐.

이후로는 팀 코스를 진행했다.

1인 코스보다 훨씬 넓은 건물에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곳곳에 달린 스피커에서 총성과 폭음, 비명 따위가 들리고 타깃이 천장의 레일에 매달려서 여기저기로 움직였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1인 코스만큼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PC로 게임할 때 여러 번 해 본 덕분이었다.

앞장서서 기록을 단축시켰고, 동시에 적당히 상황을 봐 가면서 팀원들과의 호흡도 맞췄다.

아무리 특성이 있다고 해도,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거의 두 시간 가까이 팀 코스를 반복했고, 잠깐 쉬는 사이에 조촐하게 마련된 알림판을 보다가 멈칫했다.

CQB 교육이나 여러 총기 사용 강의 등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눈에 띄는 광고지가 한 장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격투 단체 코칭 전문 강사 MMA 강의]

라레플에 있던 것과 비슷했다.

일정 시간 교육을 받아야 하고, 수료하고 나면 발차기와 주먹질 모션만 추가됐었다.

유저에게 재미를 주는 요소 정도로 작용했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이었다.

현실은 다를 터.

단순히 주먹질이나 발차기 모션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근접 격투 실력이 늘어날 터.

‘오케이, 해 보자.’

수강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연락처를 모토로라 핸드폰에 입력했다.

애초부터 MMA든, 뭐든 배울 생각이었다.

최전선의 전투 요원으로서 병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몸이야 키도 크고 단단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특공 무술이 몸에 익긴 했지만, 10년을 방치해서 위력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애초에 그동안 다리 절뚝이는 아저씨로 살아왔었고, 게임 속으로 들어온 이후로 달리기와 근력 단련만 해 와서 사실상 근접에서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물론 깡은 차고 넘쳤지만, 그건 특수부대원이면 다 갖고 있는 것이었고.

즉, 지금의 나는 지금 뭐라도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입력한 번호로 전화하려던 때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벨소리가 울렸다.

내가 아니라, 제이크한테서.

동시에 호세와 마커스, 레이첼의 시선까지 그에게 모여들었다.

군 관계자 외에 가족도 없이, 이 외진 땅에서 용병 일을 하는 제이크가 통화할 상대는 뻔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G&G Corp 서남아시아 지부장 론 마이어스.

예상이 맞은 모양이었다.

어느새 통화를 마친 제이크가 바깥으로 눈짓했다.

“정리하고 나와.”

복귀한다는 뜻이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의 반사적으로 풀어 두었던 장비 따위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고, 출발했던 때처럼 줄줄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호세가 바로 악셀을 밟으며 출발했다.

동시에 뒤쪽을 흘깃거리며 물었다.

“팀장, 갑자기 왜 오랍니까? 뭐라고 했어요?”

그 말에 나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라서 제이크를 바라봤는데, 명령 같은 짤막한 답이 돌아왔다.

“빨리 돌아오라더군.”

“앗, 넵! 알겠습니다. 세게 밟겠습니다.”

부우우우웅―!

호세의 과장된 대답과 동시에 미쯔비시의 낡은 엔진이 무리하듯 굉음을 냈고, 몸이 시트에 기대듯 밀리며 차가 나아갔다.

그 사이에 무슨 상황인지 잠깐을 고민했는데, 아직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저번 사이렛 매트칼과의 합동작전처럼 갑자기 시작하는 임무가 여러 개 있었고, 그것도 종종 때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었다.

게임이라 다행히 패턴 같은 게 있긴 했지만, 그래도 뭘 특정할 수 없었다.

‘일단 가서 들어 봐야겠네.’

다만,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왠지 돌아가는 모양새가 게임하는 거랑 비슷한 것 같은데?’

쉴 만하면 퀘스트가 들어오고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는 게, 마치 속도감이 있는 게임 흐름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유저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끔, 단기 목표를 주듯이.

‘이러면 엔딩 막기가 더 힘들어지지 않나? 아니, 국무부에서 알아서 척척 도와주려나? 니미…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는 사이.

차가 어느새 플랜트 건설 현장의 지휘 컨테이너 앞까지 가서 정지했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

영내 대기 중이던 브라보 팀이 무장을 하고 모였는데, 한쪽에 외부인 몇 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현장의 기술자나 임원이 아닌, 우리처럼 무장한 차림.

잠깐을 바라보자, 휙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거 좀 빡센 건데?’

생각과 함께 착석하는 순간, 곧장 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론부터 말하겠네.”

우리 찰리 팀과 브라보 팀 그리고 외부인 몇 명의 눈이 모여드는 사이, 론이 화면에 붉은 점이 찍힌 지도 하나를 띄웠다.

“구조 요청이 들어왔어.”

알 자마쉬와 가까운 이라크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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